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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미술
관 미래 아티스트들의 산실
코코란 갤러리
Corcoran Gallery위치 | 500 Seventeenth Street NW Washington D.C. 2000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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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관일 | 매주 월 · 화요일 |
이용 시간 | 매주 수 · 금 · 토 · 일요일(10:00~17:00) / 목요일(10:00~21:00) |
미국 미술의 변천 과정과 21세기 현대미술을 동시에 볼 수 있는 곳
미국 백악관 부근을 지나다 보면 또 하나의 ‘화이트 하우스’가 관광객들의 눈길을 끈다. ‘CORCORAN’이라는 분홍색 플래카드가 내걸린 코코란 갤러리(Corcoran Gallery)이다. 이름에서 얼핏 상업 화랑 분위기가 풍기지만 엄연한 미술관이다.
코코란 갤러리는 미국 미술의 변천 과정과 21세기 현대미술의 현주소를 동시에 볼 수 있는 곳이다. 18세기부터 20세기에 이르는 광범위한 미국 미술의 발전사를 한 편의 파노라마처럼 보여준다. 1897년 건축가인 어니스트 플래그가 설계한 미술관은 신그리스 양식풍의 우아한 위용을 자랑한다.
코코란 갤러리는 재능이 뛰어난 미국의 젊은 화가들을 육성하기 위해 설립된 만큼 예술학교를 거느리고 있다.
성공한 사업가의 예술을 향한 위대한 포부
코코란 갤러리는 워싱턴 D.C. 출신 윌리엄 윌슨 코코란(William Wilson Corcoran)의 개인 컬렉션에서 시작되었다. 1798년, 코코란은 전직 워싱턴 D.C. 시장이자 막강한 재력을 자랑하는 중개상의 아들로 태어났다. 열아홉 살 때 건어물 판매 사업에 뛰어들어 실패하기도 했지만, 이후 금융인으로 변신해 대성공을 거두었다. 그는 파트너인 조지 W. 릭스와 함께 ‘코코란 & 릭스’라는 이름의 은행을 설립했다. 때마침 멕시코 전쟁이 발발하면서 코코란은 연방정부의 재정중개인으로 참여해 단시간 내에 탄탄한 재력을 쌓았다.
1854년 사업 일선에서 물러난 그는 자선사업에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 코코란이 막대한 부를 일구어낸 시기는 미국의 성공한 비즈니스맨들이 병원, 고아원, 대학, 도서관, 미술관 등을 건립하는 공익사업을 경쟁적으로 펼치던 때였다. 이러한 사회 분위기는 코코란에게도 많은 영향을 주었다. 미국의 많은 수집가가 유럽 미술 작품을 구입할 당시 그는 미국 현대미술에 관심을 둔 몇 안 되는 컬렉터였다. 소장품이 늘자 코코란은 일주일에 두 번 방문객들에게 자신의 집을 공개하기 시작했다.
갈수록 방문객이 늘면서 그는 자신의 컬렉션을 상설 전시할 수 있는 건물의 필요성을 느꼈다. 1859년, 마침내 코코란은 건축가인 제임스 렌윅에게 펜실베이니아 에비뉴와 1번가(오늘날의 스미스소니언 렌윅 갤러리 자리) 사이에 갤러리 건립을 의뢰했다. 그러나 미국독립전쟁이 발발하는 바람에 그의 갤러리는 오랫동안 미완성 건물로 남아 있어야 했다. 1869년 코코란은 당시 10만 달러에 달하는 건물, 대지, 개인 소장품을 9명의 이사회에 기증해 갤러리 관리를 맡겼다.
코코란 갤러리는 1874년 1월 19일, 98점의 그림을 내건 전시회 개막과 함께 공식 오픈했다. 그해 말 코코란의 컬렉션은 300점 이상으로 늘었다. 코코란은 자신의 갤러리를 이사회에 위탁하면서 일주일에 이틀은 일반 시민들에게 무료 개방하도록 지시했다. 나머지 5일은 미술관 관리와 소장품 보존에 필요한 최소 경비 명목으로 요금을 책정하여 받도록 했다. 이 때문에 연중 무료로 개방하는 대부분의 워싱턴 미술관과 달리 현재 10달러(성인 기준)의 입장료를 받고 있다.
코코란은 무명작가들에 관심을 둔 던컨 필립스(필립스 컬렉션 설립자)와는 대조적으로 검증받은 작가들의 작품을 우선적으로 사들였다. 여기에는 미국과 유럽의 풍경화와 조각작품들이 포함됐다. 특히 코코란 갤러리의 미국 미술은 식민지 시대에서부터 20세기 현대미술에 이르기까지 미국 역사와 예술의 변천을 보여준다. 소장품은 약 1만 6천여 점에 이른다.
이들 가운데 토머스 콜의 〈출발〉은 〈귀환〉과 짝을 이루는 환상적인 분위기가 압권인 작품이다. 토머스 콜은 장엄하고 신비스러우면서 판타지풍의 풍광을 주로 그린 미국의 풍경화가이다. 유럽의 풍경화와 달리 인간의 손이 닿지 않은 야생(savage state)의 분위기가 강하다. 제국의 성립과 몰락을 그린 〈제국의 여정〉, 인생의 여정을 신비스럽게 표현한 〈인생의 항해〉 연작은 〈출발〉과 함께 미국 미술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작품들이다. 1840년 제작된 〈인생의 항해〉는 인간의 삶을 유년 시절, 청년기, 장년기, 노년기로 나누어 그린 연작이다. 그림은 1800년대 중반 미지의 세상을 향해 떠나는 한 항해자의 여정을 사실적으로 담고 있다. 4점의 연작 가운데 첫 번째 작품인 〈유년 시절〉은 싱그러운 자연과 따뜻한 햇살로 유년기의 천진난만하고 즐거운 순간을 생생하게 표현했다.
〈에덴의 정원으로부터의 추방〉과 〈제국의 여정〉 등의 연작에서 알 수 있듯이 토머스 콜은 작품을 한 시기에 완성하지 않고 시대의 변화에 따라 마무리해가는 ‘열린 회화’의 개념을 추구했다. 제국의 흥망성쇠를 화폭에 담은 〈제국의 여정〉의 경우 1833년부터 1836년까지 약 4년에 걸쳐 완성되었다. 그의 풍경화는 자연의 위대함에 압도되지 않고 순응하면서도 개척해 나가는 미국의 프론티어 정신을 보여준다.
존 싱어 사전트의 〈에듀워드 페일런 부인〉도 코코란의 알토란 같은 작품이다. 이탈리아로 이주한 미국인 부모 사이에서 태어난 그는 성장기를 유럽에서 보냈다. 파리의 예술학교에 재학 중이던 사전트는 유명 초상화가 찰스 에밀리 어거스트 듀란드에게서 교육을 받았다. 찰스 듀란드는 사전트를 미래의 초상화 고객들에게 소개하기도 했다. 이들 가운데 시인이자 극작가인 에듀워드 페일런의 부인 마리 브로 페일런을 만났다. 에듀워드 페일런은 사전트에게 자신의 초상화를 그려 달라고 부탁했다. 자신의 초상화에 만족한 에듀워드 페일런은 이듬해 사전트를 자신의 사보이 별장으로 초대해 아내의 초상화도 의뢰했다. 이 초상화는 사전트를 단번에 스타 화가의 반열에 올려놓는 계기가 되었다.
선정적이라는 이유로 유럽 사회에서 큰 화제가 된 사전트의 대표작 〈마담 X〉는 페일런 부인의 초상화로부터 잉태됐다. 이외에도 사전트의 〈마가레트 루더퍼드 화이트 부인의 초상화〉도 코코란의 빼놓을 수 없는 마스코트이다.
앤디 워홀의 〈마오쩌둥〉, 리처드 디베콘의 〈오션 파크 #83〉, 제이콥 로렌스의 〈1920년대··· 투표하는 이주민들〉, 2세대 추상표현주의 화가 조안 미첼의 〈셜루트 톰〉도 만날 수 있다. 이와 함께 에드가 드가의 〈발레 수업〉, 18세기 로코코미술 화가인 프랑스 엘리자베스 비제 르브룅의 〈뒤바리 부인의 초상화〉 등 유럽 작가들의 작품도 상당수 소장하고 있다.
코코란 갤러리는 새로운 시각으로 삶과 예술을 조명하는 다수의 굵직한 기획전으로 미술계의 주목을 받았다. 대표적인 전시회가 ‘예술사를 통해 본 미국의 진화’(2008)와 ‘모더니즘-새로운 세계를 디자인하다’(2007), ‘존 싱어 사전트-초상화와 모델’(2006) 등이다.
- 1~2‘모더니즘-새로운 세계를 디자인하다’(2007) 전시
작지만 강한 미술관
코코란 갤러리의 또 다른 자산은 코코란 예술학교이다. 코코란 갤러리는 개관과 동시에 미술학도들로부터 큰 관심을 받았다. 이들은 미국과 유럽 거장들의 작품들을 모사하거나 연구하기 위해 코코란 갤러리를 자주 찾았다. 이에 1877년 워싱턴 D.C.에서 재능이 뛰어난 작가로 이름을 떨친 화가 E. F 앤드류는 미술관을 찾은 학생들에게 무료로 회화와 드로잉을 지도하겠다고 공식 제안을 했다.
이듬해 윌리엄 코코란은 갤러리와 연계된 디자인 스쿨을 설립하는 데 도움을 주기 위해 기금을 내놓았다. 하지만 예기치 않은 문제가 발생했다. 수많은 학생이 무료 수업을 듣기 위해 미술관으로 모여들면서 정작 일반 관람객들이 작품을 감상하는 데 불편함이 생긴 것이다. 학생들의 수업을 위한 전용 공간의 필요성을 절감한 코코란은 1889년 미술관 뒤편에 작은 건물을 건립하도록 기금을 기증했다. 마침내 1890년 두 명의 교사와 40명의 학생으로 구성된 코코란 예술학교가 정식 개교하기에 이르렀다.
20세기 초 코코란 예술학교는 급속히 성장하기 시작했으며, 1930년대 말 지역 사회를 대상으로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등 활동 영역을 넓혀 나갔다.
정규 수업 이외에 매주 토요일 지역 청소년들을 위한 예술 수업을 비롯하여 서머 스쿨, 도자기, 상업 미술, 도서관 운영 등 지역민들을 위한 예술 센터로서 역할을 하였다. 1978년 개교 이후 첫 번째 학사 졸업생을 배출한 코코란 예술학교는 1980년대 들어 정규 교육기관으로 인가를 받았고, 오늘날 워싱턴 D.C.의 유일한 4년제 순수예술 학교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현재 순수회화뿐 아니라 그래픽 디자인, 사진과 포토저널리즘 등에서 매년 수백 명의 졸업생을 배출하고 있다.
워싱턴 D.C.는 한 집 건너 미술관이라고 할 정도로 미술관이 많다. 이 때문에 스미스소니언이나 워싱턴 국립미술관처럼 대형 미술관이 아닌 작은 미술관들은 고유한 색깔이 없으면 살아남기 힘들다. 거의 모든 미술관이 무료 입장인 상황에서는 더욱 그렇다. 코코란 갤러리와 필립스 컬렉션을 둘러보면서 이 같은 생각은 더욱 확고해졌다. 게다가 이들 미술관은 관람객들에게 당당히 입장료를 받고 있었다. 수십만 점의 방대한 컬렉션을 갖고 있지 않더라도 그 미술관만의 차별된 볼거리와 분위기만 있다면 얼마든지 경쟁력이 있음을 코코란 미술관은 입증한다. 작지만 강한 미술관, 코코란 갤러리에 딱 어울리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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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관은 다른나라의 역사와 정치, 문화를 들여다 볼 수 있다고 한다. 현대 문화예술의 메카인 미국 전역에 있는 미술관 27곳의 탄생 배경과 전통, 변천 과정, 건축 구..펼쳐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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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um백과] 코코란 갤러리 – 처음 만나는 미국 미술관, 박진현, 예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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