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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미술
관 미국의 역사와 과학, 예술을 집약해놓은 아카이브
스미스소니언 인스티튜션
Smithsonian Institution위치 | 미국 워싱턴 D.C.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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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관일 | 크리스마스 |
이용 시간 | 산하 19곳 미술관 · 박물관 월~일요일(10:00~17:00) |
불운한 과학자의 삶이 탄생시킨 세계 최대의 박물관 단지
‘스미스소니언 인스티튜션(Smithsonian Institution)을 돌아보지 않고는 미국을 말하지 말라’라는 말이 있다. 미국의 역사와 과학, 예술을 집약해놓은 ‘아카이브’이기 때문이다.
스미스소니언 인스티튜션(이하 스미스소니언)은 미국의 수도이자 세계 정치 1번지로 불리는 워싱턴 D.C.의 내셔널 몰에 자리하고 있다. 워싱턴의 심장부인 이곳에는 국회의사당, 워싱턴 기념탑, 스미스소니언, 워싱턴 국립미술관 등 워싱턴의 주요 공공기관이 많다.
워싱턴 D.C.는 철저히 계획에 의해 건립된 행정도시이다. 1791년 워싱턴 대통령은 미국독립전쟁 당시 라파예트 장군의 군사공학자였던 프랑스의 건축가 피에르 샤를 랑팡에게 도시 설계를 의뢰했다. 이런 이유로 워싱턴 D.C.의 거리를 걷다 보면 곳곳에서 인위적으로 꾸며진 듯한 느낌을 받는다.
이들 가운데 스미스소니언은 워싱턴 D.C.의 대표적 문화 명소이다. 스미스소니언은 적어도 일주일 이상 시간을 할애해야 할 만큼 볼거리가 많다. 게다가 뉴욕의 미술관과 박물관들이 유료인 것과 달리 스미스소니언은 입장료가 무료인 ‘착한 미술관’이다.
제임스 스미스슨의 위대한 유산
스미스소니언은 세계 최대의 박물관 단지이다. 산하에 19곳의 미술관과 박물관 그리고 하나의 국립동물원을 거느리고 있다. 이들 중 미술관과 박물관 9곳이 내셔널 몰에 자리하고 있으며, 박물관 5곳과 국립동물원은 워싱턴의 다른 지역에 위치한다. 뉴욕에도 쿠퍼 휴이트 국립 디자인 미술관과 미국 인디언 박물관 등 2곳이 있다.
내셔널 몰에 들어선 스미스소니언 캐슬(Smithsonian Castle)은 19곳의 미술관과 박물관에 관한 정보를 얻을 수 있는 곳이다. 말하자면 스미스소니언의 본부인 셈이다. 성채 뒤편엔 정원이 꾸며져 있어 봄여름에는 아름다운 꽃들을 보는 재미가 제법 쏠쏠하다.
스미스소니언은 영국의 과학자 제임스 스미스슨(James Smithson)의 유산 50만 달러를 모태로 1846년 설립됐다. 당시 이 엄청난 기금을 기증받은 미국 의회는 약 10여 년간 논의한 끝에 스미스소니언을 발족했다. 사실 스미스슨의 삶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그에 관한 기록이라 할 수 있는 노트와 일기 그리고 서신들이 1865년 스미스소니언 건물 화재로 대부분 소실되었기 때문이다. 그가 애장했던 213권의 도서와 약간의 서신들만이 남아있을 뿐이다.
스미스슨은 1765년 영국의 대지주였던 휴 스미스슨(Hugh Smithson)과 그의 정부 엘리자베스 키트 매키(Elizabeth Keate Macie) 사이에서 사생아로 태어났다. 훗날 아버지 휴 스미스슨은 자신의 성(姓)을 퍼시(Percy)로 바꾸었지만 정작 아들인 제임스 스미스슨의 성은 바꾸지 않았다. 엘리자베스와의 사생활을 드러내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자신의 존재를 달갑지 않게 여겼던 부모 때문에 제임스 스미스슨은 어린 시절 어머니의 성을 따라 자크 루이스 매키(Jacques Louis Macie)로 불렸다. 이 같은 출생 비밀은 스미스슨의 인생에 큰 영향을 미쳤고, 훗날 스미스소니언을 탄생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1786년 옥스퍼드 대학을 졸업한 스미스슨은 어머니가 세상을 떠난 해인 1800년 최연소 로열 아카데미 회원으로 선발되었다. 어머니에게서 상당한 유산을 물려받은 그는 1802년 자신의 성을 매키에서 친부의 성인 스미스슨으로 바꿨다.
스미스슨은 평생을 이탈리아 플로렌스, 프랑스 파리, 스위스 알프스 등을 찾아다니며 자연 세계를 탐구하는 데 보냈다. 특히 그는 탄산아염의 실체를 규명하는 등 유럽 과학계에 많은 업적을 남겼다. 하지만 사생아라는 그의 출생 비밀은 당시 보수적인 영국 사회에서 ‘주홍글씨’나 다름없었다. 유무형의 냉대와 편견으로 스미스슨은 적잖은 마음고생을 했다. 그는 출생에 대한 콤플렉스 때문인지 결혼에 회의를 품고 평생 독신으로 지냈다. 스미스슨은 말년에 자신의 재산을 영국에 기증하려고 했지만, 영국 사회는 그가 사생아라는 이유로 호의를 거절했다. 죽음을 앞두고 그는 동생의 아들인 헨리 제임스 디킨슨에게 재산을 넘기면서 “만약 네가 자손이 없을 경우 이 재산은 모두 미국에 보내라”라고 유언을 했다. 1820년 헨리 제임스 디킨슨이 후손을 남기지 않은 채 세상을 떠나는 바람에 스미스슨의 전재산 50만 달러가 미국으로 보내졌다.
살아생전 한 번도 미국에 가본 적이 없던 스미스슨이 이 같은 유언을 한 이유는 사생아로서 영국 사회로부터 차별을 받은 데 대해 반감이 컸기 때문이다. 스미스슨은 유언에서 “내 재산은 대중의 지식을 발전시키는 기관을 설립하는 데 쓰여야 한다”고 못을 박았을 뿐 아니라, “그 이름은 ‘스미스소니언’으로 해야 한다”는 단서를 붙였다. 아버지의 개명 전 성(스미스슨)에 ‘아들’을 뜻하는 ‘-ian’을 붙인 것이다. 아무리 인정하고 싶지 않아도 자신이 아들이라는 점을 알리고 싶어서였다. 유언 당시 스미스슨은 자신의 재산이 오늘날 19곳의 미술관과 연구기관 등을 거느린 세계 최대의 박물관단지가 되리라고는 꿈도 꾸지 못했을 것이다.
결국 스미스슨은 스미스소니언을 통해 ‘제임스 스미스슨이 휴 스미스슨의 아들’이라는 사실을 지구상에 공표하게 되었다. 생전 그의 존재가 세상에 알려질까 봐 노심초사했던 아버지에게 보기 좋게 복수를 한 셈이다.
스미스소니언의 마스코트, 항공우주 박물관
평생을 외롭게 지낸 스미스슨의 넋을 위로라도 하듯 스미스소니언은 늘 관람객들로 붐빈다. 스미스소니언 산하에는 아프리카 미술관(African Art Museum), 항공우주 박물관(Air and Space Museum), 미국 미술관 및 부설 렌윅 갤러리(American Art Museum and its Renwick Gallery), 미국 역사 박물관(National Museum of American History), 미국 인디언 미술관(American Indian Museum), 아나코시아 커뮤니티 미술관(Anacostia Community Museum), 쿠퍼 휴이트 국립 디자인 미술관(Cooper-Hewitt, National Design Museum), 프리어 & 아서 M. 새클러 갤러리(Freer and Arthur M. Sackler Gallery), 허쉬혼 미술관 & 조각공원(Hirshhorn Museum and Sculpture Garden), 국립동물원(National Zoo), 국립 자연사 박물관(Natural History Museum), 초상화 갤러리(Portrait Gallery), 우편 박물관(Postal Museum), 스미스소니언 캐슬(Smithsonian Institution Building, the Castle) 등이 있다.
여기에 9곳의 연구기관과 10여 곳의 부속 시설까지 더하면 규모 면에서는 세계 최대이다. 직원 수만 6천여 명에 이르며 자원봉사자가 6,500여 명인 빅 패밀리이다.
- 1아프리카 미술관
- 2아프리카의 전통 마스크
- 3아프리카 미술관에 전시된 조각작품
이 가운데 항공우주 박물관은 워싱턴 D.C.에 가면 빠뜨리지 말고 반드시 방문해야 할 필수 코스이다. 비행, 항공, 우주여행의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어 전 세계에서 온 관람객이 가장 많이 찾는다. 스미스소니언의 연 관람객 2,400만 명 중 1천만 명이 항공우주 박물관을 방문한다. 라이트 형제의 비행기, 최초로 대서양 횡단 비행에 성공한 찰스 린드버그의 ‘라이언 NYP 비행기’, 아폴로 11호, 달의 화석, 화성 무인 탐사기 등 우주항공 기술 발달사를 보여주는 수백 점의 유물과 자료가 전시돼 있다.
항공우주 박물관의 하이라이트는 ‘세인트루이스 정신(Spirit of St. Louis)’으로 잘 알려진 라이언 NYP 비행기이다. 이는 인류의 비행사에 이정표가 된 항공기이다. 1927년 5월, 린드버그는 이 비행기를 타고 뉴욕에서 파리까지 중간 착륙 없이 세계 최초로 대서양 횡단 비행에 성공했다. 뉴욕 롱아일랜드의 루스벨트 필드에서 파리까지의 횡단 거리는 약 5,810킬로미터, 횡단 시간은 33시간 30분이었다. 당시 뉴욕 호텔 소유주였던 레이몬드 오테이 그는 세계 최초로 대서양 논스톱 비행에 성공한 조종사에게 상금으로 2만 5천 달러를 주겠다고 공표했는데, 찰스 린드버그가 바로 그 주인공이 되었다. 이 비행 성공으로 찰스 린드버그는 세계 최초의 대서양 횡단 비행이라는 영예와 함께 수십 년 동안 대중의 영웅으로 사랑받았다.
‘세인트루이스 정신’이란 명칭은 미주리 주 세인트루이스의 린드버그 후원자들을 기념하기 위해 붙인 것으로, 이 후원자들은 항공기 제작비용을 지불했다. 그리고 ‘NYP’는 비행기의 목적지였던 ‘New York‒Paris’의 첫 글자에서 유래했다.
인류에 날개를 달아준 〈1903 라이트 플라이어〉
항공우주 박물관 본관 중앙에는 인류 역사상 최초로 비행기를 만든 라이트 형제의 〈1903 라이트 플라이어〉가 전시돼 있다. 1903년 12월 17일, 미노스캐롤라이나의 해변 키티호크에서 인간이 조종하여 비행에 성공한, 인류 최초의 동력 비행기이다. 라이트 형제는 키티호크의 모래 언덕과 강한 바람이 시험 비행에 적합하다고 판단했다. 발동기를 부착한 플라이어 1호는 동생 오빌의 조종으로 12초 동안 36미터를 날았고, 두 번째 비행에서는 59초 동안 243.84미터를 기록했다.
이후 라이트 형제는 1904년 허프먼 프레리에서 45분간 비행에 성공한 뒤 상하좌우로 조종하는 문제도 해결하기에 이른다. 이듬해인 1905년, 플라이어 3호는 주회(周回) 비행에 여러 차례 성공하면서 40킬로미터를 38분에 비행하는 기록을 세웠다.
이외에도 초기 비행부터 1930년대 군사항공 분야에서의 성과, 전투기부터 화물기에 이르기까지 비행의 역사를 조망할 수 있는 진귀한 유물들이 전시되어 있다. 특히 아폴로 11호의 달 착륙 사령선 등 우주 탐사를 전문으로 다루는 전시실도 마련되어 아이들 교육 장소로 훌륭하다.
미국 역사 박물관도 ‘스미스소니언 패밀리’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로 인기가 많은 곳이다. 1964년 설립된 미술관은 연 400만 명의 관람객이 찾는다.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정치, 역사, 과학, 문화 등 오늘날 세계 최강국으로 우뚝 선 미국의 저력이 어디에서 연유됐는지 그 뿌리를 살펴볼 수 있는 뜻깊은 곳이다. 설립 초기엔 국립 역사기술 박물관으로 불리다가 1980년 지금의 이름으로 바뀌었다. 미국의 역사 및 산업에 관련된 수집품 약 300만 점을 전시하고 있다. 여기에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보석 수집품, 아메리카 인디언의 자료, 워싱턴과 링컨 등 역대 대통령의 유품이 포함되어 있다.
특히 퍼스트레이디 갤러리는 역대 대통령들 부인의 생활을 엿볼 수 있는 전시품들이 눈길을 끈다. 취임식장에서 입었던 화려한 드레스부터 백악관에서 즐겨 사용했던 다기와 주방용품, 심지어 대통령과 주고받았던 연애편지 등에서 퍼스트레이디들의 인간적인 면모를 느낄 수 있다. 미국 역사 박물관은 재미와 교육을 적절히 활용한 콘텐츠로 자칫 지루하고 식상할 수 있는 공간을 역동적으로 탈바꿈시켰다. 객관적인 자료(미국의 역사적 사실)에 충실하되 시대의 추세에 발맞추어 생동감 있는 ‘글로벌 문화 공간’으로 키우는 힘, 이것이 바로 미국의 저력이다.
초상화 갤러리 역시 미국의 단면을 읽을 수 있는 의미 있는 곳이다. 미국 역사 박물관이나 항공우주 박물관이 유물을 주인공으로 내세운다면, 초상화 갤러리는 사람이 중심이다. 갤러리의 초상화들은 비록 시대는 달라도 인물들이 공유했던 삶을 현 세대들에게 생생하게 들려준다.
이곳에는 초대 대통령인 조지 워싱턴의 초상화부터 마틴 루터 킹 목사, 마릴린 먼로, 베이브 루스 등 한 시대를 풍미한 명사들의 초상화가 전시되어 있다. 관람객들은 초상화를 보면서 그 인물이 누구이고 현재의 자신에게 어떤 의미를 주는지 등을 성찰한다. 자신보다 먼저 살다 간 그들의 얼굴을 보면서 현재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며 스스로에게 책임감을 부여한다. 미국인들에게 있어 초상화는 자신을 비추는 일종의 거울이다. 초상화 갤러리를 돌아보면서 문득 ‘40세가 되면 자신의 얼굴에 책임을 져야 한다’는 말이 떠올랐다. 내 얼굴이 아름답게 보이도록 하기 위해선 주어진 삶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소중한 깨달음을 얻었다. 이렇듯 초상화 갤러리는 단지 미술관만이 아닌 명상의 공간이기도 하다.
세계인의 문화 마인드를 높이는 글로벌 센터
스미스소니언의 강점은 뭐니 뭐니 해도 1억 4천여 점에 이르는 방대한 소장품과 다양한 프로그램이다. 특히 스미스소니언 산하 19곳 미술관과 박물관은 다양한 교육 · 체험 프로그램을 통해 미국인들의 문화 마인드를 높이는 데 앞장선다. 교사들을 대상으로 정보 자료 제공, 박물학 교육과정, 지역 순회 강연, 체험형 관람 프로그램, 어린이 미술관 등이 대표적이다.
특히 민속문화계승센터는 매년 스미스소니언 포크라이프 페스티벌, 포크웨이 녹음, 전시, 다큐멘터리 상영, 심포지엄 개최, 정기물 간행 등 다양한 이벤트를 열고 있다.
그 중에서도 1966년부터 개최하고 있는 포크라이프 페스티벌은 간판 프로그램이다. 포크라이프 페스티벌은 뉴욕의 뮤지엄 마일 페스티벌과 종종 비교된다. 하지만 규모나 내용 면에서 뮤지엄 마일 페스티벌과 비교가 되지 않는다. 우선 행사 기간과 시민들의 참여도 면에서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앞선다. 뮤지엄 마일 페스티벌이 단 하루 동안 열리는 반면, 포크라이프 페스티벌은 장장 2주 동안 펼쳐지는 장기 행사이다. 축제를 찾는 관객 역시 뮤지엄 마일이 5만여 명이라면 포크라이프 페스티벌은 150만명에 이른다.
- 1~2스미스소니언 민속문화계승센터의 포크라이프 페스티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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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관은 다른나라의 역사와 정치, 문화를 들여다 볼 수 있다고 한다. 현대 문화예술의 메카인 미국 전역에 있는 미술관 27곳의 탄생 배경과 전통, 변천 과정, 건축 구..펼쳐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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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um백과] 스미스소니언 인스티튜션 – 처음 만나는 미국 미술관, 박진현, 예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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