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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미술
관 가장 미국적인 미술관
휘트니 미술관
Whitney Museum of American Art위치 | 99 Gansevoort Street New York, NY 1001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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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관일 | 월 · 화요일 |
사이트 | https://whitney.org |
이용 시간 | 수 · 목요일(11:00~18:00) / 금요일(13:00~21:00) / 토 · 일요일(11:00~18:00) |
무명의 젊은 작가들을 적극적으로 양성하는 ‘행동하는 미술관’
뉴욕의 전통 갤러리 지역인 메디슨 에비뉴 75번가에 가면 피라미드를 엎어놓은 듯한 건물이 눈에 들어온다. 계단을 거꾸로 세워놓은 듯 층이 올라갈수록 넓어지는 외관이 특징인 휘트니 미술관(Whitney Museum of American Art)이다. 1966년 독일 출신의 세계적인 건축가 마르셀 브로이어가 자신의 이름을 걸고 설계했다.
휘트니 미술관은 기능적이고 단순함이 돋보이는 바우하우스 스타일의 전형을 보여 준다. 다른 미술관들과 달리 노출 콘크리트 기법으로 심플하면서도 튼튼해 보이는 건물이 마치 실용주의를 추구하는 미국의 정신을 상징하는 듯하다. 미국 미술의 본산답게 외양마저 다분히 미국적이다.
휘트니 미술관은 1930년 미국 전역에 철도를 건설한 ‘철도 왕’ 밴더빌트 가문의 손녀인 거트루드 밴더빌트 휘트니 여사가 수집한 700여 점의 컬렉션으로 시작됐다. 조각가이기도 했던 휘트니 여사가 경제적으로 어려운 유능한 작가들을 돕기 위해 그들의 작품을 사들인 것이 컬렉션의 시초가 되었다. 휘트니 여사는 1900년대 초반 유럽을 여행하면서 프랑스 몽마르트 언덕과 화가들이 밀집해 있던 몽파르나스의 예술 분위기에 매료됐다. 이때의 강렬한 인상이 휘트니 여사의 창의성을 자극했으며 조각가의 길을 걷게 했다.
그녀는 뉴욕의 아트 스튜던트 리그(Art Students League of New York)와 파리의 오귀스트 로댕 스쿨에서 공예를 배웠다. 이후에도 뉴욕 그린위치 빌리지(Greenwich Village)에서 작업을 계속했다.
재벌가의 상속녀인 휘트니 여사는 자신의 재력을 바탕으로 가난한 예술가들을 후원하였다. 초창기에는 미술 분야가 아닌 근대 음악을 공연하는 국제 작곡가 조합(International Composer’s Guild)에 재정적인 도움을 주었다. 1914년 휘트니 가문의 며느리가 된 이후에는 남편과 함께 맨해튼의 그린위치 빌리지에 있는 건물을 구입해 젊은 작가들이 작품을 전시할 수 있도록 ‘휘트니 스튜디오 클럽’을 설립했다. 이 스튜디오가 오늘날 휘트니 미술관으로 성장한 모태이다.
메트로폴리탄에서 퇴짜를 맞고 미술관을 세우다
휘트니 여사가 처음부터 미술관 건립을 생각했던 것은 아니다. 그녀는 휘트니 스튜디오 클럽을 중심으로 소박하게나마 젊은 예술가들을 도와주고 싶었다. 하지만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이 자존심을 상하게 한 게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이 휘트니 여사의 작품 기증 제안을 일언지하에 거절한 사건 때문이다.
젊은 작가들의 후원자로서 많은 작품을 소장하고 있었던 휘트니 여사는 이들 작품을 기증하겠다고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 밝혔다. 내심 자신의 기부를 반길 것으로 생각했던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이 ‘검증되지도 않은 젊은 작가들의 작품을 받을 수 없다’는 듯 거부 의사를 전해왔다. 공식적인 이유는 수장고가 협소해 제안을 받을 수가 없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사실은 ‘안목도 없는 당신이 고른 무명작가들의 작품들을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 내걸 수 없다’는 것이었다.
자존심에 큰 상처를 입은 휘트니 여사는 직접 미술관을 세우기로 결심했다. 이후 남편의 동의를 얻어 막대한 경비를 들여 휘트니 미술관을 건립했다.
1931년 뉴욕 웨스트 8번가의 기존 건물에서 처음 문을 연 휘트니 미술관은 오늘날에도 미국 국적을 가진 작가들의 작품만 전시한다. 미국 현존 작가의 작품 수집을 원칙으로 삼은 휘트니 여사의 뜻을 받들기 위해서다. 뉴욕 현대미술관이 세계의 현대미술을 대표한다면, 휘트니 미술관은 미국의 현대미술을 아우른다. ‘가장 미국적인 미술관’을 보기 위해 매년 전 세계에서 50만여 명이 방문한다.
실제로 휘트니 미술관이 소장한 작품 가운데는 앤디 워홀, 로이 리히텐슈타인, 에드워드 호퍼, 알렉산더 칼더, 조지아 오키프, 재스퍼 존스 등의 작품들이 다수 포함되어 있다. 700여 점에서 출발한 휘트니 컬렉션은 세계적 화장품 메이커인 에스티 로더 등의 기증에 힘입어 회화, 조각, 영상 설치, 소묘, 판화, 사진 등 1만 2천여 점으로 늘었다.
약 840평 규모의 휘트니 미술관에 들어서면 아트숍과 레스토랑 등이 입주해 있는 지하층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지하층 앞뜰에는 조각작품 등을 전시할 수 있는 야외 전시장 겸 카페가 자리하고 있다. 1층 로비 왼쪽에 티켓 판매 창구가 있고, 정면에 있는 서점에서는 현재 열리고 있는 전시회 카탈로그와 미술 서적 등을 판매한다.
1층부터 5층까지가 전시 공간이다. 보통 3, 4층에서는 기획전을 열고 5층에서는 영구 소장품을 전시한다. 4층 전시장은 가장 넓은 공간. 천장이 5미터 이상인 이곳에서는 설치작품을 전시할 수 있고, 공간이나 벽면을 이용한 작품도 만들 수 있어 비엔날레 같은 대형 전시에 알맞다.
휘트니는 호퍼의 미술관
휘트니 미술관이 가장 미국적인 미술관으로 불리는 데는 에드워드 호퍼를 빼놓을 수 없다. 미국의 대표적인 사실주의 작가인 호퍼는 20세기 도시인들의 고독을 정직하게 그려냈다는 점에서 미국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작가 가운데 한 사람이다. 1920년대 에드워드 호퍼와 레지널드 마쉬는 휘트니 스튜디오 클럽에서 처음 전시회를 열었다. 이들의 재능을 일찍 알아본 휘트니 여사의 선견지명 덕분에 두 사람은 꾸준히 작품 활동을 했다.
에드워드 호퍼와 휘트니 미술관의 보다 ‘깊은’ 만남은 1970년에 이루어졌다. 호퍼의 부인인 조세피니 나비슨 호퍼 여사가 무명의 에드워드 호퍼를 알아봐준 미술관에 감사의 표시로 〈이른 일요일 아침〉과 〈2층의 햇살〉 등 호퍼의 작품 약 2,500여 점을 기증, 휘트니 미술관 역사에 큰 획을 그었다. 이는 단일 기증으로는 휘트니 미술관 사상 가장 많은 규모이다. 이로 인해 휘트니 미술관은 미국에서 호퍼의 작품을 가장 많이 소장한 미술관이라는 명성을 누리고 있다. 이 덕분에 매년 그의 작품을 보러 오는 관람객들로 짭짤한 수익을 얻고 있다.
다양한 미술 실험이나 해체가 난무하던 20세기, 에드워드 호퍼는 눈에 비친 풍경과 사람을 그리는 사실주의를 고집했다. 예술의 메카로 불리는 파리에 가서는 ‘(사람들이) 왜 파리를 말하는지 모르겠다’는 의문을 품고 돌아왔다. 그의 작품은 마치 영화 한 장면을 정지시켜놓은 듯한 스틸 사진을 연상케 한다. 전원주택, 호텔, 레스토랑, 극장 등 미국인들의 일상과 친숙한 공간을 테마로 한 일련의 작품들을 통해 인간의 소외감을 함축적이면서도 강렬하게 표현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휘트니 미술관을 대표하는 또 다른 작가는 레지널드 마쉬이다. 프랑스에서 태어난 뒤 두 살 때 부모와 함께 미국 뉴저지로 이주해온 마쉬는 사회적 · 인종적 불평등으로 고통받는 서민들의 삶을 그린 사회적 사실주의(social realism)의 대표 작가이다. 예일대를 졸업하고 뉴욕의 아트 스튜던트 리그에서 존 슬로안 등으로부터 지도를 받았다. 이후 1920, 30년대 대공황 전후 뉴욕 시민들의 척박한 일상을 바로크풍의 인물과 색채로 표현했다. 그가 소시민들의 일상에 천착한 데는 〈뉴욕 데일리 뉴스〉와 〈더 뉴요커〉 등에서 일러스트레이터로 삽화와 만화를 그린 경험이 밑바탕이 됐다. 〈왜 L자를 사용하지 않는가〉와 〈20센트 영화〉 등 200여 점의 마쉬 컬렉션은 휘트니 미술관의 하이라이트이다.
로버트 헨리, 조지아 오키프, 엘리 나델만의 풍성한 컬렉션
휘트니의 또 다른 얼굴은 로버트 헨리의 〈거트루드 밴더빌트 휘트니 초상화〉이다. 오하이오 신시내티 출신인 로버트 헨리는 1907년 뉴욕의 화가들이 보수적인 전시 정책에 항의하며 만든 에이트 그룹(8인회)의 리더였다. 도시의 명암과 소외된 이웃의 남루한 일상, 예술의 사회적 임무 등의 영향을 받아 작품보다는 《필라델피아 프레스》 같은 정기 간행물에 삽화를 그리는 데 더 치중했다. 1902년 뉴욕예술학교의 교수로 재직하면서 에드워드 호퍼, 락크웰 켄트, 스튜어트 데이비스 등의 제자를 키워내기도 했다.
20세기 초 초상화가로 명성을 쌓기 시작한 헨리는 주문 제작보다는 자신에게 영감을 주는 인물들을 주로 그렸다. 평범한 얼굴보다는 개성 있는 모델, 그 사람의 성격이 잘 나타나 있는 모델을 선호했다. 때문에 그의 모델들은 가족이나 친구, 여행 중 강한 인상을 남겼던 스페인 투우사, 집시, 동양인 등 다양했다. 〈거트루드 밴더빌트 휘트니 초상화〉는 사교계의 꽃이던 휘트니 여사의 포스를 충실하게 살려낸 작품이다. 이국적인 의상을 걸친, 마치 터키의 파샤와 같은 도도한 포즈는 마네의 〈올랭피아〉를 연상케한다. 미국의 사교계를 쥐락펴락하며 아방가르드 계열의 예술가들을 후원한 여걸의 풍모를 읽을 수 있다.
조지아 오키프의 〈음악-분홍과 파랑Ⅱ〉과 〈여름날〉 역시 휘트니 미술관의 아이콘이다. 조지아 오키프는 1920, 30년대 정물화의 대상으로만 여겨지던 꽃을 확대하여 화폭을 뒤덮는 독특한 기법으로 사람들을 사로잡았다. 작품의 주제는 주로 두개골, 짐승의 뼈, 꽃, 식물의 기관, 조개껍데기, 산 등 자연을 확대한 것이다. 특히 그녀에게 명성을 가져다준 것은 꽃을 주제로 한 작품들이다. 〈음악-분홍과 파랑Ⅱ〉이 대표적으로 생물의 형상에 추상적인 아름다움을 부여해 신비스러움을 느끼게 한다.
뉴멕시코를 여행하던 오키프는 사막의 강렬한 햇볕과 광활한 황야 그리고 원시적인 풍광에 매혹되어 1946년 그곳에 정착하기에 이른다. 사막에서 그녀는 기존의 꽃 대신 두개골과 골반 뼈 등 탈색된 동물 뼈를 캔버스에 재현하기 시작했다. 〈여름날〉은 이 시기에 그린 작품이다. 뜨겁게 말라버린 사막의 황량함을 뼈만 남은 동물의 두상으로 강렬하게 표현했다. 오키프가 생각하는 진정 뜨거운 여름이란 모든 것이 말라버린 무의 세계에서 강한 생명력을 잉태한 것이다.
조각가 엘리 나델만의 〈탱고〉도 관람객들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있는 휘트니 미술관의 마스코트이다. 폴란드 태생의 미국 조각가인 나델만이 대중의 인기를 얻는 이유는 현대조각이 간과하고 있는 인체, 특히 풍만한 여체의 아름다움에 천착했기 때문이다. 그는 인체를 기하학적 곡선의 연속체로 파악하는 큐비즘(입체파)을 확립해 주목받았다. 체리나무와 석고 가루를 소재로 제작한 〈탱고〉는 탱고를 추는 커플의 형상을 최대한 단순화하면서 인체의 곡선미를 강조함으로써 서정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마치 아프리카의 토속적인 조각품에서 느낄 수 있는 투박함이 마음을 훈훈하게 한다. 많은 관람객이 그의 작품 앞을 쉽게 떠나지 못한 이유다.
이외에도 조각가 알렉산더 칼더, 조각가 루이스 네벨슨, 화가 찰스 버치필드, 조각가 가스통 라셰즈, 추상표현주의 작가 아그네스 마틴 등의 풍성한 컬렉션을 자랑하고 있다.
휘트니 비엔날레의 주 무대
휘트니 미술관은 무명의 젊은 작가들에게 문호를 적극적으로 개방한 ‘행동하는 미술관’이기도 하다. 미국의 젊은 작가들을 양성하기 위해 1932년 창설한 휘트니 비엔날레는 오늘날 베니스 비엔날레, 상파울로 비엔날레와 함께 세계 3대 비엔날레로 자리 잡았다. 휘트니 미술관이 유망한 청년 작가들의 등용문이 된 것은 휘트니 비엔날레라는 연결 고리가 있었기 때문이다. 휘트니 미술관이 청년 작가들의 작품을 다수 소장하고 있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엘리트 작가 위주의 권위주의적 미술 전람회에 반기를 들고 출범한 휘트니 비엔날레는 출품작들에 대한 시상제도는 물론 상금도 없다. ‘미국 시민’에 국한되었던 자격을 1997년부터 ‘미국에 거주하는 외국인’에게까지 확대해 한국인으로는 처음으로 이아라 씨가 영화 부분에 참가해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휘트니 미술관은 미국의 미술관에서 흔히 찾아볼 수 있는 아웃리치(outreach) 프로그램을 활발하게 운영한다. 사회교육의 일환으로 탄생한 아웃리치 프로그램은 일반 관람객은 물론 미술관에 올 수 없는 경제적 · 문화적 소외 계층까지 아우른다. 이 가운데 시니어(senior) 프로그램은 매년 늘고 있는 노년층을 미술관으로 끌어들이는 휘트니 미술관의 역점 사업이다. 1994년부터 뉴욕 시의 여러 노인 단체들과 연대, 노인 관람객들을 10~20명 내외의 소규모 그룹으로 나누어 전시회 · 강연회 · 영상회 등에 초대한다. 특히 정기적으로 열리는 ‘미술관 무료 관람의 날’에는 노인들이 다양한 문화 행사를 즐기며 여가 시간을 보낸다.
또한 미술관은 성장기에 있는 어린이와 청소년들의 정서 함양에 예술이 큰 영향을 미친다는 점을 인식해 유치원생, 초등학생, 청소년, 교사들을 대상으로 ‘생활 속의 미술 문화’를 적극 펼치고 있다. 2003년부터 실시하고 있는 ‘화요일 미술 교육’은 매주 화요일 유치원생부터 12학년(고3) 학생들에게 미술관을 개방한다. 미술관과 지역 사회의 유대를 보여주는 모범적인 운영 사례이다. 이외에도 가족 단위 관람객들을 대상으로 한 ‘키즈 앤 패밀리’, ‘방과 후 워크숍’, ‘작가와의 대화 시간’, ‘퍼블릭 프로그램’ 등을 운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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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관은 다른나라의 역사와 정치, 문화를 들여다 볼 수 있다고 한다. 현대 문화예술의 메카인 미국 전역에 있는 미술관 27곳의 탄생 배경과 전통, 변천 과정, 건축 구..펼쳐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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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um백과] 휘트니 미술관 – 처음 만나는 미국 미술관, 박진현, 예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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