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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둔한 사람을 가리키는 ‘닭대가리’라는 말이 있다. 비속어이지만, 그 밑바탕엔 닭에 대한 무시와 나아가 새들이 머리가 나쁘다는 생각이 깔려 있다. 하긴 새들은 다른 고등동물에 비해 머리가 아주 작고, 다른 가축이나 반려동물처럼 사람과 살갑게 지내는 종류도 매우 적기 때문에 이런 말이 나왔는지 모른다. 그러나 진화론에서 볼 때 조류는 매우 성공적인 분류군이다. 모두 6만 3,000여 종이 있는 척추동물 가운데 어류가 3만 4,000여 종으로 가장 많고 다음으로 조류가 1만 종을 차지해 포유류 5,400여 종보다 곱절 가까이 다양하다. 바로 하늘을 날 수 있다는 이점 덕분이다. 이동이 자유로운 새들은 다른 육상생물이라면 살아남기 힘든 곳에서도 잘 살아간다. 새의 머리가 작은 것은, 단단하고 무거운 이빨 대신 부리를 진화시킨 것과 함께 오로지 날기 위해 몸무게를 줄이려는 선택 때문이었다.

새들의 지적 행동이 처음 널리 알려진 것은 20세기 초 영국에서였다. 우리나라도 얼마 전까지 그랬지만, 당시 영국에서는 가까운 목장에서 짠 우유를 병에 담아 각 가정의 현관 앞에 배달했다. 멀리 배달하지 않아서 포장도 뚜껑 대신 알루미늄 포일을 덮는 간단한 방식이었다. 그런데 어떤 박새가 이 우유의 마개를 부리로 쫀 뒤 우유 위에 고여 있던 크림을 먹는 법을 개발했다. 1921년의 일이었다. 1947년엔 전국 30곳에서 그런 행동이 관찰됐다. 다른 박새들도 따라서 아침마다 배달된 우유의 크림 맛을 보게 된 것이다. 작은 박새의 이런 ‘사회적 학습’은 최근 실험으로도 증명됐다. 흥미롭게도 한 살짜리 어린 암컷 박새가 성체보다 곱절은 잘 배우는 것으로 나타났으며, 수컷 가운데는 지배적인 수컷보다 하위 수컷이 빨리 배웠다. 이는 새들에게 일종의 문화가 있다는 뜻으로, 돌연변이를 통한 유전적인 진화보다 훨씬 빨리 새로운 환경에 적응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새 가운데 똑똑하기로 유명한 것은 까마귀이다. 일본에서는 딱딱한 열매를 자동차가 지나가는 도로에 두었다가 바퀴에 껍질이 깨진 다음 횡단보도의 신호가 바뀌는 것을 보고 느긋하게 먹으러 가는 까마귀의 모습이 텔레비전에 방영되기도 했다. 〈영리한 까마귀〉라는 이솝 우화도 있다. 목마른 까마귀가 물이 반쯤 찬 물 단지를 발견했지만 부리가 짧아 물에 닿지 않았다. 생각 끝에 까마귀는 돌멩이를 단지 안에 집어넣어 수면이 올라오게 한 다음 물을 맛있게 먹었다. 실제 까마귀가 이런 행동을 할 수 있다는 것이 실험을 통해 밝혀졌다. 까마귀는 물이 든 단지와 톱밥이 든 단지 안에 먹이를 놓았을 때 물이 든 단지를 골랐고, 잔돌과 큰 돌 가운데 큰 돌을 넣어야 수위가 빨리 오른다는 것을 어렵지 않게 알아냈다.

그렇다면 아이들은 어떨까. 영국 케임브리지대 심리학자들은 까마귀를 대상으로 한 실험을 아이들에게 해보았다. 수면이나 톱밥 표면에 먹이 대신 표지를 올려놓고 이를 꺼내오면 스티커와 바꿔주는 실험이었다. 그 결과 4~7세 아이들은 다섯 번쯤 시행착오 끝에 문제를 해결했다. 까마귀와 비슷한 능력을 보인 것이다. 아이들은 8세부터 지적 능력이 비약적으로 높아져 시행착오 없이 단번에 표지를 꺼냈다. 그렇다고 7세 아이와 까마귀의 지능이 비슷하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돌을 집어넣을 때 수위가 올라가는 것을 직관적으로 보여주지 않도록 조작한 실험에서 까마귀는 좋은 성적을 거두지 못했지만 아이들은 다른 실험과 차이를 보이지 않았다.

추론하는 능력은 사람과 영장류에게만 발견되는 특성이다. 그런데 아프리카에 널리 분포하는 회색앵무에게도 그런 능력이 있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오스트리아 빈 대학의 동물행동학자들은 회색앵무를 상대로 먹이를 넣은 상자를 흔들었다. 상자에선 소리가 났고 이어 앵무는 먹이를 확인했다. 다음에는 먹이를 넣은 상자와 빈 상자를 차례로 흔들면서 반응을 관찰했다. 앵무는 빈 상자를 흔들면 어김없이 나머지 다른 상자를 찾았다. 하나가 비어 있다면 다른 것은 차 있다는 사실을 추론하는 것이다. 이처럼 단서뿐 아니라 ‘단서 없음’으로부터도 결론을 이끌어내는 능력은 사람과 유인원에게서만 보고돼 있으며, 사람은 3~4세가 돼야 그런 능력을 갖게 된다. 이 실험에서 회색앵무는 3세 아이 수준의 성적을 거뒀다.

사람과 영장류에만 있는 것으로 알려졌던 추론 능력을 보유한 아프리카 회색앵무

ⓒ Sandra Mikolasch, Proceedings of the Royal Society B | 저작권자의 허가 없이 사용할 수 없습니다.

뉴질랜드 대학 연구진은 머리가 나쁜 것으로 알려진 비둘기를 대상으로 숫자감각이 어느 정도인지 실험했다. 그 결과 비둘기는 적어도 수에 관한 한 영장류 못지않은 능력을 보유한 것으로 나타났다. 3마리의 비둘기에게 여러 가지 형태와 색깔의 물체를 하나, 둘 또는 3개씩 놓은 꾸러미를 컴퓨터 화면에 제시하고 작은 수에서 큰 수 순서로 대상을 쪼면 보상으로 먹이를 주는 방식이다. 예를 들어 노랑 사각형 하나, 붉은 타원 둘, 노란 막대기 3개 등이 든 꾸러미를 제시하는 것이다.

비둘기가 하나에서 셋까지를 크기 순서로 배우는 데는 1년이 걸렸다. 원숭이보다 훨씬 긴 기간이었다. 하지만 다음 단계의 실험에 들어간 뒤 연구자들은 깜짝 놀랐다. 비둘기들은 하나에서 셋까지만 배웠는데도 하나에서 아홉 가운데 2개의 꾸러미를 어느 조합으로 제시해도 평균 70퍼센트의 정답률을 보였다. 하나와 아홉처럼 두 수 사이의 격차가 큰 문제일수록 정답을 맞히는 확률도 높았고 응답시간도 짧았다. 비둘기가 배우지도 않은 수에 대한 추상적인 규칙을 알아낸 것이다. 이런 능력이 사람이나 영장류뿐 아니라 다른 동물들에게 널리 퍼져 있음이 차츰 밝혀지고 있다. 어떤 동물은 사람보다 나은 숫자감각이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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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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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홍섭 집필자 소개

환경과 과학 분야에서 30년 가까이 통찰력과 이슈가 있는 기사와 칼럼을 써온 우리나라 환경전문기자 1세대이다. 생태보전, 원자력발전, 4대강 개발 등 1980년대 이 후 급부상하는 환경 현안들을..펼쳐보기

출처

자연에는 이야기가 있다
자연에는 이야기가 있다 | 저자조홍섭 | cp명김영사 도서 소개

동물행동, 생태학부터 진화론, 동물복지, 자연사까지 기초자연과학과 첨단응용과학을 넘나들며 펼치는 흥미롭고 감동적인 생명들의 이야기. 살아 있는 그 모든 것들이 펼쳐내는..펼쳐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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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um백과] 새대가리는 없다자연에는 이야기가 있다, 조홍섭, 김영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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