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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미술
미국 최초로 예술 콘셉트를 도입한 미술관

에버슨 미술관

Everson Museum of Art
요약 테이블
위치 401 Harrison Street Syracuse, NY 13202
휴관일 월요일
이용 시간 화~금요일, 일요일(12:00~17:00) / 토요일(10:00~17:00)

세계 최대 규모의 비디오 컬렉션

에버슨 미술관은 시러큐스 시민들의 문화 사랑방이다. 2006년 겨울, 시러큐스 다운타운에서의 일화는 에버슨 미술관이 시민들에게 어떤 의미인지 잘 보여주었다. 거리에서 만난 60대 아저씨 제프는 에버슨 미술관으로 가는 길을 묻는 내게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며 활짝 웃었다. 자신은 일 년에 평균 세 번 정도 에버슨 미술관을 찾는다면서, “이 정도는 아주 부끄러운 수준입니다” 하고 말했다. 이어서 “에버슨은 미국에서 최초로 미술관의 계단을 조각가의 작품으로 설계하여 예술적 개념을 살린 미술관이죠”라고 말하며 그동안 지역 사회에 큰 화제를 모았던 전시들을 기억해냈다. 비록 잠깐 동안의 대화였지만 그를 통해 에버슨 미술관이 지역민들에게 얼마나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지 알 수 있었다.

시러큐스 시민들이 가장 아끼는 공간인 에버슨 미술관 전경

ⓒ Daquella manera | CC BY

미국 뉴욕 주의 심장부에 위치한 시러큐스는 인구 15만 명의 중소 도시이다. 지리적인 특성상 미 동부의 교통 중심지일 뿐 아니라 명문 시러큐스 대학이 있는 교육의 도시이다. 그 중에서도 시러큐스 중심가에 자리하고 있는 에버슨 미술관은 단연 돋보이는 문화 공간이다. 시러큐스 시민들은 물론 앨버니와 뉴욕, 버펄로 등 인근 도시에서 원정 관람을 올 정도이다. 연평균 관람객만도 20여 만 명 안팎이다.

미국인들이 에버슨 미술관을 찾는 이유는 ‘작지만 강한 미술관’의 면모를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뉴욕의 메트로폴리탄, 구겐하임, 휘트니 등 이른바 ‘슈퍼 미술관’들과 비교할 수 없다. 하지만 여느 미술관에서는 볼 수 없는 경쟁력 있는 자산을 두루 보유하고 있다.

우선 에버슨 미술관은 이들 슈퍼 미술관에 비해 오랜 역사를 자랑한다. 1897년 미술사가인 조지 F. 컴포트에 의해 설립된 미술관은 2009년 개관 112주년을 맞았다. 미술관 창시자인 컴포트는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건립에도 큰 공헌을 한 인물이다.

‘시러큐스 순수예술 미술관(Syracuse Museum of Fine Arts)’으로 출발한 미술관은 1941년 시러큐스 시에 컬렉션을 기증한 헬렌 에버슨 여사의 이름을 따 에버슨 미술관으로 이름을 바꿨다. 그로부터 20여 년이 지난 1968년, 에버슨 미술관은 세계적인 건축가 I. M. 페이의 설계로 경쟁력 있는 미술관으로 새롭게 태어났다.

에버슨 미술관은 세계적인 건축가 I. M. 페이가 설계했다.

ⓒ 예담 | 저작권자의 허가 없이 사용할 수 없습니다.

에버슨 미술관이 ‘예술적인 콘셉트를 도입한 미국 최초의 미술관’이란 명성을 얻은 것은 순전히 페이의 설계 때문이다. 미술관의 특성을 살려 1층과 2층을 연결하는 계단을 로사먼드 지포드의 작품으로 설계했다. 당시 이 같은 예술 건축의 면모를 보여준 미술관은 없었다. 이름하여 ‘에버슨 프로젝트’로 유명세를 탄 페이는 일약 스타로 떠올랐다. 미술계에 입소문이 퍼지면서 여러 미술관으로부터 설계 의뢰를 받았다. 이후 1993년 파리 루브르 박물관 리모델링 프로젝트를 맡으면서 당당히 세계적인 건축가 대열에 올랐다. ‘페이가 설계한 최초의 미술관’이라는 이유만으로도 에버슨은 건축학도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에버슨 미술관 내부 계단은 조각가 로사먼드 지포드의 작품으로 제작했다.

ⓒ 에버슨 미술관 | 저작권자의 허가 없이 사용할 수 없습니다.

에버슨 미술관

ⓒ 예담 | 저작권자의 허가 없이 사용할 수 없습니다.

길버트 스튜어트, 워싱턴을 길들이다

에버슨 미술관은 회화, 조각, 도자, 비디오, 사진 등 총 1만 1천여 점을 소장하고 있다. 특히 초창기 페르난도 카터 관장의 방침에 따라 미술관은 식민지 시대부터 21세기까지 미국 작가들의 회화, 조각, 드로잉, 그래픽 등 다양한 컬렉션을 소장하고 있다. 이 중 길버트 스튜어트의 〈조지 워싱턴 초상화〉, 에드워드 힉의 〈평화로운 왕국〉, 샌포드 로빈슨 지포드의 〈뉴욕만의 일몰〉, 이스트맨 존슨의 〈옥수수껍질 벗기기〉 등이 대표작이다.

이스트맨 존슨 〈옥수수껍질 벗기기〉

1860, 캔버스에 유화, 67.31cm×76.84cm

ⓒ 예담 | 저작권자의 허가 없이 사용할 수 없습니다.

샌포드 로빈슨 지포드 〈뉴욕 만의 일몰〉

1878, 캔버스에 유화, 21×33cm

ⓒ 예담 | 저작권자의 허가 없이 사용할 수 없습니다.

에드워드 힉 〈평화로운 왕국〉

1834, 캔버스에 유화, 76.2×90.2cm

ⓒ 예담 | 저작권자의 허가 없이 사용할 수 없습니다.

이들 작품 가운데 길버트 스튜어트의 〈조지 워싱턴 초상화〉는 백미다. 스튜어트는 작가로 활동하면서 사회 저명인사들의 초상화 1천여 점을 그렸다. 그 중에는 미국 초대 대통령인 조지 워싱턴을 비롯해 존 애덤스, 토머스 제퍼슨, 제임스 메디슨, 제임스 먼로 대통령도 포함되었다. 스튜어트는 모델의 표정과 포즈, 의상 색상과 스타일을 자신의 해석에 따라 자유자재로 연출하면서도 최대한 모델의 인성이 배어나도록 실제 모습과 유사하게 그려내는 능력이 탁월했다.

길버트 스튜어트는 그의 재능을 높이 산 연방 대법관 존 제이의 소개로 1795년 조지 워싱턴의 초상화를 그리는 영광을 얻었다. 하지만 스튜어트는 자신이 그린 초상화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당사자인 워싱턴 대통령은 물론 많은 사람이 그가 그린 초상화에 찬사를 보냈지만, 정작 스튜어트는 만족하지 못했다. 이듬해인 1796년 조지 워싱턴 대통령 부인 마사는 스튜어트에게 남편과 자신의 초상화를 의뢰했다. 퇴임 후 마운트 버넌 저택에 걸어놓기 위해서였다.

첫 번째 초상화가 마음에 들지 않았던 스튜어트는 심혈을 기울여 두 번째 초상화를 그리기 시작했다. 정성을 기울인 덕분인지 두 번째 작품은 만족스러웠다. 마무리 단계에 이르자 스튜어트는 자신이 소장하고 싶은 욕심이 생겼다. 초상화가 완성되면 마사에게 보내기로 약속했던 그는 차일피일 시간을 끌었다. 마사에게는 아직 작품이 완성되지 않았다고 둘러댔다. 1828년 스튜어트가 세상을 떠날 때까지 두 번째 초상화는 미완성 상태였다. 스튜어트가 세상을 떠난 뒤 마사와 조지 워싱턴의 초상화는 보스턴의 아테네움 도서관이 구입했다. 미완성의 워싱턴 초상화가 〈아테네움의 지성〉으로 불리게 된 사연이다. 〈아테네움의 지성〉으로 알려진 워싱턴 초상화는 현재 미국 1달러 화폐에 그려져 있다.

길버트 스튜어트 〈아테네움의 지성〉

1796, 캔버스에 유화, 121.9×94cm, 워싱턴 국립 초상화 갤러리 · 보스턴 미술관 공동 소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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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초상화를 그릴 당시 조지 워싱턴 대통령은 치주염과 충치 때문에 차분히 오래 앉아 있기 힘들었다. 1781년 독립전쟁이 끝났을 때 워싱턴 대통령은 이를 철사로 묶어 간신히 붙들어 매고 있는 상태였다. 의치는 납과 합금으로 만든 것이어서 무게가 100그램에 가까웠다. 잔돈을 입속에 잔뜩 넣고 있는 부자연스러운 모습이었던 셈이다. 실제로 워싱턴의 입은 코 보다도 더 많이 튀어나온 상태였다고 한다. 그러니 길버트 스튜어트의 고민이 심각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틀니를 넣고 그리자니 입이 너무 튀어 나오고, 틀니를 빼고 그리자니 입이 너무 함몰되어 보였기 때문이다. 결국 스튜어트가 선택한 방법은 입안에 적당한 양의 솜을 넣고 그리는 것이었다. 화가의 의도대로 왜곡한 초상화는 온화하면서도 기품 있는 이미지로 극찬받으면서 스튜어트를 세계 미술사의 한 장을 장식한 18세기 후반 최고의 초상화가로 만들었다. 초상화가로서의 천재성을 보여준 일화이다.

미국 대통령의 전용 초상화가로 이름을 날린 그는 1805년 보스턴에 정착한 뒤 록스버리 스튜디오를 차렸다. 20세기 앤디 워홀이 팩토리에서 작품을 찍어낸 것처럼, 스튜어트 또한 스튜디오에서 미국 저명인사들의 의뢰를 받아 초상화를 본격적으로 그린 것이다. 특히 당시 전설이 된 〈아테네움의 지성〉을 복사하는 초상화를 많이 그렸다. 에버슨 미술관의 〈조지 워싱턴 초상화〉 역시 레플리카(replica, 그림이나 조각작품에서 원작자가 손수 만든 사본) 가운데 하나로 1805년에서 1815년 사이에 제작된 것이다. 격식에 얽매이지 않고 붓을 많이 사용한 온화한 필치는 18세기 말 런던에서 유행한 방식으로 이후 미국 초상화가들의 교본이 됐다.

길버트 스튜어트 〈스케이터〉

윌리엄 그랜트 초상화, 1782, 245.5×147.4cm, 앤드류 멜론 컬렉션 소장

ⓒ 예담 | 저작권자의 허가 없이 사용할 수 없습니다.

이와 함께 에버슨 미술관에는 신디 셔먼, 필립 거스통, 말콤 몰리, 쟝 미셀 바스키야 등의 작품이 다수 포함돼 있다. 알렉산더 아키펭코, 비벌리 페퍼, 클래스 올덴버그, 조지 시갈, 마리 프랑크 등 거장들의 조각 작품은 관람객들을 끌어들이는 화려한 볼거리이다.

에버슨 미술관의 또 다른 매력은 3천여 점에 달하는 도자 컬렉션이다. 고대 이집트부터 21세기 미국의 도자에 이르는 컬렉션은 경쟁력을 자랑한다. 특히 이 도자 컬렉션에는 우리나라 신라시대의 자기부터 일본, 중국 등 아시아 작품도 상당수 있다.

    • 1~3세계적인 경쟁력을 자랑하는 도자 컬렉션

      고대 이집트부터 우리나라 신라시대 자기, 아시아, 아프리카 등 전 세계 작품을 소장하고 있다.

미술관의 풍부한 비디오 컬렉션도 자랑거리이다. 특히 에버슨 미술관은 미국에서는 처음으로 비디오 예술 컬렉션 전문 부서를 신설했다. 그 결과 세계 최대 규모의 비디오 컬렉션을 보유하고 있다. 세계적 비디오 아티스트 빌 비올라가 대학 졸업 후 처음으로 일했던 곳이기도 한 에버슨 미술관은 그녀의 영향으로 비디오 작가들의 작품을 수집하는 데 앞장섰다. 한국이 낳은 비디오 아티스트 백남준도 비올라의 주선으로 이곳에서 ‘백남준 : 비디안 비디올리지’를 열었다. 이 전시회를 계기로 백남준은 미국에서 입지를 확고히 하였다.

지역과 예술을 잇는 문화 메신저

지역 사회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는 점도 에버슨 미술관의 경쟁력이다. 미술관은 초 · 중 · 고 학생들은 물론 유아, 성인, 지역 작가, 노인 등 다양한 계층의 시민들을 미술관으로 끌어들이며 교육 기관으로서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패밀리 프로그램으로는 미술 수업, 여름 예술 캠프, 가족 워크숍, 가족 관람 투어, 어린이 인터렉티브 갤러리 등을 꼽을 수 있다. 미술 교사들을 대상으로 한 워크숍과 연수 프로그램은 물론 DVD, 미술 서적, 교육 게임 등 다양한 교육 자료들을 일선 학교에 제공하기도 한다. 특히 시러큐스 고등학교의 학생들을 전시회 기획에 끌어들인 ‘열린 미술 : 예술, 물건 그리고 교환’은 미술관과 학교의 파트너십을 보여주는 모범적인 프로젝트이다.

지역 사회와 연계해 기획한 ‘열린 미술 : 예술, 물건 그리고 교환’ 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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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진현 집필자 소개

전남대 신문방송학과 및 동대학원 졸업을 졸업하고 광주일보 문화부장, 논설위원을 거쳤다. 현재 편집부국장 겸 문화선임기자로 재직 중이다. 지난 25년 동안 미술분야와 광주비엔날레, 아시아 문화중심..펼쳐보기

출처

처음 만나는 미국 미술관
처음 만나는 미국 미술관 | 저자박진현 | cp명예담 도서 소개

미술관은 다른나라의 역사와 정치, 문화를 들여다 볼 수 있다고 한다. 현대 문화예술의 메카인 미국 전역에 있는 미술관 27곳의 탄생 배경과 전통, 변천 과정, 건축 구..펼쳐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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