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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생동물로 인한 피해에 골머리를 앓는 농민들은 포식동물을 활용하는 묘안을 짜내곤 한다. 호랑이의 배설물이나 녹음된 포효 소리로 멧돼지를 쫓는 시도는 우리나라에서도 잘 알려진 예이다. 하지만 이런 방법은 자극에 익숙해진 야생동물이 실제로 천적이 없다는 사실을 간파하는 순간 효력을 잃는다.

아프리카에서 농민과 코끼리 사이의 갈등은 훨씬 심각하다. 1970~1980년대 동안 상아를 채취하기 위한 밀렵으로 아프리카코끼리는 멸종위기에 몰렸지만 국제적인 상아거래 규제와 단속 덕분에 최근에는 개체수가 부쩍 늘어났다. 그러나 코끼리가 많이 늘어난 아프리카 동부와 남부에서 옛 이동 경로를 지나는 코끼리 무리가 영양가 풍부한 농작물을 탐내기 시작하자, 이를 막는 농민과 충돌이 일어나 사람과 코끼리 양쪽에서 죽거나 부상당하는 사태가 잇따르고 있다.

이런 갈등을 끝내고 코끼리와 농민이 상생할 해법이 나왔다. 케냐의 코끼리보호단체 ‘코끼리를 지키자(Save the Elephant)’에서 일하는 영국 생물학자 루시 킹(Lucy King) 박사는 아프리카코끼리가 꿀벌 벌통이 달린 아카시아나무는 벌통에 꿀벌이 있건 비었건 간에 피한다는 연구결과에 주목했다. 코끼리는 생쥐를 무서워한다는 속설이 있지만, 실은 더 작은 동물을 겁내는 것이다. 실제로 킹 박사의 연구를 보면, 코끼리는 벌들이 내는 ‘붕붕’ 소리를 듣기만 해도 줄행랑을 치는데, 달리면서 동료에게 저주파 경고음까지 낸다. 코끼리는 두꺼운 피부를 지녔지만 눈, 코 뒤, 귀 밑 등이 취약해 벌에게 그런 부위를 쏘일까 전전긍긍한다.

문제는 꿀벌 소리만으론 곧 익숙해질 코끼리를 막을 수 없다는 것이다. 코끼리가 자주 침범하는 농경지와 마을 둘레에 10미터 간격으로 꿀벌 벌통을 설치하고 벌통끼리 줄로 연결하는 ‘벌통 울타리’를 고안했다. 코끼리가 줄을 건드리면 벌통이 흔들리면서 성난 꿀벌들이 쏟아져나오도록 한 것이다. 지난 2년 동안 케냐의 17개 마을에서 현장실험을 한 결과 아프리카코끼리가 침범한 사례 90건 가운데 6건을 빼고는 모두 벌통 울타리가 효과를 거두었다.

케냐의 가난한 농민들은 농작물을 지키기 위해 주변에 고춧가루 뿌리기, 가시덤불 설치, 횃불 켜고 지키기, 냄비 두드리기 등 온갖 수단을 다 동원한다. 코끼리를 쫓는 과정에서도 해마다 수십 명의 사망자가 발생하고, 그만한 숫자의 코끼리도 창에 찔리고 총에 맞아 죽거나 부상을 당한다. 케냐의 아프리카코끼리는 1980년대 국제적인 보호조처 이후 곱절로 늘었지만 인구는 더 빠른 속도로 늘어 사람과의 충돌이 갈수록 심각한 양상을 띠어왔다. 하지만 이제 가난한 농민은 꿀벌 울타리를 침으로써 코끼리를 쫓을 수 있게 됐을 뿐 아니라, 꿀과 밀랍을 팔아 추가소득을 올리고 농작물의 가루받이도 돕는 부수효과도 거두고 있다. 물론 코끼리는 안전하게 이동하는 혜택을 입는다.

킹 박사의 이런 노력은 국제기구로부터 인정을 받았다. 유엔환경계획(UNEP)은 장거리이동야생동물 보전협약과 함께 킹 박사에게 3년마다 뛰어난 보전생물학 박사학위 논문을 쓴 사람에게 수여하는 상을 주었다. 킹 박사는 영국 옥스퍼드 대학에서 이 주제로 학위 논문을 썼다. 아힘 슈타이너(Achim Steiner) 유엔환경계획 사무총장은 “킹 박사의 연구는 자연과 맞서는 것이 아니라 함께 일함으로써, 자연이 여러 나라와 공동체가 직면한 수많은 문제에 해결책을 제공해줄 수 있음을 잘 보여준다”고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