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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기가 있다
외로움은 코끼리도 말하게 한다
에버랜드 동물원에 있는 1990년에 태어난 수컷 인도코끼리 ‘코식이’는 ‘말하는 코끼리’로 유명하다. ‘좋아’ 등 몇 가지 단어를 사람처럼 말한다는 사실이 외신을 통해 널리 알려지기도 했다. 코식이의 이런 특별한 능력을 학술적으로 연구한 논문이 저명한 국제학술지에 실렸다. 오스트리아 빈 대학 인지생물학자 등 연구자들은 코식이의 ‘말’을 음성학적으로 분석하는가 하면, 한국인이 그 말을 얼마나 알아듣는지, 코식이가 어떻게 말을 시작하게 됐는지 등을 알아봤다.
코식이가 흉내 낼 수 있다고 사육사가 주장한 단어 6개를 녹음해 16명의 한국인에게 들려주고 소리 나는 대로 적어보라고 요청했더니 ‘안녕’ ‘앉아’ ‘아니야’ ‘누워’ ‘좋아’ 등 5개를 성공적으로 흉내 낸다는 사실이 확인되었다. 자음보다는 모음을 정확히 발음했는데, 모음을 제대로 흉내 낸 비율은 67퍼센트였다. 예를 들어 코식이가 흉내 낸 ‘좋아’라는 말을 들은 한국인의 38퍼센트는 ‘보아’로, 23퍼센트는 ‘모아’로 들었다. 정답률은 ‘안녕’이 56퍼센트, ‘아니야’가 44퍼센트, ‘누워’가 31퍼센트, ‘앉아’가 15퍼센트였다.
연구진은 코식이가 사람, 특히 사육사 목소리의 음색과 높이를 고스란히 재현하는 데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자연상태에서 성대가 긴 코끼리는 사람보다 주파수가 훨씬 낮은 소리를 내기 때문이다. 한편 코식이는 코를 말아 입속에 넣어 성대에 바람을 불어넣고 입술로 바람세기를 조절하는 방식으로 말을 흉내 냈는데, 연구진은 이것을 “학계에 보고된 바 없는 전혀 새로운 발성방식”이라고 평가했다. 코끼리는 윗입술이 코와 합쳐져 긴 코가 됐기 때문에 ‘우’ 같이 입술을 둥글게 모아야 하는 모음을 발음할 수 없는데, 이런 형태적 한계를 극복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코식이는 단지 말을 흉내 낼 뿐 이해한다는 증거는 없다.
그렇다면 코식이는 왜 ‘말’을 하기 시작했을까. 연구진은 이 코끼리의 생애사에서 그 단서를 찾았다. 코식이는 1990년 서울대공원에서 태어나 1993년 에버랜드로 옮겨졌다. 그로부터 2년 뒤까지 2마리의 암컷 인도코끼리와 함께 지냈다. 하지만 1995년부터 2002년까지는 홀로 지냈는데 사육사 등 사람이 유일한 동료였다. 사육사가 코식이가 말을 중얼거리는 것을 발견한 때가 2004년이니 아마 그전부터 말을 하기 시작했을 것이다. 연구진은 이런 배경으로 보아 “코식이가 사람의 말을 흉내 내게 된 결정적인 요인은 유대와 발달이 중요한 시기에 동료 코끼리 없이 인간과만 접촉할 수 있었던 사회적 결핍 때문”일 것이라고 밝혔다.
지적이고 사회적 동물인 코끼리 코식이는 외로움을 이기려고 사육사에게 말을 거는 방법을 알아냈다. 이것은 음성 학습을 통해 사람과 코끼리처럼 전혀 다른 종 사이에 의사소통이 제한적으로나마 이뤄질 수 있음을 보여준다. 한편 카자흐스탄 동물원에서도 인도코끼리가 러시아어와 코자크어를 중얼거린다고 알려져 있으나 기록이 남아 있지는 않다. 코끼리는 매우 지적이며 사회성이 강해 무리의 유대를 유지하는 것이 동물복지의 핵심 과제로 알려져 있다. 미국 동물원수족관협회는 번식을 위한 코끼리는 6~12마리 무리를 유지할 것을 권고하고 있고, 영국 동물원수족관협회는 2살 이상의 암컷을 적어도 4마리 이상 함께 둘 것을 권하고 있다. 우리나라에 이런 기준을 충족하는 코끼리 우리는 없다. 코끼리는 선한 표정과 동작으로 동물원에서 가장 인기 있는 동물의 하나이지만, 긴 속눈썹에 감춰진 눈망울에는 무리와 헤어진 슬픔이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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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 Angela Stoeger et al., “An Asian elephant imitates human speech”, Current Biology(2012). http://dx.doi.org/10.1016/j.cub.2012.09.022
글
출처
동물행동, 생태학부터 진화론, 동물복지, 자연사까지 기초자연과학과 첨단응용과학을 넘나들며 펼치는 흥미롭고 감동적인 생명들의 이야기. 살아 있는 그 모든 것들이 펼쳐내는..펼쳐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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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um백과] 외로움은 코끼리도 말하게 한다 – 자연에는 이야기가 있다, 조홍섭, 김영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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