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봐야 ...
퐁타방의 화가들
1886년, 화단의 풍운아였던 고갱은 늦은 나이에 화가의 길로 접어들면서 비교적 생활비가 싸고 풍광 좋기로 소문난 브르타뉴의 퐁타방이라는 곳으로 거처를 옮겼다. 전형적인 바닷가 마을이지만 우연한 기회에 미국 화가들 사이에 입소문을 탄 이곳은, 여름이면 미국의 필라델피아 아카데미 미술학교 학생들이 몰려드는 곳이기도 했다. 고갱은 이곳에 머물면서 다양한 국적의 화가들과 어울리며 자신의 독특한 화풍을 설파했고, 이윽고 그를 추종하는 무리와 함께 이른바 ‘퐁타방파(École de Pont-Aven)’를 결성하기에 이르렀다.
이들 퐁타방파 화가들은 1889년에 자신들을 ‘인상주의적이고 종합주의적인 그룹’이라고 소개하면서 파리의 한 카페에서 전시회를 열었다. ‘인상주의적이고’라는 말을 덧붙이긴 했지만 이들은 대상의 겉모습을 눈에 닿는 대로 좇아 그리는 인상주의를 이미 넘어서 있었고, 그보다는 화가들 개개인의 주관적인 심상, 특히 해석되기 어려운 모호한 상상을 화면에 펼쳐 보이고자 했다. 인상파 시절에 자잘한 붓질로 해체시킨 색채들을 다시 ‘종합’했다는 점에서, 또 한편으로는 선과 면이라는 객관적인 형태에 화가 개인들의 주관적인 상상이라는 주제를 ‘종합’했다는 점에서 이들은 자신들이 추구하는 새로운 미술 세계를 ‘종합주의’라 불렀다.
이들은 형태를 세부적으로 꼼꼼하게 묘사하기보다는 전체적으로 단순화시켜 선명하고 짙은 윤곽선으로 표현했고, 나아가 하늘은 파란색, 나무는 초록색 등의 자연색 개념을 미련 없이 버리기 시작했다. 짙은 윤곽선에 명암이 사라진 지극히 장식적인 넓은 색면은 얼핏 중세시대 스테인드글라스를 연상시키는데, 이는 금속 표면 위에 에나멜을 입히는 칠보 기법(cloisonner)과도 비슷해 ‘클루아조니슴(cloisonnisme)’이라고도 불린다.
고갱이 종합주의를 이끌던 시절에 그와 함께한 이들 중 프랑스인으로는 샤를 라발이나 에밀 베르나르, 폴 세뤼시에 등을 들 수 있고, 이 밖에도 스위스, 영국, 네덜란드 출신의 여러 화가가 그의 이론을 좇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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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르세는 곧 인상파 회화로 통한다. 1900년 세계 만국박람회를 위해 지어진 기차역을 개조하여 1986년 미술관으로 탈바꿈시킨 이곳은 마네, 모네, 르누아르, 드가, ..펼쳐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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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um백과] 퐁타방의 화가들 – 오르세 미술관에서 꼭 봐야 할 그림, 김영숙, 휴머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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