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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미술
관 현대미술의 중심지 뉴욕의 숨은 진주
프릭 컬렉션
The Frick Collection위치 | 1 East 70th Street New York, NY 1002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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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관일 | 월요일 |
이용 시간 | 화~토요일(10:00~18:00) / 일요일(11:00~17:00) |
악덕 기업가의 아름다운 기부로 탄생한 미술관
프릭 컬렉션은 뉴욕의 숨은 진주와 같은 존재이다. 한때 ‘백만장자 동네’라고 불렸던 어퍼 이스트 사이드(Upper East Side)의 고급 주택가에 자리한 프릭 컬렉션은 인근에 위치한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구겐하임 미술관 등 대형 미술관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로 연중 관람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다른 미술관들에서 찾아보기 힘든 고즈넉한 정원과 연못은 미술관이라기보다는 내 집처럼 정겹고 포근한 느낌을 자아낸다.
하지만 프릭 컬렉션에는 남모르는 어두운 과거가 있다. 20세기 초 미국의 강철왕으로 악명이 높았던 헨리 클레이 프릭(Henry Clay Frick)의 사저였다는 점이다. 프릭으로 말할 것 같으면 그의 이름만 대면 울던 아이의 울음도 딱 멈추게 할 만큼 두려움의 대상이었다. 프릭은 19세에 조부모 회사의 서기로 일하기 시작해서 20대에 이미 석탄 회사를 사들여 펜실베이니아 지역 석탄의 80퍼센트를 생산하는 알찬 회사로 키워냈다.
그는 당시 뉴요커들이 가장 증오하는 기업가 가운데 한 명이었다. 그의 부에 대한 욕망은 상상을 초월했다. 독과점법 등 불공정 거래를 단속하는 정부의 법망을 교묘히 피해가는 등 뛰어난 수완을 발휘해 막대한 부를 일궈냈다. 당시 한 상원의원은 그를 가리켜 “이 시대 최고의 범죄자”라고 말했다.
현대미술의 중심지, 뉴욕의 뿌리를 느낄 수 있는 곳
오직 돈벌이에만 관심이 많았던 프릭이 은퇴 후 몰두한 것은 전혀 뜻밖에도 미술품 수집이었다. 그는 13세기부터 19세기에 이르는 그림과 조각, 프랑스 가구들을 수집하였다. 이것만으로는 부족했는지 프릭은 뉴욕 맨해튼 5번가에 자리한 자신의 저택과 일평생 모은 미술품들을 기증하여 프릭 미술관을 세웠다.
프릭이 미술관 건립에 눈을 돌린 계기는 정확히 알려지지 않고 있다. 하지만 라이벌이던 카네기와 록펠러가 은퇴 후 자선과 나눔에 관심을 보이자 프릭의 마음속에 잠자고 있던 경쟁심이 발동했기 때문으로 추측된다. 당시 앤드류 카네기의 집을 능가하는 저택을 짓고 싶었던 프릭은 1913년 프랑스의 한 건축 회사와 500만 달러에 계약을 맺었다.
완공된 프랑스 스타일의 저택이 마음에 쏙 들자 프릭은 10여 년 이상 수집해왔던 미술품과 자신의 집을 시민들을 위한 공공 미술관으로 꾸미고 싶었다. 프릭은 세상을 떠나면서 자신의 집은 물론 미술품, 현금 1,500만 달러를 뉴욕 시에 기증했다. 기증 조건으로 “순수미술을 지속적으로 발전 시킬 수 있는 공공 미술관을 건립해 달라”고 했다. 그가 기증한 미술품은 131점의 그림을 비롯해 조각, 드로잉, 판화, 장식품, 가구, 도자기, 러그, 은기구 등 1,100여 점이다.
프릭이 세상을 떠난 뒤 그의 딸인 헬렌 클레이 프릭(Helen Clay Frick)이 컬렉션 확장에 적극 나섰다. 컬렉션은 규모 면에서뿐 아니라 질적인 면에서도 업그레이드됐다. 컬렉션의 3분의 1가량이 1919년 이후 구입된 것들이다. 1935년 12월, 프릭 컬렉션은 건축가 존 러셀 호프의 설계에 따라 기존 주택을 증개축해 공공 미술관으로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오늘날 프릭 컬렉션은 다양한 특별 기획전으로 대중에게 미술 감상의 기회를 제공하고 있지만, 상당 부분 미술관 개관 이후 변하지 않고 옛 모습을 고스란히 지니고 있다. 심지어 미술관 중앙에 위치한 거실은 프릭이 세상을 떠나기 일 년 전의 모습 그대로이다. 이 방에 들어서면 현대미술의 중심지인 뉴욕의 뿌리를 느낄 수 있다.
- 1~2프릭 컬렉션 입구
주옥같은 131점의 유럽 명화
미술 애호가들에게 프릭 컬렉션 방문은 지나간 시절의 영광을 되돌아보는 시간이다. 미술관의 훌륭한 예술 작품들은 시공을 뛰어넘어 수백 년이 흐른 오늘날에도 많은 사람에게 감동을 준다는 사실을 확인케 한다.
프릭 컬렉션의 가장 큰 매력은 친근한 분위기와 공간 구성이다. 미술관은 건물 자체만으로 20세기 초 황금기를 구가했던 뉴욕의 화려한 지난날을 떠올리게 한다. 내부를 들여다보면 아름다운 그림이 가득해 미술관이라기보다는 어느 고급 저택에 들어온 듯 아늑하고 따뜻한 느낌을 준다. 미술관에는 티치아노, 벨리니, 렘브란트, 터너, 페르메이르, 엘 그레코, 고야, 장 오귀스트 도미니크 앵그르 등 한 번쯤 들어봤음직한 거장들의 작품이 걸려 있다.
프릭 컬렉션이 뉴욕의 명소로 각광받을 수 있었던 이유는 단지 고즈넉한 분위기 때문만은 아니다. 프릭은 비록 사업가로서 거친 삶을 살았지만 미술품 구입에 관한 한 섬세한 안목과 감성을 발휘했다. 렘브란트, 페르메이르, 티치아노, 터너, 컨스터블, 벨라스케스 등 르네상스 미술에서 인상주의에 이르는 거장들의 작품 131점은 미술사적으로 가치가 높다. 특히 네덜란드 태생의 화가 페르메이르의 후기 작품들은 프릭 컬렉션을 뉴요커들이 사랑할 수밖에 없는 미술관으로 만들었다.
16곳의 갤러리에는 시대나 작가의 출신지와 상관없이 저마다 독특한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이는 프릭이 대중에게 미술관을 공개하기 전 개인적으로 작품들을 감상했던 즐거움을 관람객들도 동일하게 느낄 수 있게 하기 위해서다.
프릭 컬렉션을 찾은 관람객들을 가장 먼저 맞는 것은 거실인 프라고나르 방이다. 장 오노레 프라고나르의 〈사랑의 과정〉 연작(추구, 만남, 사랑의 편지, 사랑의 승리 등) 10여 점과 휘슬러의 〈몽테스키외의 초상화〉, 18세기 프랑스 스타일의 가구와 도자기 그리고 홀베인, 티치아노, 엘 그레코, 벨리니 등의 작품들이 정답게 대화를 나누고 있다. 장 오노레 프라고나르의 〈사랑의 과정〉은 상류층 남녀의 은밀한 유희를 단계별로 그린 작품으로 18세기 프랑스를 풍미하던 로코코 스타일의 전형을 보여준다.
거실을 거쳐 도서관을 지나면 웨스트 갤러리에 다다른다. 여기에는 렘브란트의 〈자화상〉, 페르메이르의 〈여주인과 하녀〉가 전시되어 있다. 이 작품은 프릭이 세상을 떠나기 전 마지막으로 구입한 작품으로 유명하다. 에나멜 갤러리를 장식하고 있는 이탈리아의 화가 피에로 델라 프란체스카의 〈복음사가 성 요한〉은 그의 작품으로는 미국에서 가장 크다.
드가, 고야, 터너, 반 다이크, 휘슬러 등의 작품들로 꾸며진 이스트 갤러리를 끝으로 관람을 마치면 방문객들은 가든 코트의 아름다운 풍경에 또 한 번 마음을 빼앗기게 된다. 이곳에서 방문객들은 잠시 햇볕을 쬐기도 하고 초록색 나무들과 중앙에 자리하고 있는 연못을 둘러보며 색다른 여유를 즐길 수 있다.
벨리니의 〈광야의 성 프란체스코〉
〈광야의 성 프란체스코〉는 베네치아파의 창시자인 조반니 벨리니의 대표작 가운데 하나이다. 성 프란체스코가 1224년 프랑스 국경과 인접한 아펜니노의 알베르나 산에서 은둔 생활을 할 당시 체험한 일화를 소재로 그렸다. 아름답지만 다소 삭막해 보이는 풍경 속의 남자는 성인 프란체스코(St. Francesco)이다.
화면 오른쪽 포도나무 넝쿨 아래에는 가늘고 긴 십자가와 그 아래 아담의 것으로 여겨지는 해골이 자리하고 있다. 마치 골고타를 연상케 하는 해골은 세상의 덧없음을 상징한다. 포도 넝쿨 아래는 아마도 프란체스코가 묵상을 위해 머문 작고 누추한 거처 같다. 이곳에서 프란체스코는 환상 중에 예수가 십자가에 매달린 모습을 보았고, 이때 예수의 십자가 성흔이 프란체스코에게 들어와 손과 발, 옆구리에 상처를 남겼다. 이 작품은 자연과의 교감을 아름답게 표현한 걸작으로 꼽힌다.
그림 왼쪽 아래 돌 사이에서 흘러나오는 물은 여호와 하나님으로부터 율법을 받은 모세가 호렙산의 반석을 지팡이로 내리치자 솟아올랐던 신비한 물과 비교된다. 또한 맨발의 프란체스코 뒤편에 놓여있는 샌들은 하나님이 모세를 향해 “네가 서 있는 땅은 신성한 곳이니 신발을 벗어라”라고 했던 말을 떠올리게 한다. 벨리니의 〈광야의 성 프란체스코〉는 화면을 감돌고 있는 미묘한 빛의 흐름을 통해 신비한 신의 존재를 나타냈다는 점에서 미술사적으로 가치가 크다.
눈으로 듣는 추상화를 개척한 휘슬러
유럽 회화들로 가득한 프릭 컬렉션에서 미국 작가의 자존심을 지켜주는 화가가 있다. 바로 제임스 애벗 맥닐 휘슬러이다. 프릭 컬렉션은 〈살색과 분홍색의 심포니-프랜시스 릴랜드 부인의 초상〉을 비롯해 〈분홍색과 회색의 심포니〉, 〈회색과 초록색의 심포니〉, 〈갈색과 검정색의 배열〉, 〈검정색과 황금색의 배열〉 5점을 소장하고 있다.
이 가운데 하이라이트는 〈살색과 분홍색의 심포니-프랜시스 릴랜드 부인의 초상〉이다. 장 오귀스트 도미니크 앵그르의 〈오송빌 백작 부인〉과 더불어 프릭 컬렉션을 지키는 안방마님이다. 이 작품은 그의 오랜 후원자인 프레드릭 R. 릴랜드의 부인을 모델로 했다. 릴랜드는 영국 리버풀의 유명한 선박업자이자 미술품 컬렉터였다. 런던 릴랜드 저택의 거실 장식을 놓고 2년 동안 치열한 말다툼을 벌이기 전까지만 해도 휘슬러의 최고 고객이었다.
휘슬러가 초상화 제작 의뢰를 받은 것은 1871년. 1874년 릴랜드 후원으로 열린 휘슬러의 첫 번째 개인전을 통해 세상에 처음 공개됐지만, 그가 이 초상화를 완성하지 않았다는 설도 있다. 작가가 분홍색을 메인 톤으로 사용한 이유는 릴랜드 부인의 검은 머리를 돋보이게 하기 위함이다. 특히 그녀가 입고 있는 하늘하늘한 레이어드 가운은 휘슬러가 직접 디자인했다. 왼쪽 아몬드 나무에 피어 있는 꽃은 당시 휘슬러가 일본 예술에 깊은 관심을 가졌음을 보여준다. 그림만 보면 릴랜드 여사가 외출을 하려는 것 같지만 작품 제목은 그것과는 거리가 멀다. 그렇다면 휘슬러는 왜 ‘살색과 분홍색의 심포니’라는 다소 생뚱맞은 제목을 달았을까?
사실 릴랜드 여사의 초상화이긴 하지만 휘슬러가 정작 표현하고 싶었던 것은 그녀가 아니었다. 그가 관심을 둔 것은 오직 색상의 형태와 질감의 조화, 바로 그들이 빚어내는 하모니였다. 모차르트 교향곡 39번을 들을 때 그 음악이 무슨 의미인지 궁금해 하기보다는 가장 먼저 선율과 화음의 아름다움에 귀 기울이는 것처럼, 휘슬러는 그림 역시 의미보다는 눈에 보이는 색채의 조화가 중요하다고 믿었다. 일체의 감상주의를 배제하려는 의도에서였다. 그런 뜻에서 작품의 제목으로 ‘심포니’나 ‘녹턴(nocturne, 야상곡)’ 같은 음악적인 분위기의 단어를 붙였다. 좋은 그림이란 추상적인 음악같아야 한다고 생각한 것이다. 만약 이 초상화를 보고 분홍색인지 살색인지 쉽게 구분이 안 된다고 느낀다면 색채의 조화가 잘 어우러진 아름다운 교향곡을 들었다고 할 수 있다.
‘눈으로 듣는 추상화’를 시도한 그의 화풍은 논란을 일으켰지만 분명한 건 눈으로 듣건 귀로 보건 간에 휘슬러가 빚어낸 색채와 톤의 조화가 색다른 미적 즐거움을 준다는 사실이다.
프릭이 닮고 싶어 했던 남자들
프릭 컬렉션에서는 다양한 분위기의 초상화를 만날 수 있다. 특히 한 시대를 풍미한 남성들의 초상화가 상당수 있는데, 이는 어쩌면 프릭이 닮고 싶어 한 모델이었는지 모른다. 초상화들은 저마다 형태와 수법 면에서 독특한 특성을 지니고 있다. 가령 〈성 프란체스코〉(벨리니)의 숭고한 신앙심, 〈성 제롬〉(엘 그레코)의 풍부한 학식, 〈토머스 모어〉(한스 홀바인)의 단호함이 그것이다. 이는 프릭이 마음속에서 오랫동안 동경해왔던 영웅상이다.
특히 프릭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인물은 토머스 모어 경이었다.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고 헨리 8세의 이혼을 용인하지 않은, 그 대신에 기꺼이 참수형을 선택한 토머스 모어의 최후는 프릭에게 ‘진짜 사나이의 모습’이었던 것이다.
프릭 컬렉션은 오늘날 불과 36점 남아 있는 네덜란드 작가 페르메이르의 작품을 3점 소장하고 있다. 이들 작품 모두 1660년대 이후 제작되었다. 페이르메이르의 작품들 가운데 방문객들을 가장 먼저 맞는 〈여주인과 하녀〉는 크기 면에서 〈장교와 웃는 소녀〉와 〈소녀의 중단된 음악 수업〉을 압도한다. 이들 작품에는 남자와 여자의 모습이 함께 그려져 있다. 그런데 한 가지 흥미로운 점은 페르메이르가 남성보다 여성을 그리는 데 더 재능이 뛰어났다는 사실이다.
프릭 컬렉션은 뉴요커들에게 인기가 많은 렘브란트의 작품 3점도 소장하고 있다. 〈폴란드 기병〉, 〈니콜러스 러츠의 초상화〉, 〈자화상〉이다. 1658년에 그린 〈자화상〉에서 렘브란트는 자신을 작업실의 어둠을 지배하는, 망명 중인 군사령관의 모습으로 묘사했다.
프릭 컬렉션이 남긴 것
1919년 세상을 떠난 프릭은 유언을 통해 자신의 집과 모든 예술품, 심지어 가구 등 생전 그대로의 모습을 ‘프릭 컬렉션’이라는 이름의 미술관으로 보존하라고 당부했다. 또한 그는 컬렉션의 관리와 작품 구입을 위해 1,500만 달러를 기증했다. 프릭 컬렉션은 비록 규모는 작지만 미국에서 작품 수집과 감상에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생전 프릭이 작품들을 소장한 방식은 사후 많은 미국인에게 영향을 끼쳤기 때문이다. 특히 프릭의 가까운 친구이자 워싱턴 국립미술관 설립자인 앤드류 W. 멜론에게 가장 많은 영향을 주었다.
앤드류 멜론뿐이 아니다. 프릭의 작품 수집은 저 멀리 캘리포니아에도 알려져 그를 모방하는 기업가가 하나둘 생겨났다. 캘리포니아 출신의 사업가 노톤 윈프레드 사이먼이 대표적인 인물이다. 사이먼은 뉴욕의 프릭 컬렉션을 모델로 LA 파사디나에 자신의 이름을 딴 노톤 사이먼 미술관을 건립했다.
실제로 사이먼은 프릭의 미술품을 고르는 안목과 재력 그리고 프릭 컬렉션의 디스플레이까지 모든 영역에서 모방하려고 했다. 이처럼 프릭의 컬렉팅은 텍사스 포스워트의 킴벨 미술관 등 미국 사립미술관의 ‘성격’을 결정하는 데 좋은 지표가 되었다. 프릭 컬렉션의 스타일을 따르건 따르지 않건 간에 프릭은 미국의 개인 수집가뿐 아니라 단체들에게 직 · 간접적으로 많은 영향을 주었다.
1935년 개관과 동시에 프릭 컬렉션은 뉴요커들에게 신선한 충격을 안겨 주었다. 뉴욕의 한복판에 자리한 프릭 컬렉션은 마치 결코 오염되지 않는 오아시스이자 그 어떤 악인도 들어올 수 없는 천국이며, 영원히 반짝이는 등대로서 삭막한 도시에 생명력을 불어넣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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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관은 다른나라의 역사와 정치, 문화를 들여다 볼 수 있다고 한다. 현대 문화예술의 메카인 미국 전역에 있는 미술관 27곳의 탄생 배경과 전통, 변천 과정, 건축 구..펼쳐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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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um백과] 프릭 컬렉션 – 처음 만나는 미국 미술관, 박진현, 예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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