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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기가 있다

벌레잡이식물의 새로운 식충 전략

브라질에서 아마존 열대우림에 이어 가장 넓은 면적을 차지하는 생태계는 ‘세라도(Cerrado)’라 불리는 열대 사바나 지역이다. 건기와 우기가 뚜렷한 이곳은 세계에서 생물다양성이 높은 ‘핫스팟’ 34곳의 하나일 정도로 독특한 생물상을 보유하고 있다.

과학자들은 2000년 이곳에서 ‘필콕시아(Philcoxia)’라는 질경이과의 새로운 식물 무리를 발견했다. 이 식물은 해가 잘 드는 모래밭에서 자라는데, 잎 모양이나 잎 표면의 끈끈이가 벌레잡이식물과 비슷했지만 벌레를 잡아먹는 모습이나 그 잔해 등은 전혀 발견되지 않았다. 일반적으로 벌레잡이식물은 질소, 인 등 식물 생장에 필수적인 영양분이 토양에 부족할 때 곤충 등을 잡아먹는 방식으로 보충하는데, 전체 식물의 0.2퍼센트만이 여기에 해당한다. 2007년에는 미국과 브라질의 식물학자들이 이 식물의 잎에 선충이 들러붙은 모습을 발견했지만 벌레잡이식물인지 여부는 확실하게 규명되지 않았다. 2012년 마침내 필콕시아가 벌레잡이식물임을 밝히는 뜻밖의 증거가 나왔다. 이 식물은 ‘땅속’에서 벌레를 잡는다는 사실이 밝혀진 것이었다.

땅속 벌레잡이식물 필콕시아의 지상 모습

해가 잘 드는 모래밭에서 자란다.

ⓒ Caio G. Pereira, PNAS | 저작권자의 허가 없이 사용할 수 없습니다.

그전까지 발견된 벌레잡이식물은 모두 땅 위에서 포식활동을 하며 끈끈이, 물웅덩이 함정, 덫 등 다양한 방식으로 벌레를 잡았다. 땅속 벌레잡이식물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최초로 보고한 브라질과 미국 연구자들은 이 식물이 척박한 바위투성이 환경에서 부족한 영양분을 보충하기 위해 땅속에 많이 서식하는 작은 동물인 선충을 먹이로 삼는 쪽으로 진화했을 것으로 보았다. 이런 목적에서 광합성을 하는 소중한 기관인 잎을 땅속에 밀어 넣어 선충을 잡는 덫으로 사용하게 된 것이다. 끈적끈적한 땅속 잎 표면에서는 ‘포스파타제(Phosphatase)’라는 효소가 분비돼 옆을 지나가다 들러붙는 선충을 소화시킨다. 하지만 연구자들은 이 식물이 선충을 어떻게 유인하는지, 또 선충을 죽이는 것이 끈끈이인지 아니면 다른 독성물질인지는 밝히지 못했다.

이 연구로 영양분이 매우 결핍한 환경인 세라도와 같은 곳에서 우리가 이제껏 몰랐던 새로운 영양섭취 전략을 진화시킨 식물이 있음이 분명해졌다. 자연에서 결핍은 종종 창의력의 원동력이다. 척박하고 힘든 환경에는 그곳에 근근이 적응한 경이로운 생물이 많다. 풍요롭고 순조로운 환경에는 평범한 몇 종의 강자가 판치는 것과 대조적이다. 자연의 이런 역설이 인간 사회에도 적용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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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 Caio G. Pereira et al., “Underground leaves of Philcoxia trap and digest nematodes”, Proceeding of the National Academy of Sciences(PNAS)(2012). DOI: 10.1073/pnas.1114199109

조홍섭 집필자 소개

환경과 과학 분야에서 30년 가까이 통찰력과 이슈가 있는 기사와 칼럼을 써온 우리나라 환경전문기자 1세대이다. 생태보전, 원자력발전, 4대강 개발 등 1980년대 이 후 급부상하는 환경 현안들을..펼쳐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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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에는 이야기가 있다
자연에는 이야기가 있다 | 저자조홍섭 | cp명김영사 도서 소개

동물행동, 생태학부터 진화론, 동물복지, 자연사까지 기초자연과학과 첨단응용과학을 넘나들며 펼치는 흥미롭고 감동적인 생명들의 이야기. 살아 있는 그 모든 것들이 펼쳐내는..펼쳐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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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um백과] 벌레잡이식물의 새로운 식충 전략자연에는 이야기가 있다, 조홍섭, 김영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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