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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자연에는 이
야기가 있다

사람과 동물이 다르다는 당신에게

깃이나 모자 끝을 북미산 너구리인 라쿤 털로 장식한 외투가 유행하자 한 동물보호운동가가 온라인 매체에 ‘몸을 따뜻하게 하는 데 별로 도움이 되지 않으면서 동물에게 고통만 주는 이런 옷을 입지 말자’는 내용의 글을 올렸다. 쉽게 예상할 수 있듯이, 반발하고 비아냥거리는 댓글이 적지 않았다. 이들의 목소리엔 ‘인간보다 먹이사슬에서 열등한 동물이 사람 손에 죽는 게 뭐가 문제냐’, ‘왜 동물을 사람 취급하느냐’ 하는 불만이 깔려 있다. 심지어 동물보호운동이 나치의 잔재라는 비난도 나왔다. 히틀러(Adolf Hitler)가 채식주의자였던데다 동물애호와 환경보전을 주창하고 생체실험에 반대한 건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동물보호에 나치의 낙인을 찍을 일은 아니다. 오히려 유대인 학살은 동물에 대한 잔인한 도살과 학대에 더 가까워 보인다.

독일 사회학자 테오도어 아도르노(Theodor Adorno)는 “누군가 도살장을 바라보며 ‘그들은 동물일 뿐이야’라고 생각할 때마다 아우슈비츠는 시작된다”고 적었다. 나치의 유대인 학살 같은 비인간화는 동물을 무시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는 말이다. 동물보호단체 누리집의 자유게시판에 들어가보면, 동물학대를 고발하는 제보가 끊이지 않는다. 종종 엽기적이고 일상화된 이런 행위는 대체 왜 생기는 걸까? 개나 고양이를 학대하는 사람도 가족이나 이웃 또는 직장 동료에게는 살가운 사람일 수 있다. 하지만 그 대상이 외국인 노동자나 동성애자 같은 소수집단이라도 그럴까. 이것이 요즘 사회심리학자들이 던지는 ‘비인간화의 뿌리가 무엇인가’ 하는 질문에 닿아 있다.

역사적으로 내가 속한 집단 밖에 있는 외집단을 ‘동물 같다’고 바라본 예는 많다. 제2차 세계대전 때 진주만 기습공격을 받은 미국에서 일본인은 ‘노란 원숭이’나 ‘쥐’로 묘사됐다. 〈뉴욕 타임스(The New York Times)〉는 일본의 토속신앙을 ‘야만 문화’라고 표현했다. 한 역사가는 “눈이 째진 일본 조종사는 총탄을 똑바로 발사하지 못하고 해군 장교는 어두울 때 앞을 잘 보지 못한다”고 적기도 했다. 외집단에 속한 사람을 인간보다는 동물에 가깝다고, 그래서 감정과 고통을 느끼지 않는다고 간주함으로써 동정과 존중을 받을 자격이 없다고 믿는 것이다. 이로부터 외집단을 배제하고 학살하고 노예화하는 차별행동이 나온다.

인간과 인간이 아닌 동물을 구분하는 생각은 부지불식간에 인간 집단 내부에서도 동물에 가깝다고 간주되는 외집단을 만들어낸다. 그래서 흑인을 원숭이에 가깝다고 느끼는 백인일수록 흑인 범죄용의자에 대한 폭력을 더 인정하는 경향을 보인다. 캐나다의 심리학자들은 최근 실험을 통해 사람과 동물이 다르다고 굳게 믿을수록 이민자에 대한 편견도 깊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그리고 사람과 동물의 유사성에 관한 신문기사를 읽은 뒤 이민자도 캐나다 사람과 비슷하다고 생각하는 이가 늘어난 것으로 드러났다. 인간과 다른 동물이 결코 분리되는 존재가 아니라는 사실은 과학적으로 점점 분명해지고 있다.

그런데 뜻밖에도 이 문제는 범죄예방과 관련해 시사하는 바가 크다. 개와 고양이를 잔인하게 죽인 사람의 다음 표적은 어린아이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미국연방수사국(FBI)의 범죄심리분석관이 장차 나타날 폭력행동을 평가할 때 사용하는 네 가지 지표 가운데 하나가 동물학대이다. 한 연쇄살인범 프로파일러는 “대부분의 살인범들은 어릴 때 동물을 죽이거나 고문한 경험이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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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 ・ Kimberly Costello et al., “Exploring the roots of dehumanization: The role of animal--human similarity in promoting immigrant humanization”, Group Processes Intergroup Relations, vol. 13, no. 3(2010). DOI: 10.1177/1368430209347725; http://gpi.sagepub.com/content/13/1/3
  • ・ People for the Ethical Treatment of Animals(PETA), “Animal abuse & Human abuse: Partners in crime”.

조홍섭 집필자 소개

환경과 과학 분야에서 30년 가까이 통찰력과 이슈가 있는 기사와 칼럼을 써온 우리나라 환경전문기자 1세대이다. 생태보전, 원자력발전, 4대강 개발 등 1980년대 이 후 급부상하는 환경 현안들을..펼쳐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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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에는 이야기가 있다
자연에는 이야기가 있다 | 저자조홍섭 | cp명김영사 도서 소개

동물행동, 생태학부터 진화론, 동물복지, 자연사까지 기초자연과학과 첨단응용과학을 넘나들며 펼치는 흥미롭고 감동적인 생명들의 이야기. 살아 있는 그 모든 것들이 펼쳐내는..펼쳐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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