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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에서 꼭
봐야 ...
인상주의 그 이후
조롱과 비난을 한 몸에 받던 인상파 화가들은 전시를 거듭할수록 차츰 화단과 대중으로부터 미약하나마 인정받기 시작했지만, 아직도 많은 이가 그림으로 생활할 수 없을 정도의 곤란을 겪어야 했다. 이 와중에 몇몇은 다시 살롱전에 작품을 내며 입신양명을 도모하기도 했다. 그렇다고 해서 이들의 미술이 과거로 돌아갔다고 볼 수는 없다. 오히려 인상파 구성원들은 동료들과 차별되는 자신만의 양식을 가지기 위해 노력했고, 때로는 같은 인상파 안에서도 지나치게 앞서가는 미술에 대해 우려와 비난을 일으킬 정도였다. 1886년 마지막 인상파 전시회가 열렸을 때, 이미 그곳에는 진보의 첨단을 달린다고 자부하던 이들조차도 고개를 설레설레 저을 수밖에 없는 더 파격적인 작품들이 선을 보였다. 이를 두고 비평가 펠릭스 페네옹(Félix Fénéon)은 “이제 이 전시회와 함께 인상주의는 끝나고, 신인상주의 혹은 후기 인상주의가 그 뒤를 잇는다.”라고 선언하게 된 것이다.
사실 후기 인상주의는 인상주의처럼 하나의 집단을 이루어 나름대로의 강령을 가지고 자신들의 신념을 관철시키려는 하나의 운동이라고 볼 수 없다. 그보다는 19세기의 마지막부터 20세기 초반까지의, 인상주의보다 좀 더 새로운 주제나 기법을 추구하는 여러 미술가의 다양한 변화들을 통틀어서 부르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결론적으로 ‘후기 인상주의자’에 속하는 대부분은 인상주의에서 시작해 그것을 발전시켰지만, 그에 대한 비판 역시 함께했던 이들을 포괄적으로 칭한다고 볼 수 있다.
살롱전에 대한 반감이 인상주의 전시회를 만들었듯이, 그와 유사하거나 더욱 파격적인 모임과 전시회가 우후죽순처럼 생겨났다. 그중 1884년, 엄격한 혹은 받아들이기 어려운 살롱전의 심사 기준에 불만을 품은 몇몇 예술가는 독립예술가협회(Sociétés des Artistes Indépendants)를 결성하고 제1회 전시회를 열었다. ‘앵데팡당 전(독립전)’이라 불린 이 전시회는 말 많고 탈 많아 분쟁의 씨앗이 되곤 하는 심사위원 제도를 아예 없애 버렸고, 전시회 경비에 보탬이 될 소정의 금액만 내면 누구나 작품을 전시할 수 있도록 했다. 앵데팡당 전의 초기 멤버는 르동, 쇠라, 시냐크, 뒤부아 피에 등이었고, 회를 거듭하면서 반 고흐, 앙리 루소, 로트레크, 세잔, 마티스 등이 합류했다. 앵데팡당 전을 드나들던 이 미술가들은 대체로 인상파의 기운을 완전히 접수하여 소화하면서도 새로운 도약을 꿈꾸는, 이른바 인상파 이후의 예술가로 불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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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르세는 곧 인상파 회화로 통한다. 1900년 세계 만국박람회를 위해 지어진 기차역을 개조하여 1986년 미술관으로 탈바꿈시킨 이곳은 마네, 모네, 르누아르, 드가, ..펼쳐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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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um백과] 인상주의 그 이후 – 오르세 미술관에서 꼭 봐야 할 그림, 김영숙, 휴머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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