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과사전 상세 본문

출처 자연에는 이
야기가 있다

농촌보다 도시의 자연이 풍성한 까닭

19세기 초 아마존 열대우림을 처음 탐험한 알렉산더 폰 훔볼트(Alexander von Humboldt)는 자연의 경이로움에 탄복했다. 하늘을 가리는 숲과 덩굴, 나무 표면을 뒤덮은 난초와 고사리, 형형색색의 나비와 귀를 먹먹하게 만드는 벌레 소리······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처음 보는 생물종이 출현하는 이곳의 자연은 분명 풍요롭고 생산적이라고 믿었다. 열대에 관한 유럽인의 환상은 이렇게 형성됐다. 하지만 열대지역을 식민지로 만들기 위해 정착하면서 그들의 환상은 여지없이 깨졌다. 토질이 너무 나빠 도저히 농사를 지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추운 안데스 고지대에는 인디언 문화가 상당한 규모로 유지되고 있던 반면 저지대의 열대우림에선 적은 수의 원주민이 석기시대 수준의 생활을 영위하고 있었던 것이다.

몇 년 전 지리산국립공원에서 오랜 출입금지 조처가 풀릴 참이던 칠선계곡에서였다. 주민이 푸념하는 것을 들으니, 국립공원관리공단에서 단속을 엄격히 하면서 산에서 동물 보기가 힘들어졌다는 것이었다. 국립공원에서 풀 한 포기 손대지 못하게 한 뒤부터 산은 나무로 빽빽하게 우거졌지만 작은 동물부터 큰 동물까지 전에 비해 줄어들었다는 것이다. 처음엔 공단의 가혹한 규제를 나무라는 소리로 들렸지만 설명을 듣고 보니 그럴듯했다. 전에는 국립공원이라 해도 나무가 그리 많지 않았고 주민이 땔감을 위해 나뭇가지를 베어가기도 해 숲 사이로 해가 많이 들었단다. 양지에는 풀이 자라니 연한 풀을 먹으려는 초식동물이 꼬이고, 이를 노린 포식자도 왔다는 얘기였다.

비슷한 경험담을 여우 복원사업을 취재하러 들렀던 오대산 주민으로부터도 들었다. 1960년대까지만 해도 산에 여우가 많아서 마을에서도 산꼭대기로 여우가 지나다니는 모습을 보곤 했다는 것이었다. 지금이라면 아무리 여우가 많더라도 숲에 가려 눈에 띌 리가 없다. 그때는 국립공원 한가운데도 민둥산이 많았다고 주민들은 말했다. 산에 나무가 많아야 동물도 많이 살 것이라는 우리의 상식과 달리, 산을 오래 경험한 주민은 ‘숲이 너무 우거지면 동물이 없다’고 말하는 것이었다.

이런 역설이 수렵채취 시대엔 상식이었다. 북아메리카든 오스트레일리아든 원주민들은 사냥을 하기 위해 먼저 숲에 불을 질렀다. 나무가 사라진 곳에 여린 풀과 어린 나무가 돋으면 여기에 이끌려 모여든 사슴 등을 사냥하기 위해서였다. 이에 얽힌 일화가 있다. 미국 미시건 주의 허치슨 기념 숲은 유럽인이 미국 대륙에 이주한 이래 한 번도 도끼질을 당하지 않은 200~300년생 참나무가 들어찬 곳이다. 시 당국은 이처럼 멋지고 의미 있는 숲을 영구히 보존하려고 마음먹었는데, 이상하게도 이 숲 바닥에서 어린 참나무가 돋아나지 않았다. 대를 이을 참나무는커녕 단풍나무만 무성하게 돋아났다. 역사자료를 검토해보니 이곳은 애초 단풍나무숲이었는데 원주민이 사냥을 위해 주기적으로 불을 지른 결과 화재에 강한 참나무숲으로 바뀌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참나무의 나이테에는 10년마다 원주민이 불을 지른 흔적이 남아 있었다.

물론 이런 사례를 보고 생물다양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숲을 보존하기보다 교란하는 편이 낫다고 결론 내린다면 오산이다. 주민과 원주민이 숲에 가한 변화는 규모가 작고 따라서 지속가능한 개입이었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

최근 생태학자들이 주목하는 현상이 바로 도시의 생물다양성이다. 환경보전 여론이 강한 유럽, 미국, 일본 등 선진국의 도시 녹지에서 농촌보다 풍부한 생물이 발견되고 있는 것이다. 빌딩과 포장도로로 가득 차 있을 것 같은 도시에 ‘녹색 융단’이 깔린 농촌보다 더 다양한 생물이 산다는 사실은 언뜻 이해가 되지 않는다. 심지어 농촌이 아니라 자연보호구역보다도 도시의 생물이 풍부하다는 조사결과도 있다. 미국의 대도시 미니애폴리스와 인근 세다 크리크 생태계 보전지역의 식물상을 비교한 결과 도시의 정원에 더 많은 식물종이 있는 것으로 밝혀지기도 했다.

이처럼 선진국 도시의 생물다양성이 풍부한 까닭은 도시의 정원, 공원, 빈터 등이 매우 다양한 구조의 자연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이에 비해 농촌은 기계화, 단순화돼 경관이 단조로워졌다. 전통적인 농촌에서 보던 다양한 형태의 생물서식 공간이 사라진 것이다. 또한 도시는 열섬효과로 온도가 높고, 원예종 등 다양한 도입종이 있으며, 환경의식이 높은 시민들이 새 등을 돌보는 것도 다양성을 높인 요인이다.

또 하나 중요한 요인이 영양 과잉 문제다. 현재 인류는 자연계에서 만들어내는 양을 웃도는 질소 성분을 지구에 내놓고 있다. 자연계의 귀중품인 질소영양염이 질소비료라는 이름으로 대거 쏟아져나온다. 이렇게 기름진 땅에는 다양한 식물이 깃들까. 여기에도 역설이 있다. 기름진 땅에서는 적은 수의 강자가 득세하고, 척박한 땅에서는 좁은 장소에서 근근이 살아가는 다양한 식물이 분포하게 된다. 영양분이라고는 있어 보이지 않는 산속 마사토 위에서 수많은 야생화가 피어나는 반면, 기름진 농토에서는 심은 작물 아니면 몇 종의 잡초만이 기승을 부린다. 질소비료가 넘치는 농촌보다 아무도 비료를 주지 않는 도시에 훨씬 다양한 식물이 분포하는 이유이다.

생물학자는 생물다양성이 비옥함이 아니라 결핍의 결과라는 사실을 안다. 열대림에는 생물의 양이 아니라 종류가 많다. 남한 절반 크기인 중앙아메리카의 코스타리카 열대림에는 북아메리카 대륙 전체보다 많은 종류의 새가 산다. 아마존에선 같은 종의 나비 10마리를 잡는 것이 10종의 나비를 채집하기보다 어렵다. 비옥한 땅에서 강한 종 한둘이 전체를 점령한다면 척박한 곳에서는 다양한 방식으로 결핍을 극복한 종들이 작은 영역을 차지하며 살아간다.

“개똥밭에서 인물 난다”는 말이 있듯이 인간 사회에서도 역경은 위인을 낳는다. 자연도 마찬가지다. 척박하고 환경이 거친 우리나라 석회암 지대도 세계에서 이곳에만 있는 새로운 종 동강할미꽃을 탄생시켰다. 석회암 지대는 여태껏 그저 시멘트 원료 산지 취급을 받아온 곳이다.

본 콘텐츠를 무단으로 이용하는 경우 저작권법에 따라 법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위 내용에 대한 저작권 및 법적 책임은 자료제공처 또는 저자에게 있으며, Kakao의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조홍섭 집필자 소개

환경과 과학 분야에서 30년 가까이 통찰력과 이슈가 있는 기사와 칼럼을 써온 우리나라 환경전문기자 1세대이다. 생태보전, 원자력발전, 4대강 개발 등 1980년대 이 후 급부상하는 환경 현안들을..펼쳐보기

출처

자연에는 이야기가 있다
자연에는 이야기가 있다 | 저자조홍섭 | cp명김영사 도서 소개

동물행동, 생태학부터 진화론, 동물복지, 자연사까지 기초자연과학과 첨단응용과학을 넘나들며 펼치는 흥미롭고 감동적인 생명들의 이야기. 살아 있는 그 모든 것들이 펼쳐내는..펼쳐보기

전체목차
전체목차
TOP으로 이동
태그 더 보기


[Daum백과] 농촌보다 도시의 자연이 더 풍성한 까닭자연에는 이야기가 있다, 조홍섭, 김영사
본 콘텐츠의 저작권은 저자 또는 제공처에 있으며, 이를 무단으로 이용하는 경우 저작권법에 따라 법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