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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악산국립공원에 산양 16마리(2마리는 회수)를 방사해 복원을 추진 중인 국립공원종복원센터 연구원들은 산양의 목에 발신기를 부착하고 그들의 먹이에서 배설물까지 빠짐없이 관찰하고 기록한다. 2011년, 산양은 26마리로 불었고 관찰기록도 두툼하게 쌓였다. 그 가운데 흥미로운 내용이 있었다. 겨울철 산양의 똥 자리에서 배설물을 분석했더니 헛개나무의 씨가 잔뜩 들어 있었고, 봄철에는 거기서 많은 헛개나무 싹이 돋아났다는 것이다.

국립공원종복원센터 산양복원팀은 산양과 헛개나무 씨앗의 발아 사이엔 뭔가 관련이 있다고 판단하고 실험에 나섰다. 모판에 배설물 속 헛개나무 씨앗을 600개 심고, 다른 모판엔 같은 월악산에서 수집한 산양이 먹지 않은 씨앗 600개를 심어 비교했다. 그랬더니 산양의 소화관을 거쳐 배설된 헛개나무 씨앗은 32.5퍼센트가 싹이 튼 반면, 산양이 먹지 않은 씨앗의 발아율은 0.8퍼센트에 그쳤다. 발아율 차이가 무려 40배에 이르렀다. 산양이 먹지 않은 헛개나무는 사실상 씨앗이 트지 않는 것이었다.

헛개나무의 씨앗은 껍질이 두꺼워 발아율이 낮기로 유명하다. 알코올성 간 손상을 개선하는 약용식물로 인기가 높은 이 나무를 발아시키는 데는 황산으로 씨앗 껍질을 부식시키는 방법을 주로 쓰고 있다. 그런데 이 연구를 통해 산양이 헛개나무 열매를 먹고 되새김질을 하는 동안 씨앗의 두꺼운 껍질이 산양의 위산 등에 의해 소화돼 종자 발아를 촉진했을 것이란 추정이 가능해졌다. 또한 이 실험에서는 산양의 배설물에 든 채로 헛개나무 씨앗을 심었을 때 발아율이 48.3퍼센트로, 배설물에서 씨앗만 끄집어내 심었을 때의 발아율 16.6퍼센트보다 월등히 높았다. 배설물 속에 영양분과 함께 어떤 분해세균이 있는데, 이것이 헛개나무 씨앗 껍질을 더 빠르게 분해했을 것으로 볼 수 있다. 이와 함께 배설물이 수분을 오래 간직한다는 사실도 드러났다. 결국 헛개나무 씨앗에게 싹터 자랄 모든 조건을 잘 갖춘 산양 배설물은 태아에게 어머니 자궁과 비슷한 여건을 제공하는 셈이다.

헛개나무는 중부지방 계곡이나 산 사면의 비교적 높은 곳의 돌 틈에서 드물게 자라며 월악산과 설악산에 특히 많다. 헛개나무가 많은 곳은 우리나라에서 산양이 비교적 많이 사는 곳이기도 하다. 산양은 겨울철 양지 바른 절벽이나 능선에서 되새김질을 하면서 한곳에 배설을 하는데, 이런 곳에서 헛개나무가 집중적으로 자라난다. 산양이 헛개나무를 번성하게 하고 퍼뜨리면 결국 먹이를 구하기가 쉬워지므로 산양 자신에게도 이익이 된다. 이 연구에서 드러난 산양과 헛개나무의 관계는 공진화 이론을 뒷받침하는 사례로 포유동물의 사례가 보고된 것은 국내 최초이다.

똥 자리에서 되새김질을 하는 월악산 산양, 그 옆에 자란 대형 헛개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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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 복원은 돈과 시간이 많이 드는 일이다. 하지만 이 연구로 종 복원이 단순히 멸종위기종을 되살릴 뿐 아니라 식물 등 자연생태계 전반에 영향을 주어 생태계 안정에 기여할 수 있음이 드러났다. 쓸데없이 돈 낭비한 것이 아니니, 산양 연구자에겐 얼마나 다행스러운 결과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