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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미술관에 간
화학자
르누아르

〈피아노를 치는 소녀들〉

따뜻한 햇볕을 그린 화가

르누아르, 〈피아노를 치는 소녀들〉, 1892년, 캔버스에 유채, 116×90cm, 프랑스 파리 오르세 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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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누아르(Pierre Auguste Renoir, 1841~1919)는 미술사 전체를 통틀어 가장 뛰어난 색채화가이자 인물화가이다. 특히 여체를 그리는 데는 누구도 모방할 수 없는 높은 경지를 보여주었다. 누드의 천재라고 할 수 있는 루벤스를 잇는 여체 표현의 대가이다. 루벤스는 '살'을 그렸으나 르누아르는 '살갗'을 그렸다. 르누아르는 "풍경을 그린 그림을 보면 그 속에서 산책을 하고 싶어져야 하고, 여체를 그린 그림을 보면 모델을 껴안고 싶어져야 한다"고 말했다.

시선을 따뜻하게 만드는 색감의 효과

르누아르가 그린 〈피아노를 치는 소녀들〉의 전체적인 색조는 붉은색과 노란색이다. 따뜻한 색이 주를 이루고 있어서 전체의 분위기를 따뜻하고 풍부하게 만들어 준다. 부드럽고도 풍부한 소녀의 금발이 포근함을 더해 준다. 여성의 머리칼을 이렇게 아름답게 그린 화가는 르누아르 말고 더 있을 것 같지 않다. 녹색 커튼을 드리워서 붉은색이 더욱 살아나게 보색 효과까지 더하였다.

르누아르의 붓 터치는 매우 독특하다. 미술을 잘 모르는 사람도 르누아르의 그림은 구별해 낼 수 있을 만큼 특징적이다. 배경과 모델 사이의 윤곽선이 모호하도록 문질러서 매우 부드러운 형태를 창조하였다. 르누아르도 인상파로 분류되지만 이 그림은 그가 인상파와는 결코 같지 않다는 사실을 여실히 보여준다. 르누아르도 클로즈업 기법을 써서 일상의 순간을 포착한 분위기를 만들기는 했다. 그러나 그는 고전적인 조화와 편안함을 추구하였다.

피아노를 치는 소녀들 구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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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이 그림은 구도상 매우 철저하게 계산된 완벽한 균형미를 보여준다. 수직선과 수평선, 좌우 대각선이 아주 균형 있게 조화를 이룬다. 피아노 치는 소녀의 상체가 화면 좌우를 황금비율로 분할하는 빨간색 수직선을 이룬다. 소녀의 두 팔은 노란색으로 표시한 수평선이다. 파랗게 표시한 오른쪽 위에서 왼쪽 아래로 흐르는 대각선은 지켜보는 소녀의 두 팔이다. 녹색으로 표시한 왼쪽 위에서 오른쪽 아래로 흐르는 반대 방향의 대각선은 커튼과 피아노가 맡고 있다. 완벽하게 조화로운 구도이다.

그림에 철학은 없지만 대중에게 가장 사랑받은 화가

르누아르는 60여 년 동안 약 6,000점의 그림을 남겼다. 그림을 그리지 않은 날이 하루도 없었던 것 같다고 스스로 말했을 만큼 쉴 새 없이 그렸다. 말년에는 심각한 류머티스 관절염으로 거동이 힘들어지고 손이 변형되어 붓을 잡을 수도 없었으나 붓을 손에 묶고 아름답고 유쾌한 그림을 계속 그렸다.

르누아르는 1841년 2월 25일에 리모주의 한 양복점집 아들로 태어났다. 네 살 때 파리로 이사하였고, 열세 살 때 도자기 공장에 취직하여 도자기에 그림을 그려 넣는 일을 하였다. 그는 쉬는 시간이나 일이 끝난 후에 열심히 데생을 연습하였다. 재능이 있어서 견습생 기간을 단축하고 어려운 그림을 도맡게 되었다. 그러나 산업혁명의 여파로 도자기에도 인쇄기술이 적용되어 도공 일을 할 수 없게 되었고, 손부채나 깃발에 그림을 그리는 일을 하며 생계를 유지하였다.

르누아르는 돈을 열심히 모은 뒤 스물한 살에 에콜 데 보자르에 입학하였다. 그의 진정한 스승은 스위스 태생의 글레이르이다. 그를 통해 모네, 시슬레, 바지유 등 친구들을 만나게 되었으며, 인상파와 인연을 맺게 되었다.

글레이르는 자신은 고전주의적인 화풍이었으나 학생들에게는 비교적 진보적이고 자유롭게 그리도록 가르쳤다. 인상주의자들을 포함하여 다른 화가들은 미술을 거룩하고 진지하게 대하였다. 그러나 르누아르는 그림 자체를 매우 즐거워했으며 보는 관람자도 즐거워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아마도 도자기나 손부채에 아름답고 유쾌한 그림을 그리던 시절의 영향이 아닌가 생각된다. 늘 고객이 즐거워할 그림만 그려 넣었으니까.

〈미스 로멘 라코〉는 아마도 르누아르가 최초로 화가의 명의로 의뢰받은 그림일 것이다. 이 초기의 그림을 보면 그의 그림 경향을 알 수 있다. 고전적인 로코코풍으로 의뢰인의 마음에 들도록 신경 쓴 흔적이 보인다.

르누아르, 〈미스 로멘 라코〉, 1864년, 캔버스에 유채, 81×65cm, 미국 오하이오 클리블랜드 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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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누아르, 〈갈레트 풍차〉, 1876년, 캔버스에 유채, 131×175cm, 프랑스 파리 오르세 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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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누아르의 그림에는 메시지나 철학이 없다. 본인이 그렇게 이야기했다. 그는 매우 통속적인 사람이며, 그의 그림도 통속적이다. 그가 그린 주제는 대개 일상생활이고 특히 유희를 주제로 한 것이 많다. 〈갈레트 풍차〉를 보면 유쾌하게 떠드는 소리, 사랑스러운 밀담의 소리가 들리는 듯하고 파티의 즐거움과 편안한 휴식이 잘 공존해 있다. 바로 이런 것들이 르누아르가 평생을 통해 추구한 예술 세계이다.

르누아르는 '인생은 끊임없는 유희'라고 했다. 낙천적인 르누아르는 늘 즐거운 장면만을 그렸다. 그는 불쾌한 것이 많은 세상에 또 불쾌한 것을 창조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한 화가였다.

르누아르는 특히 여인들을 즐겨 그렸으며 모두 풍만하게 그렸다. 여성들의 취미 활동이라 할 수 있는 독서, 춤, 파티, 목욕 등을 주제로 많은 작품을 남겼다. 그의 작품들은 매우 대중적이어서, 도서관에는 〈독서하는 여인〉, 목욕탕에는 〈목욕하는 여인〉, 무도장에는 〈부지발의 무도회〉가 걸려 있는 경우가 많다.

르누아르, 〈목욕하는 여인〉, 1888년, 캔버스에 유채, 115×170cm, 미국 필라델피아 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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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누아르는 다른 인상파 화가들과 달리 끊임없이 살롱전에서 입선하기를 기대하였고, 대중이 좋아할 그림을 그리고 대중의 취향을 파악하여 화풍을 발전시켰다. 여하튼 르누아르는 예술성과 대중성의 사이에서 크게 고뇌했던 화가는 아닌 듯하다. '대중이 즐기고 좋아하는 예술'이야말로 르누아르가 추구했던 예술적 가치가 아니었을까! 르누아르의 작품을 감상하다보면 대중을 외면한 채 예술을 위한 예술에 심취한 예술지상주의에 빠진 일부 화가들의 작품들을 다시 생각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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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창림 집필자 소개

한양대학교 화학공학과와 동 대학원 산업공학과를 졸업한 뒤 프랑스 파리 국립대학교(Universite Piere et Marie Curie)에서 고분자화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결정구조의 아름..펼쳐보기

출처

미술관에 간 화학자
미술관에 간 화학자 | 저자전창림 | cp명어바웃어북 도서 소개

명화에 담긴 과학적 창의력! 과학자의 눈으로 본 미술에 관한 이야기와 미술과 함께하는 과학에 대한 이야기를 담았다. 명화 속에서 만나볼 수 있는 화학에 대한 흥미진진한..펼쳐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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