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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처음 만나는
미국 미술
글로벌 경영의 성공 신화

구겐하임 미술관

The Solomon R. Guggenheim Museum
요약 테이블
위치 1071 Fifth Avenue(at 89th Street) New York, NY 10128-0173
휴관일 목요일
이용 시간 일~수요일(10:00~17:45) / 금요일(10:00~17:45) / 토요일(10:00~19:45)

맨해튼 한복판의 ‘영혼의 사원’

‘뮤지엄 마일(Museum Mile)’로 불리는 맨해튼 5번가를 걷다 보면 유독 눈에 띄는 미술관이 있다. 달팽이를 연상케 하는 구겐하임 미술관(The Solomon R. Guggenheim Museum)이다. 미국 출신의 세계적인 건축가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의 설계로 1959년 문을 연 구겐하임 미술관은 건물 그 자체만으로도 엄청난 흡인력을 자랑한다. 나선형 구조로 설계된 이 미술관을 보기 위해 매년 전 세계에서 약 90만 명의 관람객이 찾을 정도이다. 건물 자체가 하나의 작품인 구겐하임은 랜드마크로서 문화 시설의 가치를 생생하게 보여준다.

나선형 구조의 독특한 건물을 자랑하는 구겐하임 미술관 전경

ⓒ Skellig2008 | CC BY

구겐하임 미술관 천장

ⓒ Skellig2008 | CC BY

독일 출신의 솔로몬 구겐하임은 화가이자 초대 미술관장 등을 맡았던 힐라 르베이의 권유로 바실리 칸딘스키, 파울 클레 등 비구상 작가들의 작품 수집에 열중했다. 몇 년이 지나자 그의 컬렉션은 미술관이 협소해질 만큼 방대해졌다. 솔로몬은 1943년 건축가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에게 “비구상 회화들을 위한 ‘영혼의 사원(Temple of Spirit)’을 지어 달라”고 의뢰했다. 당시 미술관의 자문을 맡았던 르베이 여사는 솔로몬의 뜻을 받들어 라이트에게 “우리는 투사, 공간을 사랑하는 사람, 선동자, 실험가 그리고 현자(賢者)를 원한다”라는 사뭇 파격적인 내용의 편지를 보냈다.

평생 자연과 건물이 하나 되는 ‘유기 건축’의 철학을 내세웠던 라이트는 당시 62세라는 고령에도 불구하고 이 도발적인 제안을 받아들였다. 그의 마음엔 필생의 역작을 만들고 싶었던 개인적인 욕심도 있었던 듯하다.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의 ‘유기 건축’ 철학이 담긴 구겐하임 미술관 내부 모습

ⓒ Mister-E | CC BY

무엇보다 라이트의 마음을 움직인 건 ‘공간을 사랑하는 사람(A lover of space)’이라는 문구였다. 라이트는 당시 맨해튼의 무계획적인 도시 개발에 염증을 느끼고 있었다. 건축적인 미학이라고는 전혀 찾아보기 힘든 맨해튼의 건축 문화에 강한 거부감을 갖고 있었던 것이다.

솔로몬의 제안을 심사숙고한 끝에 라이트는 고대 바빌로니아 피라미드 사원인 지구라트를 모방한 미술관을 창안해냈다. 기존 미술관의 디자인 관행을 깨뜨린 획기적인 콘셉트였다. 그로부터 16년 뒤인 1959년 10월, 뉴욕 5번가에 마침내 거대한 흰색 콘크리트 빌딩이 모습을 드러냈다. 아니나 다를까. 구겐하임 미술관은 개관과 동시에 일부 예술가들과 시민들로부터 거센 비난을 받았다. 주변의 건물들에 비해 너무 튀는 데다 미술관 외관이 내부의 미술품들을 제압한다는 이유였다. 특히 뉴욕 시는 나선형의 미술관이 맨해튼의 사각형 건물들과 어울리지 않는다며 반대하고 나섰다. 예술가들의 불만도 하늘을 찔렀다. 관람객들이 건물 외관에 매료되어 자칫 작품이 뒷전으로 밀려나지나 않을까 하는 염려 때문이다. 윌렘 드 쿠닝은 자신의 그림을 곡선 벽에 전시하는 것은 용납할 수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에 반해 일반 관람객들의 반응은 뜨거웠다. 관람객들은 “미술관이 소장한 작품 중 가장 빛나는 현대미술 걸작”이라며 구겐하임 미술관에 대한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칸딘스키 없는 구겐하임은 무의미하다

구겐하임 미술관의 컬렉션은 20, 21세기 미술 발전과 궤를 같이 해오고 있다. 초기 미술관장을 맡았던 르베이 여사와 큐레이터들의 열성적인 컬렉팅 덕분이다. 19세기 중반부터 21세기에 이르기까지 주로 비구상 계열 작품들을 통해 현대미술의 역동적인 흐름을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다. 특히 칸딘스키, 몬드리안, 콘스탄틴 브랑쿠시, 칼더, 샤갈, 클레, 미로, 피카소, 브라크, 라우센버그, 로이 리히텐슈타인 등 20세기 거장들의 작품은 관람객들을 설레게 한다. 1976년 현대미술품 수집가인 탄호이저(Justin K. Thannhauser) 부부가 후기인상파들의 작품을 대거 기증하면서 구겐하임 미술관의 소장 작품 수는 비약적으로 증가하였다.

그 중에서도 칸딘스키 컬렉션은 독보적이다. 칸딘스키 없는 구겐하임은 존재의 의미가 없다고 할 정도로 미술관 컬렉션의 정수(精髓)이다. 유화, 드로잉 등 200여 점은 미국 미술관 가운데 최대 규모이다. 특히 칸딘스키 컬렉션은 1910년대 뮌헨, 러시아, 파리, 바이마르 등 유럽을 무대로 활동해 온 추상미술 선구자 칸딘스키의 긴 예술 여정을 한 편의 파노라마처럼 보여준다.

여기에는 솔로몬 구겐하임의 왼팔이었던 르베이 여사의 공을 빼놓을 수 없다. 솔로몬과 더불어 미술관의 공동 설립자이자 초대 관장(1937~1952), 큐레이터, 자문위원 등을 지낸 르베이 여사는 구겐하임 미술관의 일등 공신이다. 독일에서 태어난 르베이 여사는 젊은 시절 구상 계열의 화가로서 제법 유명세를 날렸다. 특히 초상화가로서 그녀의 명성은 대단했다. 솔로몬 구겐하임과의 운명적인 만남 역시 독일계라는 공통점 이외에 그의 초상화를 의뢰받은 게 계기가 되었다. 하지만 비구상 미술에 매료되어 이후 평생 ‘비구상 미술의 대모’로 헌신했다. 그녀는 현실 세계를 초월한 비구상 미술이야말로 미술의 가장 상위 단계라고 생각했다. 칸딘스키, 루돌프 바우어, 파울 클레 등과 친분을 쌓은 그녀는 구겐하임에게 칸딘스키를 소개했다.

러시아 출생의 칸딘스키는 현대추상미술을 창시한 선구자로 ‘비구상(non objective)’이라는 용어를 처음 사용했다. 칸딘스키에 따르면, 비구상이란 우리가 눈으로 보는 외형적인 사물을 재현하지 않는 예술이다. 이는 또 추상(abstraction)과도 다른 개념이다. 즉 추상이 실재하는 사물들을 변형하는 것이라면 비구상은 전적으로 새로 창조하는(invent) 예술이기 때문이다.

그의 대표작 가운데 하나인 〈푸른 산〉은 대담한 구도가 인상적이다. 좌우 양측에 균형을 맞춰 그려져 있는 나무는 하늘을 덮을 만큼 크다. 특히 가운데에 피라미드형의 푸른 산 아래로 마치 하늘을 향하여 질주하는 듯한 군마(軍馬)의 역동적인 형태가 눈길을 끈다. 크고 작은 점들로 그려진, 이른바 색점묘법(色點描法)의 기법과 칸딘스키 특유의 강렬한 원색 대비가 러시아 민속예술을 떠올리게 한다.

바실리 칸딘스키 〈푸른 산〉

1908~1909, 캔버스에 유화, 106×96.6cm

ⓒ 예담 | 저작권자의 허가 없이 사용할 수 없습니다.

이외에 피카소의 〈물랭 드 라 갈레트〉와 〈노란 머리의 여인〉, 프란츠 마르크의 〈노란 암소〉, 바실리 칸딘스키의 〈컴포지션8〉과 〈검은 선들〉, 마르크 샤갈의 〈창문 너머의 파리〉와 〈초록 바이올린 연주자〉 등은 구겐하임의 하이라이트이다.

바실리 칸딘스키 〈컴포지션 8〉

1914, 캔버스에 유화, 94.4×55.6cm

ⓒ 예담 | 저작권자의 허가 없이 사용할 수 없습니다.

바실리 칸딘스키 〈검은 선들〉

1913, 캔버스에 유화, 129.4×131.1cm

ⓒ 예담 | 저작권자의 허가 없이 사용할 수 없습니다.

피카소의 〈물랭 드 라 갈레트〉는 스페인 풍경의 황갈색조가 아닌, 반 고흐풍의 강렬한 색채를 엿볼 수 있는 청색 시대(1901~1904)의 대표작 가운데 하나이다. 〈물랭 드 라 갈레트〉는 당시 몽마르트에 있었던 무도회장을 배경으로 한다. 일요일 오후가 되면 파리의 젊은 연인들이 모여 햇빛을 받으며 춤과 수다를 즐기던 장소로 인상주의 화가 르누아르의 〈물랭 드 라 갈레트〉의 주제와 유사하다. 그림을 보면 별로 중요하지 않은 신변잡기를 주제로 왁자지껄 떠들고 끈적거리는 눈빛으로 서로를 바라보는 연인들의 유희가 느껴진다. 르누아르의 〈물랭 드 라 갈레트〉가 부드러운 붓놀림, 뭉그러진 윤곽선, 색채의 화려함 등 인상주의 화풍에 충실한 반면에 피카소의 작품은 날카로우면서도 칙칙한 분위기가 프랑스 화가 툴루즈 로트렉의 〈물랭 드 라 갈레트〉를 연상케 한다.

파블로 피카소 〈물랭 드 라 갈레트〉

1900, 캔버스에 유화, 88.2×115.5cm

ⓒ 예담 | 저작권자의 허가 없이 사용할 수 없습니다.

유대계 러시아 화가인 마르크 샤갈의 〈초록 바이올린 연주자〉는 고향을 그리워하는 간절함이 절절이 배어 있다. 샤갈이 태어난 비테프스크는 유대인의 빈민촌으로 판잣집들이 늘어선 가난한 곳이지만, 그에게 있어서는 세상에서 하나뿐인 영원한 안식처였다. 아름다운 자연 풍광과 사랑하는 가족 그리고 정든 이웃들이 있는 그리운 곳이었고, 샘솟는 영감의 근원이었으며, 독창적이고 자유분방한 색채를 이끌어낸 작품의 무대였기 때문이다. 독실한 유대인이었던 샤갈의 신앙심은 성서와 서커스 등을 소재로 한 작품 등에 잘 나타나 있다. 또한 동화의 세계나 아름다운 하늘, 사랑하는 연인들의 모습은 어린 시절 고향의 모습이기도 하다.

〈초록 바이올린 연주자〉는 유대인들의 종교와 문화적 유산을 읽을 수 있는 작품으로 음악과 춤이 어우러진 축제를 통해 신과 교감하는 유대인의 전통을 보여준다.

이 축제 의식에서 핵심적 역할을 수행하는 초록빛 얼굴의 바이올린 연주자 모습에서 번잡한 일상을 초월한 신비로움이 전해진다.

마르크 샤갈 〈초록 바이올린 연주자〉

1924, 캔버스에 유화, 198×108.6cm

ⓒ 예담 | 저작권자의 허가 없이 사용할 수 없습니다.

구겐하임의 지칠 줄 모르는 세계화 전략

구겐하임이 국제 미술계에서 주목을 받고 있는 이유가 수준 높은 컬렉션이나 기획력 때문만은 아니다. 구겐하임은 다른 미술관들에서 찾아볼 수 없는 글로벌 경영의 성공 신화를 이끌고 있다. 즉 구겐하임은 다른 미술관들과는 달리 활발한 해외 진출을 시도했다. 스페인 빌바오, 이탈리아 베니스, 독일 베를린 등 해외 분관을 두고 있으며 조만간 아랍에미리트에도 분관을 설립할 것으로 알려졌다.

구겐하임이 ‘미술관들의 경영 교과서’로 불리기까지에는 1988년부터 2008년까지 미술관을 이끈 토머스 크렌스 관장의 뛰어난 마케팅 전력이 큰 역할을 했다. 예일대 MBA 출신인 그는 1990년대 초반 45만 명 수준이던 미술관 입장객을 300만 명으로 끌어올려 경제 전문 잡지 〈포브스〉로부터 “미술관 운영 방식을 새로 쓴 전략가”(2000년)라는 호평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지난 20년 동안 승승장구해왔던 크렌스의 글로벌 경영이 역풍을 맞았다.

구겐하임 미술관 재단이사회는 2008년 2월 크렌스의 퇴진을 발표하면서 피츠버그 카네기 미술관장을 지낸 리처드 암스트롱을 후임 관장에 선임했다. 공식적으로 알려진 경질 사유는 역설적이게도 크렌스의 최대 성과인 미술관 확장 정책이었다. 해외 분관 유치로 미술관이 재정 압박을 받게 되면서 여러 후유증이 생긴 탓이다. 가장 큰 타격은 컬렉션과 기부금이었다. 빌바오, 베니스, 라스베이거스 등 이른바 ‘구겐하임 패밀리’들과 컬렉션을 교류하다 보니 작품들이 상당 기간 대여 중이었다. 설상가상으로 마치 맥도널드 체인점을 늘리는 것 같다며 못마땅하게 여기는 일부 기부자들이 후원을 꺼려 기부금 모금에 큰 차질이 생긴 것이다.

그러나 속내를 들여다보면 클리블랜드 자선사업가 피터 B. 루이스와 크렌스 관장의 힘겨루기에서 미술관이 루이스의 손을 들어준 게 결정적으로 작용했다는 후문이다. 구겐하임 미술관의 이사를 맡고 있는 루이스는 미술관에 7,700만 달러를 기부한 큰손 중의 큰손이다. 후원금이 다른 이사들 평균 후원금의 4배가 넘는, 미술관으로서는 최대 물주이다.

2005년부터 루이스는 토머스 크렌스와 미술관 운영 방향을 놓고 불협화음을 냈다. 루이스는 미술관을 확장하더라도 뉴욕에 좀 더 초점을 두자고 했지만, 크렌스는 자신의 입장을 굽히지 않았다. 일반적으로 거액 기부자의 말을 수용하는 여느 미술관장과는 달리 꼿꼿한 크렌스의 독선에 심기가 상한 루이스는 “둘 중의 한 사람을 선택하라”면서 이사직을 자진 사퇴하는 초강경수를 두었다. “외형에 치중하는 대신 내실에 힘쓰라”는 루이스의 충고를 받아들인 이사회는 결국 크렌스의 미술관장직을 박탈했다.

한동안 지칠 줄 모르는 세계화 전략으로 루브르, 테이트 모던 등 유럽 미술관들의 부러움과 우려를 동시에 샀던 구겐하임 미술관. 하지만 경기 불황과 거물 후원자의 입김 앞에서는 세계적인 미술관도 의연할 수가 없었던 모양이다. 야심차게 선택한 구겐하임의 ‘암스트롱 카드’가 어떤 결실을 맺게 될지 지켜볼 일이다.

부르주아, 구겐하임에서 날다

구겐하임 미술관은 유기적인 외관 때문에 전시 작품들을 위축시킨다는 평판을 받았다. 하지만 조각가 루이즈 부르주아는 이 같은 고정관념을 깨뜨렸다. 아니 오히려 구겐하임 미술관의 덕을 톡톡히 봤다고 해야 옳다. 루이즈 부르주아를 상징하는 나선(spiral)이 구겐하임의 독특한 분위기와 어울렸기에 ‘통제와 자유, 공간과 이동의 재현’을 담은 그녀의 작품들이 빛을 발한 것이다. 2008년 열린 ‘루이즈 부르주아 특별전’(6월 27일~9월 28일)은 구겐하임 미술관의 진가를 확인시켰다. 평론가들은 “루이즈 부르주아가 자신의 작품에 가장 잘 어울리는 미술관을 드디어 찾았다”면서, “구겐하임과 부르주아가 빚어낸 아름다움은 그 어느 곳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고 극찬했다.

부르주아의 작품들은 로툰다 구조의 미술관을 배경으로 하여 초기 〈여인의 집〉 시리즈부터 〈무제〉, 대형 설치 작품인 〈거미〉와 〈마망(Maman)〉(엄마라는 뜻)에 이르기까지 연대별로 전시됐다. 거미를 작품의 소재로 선택한 이유는 부르주아 자신의 어머니 때문이다. 오랫동안 어머니가 아닌 다른 여자를 사랑했던 아버지에 대한 증오와 어릴 적 상처는 〈아버지의 붕괴〉와 같은 작품 곳곳에 내재되어 있다. 어린 시절 그녀는 집안의 생계를 돕기 위해 어머니를 따라 실을 만드는 고된 일을 했다. 어머니와 함께한 시간들이 강한 추억으로 남아 실을 짜내는 거미를 작품으로 생각했던 것이다. 그녀에게 거미는 알을 품으며 새끼를 보호하는, 사랑과 모성애의 상징이었다.

루이즈 부르주아 〈무제〉

2004, 알루미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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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이즈 부르주아 〈거미〉

2003, 브론즈, 작가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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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정관념을 깨뜨리는 다채로운 프로그램

매월 첫째 주 금요일 밤 8시, 구겐하임 미술관은 길게 줄지어 있는 인파로 진풍경을 연출한다. 한 시간 뒤인 밤 9시부터 다음 날 새벽 1시까지 이어지는 퍼스트 프라이데이 콘서트(First Friday Concert, 이하 프라이데이 콘서트) 때문이다. ‘Art After Dark’라는 주제로 열리는 프라이데이 콘서트는 구겐하임 미술관의 간판 프로그램 중 하나이다. 2005년 첫선을 보인 이 콘서트는 DJ, 록, 재즈, 와인 그리고 그림이 한데 어우러져 ‘미술관=전시장’이라는 고정관념을 깨뜨렸다.

퍼스트 프라이데이 콘서트 프로그램

ⓒ 예담 | 저작권자의 허가 없이 사용할 수 없습니다.

가족 프로그램으로는 매월 둘째 주 일요일 열리는 ‘세컨드 선데이즈(Second Sundays)’를 빼놓을 수 없다. 일요일 오전 10시 30분부터 정오까지 이어지는 이 행사는 가족 단위 관람객들을 대상으로 미술관 투어, 아티스트가 들려주는 예술 이야기, 아빠 · 엄마와 함께 그림 그리기 등으로 다채롭게 꾸며진다. 참가 인원을 제한해 교육자와 수강생들이 함께 즐기고 체험하는 인터렉티브(interactive) 방식으로 진행된다.

또한 매년 6월에 개최되는 ‘봄맞이 가족의 날’은 5세부터 12세 어린이와 그 부모가 함께 모여 전시를 둘러본 뒤 예술에 대한 영감을 그림으로 표현하는 이벤트이다. 참가자들은 미술관이 마련한 놀이 행사와 공연에 참여하며 가족 간의 화합을 다진다.

매월 화요일에는 초등학생들을 대상으로 방과 후 교실이 열린다. 어린이들은 미술관 건물과 전시를 함께 관람하면서 예술에 대한 의견을 나누고 팀을 구성해 그림이나 드로잉, 디지털 미디어를 직접 체험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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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진현 집필자 소개

전남대 신문방송학과 및 동대학원 졸업을 졸업하고 광주일보 문화부장, 논설위원을 거쳤다. 현재 편집부국장 겸 문화선임기자로 재직 중이다. 지난 25년 동안 미술분야와 광주비엔날레, 아시아 문화중심..펼쳐보기

출처

처음 만나는 미국 미술관
처음 만나는 미국 미술관 | 저자박진현 | cp명예담 도서 소개

미술관은 다른나라의 역사와 정치, 문화를 들여다 볼 수 있다고 한다. 현대 문화예술의 메카인 미국 전역에 있는 미술관 27곳의 탄생 배경과 전통, 변천 과정, 건축 구..펼쳐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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