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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가 가득 들어찬 외국의 숲 모습이 낯설던 때가 있었다. 우리나라는 1950년대만 해도 난방과 취사 등에 필요한 에너지의 대부분을 나무를 태워 얻었고, 1960년대에도 그 비중은 절반을 넘었다. 산에 나무가 자랄 틈도 없이 베어 썼다. 그러나 1973년 본격적으로 산림녹화를 시작한 지 40년 만에 숲 속 나무의 양은 10배로 늘었다. 우거진 숲은 물을 많이 머금고 토양침식을 막으며 이산화탄소를 흡수할 뿐 아니라 생물이 깃들고 사람이 즐길 공간을 제공한다. 숲의 공익기능은 연간 110조 원이 넘는다고 산림청은 주장한다. 그러나 얻는 것이 있으면 잃는 것도 있는 법, 숲이 울창해지면 사라지는 생물도 있다. 그들은 숲이 훼손될 때 비로소 돌아온다.

국립산림과학원 산림생태연구과 권태성 박사팀은 2007년 4월 1,000헥타르의 숲을 태운 울진 산불 직후부터 5년 동안 산불 피해 지역에서 다달이 출현하는 나비를 조사했다. 산불 지역에서 나비의 애벌레는 모두 불에 타 죽었지만 인근 숲에서 나비들이 날아들었다. 산불이 난 이듬해 흥미로운 현상이 나타났다. 숲이 빽빽하게 들어서면서 자취를 감췄던 초지성 나비들이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애벌레가 제비꽃이나 억새의 잎을 먹고 자라는 왕은점표범나비, 지리산팔랑나비, 큰흰줄표범나비, 파리팔랑나비, 흰줄표범나비 등이었다. 권태성 박사는 “나비는 다양한 식물을 먹고 여러 차례 발생하는 일반종과 특정한 식물만 먹고 한 번 발생하는 특수종으로 나눌 수 있는데, 숲이 울창해지면 특수종이 줄어든다”고 말했다. 그는 또 “우리나라는 산림녹화의 성공과 지구온난화 때문에 특히 북방계 초지성 나비가 현저히 줄어들고 있는데, 대규모 산불로 큰 초지가 형성되자 이들이 나타나게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멸종위기종으로 지정된 왕은점표범나비는 그런 대표적인 예이다. 이 나비는 울진 산불 지역에서 산불 이듬해부터 몇 마리씩 출현하기 시작했다. 왕은점표범나비는 티베트 동부, 중국, 러시아 극동의 우수리와 아무르, 한국, 일본 등에서 볼 수 있는 동아시아 고유종인데, 최근 주 분포지인 한국과 일본에서 급격히 감소해 종 보존에 빨간불이 켜진 상태이다. 일본에선 이 나비의 채집이 거의 불가능해 나비 애호가들 사이에선 ‘꿈의 나비’라고 불린다. 왕은점표범나비는 1938년부터 1996년까지 3차례에 걸친 조사에서 모두 전국적으로 널리 분포하는 것으로 돼 있다. 그러나 2007년부터 2010년까지 4년 동안 전국 395곳에서 이뤄진 조사에서 이 나비가 발견된 곳은 강원도 계방산과 경북 울진 두 곳밖에 없었다.

그런데 서식지인 계방산과 울진의 고산 초지에서 온종일 다녀봐야 몇 마리 볼 수 없는 왕은점표범나비를 하루에 수백 마리까지 관찰할 수 있는 곳이 있다. 한때 핵폐기장 건설 후보지로 논란이 벌어졌던 서해의 섬 굴업도가 그곳이다. 인천시 옹진군 덕적면에 속하는 굴업도는 인천에서 90킬로미터 떨어진 면적 1.71제곱킬로미터의 작은 섬이지만, 최근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해식와(海蝕窪, 바다의 염분으로 움푹 파인 지형)와 사구, 사빈 등 다양한 해안 퇴적 및 침식 지형을 간직하고 있으며 구렁이, 매, 흑두루미 등 다수의 희귀동물이 서식하는 곳이기도 하다. 특히 섬 서쪽 개머리초지는 왕은점표범나비의 국내 최대 서식지로 학계가 주목하고 있다. 동아시아환경생물연구소 김성수 소장 등 연구진은 2011년 〈한국응용곤충학회지〉에 실린 논문에서 왕은점표범나비가 굴업도 전체 나비 개체수의 32퍼센트를 차지한다고 밝혔다. 연구진이 추정한 이 나비의 개체수는 약 1,000마리이며, 유충은 4,000~7,000마리에 이른다.

굴업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멸종위기종 왕은점표범나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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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머리초지는 1970년대까지 소를 방목해 길렀으며 현재는 방목한 흑염소와 꽃사슴이 어린나무를 뜯어먹어 초지가 숲으로 바뀌는 것을 막고 있다. 이처럼 희귀나비가 대량 서식하는 이유로 연구진은 이 초식동물들이 지속적으로 풀을 뜯어 이 나비 애벌레의 먹이인 키 작은 제비꽃이 자랄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됐고, 나비 성체가 꿀을 빠는 금방망이와 엉겅퀴가 많은 점을 들었다. 권태성 박사는 “비무장지대에서 군부대가 시야를 트기 위해 나무를 베어내는 사계청소(射界淸掃)를 한 곳에 희귀나비가 많다. 방목이나 산불 같은 교란이 있어야만 살아남을 수 있는 희귀나비를 위한 맞춤형 보전대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언론매체나 학교 교육이 우리에게 알게 모르게 주입하는 자연에 관한 일종의 신화가 있다. ‘자연이 제일 잘 안다’거나 ‘사람이 없어야 자연이 산다’는 생각이 그것이다. 그러나 자연과 문화(인간)를 구분하고 그 둘을 대립시키는 사고방식으로 결코 사람과 자연은 공존하지 못한다. 산불이 희귀나비를 불러왔는데, 산불이 좋으냐 나쁘냐 묻는 건 어리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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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 Tae-Sung Kwon et al., “Changes of butterfly communities after forest fire”, Journal of Asia-Pacific Entomology, vol. 16(2013), pp. 361~367.

조홍섭 집필자 소개

환경과 과학 분야에서 30년 가까이 통찰력과 이슈가 있는 기사와 칼럼을 써온 우리나라 환경전문기자 1세대이다. 생태보전, 원자력발전, 4대강 개발 등 1980년대 이 후 급부상하는 환경 현안들을..펼쳐보기

출처

자연에는 이야기가 있다
자연에는 이야기가 있다 | 저자조홍섭 | cp명김영사 도서 소개

동물행동, 생태학부터 진화론, 동물복지, 자연사까지 기초자연과학과 첨단응용과학을 넘나들며 펼치는 흥미롭고 감동적인 생명들의 이야기. 살아 있는 그 모든 것들이 펼쳐내는..펼쳐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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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um백과] 산불이 부른 희귀나비자연에는 이야기가 있다, 조홍섭, 김영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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