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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기가 있다
광합성하는 도롱뇽의 느긋한 오후
따스한 봄볕이 내리쬐는 창가에서 법정 스님의 《무소유》를 읽다가 공상에 빠졌다. 만일 사람이 광합성을 할 수 있다면 모든 욕심이 사라질 터이니 얼마나 좋을까. 배고프면 햇빛을 쪼이는 것으로 충분하니 남의 것을 탐낼 까닭이 없다. 식물은 엽록체라는 세포가 있어 햇빛과 물 그리고 공기만 있으면 양분을 만들고 부산물로 산소를 내보낸다. 동물처럼 남의 몸을 먹고 배설물을 내보낼 필요도 없다. 머리 위에 이파리까지 돋을 것도 없이 그저 피부가 초록빛으로 물들어 광합성을 한다면 다른 생명을 하나도 죽이지 않고도 살 텐데······
아쉽지만 공상과학 영화나 만화가 아니라면 그런 일은 불가능하다. 식물은 햇빛을 이용해 양분을 만들고, 동물은 스스로 양분을 만들지 못해 식물이나 다른 동물을 먹는다. 그렇지만 동물이 내보낸 배설물을 미생물과 곰팡이 등이 분해해 식물에게 필요한 영양소로 바꾸어놓는다. 이것이 생물학 교과서가 가르치는 자연계의 가장 중요한 먹이순환 법칙이다. 하지만 복잡한 자연 생태계를 그런 단순한 법칙으로 모두 설명할 수는 없다. 오래전부터 산호와 해면 등의 동물은 광합성을 한다는 사실이 알려져 있었다. 정확히 말한다면 산호가 광합성을 하는 게 아니라 산호 안의 광합성을 하는 조류와 공생하는 것이다. 그런데 최근 과학자들은 고등생물에서, 그것도 식물과의 공생 때문에 광합성을 하는 것처럼 보이는 게 아니라 진짜 광합성을 하는 사례를 연이어 보고하고 있다.
북아메리카에 사는 점박이무늬도롱뇽이 그 주인공이다. 이 도롱뇽이 웅덩이에 알을 낳으면 몇 시간도 안 돼 알 주변에 녹조류가 자란다. 녹조류가 많이 자라는 곳일수록 도룡뇽의 생존율이 높았는데, 과거 과학자들은 조류가 내보내는 산소를 도롱뇽이 활용하고 조류는 도롱뇽의 배설물을 양분으로 이용한다고 이해했다. 그런데 2011년 이 도롱뇽의 알 속에 녹조류가 들어 있는 것이 발견되었다. 식물이 도롱뇽의 세포 속에 들어 있었던 것이다. 미국 펜실베이니아 대학 연구자들은 도롱뇽 알 세포 속의 조류가 광합성을 통해 산소뿐 아니라 영양분인 탄소를 제공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이 척추동물은 광합성을 하는 조류와 단지 함께 사는 것이 아니라 조류를 세포 속에 받아들여 하나의 생명체를 이룬 것이다. 물론 도롱뇽이 이 조류에 전적으로 의지하는 것은 아니지만 조류가 도롱뇽 알의 생존에 크게 기여하는 것은 분명하다. 동물의 몸속에 식물이 있으니, 식물과 동물의 경계는 이렇듯 흐려지기도 한다.
척추동물은 아니지만 햇빛을 적극 이용하는 곤충도 있다. 남서아시아와 아프리카 북동부, 유럽 남동부에 서식하는 말벌의 일종은 등에 ‘태양전지판’을 지고 다닌다. 물론 우리에게 익숙한 실리콘으로 만든 패널은 아니다. 이 말벌은 땅속에 집을 짓고 사는데 다른 말벌이 아침나절에 활발한 데 비해 이 말벌은 정오께 가장 왕성하게 활동한다. 이를 궁금하게 여긴 이스라엘 텔아비브 대학 과학자들은 이 말벌의 배를 두른 노란색 띠에 주목했다. 이 무늬는 독침을 조심하라는 경계 표시이기도 하지만 햇빛을 최대한 받아들이도록 정교한 얼개로 되어 있음이 드러났다. 연구자들은 이 말벌이 ‘태양전지판’에서 얻는 미세한 전기를 이용해 효소를 활성화하거나 체온을 보정하는 것으로 추정했다.
한편 진딧물은 가장 식물에 가까운 곤충일지도 모른다. 식물에 널리 분포하는 ‘카로티노이드(Carotinoid)’라는 색소가 있다. 광합성을 돕는 구실을 하는데 당근에 많이 들어 있는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진딧물은 곤충 가운데 유일하게 이 색소를 생산하는 유전자를 갖고 있다. 이 유전자는 곰팡이의 것인데 진딧물에게로 옮겨온 것이다. 유전자는 종종 종의 장벽을 뛰어넘어 이 생물에서 저 생물로 옮겨 다니기도 한다. 진딧물은 왜 이런 식물 색소를 갖게 됐을까? 보통 동물들은 먹이를 통해 카로티노이드를 섭취한다. 그러나 진딧물은 이런 거추장스러운 과정을 거치지 않고 아예 몸속에 카로티노이드 합성 유전자를 갖추고 직접 만들기로 한 것이다. 프랑스 니스 대학 연구자들은 진딧물 속의 이 색소가 빛을 받았을 때 아데노신삼인산(ATP)이라는 세포용 에너지원을 생산하는 기능을 한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이 과정은 바로 식물의 광합성에서 일어나는 일이다.
식물의 광합성 유전자를 가로챈 또 다른 사례도 있다. 미국 쪽 대서양에 서식하는 갯민숭달팽이의 일종이 그것인데, 이 연체동물은 광합성을 하는 조류를 먹이로 삼는다. 그런데 먹은 조류 속 엽록체는 소화시키지 않고 소화관 옆의 세포로 보내 광합성을 한다. 그래서 이 달팽이의 몸은 초록빛이다. 게다가 이 달팽이는 유전자 속에 먹이인 조류의 엽록체 유전자를 가지고 있다. 갯민숭달팽이가 조류의 유전자를 훔친 것이다.
사람은 물속에 알을 낳지도 않고, 피부가 곤충처럼 큐티클층으로 이뤄져 있지도 않다. 게다가 조류를 먹지도 않으니 조류의 광합성 유전자가 우리 몸으로 옮겨올 가능성은 없다. 요즘 과학자들이 한창 연구하고 있는 것은 인공 광합성이다. 나뭇잎에서 일어나는 화학반응을 흉내 내 햇빛으로 ‘밥’을 만들자는 것이다. 하지만 정원의 개나리 잎사귀의 효율에 미치려면 갈 길이 멀다. 우리는 식물을 모방하려 들면서도 탐욕을 버리지 않는다. 식물은 아낌없이 주는 존재 아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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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 ・ Ryan Kerney et al., “Intracellular invasion of green algae in a salamander host”, PNAS, vol. 108, no. 16(19 April 2011), pp. 6497~6502. DOI: 10.1073/pnas.1018259108
- ・ Jean Christophe Valmalette et al., “Light-induced electron transfer and ATP synthesis in a carotene synthesizing insect”, Scientific Reports, vol. 2, no. 579(2012). DOI: 10.1038/srep005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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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동물행동, 생태학부터 진화론, 동물복지, 자연사까지 기초자연과학과 첨단응용과학을 넘나들며 펼치는 흥미롭고 감동적인 생명들의 이야기. 살아 있는 그 모든 것들이 펼쳐내는..펼쳐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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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um백과] 광합성하는 도롱뇽의 느긋한 오후 – 자연에는 이야기가 있다, 조홍섭, 김영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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