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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오르세 미술
관에서 꼭
봐야 ...
피에르 오귀스트 르누아르

〈물랭 갈레트의 무도회장〉

요약 테이블
저작자 피에르 오귀스트 르누아르(Pierre-Auguste Renoir, 1841~1919)
제작시기 1876년

인상주의가 사물에 닿는 빛과 그로 인한 색의 변화에 주목하는 것을 특징으로 한다면, 그리하여 우리가 가지고 있는 자연색에 대한 집착을 포기하고 단단한 형태감을 상실하는 것이라면, 초기의 르누아르도 분명 그러한 경향을 충실히 따랐다. 그 역시 모네처럼 자연으로 나가 풍경화를 그리는 외광파 화가였다.(클로드 모네 〈개양귀비〉 외 항목 참조) 하지만 르누아르는 자신의 시선을 오로지 ‘보이는 대로의 자연’에만 집중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무의미하게 스치는 도심의 풍경, 그중에서도 적당히 낙천적이고 먹고살 만한 유한 계층의 사람들이 벌이는 오락과 유흥의 장소를 포착해내는 데 몰두했다.

피에르 오귀스트 르누아르 〈물랭 드 라 갈레트의 무도회장〉

캔버스에 유채 / 131×175㎝ / 1876년 제작 / 오르세 미술관, 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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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랭 드 라 갈레트의 무도회장〉은 파리 시민들이 즐겨 찾던 몽마르트르의 야외 무도회장에서 한껏 흥에 겨운 남녀의 군상을 인상주의자 특유의 활달한 붓질로 그려낸 작품이다. 르누아르는 인물들의 얼굴, 모자, 혹은 의상에 떨어지는 야외의 빛을 파랑이나 노랑, 하양 등으로 과감하게 얼룩처럼 표현했다.

그는 이 그림을 위해 몽마르트르에 작업실을 빌려 1년 반 가까이 매일 그곳을 드나들었다. 오랜 시간 공들여 작업한 수많은 스케치와 습작을 바탕으로 본 작업에 들어간 후에는 크기가 무려 세로 131, 가로 175센티미터인 대형 캔버스를 거의 매일 이곳 무도회장까지 들고 나와 작업했다고 한다.

선남선녀들의 떠들썩한 목소리가 화려한 색과 경쾌한 붓질을 타고 들려오는 듯한 이 물랭 드 라 갈레트(Le Moulin de la Galette)가 원래는 피비린내 나는 학살을 부른 파리 코뮌(Paris Commune)의 본부였다는 점은 사뭇 비극적이기까지 하다. 파리 코뮌은 비스마르크를 중심으로 세계 제패의 야욕을 품었던 프로이센과의 전쟁에서 패한 나폴레옹 3세가 그 책임을 안고 실각한 뒤에도 다시 왕정 복구를 꿈꾸자 이에 대항하여 1871년 수립된 사회주의적 반왕정파의 연합이라 할 수 있다. 이들은 물랭 드 라 갈레트에 본부를 두고 두어 달 동안 정권을 장악했지만, 결국 정부군에 의해 일주일 만에 약 2만 명이 전사한 채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잘 알려진 대로 쿠르베는 파리 코뮌을 적극적으로 지지했다가 스위스로 망명했고, 르누아르는 한때 첩자로 오인되어 코뮌에 의해 총살 직전까지 간 경험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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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숙 집필자 소개

서양미술사를 전공했다. <그림수다>, <현대미술가들의 발칙한 저항>, <루브르와 오르세의 명화산책> 등 미술관련 서적을 20여 권 저술하여 대중이 미술에 쉽게 접..펼쳐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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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르세 미술관에서 꼭 봐야 할 그림
오르세 미술관에서 꼭 봐야 할 그림 | 저자김영숙 | cp명휴머니스트 도서 소개

오르세는 곧 인상파 회화로 통한다. 1900년 세계 만국박람회를 위해 지어진 기차역을 개조하여 1986년 미술관으로 탈바꿈시킨 이곳은 마네, 모네, 르누아르, 드가, ..펼쳐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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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um백과] 〈물랭 드 라 갈레트의 무도회장〉오르세 미술관에서 꼭 봐야 할 그림, 김영숙, 휴머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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