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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처음 만나는
미국 미술
MoMA로 유명한 현대미술의 메카

뉴욕 현대미술관

Museum of Modern Art
요약 테이블
위치 11 West 53 Street New York, NY 10019-5497
휴관일 화요일
이용 시간 수~월요일(10:30~17:30) / 금요일(10:00~20:00)

현대미술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한 거장들의 기념비적인 명작 컬렉션

워싱턴 D.C.가 미국의 행정 수도라면, 뉴욕은 문화 수도이다. 일 년 내내 전 세계 관광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월드 시티’ 뉴욕의 힘은 풍부한 랜드마크에서 나온다. 뉴욕 현대미술관(Museum of Modern Art, 일명 MoMA)은 맨해튼 미드타운에 위치해 있다. 모마는 미술관의 이름이 말해주듯 19세기 말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주로 미국과 유럽의 미술품을 폭넓게 소장하고 있다. 회화, 조각, 사진, 영화, 그래픽아트 등 전 영역에 걸쳐 약 14만여 점을 소장한 ‘현대미술의 메카’이다.

현대미술의 메카로 불리는 뉴욕 현대미술관 전경

ⓒ 예담 | 저작권자의 허가 없이 사용할 수 없습니다.

뉴욕 현대미술관

ⓒ 예담 | 저작권자의 허가 없이 사용할 수 없습니다.

모마는 다른 미술관들에 비해 친근하게 느껴진다. 우선 맨해튼의 중심부에 위치해 있다는 입지 조건 때문이다. 맨해튼 지리에 밝지 않은 외국인이라도 큰 고생하지 않고 찾아갈 수 있는 목 좋은 곳에 들어서 있다. 또한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처럼 광활하지 않아 덜 고생스럽다. 메트로폴리탄은 규모가 너무 커서 발길 닿는 대로 동선을 따라가다 보면 영락없이 ‘미술관 미아’가 되기 쉽다. 게다가 고대 그리스 시대부터 현대미술에 이르기까지 수천 년의 미술품들을 보고 나면 나중엔 무슨 작품을 봤는지 헷갈린다.

그래서 초보 관람객들에겐 모마가 만만하다.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갤러리를 돌기 때문에 미술관에서 길을 잃는 낭패를 겪지 않아도 된다(어떤 사람들은 미술관이 무슨 어울리지 않게 백화점처럼 에스컬레이터냐고 불평하기도 한다).

이곳은 근현대 미술품만을 전시해놓아 개인적 취향이 맞는 사람이라면 집중적으로 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특히 미술관 중앙에 조성된 야외 조각공원 ‘애비 알드리치 록펠러 조각공원’은 따뜻한 햇빛을 받으며 휴식을 취할 수 있는, 더할 나위 없는 쉼터이다.

애비 알드리치 록펠러 조각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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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마의 ‘일등 개관 공신’ 애비 록펠러

대부분의 미국 미술관은 우먼 파워가 세다. 만약 여성들의 입김이 조금이라도 약했다면 지금의 휘트니 미술관, 프릭 컬렉션, 볼티모어 미술관, 이사벨라 스튜어트 가드너 미술관 등은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모마 역시 예외는 아니다. 오늘날 모마가 세계 최고의 현대미술관으로 성장하기까지는 여성들의 헌신적인 노력이 밑거름이 됐다.

그 중에서도 애비 록펠러(Abby Rockefeller), 메리 퀸 설리반(Mary Quinn Sullivan), 릴리 블리스(Lillie Bliss) 세 명의 여성은 모마의 ‘개관(開館) 공신’이다. 세 여성 모두 돈이 많은 대부호의 부인이었다는 공통점이 있다. 존 D. 록펠러의 부인 애비와 그녀의 친구였던 두 사람은 종종 부부 동반으로 유럽 여행길에 오르곤 했다. 하지만 여행을 다녀온 뒤에는 왠지 모를 허탈감이 남았다. 경제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전혀 기죽을 게 없었지만 유럽의 미술관만큼은 부러움과 동시에 열등감을 갖게 했다. 재력을 바탕으로 유럽 미술품을 수 없이 사들이긴 했으나 헛헛한 마음을 채울 수 없었다.

이런 마음을 재빨리 간파한 작가 아서 데이비스(Arthur Davies)는 애비 록펠러를 찾아가 의미 있는 일을 해보자며 미술관 건립을 제안했다. 1929년 11월 7일, 애비와 그녀의 친구들은 경제 대공황의 충격이 가시지 않은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역사적인 모마 미술관 오픈을 감행했다.

당시 뉴욕 사회에서는 무모한 거사를 치른 세 명의 여성에 대해 ‘대담한 숙녀들’, ‘불굴의 여성들’로 추켜세웠다. 미술관의 컬렉션은 세 사람이 소장한 작품들이 모태가 됐다. 이 가운데 애비 록펠러 여사의 공이 가장 컸다. 그녀는 미술관 부지를 선뜻 쾌척한 데 이어 물심양면으로 재정적 도움을 주었다. 모마는 애비 록펠러의 공로를 기리기 위해 야외 조각공원을 ‘애비 알드리치 록펠러 공원’으로 명명했다.

모마는 81년의 역사 동안 모두 7차례 증 · 개축을 거쳤다. 가장 최근의 리모델링은 2004년에 이루어졌다. 일본인 건축가 다니구치 요시오의 설계를 바탕으로 1조 원의 비용과 2년여의 공사 기간을 거쳐 2004년 11월 재개관했다.

유리와 알루미늄, 화강암을 주재료로 리모델링한 모마는 자연 채광을 실내로 최대한 끌어들이는 독특한 콘셉트를 취하고 있다. 회전문을 밀고 들어서면 348평의 드넓은 로비가 기다리고 있다. 천장 높이 34미터의 시원한 중앙홀 유리창 밖으로 모마의 명물인 애비 알드리치 록펠러 조각공원이 내다보인다. ‘미술관의 심장’이라고 불리는 이 조각공원은 건축가 다니구치가 어느 곳보다 심혈을 기울여 복원한 곳이다.

자연 채광을 실내로 끌어들이는 콘셉트로 재개관한 뉴욕 현대미술관의 내부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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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살바도르 달리의 특별전을 보기 위해 미술관을 찾은 관람객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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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요커들이 망중한을 즐기는 이 야외 공간에는 조각가 마욜의 〈강〉을 비롯하여 로댕, 헨리 무어, 피카소 등 거장의 조각작품이 숲을 이룬다. 2층에선 1층 로비에서도 보이는 바넷 뉴먼의 〈깨진 오벨리스크〉가 한가운데 웅장한 위용을 자랑하며 관람객들을 맞는다.

바넷 뉴먼 〈깨진 오벨리스크〉

1963~1969, 내후성 강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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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기 전에 봐야 할 명화 컬렉션

현대회화와 조각으로 구성된 3,200점의 컬렉션은 모마가 자랑하는 하이라이트 중의 하이라이트이다. 모마가 세계의 미술관으로 불리는 가장 큰 이유는 무엇보다도 질적, 양적으로 월등한 컬렉션 때문이다. 모마는 소장품 하나하나가 현대미술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할 만큼 걸작들로 넘쳐난다. 빈센트 반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을 비롯하여 폴 세잔의 〈수영하는 사람〉, 파블로 피카소의 〈아비뇽의 처녀들〉, 오귀스트 로댕의 〈발자크〉, 앙리 루소의 〈잠자는 집시〉, 앙리 마티스의 〈춤〉과 〈붉은 스튜디오〉, 조르주 피에르 쇠라의 〈저녁, 옹플레르〉, 살바도르 달리의 〈기억의 집착〉, 구스타프 클림트의 〈희망 Ⅱ〉 등 근현대 유럽 미술의 진수를 보여주는 작품들이 관람객들을 맞는다.

여기에 마르셀 뒤샹의 〈자전거 바퀴〉, 앤드류 와이어스의 〈크리스티나의 세계〉, 로이 리히텐슈타인의 〈공을 든 소녀〉, 재스퍼 존스의 〈깃발〉, 도널드 저드의 〈무제〉, 잭슨 폴록의 〈하나, No.31, 1950〉, 앤디 워홀의 〈금빛 마릴린 먼로〉, 게르하르트 리히터의 〈999〉 등 20세기 현대미술사를 바꾼 거장들의 작품도 소장하고 있다.

마르셀 뒤샹 〈자전거 바퀴〉

1951, 나무 · 금속바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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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스퍼 존스 〈깃발〉

1954, 합판에 붙인 천에 납화 · 유채 · 콜라주, 107.3×153.8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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앤디 워홀 〈금빛 마릴린 먼로〉

1962, 캔버스에 합성물감 · 실크스크린 · 유채, 211.4×144.7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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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 함께 초기 무성영화인 에드윈 포터의 〈대열차 강도〉부터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용서받지 못한 자〉에 이르기까지 영화사에 족적을 남긴 걸작들도 만날 수 있다.

이 가운데 앤드류 와이어스의 〈크리스티나의 세계〉는 보는 이의 마음을 먹먹하게 만드는 그림이다. 2009년 91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난 앤드류 와이어스의 대표작이자, 20세기 중반 회화 가운데 미국인들로부터 가장 많은 사랑을 받은 작품이다. 와이어스는 미국 소시민들의 평범한 일상을 사실적으로 묘사해 ‘국민 화가(Painter of People)’로 불렸다. 와이어스 작품의 주된 배경은 고향인 펜실베이니아 채드 포드와 여름 별장이 있는 메인 주 커싱 사람들의 애환과 풍경이었다.

앤드류 와이어스 〈크리스티나의 세계〉

1948, 석고 패널에 템페라, 81.9×121.3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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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모델인 크리스티나 올슨은 커싱에서 여름휴가를 보내던 와이어스가 만난 이웃 가운데 한 명이었다. 크리스티나는 세 살 때 앓은 소아마비 후유증으로 걸을 수 없게 된 장애인이다. 1939년 어느 날, 와이어스는 우연히 별장 창문을 통해 가파른 언덕 위의 집으로 가기 위해 힘겹게 오르고 있는 크리스티나를 목격했다. 그녀가 입고 있던 분홍색 드레스가 갈색 언덕 위에서 선명하게 빛났다. 와이어스는 얼른 스케치북을 들고 가녀린 몸으로 언덕을 오르는 그녀의 애잔한 모습을 그렸다. 이때만 해도 그 광경을 캔버스에 옮길 생각은 하지 못했다고 한다. 하지만 그날 이후 크리스티나의 모습은 와이어스의 가슴에 선명하게 각인되어 늘 따라다녔다.

1948년, 와이어스는 55세에 이르러 〈크리스티나의 세계〉를 완성하였다. 와이어스는 평소 ‘예술은 세상과 사람에 대한 사랑이 클수록 넓고 깊어진다’는 신념을 갖고 있었다. 이 때문인지 그는 크리스티나의 뒷모습을 그려 보는 사람들의 애를 태웠다. 크리스티나가 울고 있는지, 웃고 있는지 그건 전적으로 그림을 감상하는 관람객의 ‘마음’에 따라 다를 것이다. 크리스티나는 세상을 떠나기 전 병원에서 머물던 2개월을 제외하곤 평생 커싱의 집에서 보냈다.

와이어스의 〈크리스티나의 세계〉는 오지나 다름없는 커싱을 미 전역에 알리는 계기가 되었으며, 메인 주 제1 명소로 만들었다. 현재 크리스티나의 집은 메인 주 판스워스 미술관 투어 코스로 연중 관광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

이처럼 ‘죽기 전에 봐야 할 명작’들이 모마로 몰릴 수 있었던 이유는 시대 상황과도 무관하지 않다. 모마의 도약기는 제2차 세계대전 무렵. 당시는 나치가 국가 소장품 중 퇴폐적이라고 지목한 작품들을 매각하던 시기였다. 여기에 예술가와 소장자들이 나치의 박해와 전쟁을 피해 대거 미국으로 이주한 시대 상황도 큰 영향을 미쳤다.

무엇보다 모마의 초대 관장을 지낸 천재 큐레이터 알프레드 바(Alfred Barr)의 공을 빼놓을 수 없다. 애비 여사의 엄격한 심사를 거쳐 모마의 관장으로 간택된 알프레드 바는 근대미술의 발전에 큰 영향력을 발휘한 전시 기획자이자 펀드레이징(미술관 · 박물관이 지역 사회 구성원에게 해당 기관에서 제공하는 프로그램을 후원하도록 독려하는 것)의 귀재였다. 창설 초기 세잔의 〈수영하는 사람〉과 고갱의 〈달과 지구〉 등으로 출발한 모마는 제2차 세계대전 무렵 알프레드 바의 열정적인 컬렉팅과 후원자들의 기증에 힘입어 소장품을 꾸준히 늘려나갔다.

알프레드 바가 펀드레이징의 귀재로 불리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당시 경제 대공황이라는 최악의 상황에서 모마를 개관해 세상을 깜짝 놀라게 했지만, 미술관을 운영하는 데 적지 않는 경비가 들었다. 알프레드 바는 관장으로서 자리만 지키는 게 아니라 컬렉터들을 찾아다니며 후원을 이끌어냈다.

모마 컬렉션 가운데 하이라이트로 꼽는 피카소의 〈아비뇽의 처녀들〉은 알프레드 바가 1937년부터 1938년까지 2년에 걸쳐 공을 들인 끝에 소장하게 된 작품이다. 1939년 미술관에 들여온 〈아비뇽의 처녀들〉은 입체파의 도래를 알리는 걸작으로, 뉴욕 현대미술관의 위상을 한 단계 끌어올린 기념비적인 작품이다.

파블로 피카소 〈아비뇽의 처녀들〉

1907, 캔버스에 유화, 243.9×233.7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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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프레드 바는 〈아비뇽의 처녀들〉의 미술사적 가치를 누구보다도 일찍이 꿰뚫어보았다. 사물을 한 장소에서 한 시점으로 보고 그리는 게 아니라 여러 시점에서 동시에 보는 것으로 가정하고 그릴 수도 있음을 보여준 이 작품은 당시 큰 반향을 일으켰다. 이 작품의 진가를 간파한 알프레드 바는 〈아비뇽의 처녀들〉을 손에 넣고 싶었다. 하지만 그림 가격이 당시 돈으로 2만 8천 달러나 되어 불가능에 가까웠다. 도저히 포기할 수 없었던 알프레드 바는 릴리 블리스(Lillie Bliss)의 도움과 미술관이 애지중지하던 드가의 〈경마장〉을 내다 판 돈으로 마침내 〈아비뇽의 처녀들〉을 소장하는 데 성공했다. 원하는 미술품을 손에 넣기 위해 다른 작품을 매각하는, 이른바 디액세셔닝(deaccessioning)을 선택한 것이다.

3,200여 점의 현대회화 컬렉션 가운데 19세기 후반에서 제2차 세계대전까지 제작된 걸작들은 특별히 6층 갤러리에 전시되어 있다. 빈센트 반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 피카소의 〈아비뇽의 처녀들〉, 앙리 마티스의 〈춤〉은 갤러리를 환하게 빛낸다. 현대미술의 한 페이지들을 장식한 세기의 명화들이 한 전시장에 나란히 내걸려 있다는 것은 모마의 위상이 어느 정도인지를 말해준다.

앙리 마티스 〈춤〉

1909, 캔버스에 유화, 259.7×390.1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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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마티스의 〈춤〉은 이들 작품에 비해 차별받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갤러리가 아닌 5층과 6층 사이의 계단 벽에 걸려 있기 때문이다. 어째서 거장의 불후의 명작을 전시실이 아닌 관람객들의 발길이 뜸한 계단 벽에다 걸어놓은 것일까. 잠시 당황스러울 수 있지만 사연을 들어보면 그리 놀랄 일도 아니다. 〈춤〉은 처음부터 계단을 장식하기 위해 그려진 그림이기 때문이다.

러시아의 거상(巨商)이자 19, 20세기 미술 컬렉터였던 세르게이 시추킨은 마티스에게 모스크바 저택의 계단을 장식할 두 점의 패널화를 의뢰했다. 작품 제작을 위해 마티스는 1910년 러시아를 방문했고, 러시아 전통 미술인 이콘화의 단순함과 위대함에 큰 감동을 받아 두 점의 대작을 완성했다. 이 작품이 그 유명한 〈춤〉과 〈음악〉이다.

모마의 〈춤〉은 마티스가 시추킨의 작품 제작을 일 년 앞두고 그린 일종의 예비 작품(preliminary version)이다. 1910년에 제작한 완성본 〈춤〉과 〈음악〉은 현재 러시아 에르미타주 미술관에 소장돼 있다. 극도로 절제되고 단순한 구도에 하늘을 상징하는 푸른빛과 땅을 상징하는 녹색의 바탕 위로 무용수 다섯 명이 서로 손을 잡고 원형을 그리며 춤을 추고 있다. 얼굴이 드러난 무용수는 두 명뿐이다. 나머지 사람들은 하나같이 무아의 경지에 도달한 듯한 모습이다.

네 명의 무용수가 무중력 상태에서 춤을 추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반면, 왼쪽 무용수의 몸동작은 힘이 느껴진다. 이 때문인지 맨 앞쪽의 무용수와 손을 놓쳐 이들의 둥근 대열은 이내 무너지고 만다. 어떻게든 함께 손을 잡고 춤을 추려는 맨 앞쪽의 무용수 손짓이 애처롭게 느껴진다. 마티스는 일찍이 “춤은 인생을 떠올리게 한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 인간은 살아가면서 여러 이유로 단절되고 소외될 수 있는데 춤이 단절로부터 관계를 회복시켜준다는 의미이다. 미술과 음악이 마음을 다스려주는 것처럼 춤이 소외와 단절로부터 인간을 구한다는 것이다. 모마에 있는 마티스의 예비 작품 〈춤〉만을 접한 관람객들은 에르미타주의 완성본을 보고 싶은 충동에 빠지지 않을 수 없다.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은 모마가 자랑하는 대표작이다. 고흐는 자연을 재구성하지 않고 사물의 특성을 과장되게 부각하는 방법을 통해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곤 했다. 이 작품은 고갱과의 불화로 스스로 귀를 자른 뒤 프랑스 생 레미의 정신병원에 입원하여 요양하던 중 창밖으로 보이는 마을 풍경을 그린 것이다. 화면은 녹색과 파란색이 주조로 무거우면서도 신비한 느낌을 준다. 그에 반해 더욱 격렬해진 필치와 충동적인 붓질로 인해 표현주의적 성격을 더한다. 〈별이 빛나는 밤〉은 자연에 대한 고흐의 내면적이고 주관적인 감정을 표현한 작품으로 당시 고흐의 심리적 상태를 잘 드러내고 있다.

빈센트 반 고흐 〈별이 빛나는 밤〉

1889, 캔버스에 유화, 73.7×92.1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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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반 고흐만큼 미국인들이 좋아하는 인상파 화가도 없다. 물론 마티스, 마네, 모네 등도 있지만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폭넓은 사랑을 받는 작가는 반 고흐가 단연 으뜸이다. 그동안 미국에서 열린 반 고흐 특별전에 대한 기록이 이를 말해준다. 하긴 어디 미국뿐이랴. 고흐의 그림을 전시하는 미술관은 전 세계 어디에서나 흥행을 예약한다. 이유는 단 하나, 모든 사람이 반 고흐를 알고 있고, 그래서 그의 마음을 읽고 싶어 하기 때문이다.

반 고흐의 이름만으로도 전시는 엄청난 티켓 파워를 자랑한다. 2001년 시카고 아트 인스티튜트에서 열린 ‘반 고흐와 고갱(Van Gogh and Gauguin : Studio of the South, 2001년 9월 22일~2002년 1월 13일)’ 전시는 75만 명의 관람객이 다녀갔다. 2002년 7월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서 열린 ‘반 고흐의 우편 배달부-조셉 룰랭의 초상화(Van Gogh’s Postman : The Portraits of Joseph Roulin)’ 전시는 단지 5점이 내걸렸음에도 빅히트를 기록했다.

이에 앞서 1999년 LA 카운티 미술관에서 열린 고흐전은 밀려드는 관람객들을 수용하기 위해 무려 63시간 동안 문을 닫지 않은 진기록을 세웠다. 2000년 파산 위기에 내몰린 디트로이트 미술관은 고흐전을 개최해 200만 달러의 아트 상품 판매라는 대박을 기록했다. 고흐전 덕분에 디트로이트 미술관은 가까스로 파산 직전에서 구사 회생할 수 있었다. 고흐가 미국의 여러 미술관을 살려낸 것이다.

이처럼 미국인들이 고흐에 열광하는 이유는 단순히 그의 그림이 지닌 감성적 파워 때문만은 아니다. 평생에 걸쳐 그림 한 점을 판매할 만큼 지독한 가난과 싸워야 했던 고흐의 드라마틱한 삶이 그의 예술에 스며들어 있기 때문이다. 스타는 권력과 돈에 의해 만들어진다는 오늘의 미술계 현실에 염증을 느낀 미국인들이 진정한 예술가의 정신을 보여준 고흐에게 경의를 보내고 있는 것이다.

무엇보다 뉴욕 현대미술관이 현대미술사에 큰 획을 그은 작품들을 대량 소장할 수 있었던 데는 제2차 세계대전이란 시대적 상황이 컸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현대미술의 주도권은 파리에서 뉴욕으로 넘어갔다. 전쟁을 피해 막스 에른스트, 몬드리안, 페르닝 레제, 샤갈 등 유럽 작가들이 창작의 자유를 찾아 미국으로 망명해온 것이다. 이들 가운데 일부는 종전 후에도 뉴욕에 남아 미국에서 태동된 추상표현주의에 영향을 주었다.

잭슨 폴록이 대표적인 추상표현주의 작가이다. 대부분의 미국 미술관에서 그의 작품을 쉽게 볼 수 있는 친숙한 화가이다. 모마에서의 그의 인기는 단연 돋보였다. 그의 작품만을 별도로 전시해놓은 갤러리에는 유난히 관람객들로 붐볐다. 유치원생부터 성인 등을 인솔하며 단체 투어를 이끄는 도슨트들이 잭슨 폴록 작품에서 유독 많은 시간을 할애하며 열강하는 모습이 참 인상적이었다.

대표작 가운데 〈하나, No.31, 1950〉은 최고 경지에 오른 그의 스타일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폴록은 드로잉을 할 줄 모른다며 자신의 재능을 자책하곤 했다. 그는 드로잉 콤플렉스에서 벗어나 순간적이고 직접적인 표현 기법을 모색했다. 그렇게 자신의 무의식 세계를 탐구하다가 드리핑(dripping), 즉 물감 흘리기 기법을 발견했다. 캔버스를 바닥에 깔아놓고 그 위에 즉흥적으로 물감을 뿌리거나 흘리고 튀길 때 생기는 우연의 효과를 적극 활용한 것이다. 그를 세계적인 스타 작가로 만든 액션 페인팅은 드로잉 콤플렉스에서 벗어나려는 시도에서 비롯됐다는 이야기이다. 그는 “내 그림은 이젤에서 그려진 것이 아니다. 캔버스보다는 딱딱한 마루가 더 좋다. 마루 위에 있을 때 나는 편안함을 느낀다. 에나멜페인트를 흩뿌리고 막대기로 휘저을 때 그리고 마루 위를 걸어다닐 때 비로소 나는 작품의 일부가 된다”고 말했다.

세계적인 스타 작가로 활동했지만 잭슨 폴록의 삶은 그리 행복하지 않았다. 알코올 중독과 정신질환, 동성애로 점철된 그의 생은 결국 마흔네 살이라는 젊은 나이에 마감하기에 이른다. 어쩌면 드리핑 기법의 얽히고설킨 복잡한 화면은 창작에 대한 고민, 세상과의 불협화음에 절규했던 폴록의 신음소리였을지 모른다.

또 하나의 작품, 포드 패밀리 프로그램

뉴욕 현대미술관이 자랑하는 또 하나의 작품은 풍부한 교육 프로그램이다. 미술관 프로그램을 교육의 차원에서 보는 모마는 이론 강의와 전시 교육을 병행한다. 교육부서는 미술관과 대중을 연결하는 역할을 하며, 다양한 관람객이 근현대미술에서 즐거움과 의미를 찾는 데 주력한다. 교육부서가 제공하는 프로그램에는 가족 프로그램, 학교 프로그램, 인턴십 프로그램, 자원봉사 프로그램, 방과 후 학교, 갤러리 토크 등이 있다.

어린이와 가족을 대상으로 한 교육 가운데 대표적인 것이 ‘포드 패밀리 프로그램(Ford Family Program)’이다. 포드 프로그램은 미국의 대표적인 자동차 회사인 포드 사의 기금을 지원받아 운영한다. 미술관 소장품을 통해 현대미술에 대한 안목과 예술관을 높이는 데 중점을 둔다. 미술관 투어, 아트 워크숍, 작가와의 대화, 영화로 보는 미술, 가족 체험 행사, 조각공원에서의 이야기 시간 등을 운영 중이며 참가비는 전액 무료이다.

포드 패밀리 프로그램에서 어린이들이 미술관 에듀케이터로부터 앙리 루소 〈잠자는 집시〉에 대한 설명을 듣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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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진현 집필자 소개

전남대 신문방송학과 및 동대학원 졸업을 졸업하고 광주일보 문화부장, 논설위원을 거쳤다. 현재 편집부국장 겸 문화선임기자로 재직 중이다. 지난 25년 동안 미술분야와 광주비엔날레, 아시아 문화중심..펼쳐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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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만나는 미국 미술관
처음 만나는 미국 미술관 | 저자박진현 | cp명예담 도서 소개

미술관은 다른나라의 역사와 정치, 문화를 들여다 볼 수 있다고 한다. 현대 문화예술의 메카인 미국 전역에 있는 미술관 27곳의 탄생 배경과 전통, 변천 과정, 건축 구..펼쳐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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