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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새만 한 몸집에 평범한 무늬의 넓적부리도요는 주걱 모양으로 특이하게 생긴 부리가 아니면 함께 다니는 민물도요 같은 다른 도요새와 구별하기도 힘들다. 하지만 만일 어느 탐조가가 필드스코프로 이 새를 발견한다면 주변 시선은 아랑곳하지 않고 미친 듯이 기뻐할 것이다. 수만 마리의 도요새가 새카맣게 내려앉은 갯벌에서 1마리 있을까 말까 한 귀한 새이기 때문이다. 넓적부리도요는 지구에 단지 100쌍만 남아 있는, 세계에서 가장 희귀한 새 가운데 하나이다. 그리고 이 새가 지난 10년간 90퍼센트나 줄어든 중요한 이유 가운데 하나가 새만금 등 우리나라의 갯벌 매립이다.

이 도요새는 몸집은 작지만 대단한 여행가이다. 극동러시아의 툰드라 해안인 추코트카에서 번식한 뒤 8,000킬로미터 떨어진 동남아까지 날아가 겨울을 난다. 기나긴 비행의 중간 기착지는 새만금 등 한반도 서해안과 남해안의 갯벌이며 일부 개체는 오스트레일리아까지 날아가기도 한다.

2011년 야생조류및습지트러스트(WWT) 등 국제 조류보호단체들은 내버려두면 곧 절멸할 것이 뻔한 넓적부리도요의 인공증식 사업에 나섰다. 영국에 이 도요새의 건강한 집단을 노아의 방주처럼 유지하자는 것이다. 이를 위해 러시아에서 데려온 넓적부리도요 성체 12마리를 기르던 WWT는 2012년에는 러시아 번식지에서 알 20개를 가져와 부화시키는 작업에 착수했다. 기르던 성체와 새 개체로 건강한 집단을 이루려는 의도다. 2012년 7월 4일 영국 슬림브리지센터에서는 넓적부리도요 알 17개에서 어린 새끼가 성공적으로 태어났다. 이 새의 운명에 역사적인 순간이 온 것이다. WWT 종 보전부는 넓적부리도요의 부화과정을 상세히 설명했다.

어른 엄지손톱 크기만 한 넓적부리도요 알을 러시아에서 영국까지 나르는 것 자체가 큰일이었다. 17시간 동안의 헬기와 여객기 비행을 포함해 7일 동안의 여정을 무사히 넘겼다. 세관검사 과정에서 알 하나에 금이 갔지만 매니큐어로 응급 처치했다. 21일이 지나자 부화가 시작됐다. 알에 첫 구멍을 뚫은 뒤에도, 기껏 호박벌 크기인 넓적부리도요 새끼는 이틀을 쉬고 기운을 차린 뒤에야 나머지 알 껍데기를 벗고 나왔다. 태어난 새끼에게는 일일이 핀셋을 이용해 초파리와 산 귀뚜라미를 먹였다. 인공증식이 성공을 거두면 앞으로 알을 러시아 서식지로 가져가 부화시켜 넓적부리도요 집단을 늘리는 데 기여하게 된다.

ⓒ Wildfowl & Wetlands Trust(WWT) | 저작권자의 허가 없이 사용할 수 없습니다.

알에서 깨어난 지 만 하루 된 넓적부리도요 새끼

큰 벌 크기이다. 부리의 모습이 독특하다.

ⓒ Wildfowl & Wetlands Trust(WWT) | 저작권자의 허가 없이 사용할 수 없습니다.

넓적부리도요의 생존을 위협하는 요인은 곳곳에 널려 있다. 러시아 번식지에서는 변덕스러운 날씨와 알을 노리는 갈매기, 여우, 곰이 천적이다. 월동지인 미얀마, 태국, 방글라데시에서는 도요새를 식용으로 사냥하는데, 넓적부리도요는 사냥 대상은 아니지만 부산물로 잡힌다. 이동 경로에서의 갯벌 매립도 문제다. WWT는 “넓적부리도요는 다른 수백만 마리의 물새들과 함께 남한의 새만금 같은 대규모 갯벌에 의존해 쉬고 이동을 위한 에너지를 충전하는데 그것이 사라지면서 불과 10년 만에 이 새의 90퍼센트가 줄어들었다”고 밝혔다.

넓적부리도요는 국제자연보존연맹(IUCN)의 ‘적색목록’에서 가장 등급이 높은 ‘위급’ 종으로 분류돼 있고 우리나라에서도 멸종위기 야생동식물 1급으로 지정돼 있다. 이 새는 봄과 가을 우리나라의 새만금, 금강 하구, 낙동강 하구에 들러 먹이를 먹고 휴식을 취한 뒤 월동지나 번식지로 떠난다. 2012년 9~10월 조류보호단체 ‘새와 생명의 터’가 새만금 일대에서 조사한 결과 새만금에서 5마리, 금강 하구 유부도에서 15마리가 발견됐다. 새만금이 매립되기 전에 비해 이곳을 찾는 도요 · 물떼새의 수는 약 30분의 1로 줄었지만 아직도 매우 중요한 철새 도래지 구실을 하고 있다. 그러나 내부개발을 하면서 넓적부리도요 등 이 멸종위기종에 대한 보호대책은 거의 없는 형편이다.

넓적부리도요를 구하기 위한 사업에는 WWT 이외에도 버즈러시아(buzzrussia), 영국 왕립조류보호협회 등이 시민의 모금을 통해 참여하고 있다. 우리가 갯벌을 막무가내로 매립하는 사이, 언제부턴가 우리나라 갯벌에 외국인 도요 탐조가들이 자주 눈에 띈다. 안타깝고 부끄러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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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홍섭 집필자 소개

환경과 과학 분야에서 30년 가까이 통찰력과 이슈가 있는 기사와 칼럼을 써온 우리나라 환경전문기자 1세대이다. 생태보전, 원자력발전, 4대강 개발 등 1980년대 이 후 급부상하는 환경 현안들을..펼쳐보기

출처

자연에는 이야기가 있다
자연에는 이야기가 있다 | 저자조홍섭 | cp명김영사 도서 소개

동물행동, 생태학부터 진화론, 동물복지, 자연사까지 기초자연과학과 첨단응용과학을 넘나들며 펼치는 흥미롭고 감동적인 생명들의 이야기. 살아 있는 그 모든 것들이 펼쳐내는..펼쳐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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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um백과] 넓적부리도요의 부활자연에는 이야기가 있다, 조홍섭, 김영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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