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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기가 있다
고양이와 개의 은밀한 대화법
흔히 개와 고양이는 천성적으로 맞지 않아 아옹다옹 다투는 관계로 묘사된다. 사회성 동물로 붙임성이 좋은 개와 독립적 성격으로 자기 영역을 중시하는 고양이는 모두 육식성 포유류 집단을 가리키는 식육목에 속하지만 각각 개과와 고양이과를 대표할 정도로 다르다. 행동도 종종 정반대다. 고양이는 화가 나면 꼬리를 홰홰 내두르는데 개는 반가울 때 그런다. 개가 으르렁거리면 조심하라는 경고이지만 고양이의 그르릉 소리는 기분 좋다는 표시이다. 개가 귀를 뒤로 젖히면 쓰다듬어달라는 뜻이지만, 그런 고양이를 만지다간 할퀴이기 십상이다. 이렇게 사사건건 반대이니 만나면 싸움부터 하겠다고 짐작하면 오산이다. 실제로 개와 고양이를 함께 기르는 사람들에게 들어보면 싸우는 것보다 형제처럼 잘 지내는 관계가 훨씬 많다. 개와 고양이는 소통법을 알기 때문이다.
이스라엘 과학자는 개와 고양이가 엇갈리는 행동신호를 어떻게 극복하는지 연구해 대부분 자기 종에게는 정반대의 의미가 있는 상대의 몸짓언어를 잘 이해한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예를 들어 고양이는 코를 맞대고 인사하는 습성이 있는데, 개는 서로 엉덩이 냄새를 맡기는 해도 코를 맞대는 일은 거의 없다. 하지만 개와 고양이가 차이를 넘어 소통할 수 있는 것은 오랜 가축화 과정 속에서 주인의 행동언어를 습득하는 능력을 키웠기 때문으로 보인다.
물론 개와 고양이 사이의 효과적인 소통을 위해서는 몇 가지 요령이 필요하다. 먼저 어릴 때 만날수록 좋다. 고양이는 여섯 달 이전, 개는 한 돌 이전이면 훨씬 쉽게 상대를 받아들인다. 개와 고양이를 처음부터 함께 키운다면 가장 좋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어느 쪽을 먼저 집에 들일지도 신경 써야 한다. 언뜻 고양이는 외톨이에 자기 영역을 중시해 남을 받아들이길 꺼리고 반대로 개는 사회성 동물이어서 훨씬 관용적일 것 같다. 그러나 실상 이런 순서에 민감한 것은 개이고 고양이는 대범한 편이다. 개는 고양이보다 가축화가 훨씬 많이 진행돼 있어 사람에 대한 의존성이 매우 높다. 다시 말해 주인의 관심을 독차지하는 게 개에게는 아주 중요한 일이다. 따라서 나중에 들여온 고양이에게 관심이 집중되는 걸 시기하고 이상행동을 보일 수 있다. 고양이뿐 아니라 아기가 태어나도 비슷한 반응을 보이는 개가 있다.
개와 고양이는 행동언어뿐만 아니라 행동거지 자체가 다르다. 개는 말이나 사람과 마찬가지로 걸을 때 몸의 중심이 위아래로 출렁인다. 위치에너지를 운동에너지로 바꾸는 아주 효율적인 동작이다. 그러나 고양이의 걸음걸이는 조용하지만 에너지 낭비적이다. 고양이는 몸의 중심이 수평을 유지한 채로 걷는다. 먹이에서 눈을 떼지 않고 한 발 한 발 조심스럽게 내딛는다. 몸집이 작고 장거리 추적을 하지 않는 고양이로서는 에너지 효율보다는 은밀성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행동방식이 다른 고양이와 개지만 물 표면을 혀로 핥아 물 먹는 모습만은 비슷해 보인다. 그러나 고속촬영으로 고양이의 물 먹는 모습을 연구한 결과 개와는 전혀 다르고, 무엇보다 물리학을 절묘하게 이용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미국 매사추세츠 공대(MIT) 연구진은 10마리의 고양이가 물을 마시는 모습을 고속촬영하면서 뜻밖의 결과를 얻었다. 생물물리학자인 연구자는 아침을 먹으며 애완고양이인 쿠타쿠타가 물을 먹는 모습을 바라보다가 무언가 연구할 것이 있음을 깨달았다. 물을 마실 때 사람이나 말은 입술을 오므려 물을 빨아들인다. 구강구조가 다른 개는 물을 혀로 핥는데, 물소리와 물방울을 흩뿌리는 모습이 얌전하고 우아하게 핥는 고양이의 모습과는 사뭇 다르다. 이런 차이는 흔히 고양이의 가늘고 억센 섬모가 빽빽하게 돋아 있는 혀 때문인 것으로 생각되었다. 그러나 연구팀이 고속촬영한 화면을 보니 새로운 사실이 드러났다.
개는 혀를 위로 오므려 국자 모양으로 만든 뒤 물속으로 혀를 집어넣어 물을 담아 입속으로 가져간다. 이 과정에서 물 일부는 완벽하지 않은 ‘국자’ 옆으로 새어나간다. 반면 고양이는 물속으로 혀를 집어넣는 것이 아니라 혀를 뒤로 구부려 물 표면을 미끄러지듯 밀어올린다. 그러면 물은 혀의 움직임에 따른 관성력을 받아 작은 기둥을 만들면서 위로 솟아오르다 중력과 비기는 순간 무너져내린다. 고양이는 바로 이 순간 입을 닫아 공중에 뜬 물을 받아먹는다. 이때 타이밍이 중요하다. 물기둥이 가장 길고 두꺼우며 중력으로 무너지기 직전에 입을 닫아야 물을 잘 먹을 수 있다. 고양이는 물리학의 중력과 관성력이 절묘한 균형을 이루는 것을 이용해 물을 마시는 것이다.
연구진은 이런 행동이 고양이과의 다른 동물에게서도 나타나는지 보기 위해 동물원의 사자, 호랑이, 표범 등도 관찰했다. 고양이보다 큰 혀를 가졌지만 이들도 고양이처럼 우아한 물먹기 행동을 보였다. 이처럼 고양이과 동물들이 물이 튀기지 않는 방식으로 물을 먹게 된 것은 민감한 감지기관인 코와 수염에 물이 묻는 것을 피하기 위해서였을 것으로 연구자들은 추정했다. 독립생활을 하는 고양이는 개보다 훨씬 조심스럽고 행동이 단정하다. 홀로 살아야 하는 동물에겐 자칫 조그만 실수나 부상이라도 치명적일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가정에서 기를 때도 개보다 돌보기가 수월한 것이 사실이다. 개보다 가축화의 역사가 훨씬 짧아 덜 친근하고 낯설지만 오히려 그것이 고양이만의 밀고 당기는 묘한 매력일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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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 ・ N. Feuerstein & Joseph Terkel, “Interrelationships of dogs (Canis familiaris) and cats (Felis catus L.) living under the same roof”, Applied Animal Behaviour Science, vol. 113(2008) pp. 150~165. DOI: 10.1016/j.applanim. 2007.10.010
- ・ Pedro M. Reis et al., “How cats lap: Water uptake by felis catus”, Science(26 no. ember 2010), pp. 1231~1234. DOI: 10.1126/science.1195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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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동물행동, 생태학부터 진화론, 동물복지, 자연사까지 기초자연과학과 첨단응용과학을 넘나들며 펼치는 흥미롭고 감동적인 생명들의 이야기. 살아 있는 그 모든 것들이 펼쳐내는..펼쳐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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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um백과] 고양이와 개의 은밀한 대화법 – 자연에는 이야기가 있다, 조홍섭, 김영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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