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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미술
관 삭막한 회색 도시에 예술을 불어넣다
볼티모어 미술관
Baltimore Museum of Art위치 | 10 Art Museum Drive Baltimore, MD 2121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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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관일 | 매주 월 · 화요일 |
이용 시간 | 수~금요일(10:00~17:00) / 토 · 일요일(11:00~17:00) |
한 점 그림에서 출발하여 9만여 점의 컬렉션을 자랑하는 미술관으로
볼티모어는 여러 개의 얼굴을 가진 도시다. 존스홉킨스 대학과 같은 세계적인 대학의 본거지인 반면, 범죄율이 높은 무서운 곳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제 볼티모어는 회색 도시에서 문화 도시로 변신 중이다. 그리고 그 중심엔 볼티모어의 자부심, 볼티모어 미술관(Baltimore Museum of Art)이 있다.
그리스 신전을 닮은 볼티모어 미술관은 19세기 이후 근현대 미술 소장품을 갖춘 곳으로 유명하다. 1914년 한 점의 그림으로 출발했지만 오늘날에는 피카소, 반 고흐 등 거장들의 작품 9만여 점을 보유하는 등 눈부신 성장을 해왔다.
미술관 정문에 위치한 훌륭한 조각정원은 20세기 조각의 진수를 보여주는 갤러리일 뿐 아니라 볼티모어 시민의 쉼터로 사랑받고 있다. 약 3,700여 평에 조성된 조각공원에는 근현대 조각 100년의 흐름을 보여주는 명작들이 숨을 내뿜고 있다. 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는 조각작품 가운데 꼭 보고 싶은 작품이 있을 경우 미리 미술관에 예약을 하면 작품을 전시하는 특별 서비스를 제공한다.
2008년 7월 볼티모어 미술관을 찾은 날에도 이 조각공원에서 어린이들의 문화 체험교실이 열리고 있었다. 방학 기간임에도 수십여 명의 초등학생이 인솔 교사의 안내로 미술관 정문 맞은편에 자리한 조각공원을 둘러보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볼티모어 미술관은 1920년대 미국의 저명한 건축설계가인 존 러셀 포프(John Russell Pope)가 디자인했다. 1994년에는 늘어나는 컬렉션을 전시하기 위해 현대미술 갤러리를 증축했다. 볼티모어 미술관의 컬렉션은 약 9만여 점. 유럽 거장들 가운데는 보티첼리, 렘브란트, 반 다이크, 고흐, 에드가 드가의 〈열네 살 소녀 댄서〉, 후안 판토자 크루즈 등이 포함되어 있다.
후안 판토자가 스페인 공주를 그린 〈애나 마르시아 공주〉는 볼티모어 미술관을 찾은 관람객들에게 강렬한 여운을 주는 작품이다. 청순하면서도 앳된 표정이지만 공주로서의 도도한 자태가 느껴진다. 뉴욕 메트로 폴리탄 미술관의 〈젊은 여인의 초상화〉처럼 보는 사람의 마음을 꿰뚫어보는 눈매가 인상적이다.
특히 15세기부터 19세기까지의 판화, 드로잉, 장식미술은 물론 앤디 워홀의 〈마지막 만찬〉 등 팝아트 계열의 작품에 이르기까지 화려하다. 또한 윌렘 드 쿠닝, 마크 로스코, 올라퍼 엘리아슨, 그레이스 하티건, 앨리슨 사의 현대미술 컬렉션도 풍성하다.
덴마크 출신의 현대조각가 올라퍼 엘리아슨의 〈꽃 전망대〉는 관람객들에게 신선한 충격을 주는 파빌리온(정자)이다. 빛을 즐겨 사용하는 그는 금속 소재로 빛이 투영되는 프리즘 효과를 극대화하는 등 환상적인 작업을 보여준다. 수십 개의 단면에서 반사되는 조명은 관람객의 위치에 따라 변화무쌍한 색채와 빛을 발산한다. 특히 앤디 워홀의 몽환적인 분위기가 물씬 나는 〈위장〉과 함께 전시돼 자칫 금속 소재가 줄 수 있는 차가운 느낌을 완화시켜준다. 이와 함께 앙리 마티스 컬렉션은 가히 독보적이라 할 수 있다. 일명 ‘콘 컬렉션(Cone Collection)’으로 불리는 마티스 작품들은 볼티모어 미술관의 상징으로 소장품만 500여 점에 이른다.
앙리 마티스의 작품을 세계에서 가장 많이 소장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 다른 미술관의 부러움을 한껏 받고 있다. 그렇다면 마티스 컬렉션의 주인인 클레벨과 에타 콘 자매는 어떤 사람일까? 왜 이들은 마티스에 열광한 것일까.
- 1~2앙리 마티스 컬렉션을 전시한 갤러리
- 3앙리 마티스 〈붉은색과 초록색 배경의 두 소녀〉
1947, 캔버스에 유화
콘 자매는 미국으로 이민 온 독일계 유대인 출신의 허만 콘(Herman Cone)과 헬렌 콘(Helen Cone) 사이에서 태어났다. 미국 테네시 주에 정착해 식품업으로 돈을 모은 아버지 허만은 콘 자매를 포함해 5명의 아이들과 함께 메릴랜드 주 볼티모어로 이주했다. 이곳에서 섬유회사를 세운 허만은 이후 여러 회사를 운영하면서 거부로 성장했다. 언니 클레벨은 의대를 졸업해 존스홉킨스 대학에서 병리학을 가르쳤다. 피아니스트인 동생 에타는 바쁜 클레벨을 대신해 정신적 가장 역할을 했다. 1901년 처음 유럽 여행을 시작한 자매는 이후 정기적으로 세계 여러 지역을 여행하면서 보냈다.
콘 자매의 용감한 선택이 볼티모어 미술관의 권위를 세우다
부모로부터 막대한 유산을 받은 자매는 20세기 초 파리에서 앙리 마티스와 파블로 피카소의 스튜디오를 방문한 뒤 큰 감명을 받고 이들의 주요 작품을 수집하기 시작했다. 자매가 피카소와 마티스의 컬렉터가 되기까지에는 미국의 시인 겸 소설가인 거트루드 스타인이 있었다. 헤밍웨이의 대모였던 스타인은 독특한 문학 형식인 ‘언어 초상’을 만들어낸 작가이다. 누구보다도 먼저 무명의 화가 피카소를 알아보고 작품을 구입한 장본인이다. 미국에서 태어났지만 생애 대부분을 프랑스에서 보냈다. 스타인은 영어 서적을 주로 판매하는 파리의 서점 셰익스피어에서 피카소뿐 아니라 마티스 등 많은 예술가들과 교분을 쌓았다. 1906년 에타는 스타인에게서 피카소를 소개받았고, 이듬해에는 마티스의 스튜디오를 찾았다. 이후 에타는 평생 예술적 후원자이자 친구로서 마티스와 각별한 우애를 다졌다.
에타는 마티스, 피카소 등 무명이나 다름없지만 전도유망한 작가들을 도와주기 위해 작품을 구입하기 시작했다. 특히 당시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고 있던 스타인으로부터 그동안 수집해온 피카소의 작품을 아주 낮은 가격에, 이를테면 드로잉 한 점당 2~3달러에 사들이기도 했다. 콘 자매는 미국 작가인 시어도어 로빈슨 등의 자문을 받아 마티스와 피카소 같은 유명 화가들의 작품 3천여 점을 손에 넣었다. 콘 컬렉션의 하이라이트는 단연 500여 점에 달하는 마티스 작품들이다. 작품 규모도 규모지만 내용 면에서 세계 최고를 자랑한다. 콘 자매는 세잔, 고갱, 고흐의 그림뿐 아니라 텍스타일, 보석, 가구, 아프리카 · 아시아 · 오리엔탈 미술품, 드로잉, 판화 등도 구입했다.
이처럼 콘 컬렉션이 다양한 층위를 가질 수 있었던 것은 두 자매의 대조적인 취향 때문이다. 에타가 인상파 화가들의 작품에 관심이 많은 반면 언니인 클레벨은 아방가르드적인 작품들을 선호했다. 예를 들면 클레벨은 당시 12만 700프랑을 주고 마티스의 〈푸른 누드〉를 구입한 데 반해 에타는 폴 세잔의 〈비베뮤스 채석장에서 바라본 생 빅토와르 산〉을 41만 프랑을 주고 사들였다.
콘 컬렉션의 면모가 입소문이 나면서 1940년 초부터 자매는 미국 유수의 미술관으로부터 러브콜을 받았다. 훌륭한 예술적 가치를 지닌 콘 컬렉션을 기증받으려는 미술관이 한둘이 아니었다. 하지만 클레벨은 주저 없이 볼티모어 미술관을 선택했다. 문화 불모지나 다름없는 볼티모어 시민들이 근현대미술의 진수를 감상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된다면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이나 뉴욕 현대미술관으로 귀속되는 것 이상의 가치가 있으리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로부터 9년 뒤인 1949년 에타 콘이 세상을 떠나면서 콘 컬렉션은 자매의 유지에 따라 볼티모어 미술관 품에 안기게 되었다. 미술관은 1957년부터 콘 윙(Cone Wing) 갤러리를 마련해 일반인들에게 작품들을 공개했다. 이후 콘 컬렉션은 볼티모어 미술관의 근간이 되었고, 볼티모어 미술관이 세계 미술계로부터 권위 있는 미술관으로 인정받는 데 큰 기여를 했다.
마티스의 색채의 바다에 빠지다
볼티모어 미술관의 간판은 마티스 컬렉션이다. 10여 개의 갤러리에 가득 내걸린 마티스의 작품을 원 없이 보는 즐거움은 이곳만의 매력이다. 물론 마티스는 미국 미술관이 사랑하는 작가답게 메트로폴리탄, 뉴욕 현대미술관 등 여러 미술관을 둘러볼 때마다 쉽게 만날 수 있다. 하지만 볼티모어 미술관의 마티스는 다른 미술관과 비교가 되지 않는다.
마티스는 색채의 화가이다. 마티스만큼 컬러와 장식에 탐닉한 작가도 드물다. 그가 색채와 장식에 남다른 집착을 보였다는 사실은 〈인테리어, 꽃, 잉꼬〉에 잘 나타나 있다. 프랑스 니스의 아파트에 있는 스튜디오를 소재로 한 이 작품은 어느 곳이건 마티스의 붓을 거치면 환상적인 공간으로 변신함을 여실히 보여준다. 뉴욕 현대미술관에 소장된 〈붉은 스튜디오〉처럼 말이다.
마티스의 한 친구는 평소 그림에서만 보던 환상적인 작업실을 직접 보고 싶어 아파트를 찾았다. 하지만 놀랍게도 마티스의 스튜디오는 산뜻하고 럭셔리한 것과는 거리가 멀었다. 온갖 잡동사니들로 지저분할 뿐 아니라 작고 초라해 작업실이라기보다는 창고나 다름없었던 것이다. 그 순간 친구는 아름다운 색상과 부드러운 붓질로 가득 찬 환상적인 스튜디오는 바로 마티스의 손에서 탄생했음을 깨달았다. 한낱 물리적인 공간에 불과한 스튜디오가 영혼이 살아있는 듯 보인 이유는 마티스가 빚어낸 색채의 마술 덕분이었던 것이다.
마티스는 직물, 의상 등을 이용해 독특한 현실(reality)을 고안해낸 작가이기도 하다. 마티스는 화려한 색상과 장식적인 문양이 돋보이는 직물들을 선호했다. 그에게 있어 이들 직물은 허접한 일상에서 벗어나게 하는, 고급스럽고 안락하며 환희에 찬 세상을 구현하는 데 더할 나위 없는 소재였다. 종종 그는 이 직물들을 자신의 스튜디오에 내걸고 모델들에게 모로코 하렘의 오달리스크(터키 황제를 섬기던 백인 여자노예) 포즈를 취하도록 했다. 〈노란색 옷을 입은 오달리스크〉가 대표적인 예이다.
또한 마티스는 현실을 과감하게 자유자재로 바꾼 ‘혁명가’였다. 볼티모어 미술관의 마스코트인 〈아네모네 꽃과 자줏빛 드레스 여인〉이 그 증거다. 대부분 화가에게는 전속 모델이 있기 마련이다. 마티스에게도 러시아 출신의 리디아 델렉토르스키야라는 특별한 여인이 있었다. 마티스에게 있어 리디아는 말년의 뮤즈이자 모델, 그리고 인생의 동반자였다. 그의 대표작인 〈아네모네 꽃과 자줏빛 드레스 여인〉을 비롯해 〈핑크 누드〉(〈옆으로 누운 대형 누드〉), 〈푸른 옷을 입은 여인〉 등의 모델이 리디아이다.
〈아네모네 꽃과 자줏빛 드레스 여인〉은 마티스의 대표작 가운데 하나가 되었지만, 당시에는 비난의 대상이었다. 1937년 마티스는 리디아에게 자줏빛 드레스를 입고 포즈를 취하라고 요구했다. 하지만 마티스는 사진처럼 보이는 초상화를 그릴 의도가 없었다. 현실을(작가가 느끼는 대로) 과감하게 변화시키는 것이야말로 모델의 참모습을 가장 정확하게 전달하는 것이라고 믿었다. 이에 따라 리디아의 몸은 평평하게 그려졌으며 체형 역시 실물보다 과장됐다. 색상은 마치 노래를 부르고 있는 것처럼 생동감 있게 표현됐다. 가로 무늬나 체크, 곡선 문양 등 패턴도 실제보다 크고 대담하다. 특히 마티스는 전경과 후경을 평면적인 구도로 보이게 하는 파격을 구사했다. 이 때문에 그림 속 여인은 서 있는지 앉아 있는지 구분이 안 될 정도로 입체감이 없다.
아니나 다를까. 그림이 공개되자 여기저기서 비난이 쏟아졌다.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여인을 그렸다는 비판이 주류를 이뤘다. 마티스는 자신의 그림이 현실을 충실하게 재현하지 않았다는 지적을 인정했다. 그러곤 “나는 여인을 창조해내지 않았다. 단지 초상화를 만들었을 뿐이다”라고 친절하게 설명했다. 다분히 이 같은 논란을 예상했지만 소신에 따라 새로운 초상화를 그려낸 것이다.
이처럼 볼티모어 미술관의 마티스 작품들 하나하나가 미술사적 의미를 지녔다. 무엇보다 대담한 필치와 화려한 컬러는 그 자체만으로도 관람객들에게 즐거움과 희열을 선사한다. 보는 이들의 마음을 훈훈하게 하는 행복 바이러스다.
세이디 메이 컬렉션 기증으로 명성을 굳히다
볼티모어 미술관은 콘 컬렉션과 더불어 또 하나의 화려한 컬렉션을 자랑한다. 바로 아방가르드 계열의 세이디 A. 메이(Saidie A. May) 컬렉션이다. 세이디 A. 메이 컬렉션 기증으로 볼티모어 미술관은 양적인 면에서나 질적인 면에서 미 동부 지역의 간판급 미술관으로 자리를 굳혔다. 이 컬렉션에는 후앙 그리의 〈화가의 창〉과 피에트 몬드리안의 〈컴포지션 5〉, 초현실주의 대표 작가인 앙드레 마송, 로베르토 마타, 이브 탕기, 샤갈, 칸딘스키, 자코메니, 에른스트 등이 포함되어 있다.
미술관의 자랑인 조각공원에는 국민 조각가로 불리는 알렉산더 칼더, 이사무 노구치의 〈일본의 전통 음악 연주자들〉, 마크 디 수베로의 작품을 비롯해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과 〈발자크상〉, 헨리 무어의 〈옆으로 누워 있는 3개의 조각〉, 토니 스미스의 〈스피트볼〉 등 구상에서 추상으로의 100년간의 변천 과정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조각상이 34점 들어서 있다.
볼티모어 시의 지원과 개인 후원자들의 도움으로 미술관은 누구에게나 무료로 개방한다. 매주 토요일 오후 2시 갤러리 투어와 스케치, 공작 놀이교실 등을 진행하는 패밀리 펀을 비롯해 요가와 명상, 보물찾기, 마티스 따라하기, 아웃리치 등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삭막한 회색 도시에 활기를 불어넣는다.
볼티모어 미술관이 내세우는 또 하나의 작품은 미식가들의 입맛을 사로잡는 레스토랑이다. 유명 요리사 존 실스가 만든 볼티모어의 별미를 즐기면서 조각공원의 아름다운 풍광과 미술관의 여름 재즈 콘서트를 감상하는 등 뜻 깊은 시간을 가질 수 있다.
- 1~2볼티모어 미술관의 자랑인 레스토랑
- 319세기 미국의 거실을 재현해놓은 갤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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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관은 다른나라의 역사와 정치, 문화를 들여다 볼 수 있다고 한다. 현대 문화예술의 메카인 미국 전역에 있는 미술관 27곳의 탄생 배경과 전통, 변천 과정, 건축 구..펼쳐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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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um백과] 볼티모어 미술관 – 처음 만나는 미국 미술관, 박진현, 예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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