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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에서 꼭
봐야 ... 귀스타브 모로
〈오르페우스〉
저작자 | 귀스타브 모로(Gustave Moreau, 1826~189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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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작시기 | 1865년 |
귀스타브 모로(Gustave Moreau, 1826~1898)는 에콜 데 보자르에서 정식으로 미술 수업을 받았지만 아카데미의 완강한 거부에 몸살을 앓다가 파리 미술사의 영웅으로 등극하면서 수많은 추종자를 거느리게 된 들라크루아의 미술에 크게 감명을 받으면서, 고전적이면서도 낭만적인 화풍을 추구하게 되었다.
모로는 1850년대에 살롱전 입성을 시작으로 정부기관 등으로부터 작품 의뢰를 받으면서 비교적 안정된 지위와 확신 속에서 작품 활동을 했지만, 점점 아카데믹한 고전적이고 사실적인 화풍에서 멀어지게 되고, 그로 인해 1868년경부터는 살롱전에서 냉대받기도 했다. 하지만 변화의 물결을 도저히 피할 수 없었던 아카데미는 몇몇 진보적인 화가들에게도 문을 열기 시작했는데, 귀스타브 모로가 그중 한 사람이었다. 1880년부터 살롱전에 작품을 내지 않고 독자적인 화풍을 구사하면서 이른바 변방으로 물러났는데도 1888년 정식으로 아카데미 회원이 되었던 것이다.
그는 주로 신화나 종교 이야기를 주제로 한 그림을 그렸지만, 아카데미가 추구하는 도덕적이고 영웅적이며 교훈적인 내용을 추구했다기보다는 자신의 상상, 꿈, 환상을 적절하게 혼용한, 그야말로 상징주의적인 화풍을 발전시켰다. 따라서 많은 사람이 그의 작품 세계를 두고 상징주의 회화의 시작이라고 일컫기도 한다.
그리스 신화에서 오르페우스는 죽음의 세계로 들어가 뛰어난 리라(lyre, 하프와 비슷한 모양으로, 고대 그리스의 발현악기) 연주 솜씨로 지하 명부의 왕 하데스의 마음을 사로잡은 뒤 아내를 구해오려 했지만, 뒤를 돌아보지 말라는 명령을 어기는 바람에 실패하고 만다. 실의에 빠진 그는 자신을 사랑하는 수많은 여자들의 구애를 모두 거부한 채 홀로 악기만 연주하다 그들에 의해 살해된다. 모로는 이 유명한 이야기를 몽환적이면서 우울한 정서가 물씬 풍기는 작품으로 탄생시켰다.
오르페우스는 아폴론으로부터 음악을 배운 최초의 음악가라 할 수 있는데, 그를 기리는 신비주의 종교인 오르페우스 밀교가 만들어지기도 했다. 이런 연유로 오르페우스는 일상적 삶의 안락함을 거부한 채 지독한 고통 속에서도 예술혼을 불태우는 이미지로서 19세기 이후 문학과 미술의 주제로 크게 각광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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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르세는 곧 인상파 회화로 통한다. 1900년 세계 만국박람회를 위해 지어진 기차역을 개조하여 1986년 미술관으로 탈바꿈시킨 이곳은 마네, 모네, 르누아르, 드가, ..펼쳐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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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르세 미술관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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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um백과] 〈오르페우스〉 – 오르세 미술관에서 꼭 봐야 할 그림, 김영숙, 휴머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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