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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기가 있다

마다가스카르 동물 표류기

어릴 때 몇 번이고 읽은 동화책 《십오 소년 표류기(Deux ans de vacances)》는 쥘 베른(Jules Verne)이 1888년 발표한 모험소설로 원제는 ‘2년간의 휴가’이다. 15명의 어린이가 휴가차 탄 보트가 표류해 도착한 남태평양의 무인도에서 2년 동안 살다가 탈출하는 내용을 다룬 흥미진진한 이야기이다. 새로운 세계와 모험을 향한 동경은 소년의 특권이지만, 사람뿐 아니라 동물의 유전자에도 그런 성향이 들어 있는 것 같다. 바다 한가운데 있는 섬에 어떻게 동물들이 살게 됐을까 궁금해하다가 든 생각이다.

아프리카 남동쪽의 섬나라인 마다가스카르는 세계에서 생물다양성이 가장 높은 곳으로 꼽힌다. 여우원숭이, 카멜레온, 바오밥나무 등으로 상징되는 이 섬의 동식물 가운데 약 90퍼센트는 세계 다른 곳에는 없는 고유종이다. 그래서 세계에서 네 번째로 큰 섬인 이곳을 생물학자들은 흔히 ‘여덟 번째 대륙’으로 부른다. 마다가스카르는 약 8,000만 년 전 아프리카와 분리됐다. 아프리카, 남아메리카, 오스트레일리아, 남극 대륙이 붙어 있던 곤드와나(Gondwana) 초대륙이 지판의 이동에 따라 떨어져나간 결과이다. 현재와 같은 포유류가 진화하기 전 일이었다. 그렇다면 이 섬의 동물은 어디서 왔을까.

마다가스카르 위성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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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세기 전만 해도 ‘육교 이론’이 정설이었다. 아프리카에서 마다가스카르는 400킬로미터나 떨어져 있으니 헤엄치기엔 너무 멀다. 양 지역을 잇는 기다란 육교 형태의 육지가 한때 있다가 사라졌다면 동물의 이동을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육교의 흔적이 전혀 없다는 게 이 이론의 치명적 약점이었다. 게다가 유인원, 사자, 코끼리 등 대형 포유류는 전혀 없고 안경원숭이, 설치류, 몽구스 등 작은 동물만 있는 사실도 특이하다.

여기서 일찍부터 ‘뗏목 이론’이 출현했다. 사람들은 경험을 통해 큰 홍수 때 나무나 작은 숲이 통째로 바다에 흘러간다는 사실을 안다. 실제로 폭 100미터에 작은 물웅덩이까지 있는 큰 숲이 200킬로미터 밖 바다에 떠내려간 일이 있다. 여기엔 뱀이나 쥐 같은 소형 동물은 물론이고 재규어, 퓨마, 사슴, 원숭이 그리고 어린이까지 타고 있었다는 기록이 있다. 만일 해류가 도와준다면 400킬로미터라도 이동할 수 없는 거리는 아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바닷물은 마다가스카르에서 아프리카 대륙 쪽으로 흐른다. 뗏목 이론은 벽에 부닥쳤다. 하지만 이 이론을 최근 지질학자와 생물학자들이 되살렸다. 판구조론(Plate Tectonics) 연구자들은 마다가스카르가 약 2,000만 년 전에는 현재보다 1,600킬로미터 남쪽에 있었고, 당시의 대륙 배치에서 해류는 아프리카 대륙에서 마다가스카르 쪽으로 흘렀음을 밝혔다. 이제 뗏목을 타고 동물이 이동할 여건이 마련된 것이다. 또한 분자유전학적 증거는 이 섬에 있는 영장류 101종의 조상은 4,000~5,000만 년 전 한 종이 분화한 것임을 보여준다.

큰 열대폭풍 때 쓸려나간 숲 조각에서 운 좋은 어느 영장류가 이 섬에 도착했음을 알 수 있다. 나중에 해류가 바뀌면서 이런 드문 ‘항해자’가 나올 기회는 영영 다시 오지 않았다. 훨씬 나중 일이지만, 마다가스카르엔 동물뿐 아니라 사람도 바다를 표류해 도착했다. 아프리카 옆구리에 붙은 이 섬 주민의 얼굴은 아시아 쪽에 가깝다. 최근 뉴질랜드 연구자들이 주민들을 대상으로 모계로만 유전되는 미토콘드리아 DNA를 분석한 결과 이 섬을 처음 정복한 원주민 가운데 가임기 여성은 약 30명이었고 그중 93퍼센트가 인도네시아계였다. 아시아인들이 사고를 당했든 이주 여행을 했든 간에 인도양을 건넜던 것이다.

물론 모든 섬의 동물이 ‘뗏목’을 타고 이동한 것은 아니다. 이구아나는 아메리카에 서식하는 파충류인데, 무려 8,000킬로미터나 떨어진 태평양 섬인 피지와 통가에도 분포한다. 뗏목을 타고 이동하려면 반년은 걸릴 거리이다. 과학자들은 유전자 연구를 통해 이 이구아나는 아메리카가 아니라 애초 아시아와 오스트레일리아에 살던, 그렇지만 원 서식지에서는 이미 멸종한 이구아나임을 알아냈다. 피지의 이구아나는 뗏목을 타고 아메리카에서 온 것이 아니라 그냥 이웃 마을에서 ‘걸어서’ 온 것이었다.

제주도처럼 빙하기 때 육지와 연결되었던 섬에는 육지와 마찬가지 동물이 산다. 반대로 한 번도 육지와 연결된 적이 없는 대양섬인 울릉도에는 해양포유류나 사람이 데려간 가축과 쥐, 개구리 말고는 포유류와 뱀, 개구리가 전혀 없다. 한강처럼 큰 강이 동해에 있었다면 육지와 최단거리가 137킬로미터인 울릉도로 ‘항해’를 시도한 동물이 있었을 것이다. 사실 홍수 때 큰 강으로 떠내려간 나무는 독특한 생태계를 형성했다. 18세기 말 미국 미시시피 강에는 홍수 때마다 길이가 16킬로미터에 이르는 나무뗏목이 형성되곤 했는데, 그 위에서 큰 나무와 다양한 생물이 자랐다. 한강과 낙동강도 큰 홍수가 나면 수많은 나무를 흘려보내 강 하구 생태계를 살찌웠을 것이다.

이제 광범위한 통신망과 휴대전화 덕분에 조난 가능성은 희박해졌고, 더욱이 입시 준비에 바쁜 청소년들은 휴가여행을 즐길 여유 자체가 없다. 《십오 소년 포류기》 같은 상황은 가상으로도 일어나기 힘들게 됐다. 마찬가지로 댐과 강변 개발로 인해 쓰러진 나무를 타고 동물이 하류로 이동하는 일도 불가능해졌다. 하지만 굴업도 등 서해안 섬에 유독 구렁이가 많은 걸 보며, 이들이 과거 거대한 홍수와 동물판 《십오 소년 표류기》의 유산일지 모른다는 상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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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 ・ Charles Q. Choi, “Species hiteched ride to Madagascar on floating Islands”, Livescience (19 March, 2012).
  • ・ Karen E. Samondsa et al., “Spatial and temporal arrival patterns of Madagascar’s vertebrate fauna explained by distance, ocean currents, and ancestor type”, PNAS, vol. 109, no. 14(3 April, 2012), pp. 5352~5357. DOI: 10.1073/pnas.1113993109 ; Murray P. Cox et al., “A small cohort of Island southeast asian women founded Madagascar”, Proceeding of the Royal Society B, vol. 279, no. 1739(2012). DOI: 10.1098/rspb.2012.0012
  • ・ Murray P. Cox et al., “A small cohort of Island Southeast Asian women founded Madagascar”, Proceeding of the Royal Society B(2012), pp. 2761~2768. DOI: 10.1098/rspb.2012.0012

조홍섭 집필자 소개

환경과 과학 분야에서 30년 가까이 통찰력과 이슈가 있는 기사와 칼럼을 써온 우리나라 환경전문기자 1세대이다. 생태보전, 원자력발전, 4대강 개발 등 1980년대 이 후 급부상하는 환경 현안들을..펼쳐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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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에는 이야기가 있다
자연에는 이야기가 있다 | 저자조홍섭 | cp명김영사 도서 소개

동물행동, 생태학부터 진화론, 동물복지, 자연사까지 기초자연과학과 첨단응용과학을 넘나들며 펼치는 흥미롭고 감동적인 생명들의 이야기. 살아 있는 그 모든 것들이 펼쳐내는..펼쳐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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