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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기가 있다 빈대 잡는 포도대장
강낭콩 잎
불가리아, 세르비아 등 유럽 남동부 지역의 주부들은 빈대에 물리지 않기 위해 밤중에 빈대가 들끓는 방 침대 옆에 강낭콩 잎을 펼쳐놓는다. 그러고는 이튿날 아침 빈대가 붙어 있는 콩잎을 태워버린다. 하지만 이런 전통적인 지혜는 별 관심을 모으지 못했다. 제2차 세계대전 때 나온 살충제 DDT가 훨씬 편리하고 강력한 수단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DDT와 함께 사라졌던 빈대가 최근 세계적으로 다시 기승을 부리고 있다. 호텔은 물론 학교, 극장, 병원 등에서도 빈대가 나온다. 빈대는 야행성이고 조금만 틈이 있으면 전화기나 시계 틈바구니 등 어디에나 숨을 수 있으며, 피를 빨지 않고도 1년을 버티는 등 매우 강인한 생명력을 지녔다. 게다가 천장과 벽을 타고 이동하고, 중고가구를 이용해 장거리로 퍼지며, 번식도 빨라 최근 미국 등 선진국에서도 큰 문제가 되고 있다.
미국 과학자들은 빈대를 퇴치하기 위해 발칸 반도의 오랜 지혜를 동원하기로 했다. 이를 위해 강낭콩 잎 위에 빈대를 놓고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주사전자현미경으로 관찰했다. 콩과 빈대는 진화적으로 아무런 관련도 없는데도, 콩잎은 빈대를 붙잡는 놀라운 능력을 보였다. 콩잎에는 ‘분비모(分泌毛)’라는 작은 갈고리가 다닥다닥 붙어 있는데, 콩잎을 디딘 빈대의 발을 이 갈고리가 휘감거나 관통하는 모습이 확인됐다. 빈대는 콩잎에서 몇 발짝 가지도 못하고 옴짝달싹하지 못하는 상태가 됐다.
연구진은 플라스틱 재질로 이 콩잎 구조를 고스란히 본뜬 물질을 만들어 실험을 했다. 예상한 대로 빈대는 플라스틱 콩잎에 걸려들었다. 하지만 곧 빠져나왔다. 핵심적인 부분은 콩잎 갈고리의 겉모습이 아니라 내부의 무언가였다. 어쨌든 빈대를 잡는 콩잎의 놀라운 능력은 확인한 셈이다. 현대 과학기법으로 현미경 수준에서 이를 흉내 낸 물질을 만들면 살충제를 쓰지 않고도 빈대를 물리칠 수 있을 것이다. 자연을 완벽하게 따라 하기는 힘들지만 그 혜택은 어마어마하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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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 Megan W. Szyndler et al., “Entrapment of bed bugs by leaf trichomes inspires microfabrication of biomimetic surfaces”, Journal of the Royal Society Interface, vol. 10, no. 83(6 June 2013). DOI: 10.1098/rsif.2013.0174
글
출처
동물행동, 생태학부터 진화론, 동물복지, 자연사까지 기초자연과학과 첨단응용과학을 넘나들며 펼치는 흥미롭고 감동적인 생명들의 이야기. 살아 있는 그 모든 것들이 펼쳐내는..펼쳐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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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um백과] 강낭콩 잎 – 자연에는 이야기가 있다, 조홍섭, 김영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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