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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기가 있다
체온 36.7도의 비밀
겨울이 추운 이유는 기온이 낮아서가 아니라 우리 몸의 온도가 기온보다 높기 때문이다. 겨울잠을 자는 파충류나 곤충 같은 변온동물은 외부와 몸의 온도가 같아 전혀 추위를 느끼지 않는다. 항온동물인 포유류나 조류는 추운 곳에서도 활동을 계속하는 이점을 누린다. 하지만 체온을 유지하느라 에너지를 많이 쓰기 때문에 많이 먹어야 한다. 에너지 다소비 동물인 셈이다. 반면 파충류, 양서류, 곤충, 거미, 어류 같은 변온동물은 주변 온도가 떨어지면 근육 속 화학반응도 함께 느려져 몸이 굼떠지는 단점은 있지만 체온유지 부담이 없다. 그래서 악어는 같은 무게의 사자보다 먹이를 5분의 1에서 10분의 1만 먹어도 충분하고, 아무것도 먹지 않고도 반년을 버틴다.
그렇다면 항온동물은 왜 상온보다도 훨씬 높은 체온을 유지하는 걸까. 미국 앨버트 아인슈타인 의대 연구자들은 곰팡이의 감염을 줄이면서 에너지 소모를 최소화하는 최적 온도가 바로 36.7도라는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이 온도는 사람을 포함한 대부분 항온동물의 체온이다. 곰팡이는 상온을 넘어서면 성장이 급속히 둔화한다. 따라서 체온을 높이면 곰팡이 감염을 막을 수 있다. 그렇지만 무작정 체온을 높이는 것이 능사는 아니다. 체온을 높이려면 몸의 신진대사를 끌어올려야 하니 에너지 소비가 많아지기 때문이다.
변온동물인 공룡의 시대가 끝난 뒤 어떻게 항온동물인 포유류가 등장하게 됐는지는 유명한 수수께끼이다. 이 연구로 항온동물인 포유류가 곰팡이가 번성한 중생대 말의 승리자가 된 이유의 하나를 짐작할 수도 있게 됐다. 포유류가 진화할 때 외부의 생물학적 요인과 내부의 생리학적 제약이 모두 중요하게 관여하고 있는 것이다.
항온동물에겐 추위뿐 아니라 더위를 견디는 것도 큰 과제이다. 여름이 되면 직장에 겉옷을 두고 다니는 이들이 있다. 에어컨의 냉기가 지나쳐 체온을 보호하기 위한 자구책이다. 에어컨의 온도설정을 정부가 권장하는 26~28도에 맞추면 좋겠지만, 공공기관도 아니면서 ‘더워 죽겠다’는 직장 동료의 아우성을 못 들은 척할 수도 없다. 추운 사무실을 나서 에어컨을 켜지 않는 집에 가면 냉기에 적응된 몸이 더위를 더 심하게 느끼게 되니, 이래저래 여름은 견디기 쉽지 않은 철이다.
환경부는 몇 년 전부터 이른바 기후변화 적응형 여름철 복장문화로 ‘쿨맵시’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재킷을 입지 않고 반소매 와이셔츠에 넥타이를 매지 않는 옷차림으로 여름철 체감온도를 2도 낮추고, 에어컨의 설정온도를 그만큼 올릴 수 있게 되니 결과적으로 연간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197만 톤 줄여 소나무 약 7억 그루를 심는 효과를 거둔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에어컨이 없던 시절엔 어떻게 여름을 났을까. 분명히 여름은 땀의 계절이었다. 음식을 먹거나 조금만 움직여도 나오는 땀을 부채나 선풍기로 식히고 손수건으로 찍어내며 살았다. 이렇게 더위를 견디는 것이 전근대적이고 비효율적인 방식일까. 환경부가 쿨맵시를 하면 체감온도를 2도 낮춘다고 주장하는 근거가 된 국립환경과학원의 실험결과를 자세히 살펴보면, 역설적으로 쿨맵시보다는 ‘땀의 힘’을 다시 생각하게 한다.
실험은 남성 4명을 대상으로 일반 복장과 쿨맵시 복장을 입혀 피부 온도 등을 측정하는 방식으로 이뤄졌다. 온도가 25도인 사무실에서 긴소매 셔츠와 넥타이를 착용한 실험 참가자들의 평균 피부 온도는 개인마다 차이가 있었지만 32.6~34.5도(평균 33.6도) 분포를 보였다. 같은 온도에서 반소매 와이셔츠에 넥타이를 매지 않은 쿨맵시 차림을 한 사람들의 피부 온도는 32.1~33.6도(평균 32.8도) 범위였다. 두 가지 복장으로 인한 피부 온도는 평균 0.8도, 개인별로는 최고 1.6도의 격차가 났다.
그런데 실내온도가 27도로 올라가면 뜻밖의 결과가 나왔다. 얼핏 쿨맵시의 효과가 더 나타날 것 같지만 실제 실험에서는 두 복장의 평균 피부 온도 차이가 0.2도밖에 나지 않았다. 일반 복장의 피부 온도는 33~34.7도, 쿨맵시는 33~34.1도였다. 이런 결과가 나온 까닭은 온도가 상대적으로 높은 27도 실내에서는 땀이 많이 나면서 피부가 식었기 때문이다. 땀이 많은 체질인 한 실험참가자는 일반 복장 때 피부 온도가 33도였는데, 쿨맵시 복장을 했더니 33.8도로 오히려 피부 온도가 더 높아졌다. 일반 복장 때 땀을 더 흘려 체온을 조절했기 때문이다.
국립환경과학원은 일반 복장을 하고 실내온도를 바꿔가며 별도의 실험을 했는데, 실내온도를 24도에서 27도로 3도 높이는 동안 평균 피부 온도는 1.1도밖에 오르지 않았다. 재킷까지 입고 실험했을 때도 피부 온도는 그리 오르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결국 이 실험에서 알 수 있는 것은, 온도가 높아질수록 우리 몸은 땀을 내는 방식으로 체온을 조절하는 능력이 있으며, 그것이 쿨맵시 등 환경친화형 복장을 입는 것보다 훨씬 효과적이라는 사실이다. 쿨맵시가 효과를 내는 상황은 역설적으로 에어컨을 켜 지나치게 서늘하게 만든 사무실이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쿨맵시의 효과가 두드러진 25도는 정부가 권장하는 여름철 실내적정온도 26~28도 범위 밖이다.
결국 에너지도 절약하고 우리 몸도 쾌적하게 느끼는 최선의 길은 아마도 우리 몸이 지닌 ‘천연 에어컨’인 땀 흘리기와 부채 또는 선풍기의 결합이 아닐까 싶다. 에어컨과 마찬가지로 우리 몸도 증발열을 이용해 몸을 식힌다. 피부의 땀 1밀리리터가 수증기로 증발할 때 빼앗아가는 열은 580칼로리에 이른다. 땀을 한 방울도 안 흘렸다고 생각하는 동안에도 우리는 하루에 600밀리리터의 물을 땀으로 배출한다. 한여름을 에어컨 바람을 쐬며 보송보송하게 넘기는 것이 쾌적해 보일지 몰라도, 땀을 흘려 효과적으로 온도를 조절하는, 사람과 말 등 몇몇 동물에게서만 진화한 탁월한 능력을 썩히는 셈이 된다.
목욕탕에서 억지로 땀을 흘리는 것도, 에어컨으로 땀을 막는 것도 몸에 이로울 리 없다. 적어도 여름엔 땀이 흐르게 내버려두는 게 어떨까. 땀을 뻘뻘 흘리며 일을 한 뒤 시원한 등목을 할 때의 짜릿한 쾌감은 아무리 성능 좋은 에어컨과 쿨맵시를 합친다 해도 느낄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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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 Aviv Bergman & Arturo Casadevall, “Mammalian endothermy optimally restricts fungi and metabolic costs”, mBio, vol. 1 no. 5(9 November 2010), DOI: 10.1128/mBio.00212-10.
글
출처
동물행동, 생태학부터 진화론, 동물복지, 자연사까지 기초자연과학과 첨단응용과학을 넘나들며 펼치는 흥미롭고 감동적인 생명들의 이야기. 살아 있는 그 모든 것들이 펼쳐내는..펼쳐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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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um백과] 체온 36.7도의 비밀 – 자연에는 이야기가 있다, 조홍섭, 김영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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