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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3월 20일 영국 런던동물원에 새로운 명물이 등장했다. 수마트라호랑이 2마리를 위해 2,500제곱미터의 터에 360만 파운드(약 61억 원)를 들여 만든 새로운 개념의 동물사가 문을 연 것이다. 영국 일간지 〈가디언(The Guardian)〉이 사설을 통해 “(동물원이) 구경거리에서 과학을 향해 오랜 여정을 거친 끝에 도달한 정점”이라고 칭송한 사육시설이다.

이곳은 ‘호랑이가 먼저, 구경꾼은 나중’이라는 개념에 충실했다. 인도네시아 정글을 떠올리도록 나무를 무성하게 심고 웅덩이도 마련해 관람객들은 호랑이를 찾기가 쉽지 않다. 또한 답답한 지붕을 걷어내는 대신 지름 3밀리미터의 스틸케이블로 그물망을 만들고 높이 20미터의 기둥 4개로 받쳐 거대한 거미줄처럼 천장을 덮었다. 높은 곳에서 사방을 조망하는 것을 좋아하는 호랑이의 습성에 맞춰, 사람이 동물을 내려다보는 게 아니라 호랑이가 사람을 내려다보는 곳을 만들기도 했다. 먹이인 고기는 공중에 매달아 점프를 해서 발톱으로 낚아챌 수 있도록 배려했다. 만일 두 수마트라호랑이가 동물원에서 태어난 개체가 아니었다면 고향에 왔다고 느꼈을지도 모른다.

1828년 런던동물학회는 리젠트공원 안에 런던동물원을 열었다. 이를 시초로 유럽과 오스트레일리아, 북미의 다른 도시들도 앞 다퉈 공원에 동물원을 만들기 시작했다. ‘과학적인 목적으로 만든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동물원’이라는 수식어가 런던동물원에 따라다니는 이유이다. 그런 만큼 이 동물원의 시설은 동물원의 산 역사이기도 하다. 동물원은 영국이 세계의 식민지를 경영하던 빅토리아시대의 분위기에 걸맞은 시설이었다. 점차 늘어나던 중산층 사람들은 여가생활에 대한 욕구가 컸고, 새롭게 개척하는 식민지에서 들여온 신기한 동물을 구경하면서 화제가 될 새로운 지식을 갈구했다. 동물원을 바라보는 이때의 시각은 아직까지 많은 동물원에 그대로 살아 있다.

런던동물원에서 가장 유명한 시설은 1934년 건설한 펭귄 풀이다. 러시아에서 망명한 건축가 베르톨트 루베트킨(Berthold Lubetkin)이 설계한 이 시설은 펭귄이 2개의 나선형 경사로를 따라 오르내리는 모습을 구경꾼이 마치 미인대회를 보듯 볼 수 있도록 한 아름답고도 모던한 걸작이었다. 사람이 보기에는 그랬다. 하지만 당시 어느 누구도 펭귄 처지에서 이 시설을 보자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새하얀 경사로는 펭귄에게 너무 눈부셨고 콘크리트 바닥은 펭귄의 발에 상처를 내곤 했다. 풀의 수심은 펭귄이 자맥질하기엔 너무 얕았다. 이 시설은 2003년에야 폐쇄가 결정됐다. 새롭게 만든 펭귄 비치는 사람보다는 펭귄에게 더 편리하도록 설계돼 2011년 문을 열었다. 동물들의 감옥이던 동물원이 동물복지를 생각하는 시설로 바뀌게 된 것은 그리 오래전의 일이 아닌 셈이다.

1909년 일반에게 문을 연 창경원은 우리나라 동물원의 효시이다. 하지만 조선시대 5대 궁궐의 하나인 창경궁을 ‘원’으로 격하한 것은 일제였다. 일제는 순종의 오락장을 만든다는 명분으로 궁궐 안에 동물원과 식물원을 세웠다. 어쨌거나 창경원은 1970년대까지 그림책에서나 보던 신기한 외국 동물을 구경하고 봄철 꽃놀이를 하는 시설로 시민의 사랑을 받았다. 벚꽃이 절정을 이루는 4월이면 창경원 일대는 관람객으로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우리나라의 1970년대는 영국에서 런던동물원이 만들어지던 1820년대 빅토리아시대와 비슷했다. 1970년 252달러이던 1인당 국민소득은 1977년 1,012달러로 4배 뛰었다. 연간 수출액 100억 달러를 달성한 것도 당시였다. 1975년엔 승용차 보급도 170명에 1대꼴로 늘었다. 레저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었지만 갈 곳이 없었다. 창경원에는 해마다 300만 명이 찾아와 북새통을 이뤘다. 이에 정부는 수도권 외곽으로 창경원을 이전하고 그곳에 대규모 국민 레저시설을 짓기로 했다. 애초에 방점은 레저시설에 있었고 동물원은 같은 규모로 이전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세계의 동물원을 시찰하면서 동물원이 비좁은 전시시설에서 자연적인 공원 형태로 바뀌고 있음을 파악한데다, 평양동물원보다 더 큰 동물원을 건설하라는 박정희 전 대통령의 지시로 인해 서울대공원 동물원은 오늘날의 큰 규모를 갖추게 되었다.

서울대공원은 1984년 문을 열었다. 현재 동식물원이 222만제곱미터에 놀이시설인 서울랜드는 81만 7,000제곱미터의 크기이다.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동물원이고 다른 지자체의 동물원이나 사설 동물원과는 견주기 힘들 정도로 좋은 시설이지만, 국제적인 기준에는 많이 떨어진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2004년 환경운동연합 동물복지모임인 하호가 내놓은 보고서 〈슬픈 동물원〉은 충격적이었다. 철창에 갇혀 한 번도 날아보지 못하는 독수리, 물이끼로 얼룩져 녹색 곰이 된 북극곰, 바닷물이 아닌 민물에 살면서 눈에 백태가 낀 물범, 하루 종일 무언가를 핥고 있는 기린을 비롯해 좁은 우리에 갇혀 스트레스로 인한 정형행동을 벌이는 수많은 동물이 세상에 알려졌다. 자연 다큐멘터리 등을 통해 시민들의 눈높이는 갈수록 높아지는데도, 입장료 수입에 의존하며 투자를 게을리하는 사이 시설은 점점 낙후되어 관람이 줄어드는 상황이 벌어졌다. 동물원 관계자 스스로 ‘동물원의 위기’를 말하는 상황이 왔다.

서울대공원 고릴라사. 사람의 편의에 앞서 고릴라의 안정을 고려한 관람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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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취임한 박원순 서울시장이 일찍이 동물권에 눈떴다는 사실은 서울동물원의 역사에 중요한 전환점을 불러온 것으로 보인다. 남방큰돌고래 제돌이를 제주 바다로 돌려보내고 돌고래쇼를 중지한다는 결정은 서울동물원에게 엄청난 결정이었다. 돌고래쇼는 연간 100만 명 가까운 관람객이 몰리는 서울동물원의 간판 프로그램이었기 때문이다. 돌고래쇼를 보기 위해 한두 시간 기다리는 것은 당연한 일로 받아들일 정도였다. 2011년 433만 명을 기록하던 입장객이 이 쇼를 중단한 이듬해에는 353만 명으로 급감한 데서도 이 프로그램의 인기를 짐작할 수 있다. 하지만 서울동물원은 입장료 수익 대신 동물복지와 동물원의 생물다양성 보전기능을 중시하는 새로운 비전과 발전계획 수립에 나섰다. 미국 브롱스 ‘동물원’이 ‘종보전센터’로 명칭을 바꿨을 정도로 세계의 동물원이 변신을 모색하는 흐름을 중시한 것이다.

사실 동물원은 자연의 압축된 모습이다. 자연은 그것이 국립공원이든 동네의 야산이든 인간에게 둘러싸여 있다. 남한에서 호랑이는 이미 멸종했지만 동물원엔 적지 않은 수가 살아 있다. 세계의 야생에 서식하는 호랑이는 3,000여 마리로 추정되는데, 세계의 동물원에서 기르는 호랑이 수도 그 정도는 된다. 야생에선 밀렵꾼에 쫓기고 조각난 서식지에 머물며 고립될 수밖에 없지만 동물원들은 호랑이 정보를 교환하며 유전다양성을 높이기 위한 ‘국제결혼’을 주선하는 일에 열성적이다. 동물감옥에서 출발한 동물원은 이제 자연에서 사라지는 생물을 보존하는 노아의 방주가 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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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 ・ 오창영, 《한국동물원 80년사》, 서울특별시(1994)
  • ・ 서울동물원, 〈서울동물원 비전 발전계획 수립 워크숍 자료집〉(2013)

조홍섭 집필자 소개

환경과 과학 분야에서 30년 가까이 통찰력과 이슈가 있는 기사와 칼럼을 써온 우리나라 환경전문기자 1세대이다. 생태보전, 원자력발전, 4대강 개발 등 1980년대 이 후 급부상하는 환경 현안들을..펼쳐보기

출처

자연에는 이야기가 있다
자연에는 이야기가 있다 | 저자조홍섭 | cp명김영사 도서 소개

동물행동, 생태학부터 진화론, 동물복지, 자연사까지 기초자연과학과 첨단응용과학을 넘나들며 펼치는 흥미롭고 감동적인 생명들의 이야기. 살아 있는 그 모든 것들이 펼쳐내는..펼쳐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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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um백과] 슬픈 동물원자연에는 이야기가 있다, 조홍섭, 김영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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