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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기가 있다 누가 더 영리할까
개와 문어
외나무다리에서 고깃덩이를 물고 가던 욕심쟁이 개가 물속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다른 개인 줄 알고 짖다가 고기를 놓쳤다는 이솝 우화가 있다. 이야기의 주제는 개가 아니라 욕심이라지만, 이솝은 개가 얼마나 영리한지 잘 몰랐던 것 같다. 이런 실험이 있다. 개 앞에 큰 고기와 작은 고깃덩이를 주면 당연히 개는 큰 것을 고른다. 그러나 주인이 작은 고깃덩이에 관심을 보이면 개는 작은 것을 택한다. 개는 주인과의 소통 면에서 뛰어난 지적 능력을 자랑한다. 손가락으로 어떤 물체를 가리키면 개는 손가락이 아니라 그것이 가리키는 물체를 바라본다. 사람은 돌 이전 말을 하지 못할 때도 손가락으로 사물을 가리켜 의도를 표현하는데, 이 행동이 언어 발달의 출발점이다. 침팬지도 그런 몸짓을 한다. 동료와 털 고르기를 할 때 손가락으로 가려운 부위를 가리키며 긁어달라고 주문한다. 유인원인 보노보는 적이 나타났을 때 동료에게 손가락으로 그 위치를 알린다.
이런 지시적인 몸짓이 유인원이나 가축화한 개를 넘어 야생동물에게서도 발견되고 있다. 똑똑하기로 유명한 까마귀는 손은 없지만 부리를 이용해 의도를 담아 가리키는 행동을 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독일 막스플랑크 조류연구소 연구진은 철새까마귀가 이끼나 돌, 나뭇가지를 부리에 물고 몸을 한동안 움직이지 않는 방식으로 동료에게 특정한 방향을 가리킨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지적이기는커녕 흔히 대표적으로 머리 나쁜 동물로 간주하는 물고기도 몸짓으로 의사 표시를 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산호 주변에 사는 그루퍼와 무늬바리 등 바리과의 육식성 물고기는 다른 포식자와 협동해 사냥한다. 장어처럼 생긴 곰치나 문어가 산호 틈에 숨어 있는 먹이를 밖으로 쫓아내면 무늬바리가 빠른 속도로 헤엄쳐 잡는 것이다. 먹이를 잡으면 포식자들의 잔치가 벌어진다. 협동 사냥을 위해 무늬바리는 먼저 곰치가 숨어 있는 곳에서 빠르게 온몸을 떠는 몸짓을 한다. 함께 사냥하러 가자는 신호이다. 곰치가 내켜하지 않으면 곰치를 바라보며 떨다가 잠깐 멈추는 행동을 여러 차례 거듭하며 끈질기게 재촉한다.
여기까지는 그리 지적인 동작으로 보이지 않을 수 있다. 사냥이 시작돼 먹이가 산호 틈에 숨어들면 무늬바리는 두 번째 행동을 보인다. 먹이가 숨은 곳을 머리로 가리키며 꼿꼿이 선 자세로 머리를 흔든다. 곰치에게 ‘여기 먹이가 있으니 어서 들어가 몰아’라는 의사를 표시하는 것이다. 이 연구를 한 영국 케임브리지대 연구진은 “무늬바리는 곰치가 오기를 기다리며 먹이를 가리키는 신호를 25분이나 지속하기도 했다. 침팬지 못지않은 기억력이다”라며 혀를 내둘렀다.
무척추동물 가운데서도 머리 좋기로 유명한 동물이 바로 문어, 낙지, 오징어 등 두족류이다. 이들은 먹이를 잡는 교묘한 위장행동과 학습능력 등이 척추동물 못지않게 뛰어나, 한때 ‘외계에서 온 게 아닐까’ 하는 의문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까치나 까마귀가 사람을 알아본다는 사실은 널리 알려져 있는데, 문어도 사람을 알아본다. 미국 시애틀 수족관 연구자 등은 실험을 통해 문어가 새 못지않은 인식능력이 있음을 증명했다. 수족관의 문어에게 한 사람은 먹이를 주고 다른 사람은 약을 올리는 식으로 역할을 나눠 11일 동안 계속한 뒤 각자가 따로 나타났을 때 문어의 무늬, 먹물뿜기 행동, 호흡률 등을 비교했다. 그랬더니 괴롭히는 사람이 나타났을 때 먹물을 뿜고 눈 주변에 위장무늬가 나타나며 호흡률이 높아졌다.
문어는 수족관 수면에 떠 있는 장난감에 물총을 쏘며 놀아 사람들을 놀라게 하는 지적 동물이다. 이미 기원전 330년 아리스토텔레스도 문어는 똑똑한 동물이라고 기록했다. 문어는 음식을 찾아서 닫혀 있는 단지의 뚜껑을 열고, 미로찾기를 잘하며, 야생에서는 지형지물을 기억해두었다가 길을 찾을 때 이용하고, 도구를 사용한다는 사실이 밝혀져 있다. 사실 문어를 포함한 두족류는 몸에서 뇌 무게가 차지하는 비중이 대부분의 물고기나 파충류보다 크며, 무척추동물 가운데 최대이다. 시애틀 수족관의 연구자는 문어를 오랫동안 기르면서 관찰한 결과, 갇혀 있는 문어가 활기를 유지하게 하려면 문어의 행동을 풍부하게 만드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시애틀 수족관에는 ‘파괴자’라고 불리는 유명한 암컷 문어가 있는데, 어느 날 수조 밑바닥의 자갈을 들어내고 거름망을 뜯는 등 여과장치를 파괴했다. 이 행동이 알을 낳을 곳을 찾기 위한 것이었는지 또는 단순히 호기심에 의한 탐구행동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수족관 관계자들은 환경을 좀 더 풍부하게 만들자고 결론을 내렸다. 사실 문어는 동물계에서 ‘예술적 경지’에 이른 탈출 전문가이다. 이 수족관에서 무게 약 20킬로그램인 어느 문어는 돌로 눌러놓은 30킬로그램짜리 합판 덮개를 밀어내고 탈출했다. 다른 문어는 자기 수조에서 탈출해 이웃 수조에 들어가 먹이를 먹은 뒤 자기 수조로 돌아왔다. 이런 탈출행동은 수질 등 여건이 좋지 않을 때 잦은데, 흥미롭게도 관람창 쪽 문어의 탈출 사례는 안쪽보다 적었다. 문어가 ‘전망 좋은 방’을 선호한다는 건데, 연구자는 문어가 관람객을 일상의 지루함을 달래는 풍부화 요소로 활용한다고 보았다.
이런 관찰을 바탕으로 연구자는 문어의 행동풍부화를 위해 복잡한 환경, 장난감, 적당한 은신처, 살아 있는 먹이 등을 제공해줄 것을 권고했다. 산 게를 주었을 때 문어는 특히 행복해했다. 문어는 게를 추격해 덮친 뒤 등딱지에 치설(齒舌)로 작은 구멍을 하나 뚫어 독성이 있는 침을 주입했다. 그러면 게가 마비되어 곧 죽는데, 이 침이 소화액 구실을 해 게의 가는 다리 근육까지 쉽게 빼 먹을 수 있게 해준다. 결국 문어는 게를 다리 끝까지, 관절 하나까지 껍질만 빼고 깔끔하게 먹어치우는데, 1마리 먹는 데 두 시간 이상이 걸린다. 1분 안에 먹어치우는 냉동사료보다 시간은 오래 걸려도 먹는 재미는 비길 바가 아니다.
하등이냐 고등이냐는 사람의 잣대일 뿐이다. 개가 영리해 보이는 건 사람 곁에서 적응하며 진화한 결과이다. 개나 고양이하고만 관계를 맺고 나머지 동물은 이용 대상으로 취급하는 건 그래서 인간중심주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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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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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Roland C. Anderson & James B. Wood, “Enrichment for giant pacific octopuses: Happy as a clam?”, Journal of Applied Animal Welfare Science, vol. 4, no. 2(2001), pp. 157~168. DOI: org/10.1207/ S15327604JAWS0402_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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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동물행동, 생태학부터 진화론, 동물복지, 자연사까지 기초자연과학과 첨단응용과학을 넘나들며 펼치는 흥미롭고 감동적인 생명들의 이야기. 살아 있는 그 모든 것들이 펼쳐내는..펼쳐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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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um백과] 개와 문어 – 자연에는 이야기가 있다, 조홍섭, 김영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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