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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기가 있다

먹혀야 산다. 씨앗부터 달팽이까지

아마존 강 유역에서는 홍수기마다 한반도보다 넓은 면적이 반년 이상 물에 잠긴다. 그런데 아마존 강변의 이 습지에 열대 칡 등의 나무로 이루어진 숲이 있다. 이 독특한 숲은 열매를 먹어 씨앗을 퍼뜨리는 물고기가 없다면 존재하지 못했을 것이다. 미국 듀크대 연구진은 포유류, 조류에 이어 어류가 식물의 씨앗 확산에 결정적 구실을 한다는 사실을 밝혔다. 과학자들은 아마존 강 지류인 페루 파카야 사미리아 자연보호구역에서 열매를 먹는 대형 어종인 탐바키 체내에 원격통신 장치를 삽입해 3년에 걸쳐 이동거리와 씨앗 확산능력을 조사했다.

그 결과 이 물고기는 물 위에 떨어진 열매를 소화시킨 뒤 남은 씨앗을 육지의 다른 어떤 동물보다도 멀리 떨어진 곳에 배설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그 거리는 평균 337~552미터이고 최고 5.5킬로미터에 이르렀다. 탐바키 230마리의 배 속에서 22종의 나무열매 씨앗 7만 개가 온전한 채로 발견되었다. 마리당 평균 300여 개의 씨앗이 들어 있는 셈이다. 이는 종전까지 장거리 씨앗매개동물로 꼽히던 아프리카코뿔새와 인도코끼리의 기록을 넘어서는 것이었다. 게다가 물고기에 의한 씨앗 확산은 육지에서보다 매우 효율이 높아 씨앗의 90퍼센트가 싹이 틀 수 있는 곳에 안착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홍수가 나 숲이 물에 잠기면 나무들은 일제히 열매를 맺어 물 위에 떨어뜨린다. 탐바키 등이 열매를 먹고 난 뒤 배설한 씨앗은 물속에 가라앉는다. 범람기가 끝나 물이 빠지면 씨앗은 싹이 튼다. 씨앗을 퍼뜨리는 탐바키는 피라니아와 비슷하게 생겼으며 길이 1미터, 무게 30킬로그램까지 자라 상업적으로 중요한 어종이다. 그러나 남획으로 이 물고기는 지역에 따라 개체수가 90퍼센트까지 감소했고, 대형 개체만 포획을 허용함에 따라 평균 크기도 크게 감소했다. 연구진은 이런 남획이 아마존 습지 숲에 심각한 영향을 끼친다고 경고한다. 큰 개체일수록 많은 씨앗을 간직해 더 먼 거리에 확산하는 능력이 있기 때문이다. 탐바키는 아마존에 지난 1,500만 년 동안 살아왔으며, 아마존 숲의 유지에 기여해왔다.

아마존 강에서 씨앗을 확산시키는 담수어 탐바키

ⓒ Tino Strauss, Wikimedia Commons | 저작권자의 허가 없이 사용할 수 없습니다.

열매를 먹는 물고기가 없으면 어떤 나무는 멸종할 수밖에 없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브라질 사웅파울로 대학 마우로 갈레티(Mauro Galetti) 교수가 세계 최대의 담수 습지인 브라질 판타날에서 열매를 먹는 물고기인 파쿠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습지의 타쿰야자는 씨앗 전파를 전적으로 이 물고기에 의존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파쿠 역시 남획으로 감소하고 있고, 특히 씨앗을 많이 멀리 퍼뜨리는 큰 개체가 어획의 표적이 되고 있다. 갈레티 교수는 “어업이 열대림 파괴를 부르는 첫 사례”라고 말했다. 어류가 씨앗을 퍼뜨리는 구실을 한다는 사실은 아프리카 열대지역, 북아메리카, 유럽 등지에서 알려졌지만 최근의 연구로 확산거리와 그 중요성이 구체적으로 밝혀지고 있다. 열매를 먹어 씨앗을 퍼뜨리는 물고기는 100여 종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식물 열매가 매개동물에게 먹혀 널리 퍼지는 것 자체는 사실 그다지 새로울 것도 없다. 그렇지만 동물도 그런 전략을 쓴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살아남기 위해 죽는 것이다. 일본 도호쿠 대학 연구진은 달팽이가 새들의 소화기관을 통과해서도 살아남는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연구진은 일본 동쪽 오가사와라 제도에 있는 하하지마 섬에서 달팽이를 즐겨 먹는 동박새와 직박구리에게 달팽이를 먹인 뒤 얼마나 살아남는지 조사했다. 놀랍게도 새들에게 먹힌 달팽이 7~8마리에 1마리꼴, 평균 15퍼센트가 살아남았다. 달팽이는 새에게 먹혀 소화관을 통과하면서도 생존했으며, 1마리는 배설된 직후 새끼를 낳기도 했다.

달팽이가 비교적 먼 거리를 이동하는 것은 폭풍이나 파도에 휩쓸리거나 새의 몸에 붙어서인 것으로 알려져왔다. 그러나 비교적 단거리 이동에 새들의 소화관을 이용하는 사례는 없었다. 도호쿠 대학의 연구로 새들이 식물의 씨앗을 확산시키는 것처럼 달팽이를 퍼뜨린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실제로 연구진은 이 섬에 분포하는 달팽이가 아주 멀리 떨어진 곳에서도 유전적 변이가 크지 않은 사실을 확인했다. 무언가의 힘으로 달팽이가 확산되고 있다는 증거이다. 달팽이의 유전적 다양성과 이들을 먹이로 삼는 새의 서식밀도 사이에 상관관계가 있다는 사실이 이를 뒷받침했다.

그렇다면 어떻게 달팽이는 죽지 않고 소화관을 통과할 수 있을까. 이 달팽이는 껍데기의 평균 길이가 2밀리미터에 불과해 부리에 쪼이지 않고 통째로 삼켜질 수 있었던 것이 한 가지 비결이었다. 덩치가 큰 달팽이의 생존율은 작은 달팽이보다 떨어졌다. 또한 이 달팽이는 삼켜진 뒤 스스로 점액을 분비해 소화를 막았을 가능성이 있다. 배설된 직후 새끼를 낳은 달팽이가 있다는 것으로 미루어 소화관 통과가 출산의 신호로 작용했을 수도 있다. 만일 그렇다면 이 달팽이는 새에게 먹혀야만 잘 번식하는 동물이 되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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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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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Mauro Galetti et al., “Big fish are the best: Seed dispersal of Bactris glaucescens by the pacu fish (Piaractus mesopotamicus) in the Pantanal, Brazil”, Biotropica, vol. 40(January 2008), pp. 386~389. DOI: 10.1111/j.1744-7429.2007.00378.x
  • ・ Shinichiro Wada et al., “Snails can survive passage through a bird’s digestive system”, Journal of Biogeography, vol. 39, Issue 1, pp. 69~73 (January 2012). DOI: 10.1111/j.1365-2699.2011.02559.x

조홍섭 집필자 소개

환경과 과학 분야에서 30년 가까이 통찰력과 이슈가 있는 기사와 칼럼을 써온 우리나라 환경전문기자 1세대이다. 생태보전, 원자력발전, 4대강 개발 등 1980년대 이 후 급부상하는 환경 현안들을..펼쳐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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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에는 이야기가 있다
자연에는 이야기가 있다 | 저자조홍섭 | cp명김영사 도서 소개

동물행동, 생태학부터 진화론, 동물복지, 자연사까지 기초자연과학과 첨단응용과학을 넘나들며 펼치는 흥미롭고 감동적인 생명들의 이야기. 살아 있는 그 모든 것들이 펼쳐내는..펼쳐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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