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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자연에는 이
야기가 있다

얼룩말의 줄무늬와 치타의 눈에는 이유가 있다

얼룩말의 얼룩무늬가 어떻게 출현했는지는 과학계의 오랜 논쟁거리이다. 다윈과 같은 시기에 자연선택 이론을 발견한 앨프리드 월러스(Alfred Wallace)는 “얼룩말이 물 먹으러 가는 어스름에 보면 얼룩무늬가 오히려 위장 효과를 낸다”라고 주장했고, 다윈은 “눈에 잘 띌 뿐”이라며 그 이론을 일축했다. 호랑이 가죽이나 군복 무늬처럼 윤곽을 흐리게 해 위장 효과를 낸다는, 월러스와 비슷한 주장도 있다. 또 검은 무늬는 쉽게 더워져 공기를 상승시키고 상승한 공기가 흰 무늬 부위로 이동하면서 작은 소용돌이가 일어나 체온조절에 도움이 된다는 기발한 가설도 있다. 그밖에 체체파리나 사자의 눈에는 오히려 잘 보이지 않는다거나, 반대로 눈에 잘 띄어 무리를 쉽게 찾도록 해준다는 설명도 있다.

최근 여기에 새로운 가설 하나가 추가됐는데, 이 가설은 실험으로 입증됐다는 점이 두드러진다. 얼룩말의 얼룩무늬가 피를 빠는 말파리(쇠등에)를 피하기 위한 진화의 결과라는 것이다. 헝가리와 스웨덴 연구진은 얼룩말의 좁은 줄무늬가 말파리의 눈길을 끌지 않는 무늬라는 사실을 밝혀냈다. 연구진은 먼저 검은색과 갈색, 그리고 흰색 말을 대상으로 반사되는 빛의 특성을 살펴봤다. 그랬더니 검정과 갈색 등 짙은 색의 가죽에서 반사하는 빛은 수평 편광으로 나타났다. 빛이 수평면으로만 퍼져나간다는 것인데, 물 표면이 빛을 반사하는 방식을 생각하면 된다. 그런데 수평 편광은 말파리가 아주 좋아하는 빛이다. 왜냐하면 말파리는 물에서 짝짓기를 하고 알을 낳기 때문이다. 반대로 흰색 모피는 편광이 아닌 모든 방향으로 빛을 반사했는데, 말파리가 훨씬 덜 꼬였다.

그렇다면 얼룩말은 검은 말과 흰 말의 중간쯤으로 말파리를 끌어들일 것으로 예상되었다. 연구진은 헝가리의 한 말 목장에서 실제 말 크기의 모형에 검은색, 흰색, 밤색, 여러 가지 간격의 줄무늬 등을 그려 넣고 끈끈이를 붙여 말파리가 얼마나 들러붙는가를 조사했다. 스티커를 이용한 길거리 여론조사 비슷한 실험이었는데 결과는 놀라웠다. 이틀 동안의 실험에서 검은색 모형에 562마리의 말파리가 붙은 데 비해 갈색엔 334마리, 흰색엔 22마리, 그리고 얼룩무늬엔 8마리만이 붙었다. 얼룩무늬가 가장 적은 수의 말파리를 불러들인 것이다. 또 줄무늬의 폭이 좁을수록 해충이 덜 꼬이며, 모형이 아닌 실제 얼룩말의 무늬가 말파리 눈에 가장 덜 띄는 것으로 밝혀졌다.

흡혈곤충에 어떻게 대응하느냐는 아프리카 동물에게 아주 중요한 일이다. 가죽의 줄무늬가 그런 점에서 유리하다면 당연히 그런 쪽으로 자연선택이 이뤄졌을 것이다. 얼룩무늬가 있는 개체가 그렇지 않은 개체를 진화경쟁에서 물리쳤다는 뜻이다. 하지만 아프리카에서 말파리의 분포가 제한적이고, 다른 아프리카 동물들은 얼룩무늬를 진화시키지 않은 점 등은 ‘말파리 가설’의 허점이다. 얼룩말 논쟁이 앞으로도 계속되리라고 전망되는 이유이다.

얼룩말의 줄무늬는 피를 빠는 말파리의 눈길을 끌지 않는 무늬이다.

ⓒ Arthur Chapman, Wikimedia Commons | 저작권자의 허가 없이 사용할 수 없습니다.

참고로 얼룩말의 줄무늬를 둘러싼 또 하나의 오랜 논쟁, 곧 흰 바탕에 검은 줄이 난 것인지 아니면 검은 바탕에 흰 줄이 난 것인지에 대해서는 이미 후자가 옳은 것으로 논쟁이 마무리됐다. 얼룩말의 태아는 검은 피부를 가졌으며 출산 전에 흰 줄이 발현된다. 유전적으로 검은색을 나타내는 스위치는 항상 켜져 있으며 흰색이 되려면 스위치를 꺼야 한다. 이는 검은색이 정상상태이며, 말들의 조상은 짙은 빛이었음을 암시한다.

한편 아프리카 초원에서 얼룩말 못지않게 돋보이는 동물로 치타가 있다. 달리기 선수답게 늘씬한 몸매와 커다란 눈매가 어딘가 연약해 보이는 포식동물이다. 치타는 매와 함께 세계에서 가장 빠른 동물인데, 이들의 모습을 떠올리면 큰 눈이 공통적이다. 동작이 굼뜬 키위나 펭귄은 눈이 작은 편이다. 그렇다면 동물의 속도와 눈의 크기 사이엔 어떤 관련이 있지 않을까. 일찍이 과학자들은 그런 상관성을 눈치챘다. 빨리 달리는 동물일수록 큰 눈을 가진다는 것이다. 빠른 속도를 내는 동물은 뛰어난 시력을 가질 수밖에 없다. 장애물을 피하지 못하면 치명적인 충돌 사고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눈이 커지면 수정체의 초점거리가 길어지고 어두운 곳에서도 빛을 많이 받아들이기 때문에 예민하고 날카로운 시력을 가질 수 있다. 이 법칙에 비춰보면 빠른 속도로 이동하는 새들이 육상동물보다 몸집에 견줘 큰 눈을 지녔음을 알 수 있다. 시속 320킬로미터의 속도로 먹이를 향해 내리꽂는 매는 천진해 보이는 큰 눈을 지녔다.

치타는 체중이 가벼우면서도 커다란 눈을 가진 대표적인 육상동물이다.

ⓒ Marcus T. Jaschen, Wikimedia Commons | 저작권자의 허가 없이 사용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속도가 빠를수록 눈이 커진다는 법칙이 육상의 포유류 사이에서도 적용될까. 미국 과학자들이 포유류 50종을 대상으로 이 법칙이 맞는지를 조사했다. 일반적으로 포유류의 눈 크기는 속도보다는 몸과 머리의 크기, 행동방식, 먹이 등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었다. 연구자들은 동물 종의 체중, 눈의 크기(안구의 직경), 최대 주행속도의 상관관계를 알아봤다. 얼굴이 클수록, 곧 몸집이 클수록 눈도 크기 마련이다. 눈의 크기는 아프리카코끼리가 39.6밀리미터, 얼룩말이 41.5밀리미터, 기린이 42밀리미터, 대형 영양인 일런드가 47.7밀리미터 등으로 큰 동물이 ‘왕눈’을 가졌음이 확인된다. 하지만 체중이 가벼우면서도 커다란 눈을 가진 대표적인 동물이 육상 최고의 스프린터인 치타이다. 시속 110킬로미터로 달리는 치타는 몸무게가 55킬로그램에 지나지 않지만 눈의 크기는 36.7밀리미터로 체중이 3~4배 무거운 사자나 호랑이와 비슷하다.

영장류 가운데는 파타스원숭이가 24.9밀리미터로 눈의 크기가 가장 컸는데 이는 체중이 25배 무거운 고릴라와 비슷하다. 파타스원숭이는 원숭이 가운데 가장 빠른 종으로 알려져 있다. 사람의 눈 크기는 23.3밀리미터로 비슷한 몸집의 다른 동물에 비해 상당히 큰 편이다. 늑대의 눈 크기인 22.5밀리미터와 견줄 만한데, 늑대는 최대 속도가 64킬로미터나 된다. 사람은 단거리 선수가 시속 36.7킬로미터로 달리니, 큰 눈을 가진 동물치고는 느린 편이다. 사실 사람은 단거리 질주가 아니라 지구력 있는 장거리 달리기로 주로 사냥을 했고, 오래 달릴 때 속력은 시속 9~23킬로미터에 지나지 않는다. 그런데도 사람이 큰 눈을 진화시킨 것은 다른 사람 얼굴의 미묘한 표정변화를 알아채는 사회적 소통이 훨씬 중요했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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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 ・ Adam Egri et al., “Polarotactic tabanids find striped patterns with brightness and/or polarization modulation least attractive: An advantage of zebra stripes”, Journal of Experimental Biology, vol. 215(2012), pp. 736~745.
  • ・ Amber N. Heard-Booth & E. Christopher Kirk, “The influence of maximum running speed on eye size: A test of leuckart’s law in mammals”, The Anatomical Record, vol. 295, no. 6(2012), pp. 1053~1562. DOI: 10.1002/ar.22480

조홍섭 집필자 소개

환경과 과학 분야에서 30년 가까이 통찰력과 이슈가 있는 기사와 칼럼을 써온 우리나라 환경전문기자 1세대이다. 생태보전, 원자력발전, 4대강 개발 등 1980년대 이 후 급부상하는 환경 현안들을..펼쳐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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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에는 이야기가 있다
자연에는 이야기가 있다 | 저자조홍섭 | cp명김영사 도서 소개

동물행동, 생태학부터 진화론, 동물복지, 자연사까지 기초자연과학과 첨단응용과학을 넘나들며 펼치는 흥미롭고 감동적인 생명들의 이야기. 살아 있는 그 모든 것들이 펼쳐내는..펼쳐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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