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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에서 꼭
봐야 ...
프랑스 미술 아카데미
프랑스 미술 아카데미의 역사는 루이 14세 시절에 시작된다. 1648년, 국왕은 오늘날 ‘미술’이라고 하는 분야를 정통적으로 연구하는 기관을 설립하여 ‘왕립 미술 아카데미(Académie Royale des Beaux-Arts)’(이하 프랑스 미술 아카데미)라는 이름을 붙였다. 아카데미 창단 회원들은 국가와 루이 14세 왕실에서 보유한 미술품의 보관 및 유지, 작품 선정과 구매 등을 책임졌고, 대내외적인 미술 관련 일들을 총괄했다. 이후로도 아카데미 회원이 되는 것은 프랑스 미술계에서 핵심 멤버가 되는 것을 의미했으며, 그만큼 엄격하게 제한된 자격을 갖추어야만 했다.
아무리 재능이 출중한 화가 지망생이라도 아카데미 회원의 추천을 받아야만 아카데미의 부설 미술학교인 에콜 데 보자르(École des Beaux-Arts)에 들어갈 수 있었다. 에콜 데 보자르는 물감 한번 제대로 써볼 틈도 주지 않고 오로지 데생 교육으로 일관했다. 아카데미는 전통적으로 선과 형태가 색에 우선한다는 신념을 유지하고 있었고, 심지어 에콜 데 보자르는 1876년까지 채색을 가르치지도 않을 정도였다. 그만큼 미술, 특히 회화의 중심은 선과 형태이라는 고전주의적 사고가 강했다. 이곳 학생들은 몇 번의 관문을 통과해야 실제 누드모델을 보고 습작할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
에콜 데 보자르에서 공부하는 동안 누릴 수 있는 최고의 영예는 ‘로마상(prix de rome)’ 수상이었다. 이 상을 받으면 프랑스 미술 아카데미가 로마에 개설한 학교에서 최대 5년까지 머물며 공부할 수 있었다. 귀국 후에는 최종적으로 작품을 제출하는데, 심사위원들은 그 작품과 그간 보여준 학생의 취향과 능력을 바탕으로 아카데미 회원 자격을 심사했다. 또한 그가 역사화가가 될지, 초상화가가 될지, 혹은 풍경화가가 될지를 정했다. 물론 아카데미에서 제일 서열이 높은 회화 장르는 영웅, 신화, 종교 등의 내용을 바탕으로 거룩한 가치를 표현해낼 수 있는 역사화였다. 보수적인 아카데미는 진보적이고 반아카데믹한 미술가들에게는 그만큼 높은 벽이었다. 그러나 들라크루아의 경우 여섯 번이나 회원 자격 심사에서 고배를 마셨지만, 결국 1867년부터 회원이 되었고, 그의 등장으로 신고전주의와는 다른 주제와 기법을 구사하는 화가들은 미약하나마 숨통을 틔울 수 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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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르세는 곧 인상파 회화로 통한다. 1900년 세계 만국박람회를 위해 지어진 기차역을 개조하여 1986년 미술관으로 탈바꿈시킨 이곳은 마네, 모네, 르누아르, 드가, ..펼쳐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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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um백과] 프랑스 미술 아카데미 – 오르세 미술관에서 꼭 봐야 할 그림, 김영숙, 휴머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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