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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행동학에서 인지능력을 알아보는 실험으로 다음과 같은 것이 있다. 안이 들여다보이지 않는 2개의 통 가운데 하나에 과자를 넣는다. 냄새가 나지 않도록 뚜껑을 꼭 막는다. 실험자는 가리키거나 쳐다보는 식으로 어느 쪽에 과자가 숨겨져 있는지 동물에게 슬쩍 암시를 준다. 실험대상인 원숭이와 개 가운데 어느 쪽이 과자를 더 많이 찾을 수 있을까. 정답은 개이다. 심지어 생후 아홉 달 된 강아지와 다 자란 원숭이를 이 게임에 붙여놓아도 강아지가 이긴다.

지능만으로 따진다면 개가 원숭이를 따라갈 수 없다. 예를 들어 원숭이는 거울 속에 비친 자신을 알아보지만 개는 그런 자의식이 없다. 고슴도치 가시에 코를 찔려 낑낑대는 동료를 옆에 두고도 고슴도치에 코를 들이대는 게 개다. 그러나 이 실험은 개가 사람의 사소한 동작에서 의미를 잡아내는 탁월한 능력을 타고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개는 지난 수만 년 동안 사람과 살아오면서 독특한 인지능력을 길러왔다. 우리가 개를 아는 것보다 개는 우리를 더 잘 안다.

개는 돼지나, 양, 소 등보다 먼저 사람이 길들인 최초의 가축이다. 하지만 개의 기원은 최근까지도 수수께끼였다. 습성이나 외모로 보아서 개는 늑대와 가까울 것으로 누구나 짐작했지만 딱 부러진 근거는 없었다. 진화론의 선구자인 찰스 다윈은 개가 늑대, 코요테, 자칼 등이 복잡하게 교배해 만들어진 종이라고 믿었다. 노벨 생리의학상 수상자인 콘래드 로렌츠(Konrad Lorenz)는 개의 일부는 자칼, 나머지는 늑대에서 왔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개의 기원에 관한 좀 더 분명한 그림이 나오기 위해서는, 유전자 지문을 검색하는 분자생물학의 도움이 필요했다. 캘리포니아대 로스앤젤레스 캠퍼스의 로버트 웨인(Robert Wayne)이 이끄는 국제 연구진은 1997년 마침내 “개는 길들인 늑대”라는 결론을 내렸다.

사실 우리가 기르는 개의 학명 ‘카니스 루푸스 파밀리아리스(Canis lupus familiaris)’는 ‘가족처럼 친근한 늑대’라는 뜻이다. 연구진은 전 세계의 개 67종 140마리와 늑대 162마리로부터 세포를 얻어 그 속의 DNA 지문을 분석했다. 그 결과 개의 유전자는 늑대와 단 1퍼센트만 달랐다. 늑대와 코요테의 유전자 차이가 6퍼센트임을 감안하면 개와 늑대가 얼마나 비슷한지 알 수 있다. 개와 늑대는 교배가 가능하고 둘 사이에서 태어난 ‘늑대개’는 번식력이 있다. 이 연구는 모계를 통해서만 유전되는 미토콘드리아 DNA를 분석 대상으로 삼았다. 모든 개의 어머니를 거슬러 올라가보니 마지막에 4마리에 이르렀다. 이들은 말하자면 ‘이브 개’인 셈이다. 이 가운데 하나는 암늑대였고, 나머지 셋은 늑대와 가축화된 늑대, 즉 개 사이의 교배로 생겨난 것으로 밝혀졌다.

북극늑대와 알래스카 맬러뮤트를 교배한 늑대개

ⓒ Mariomassone, Wikimedia Commons | 저작권자의 허가 없이 사용할 수 없습니다.

개가 어디서 기원했는지는 오랜 논란거리이다. 스웨덴 웁살라대 동물학자 카를레스 빌라(Carles Vila)의 연구로는, 개의 유전적 다양성은 동아시아가 가장 풍부하다. 이 지역이 가장 일찍부터 개를 길들였다는 뜻이다. 그러나 새로운 연구결과가 잇따라 나오면서, 최근 동아시아설과 중동설에 이어 유럽설이 강력하게 대두되고 있다. 고대 개와 늑대 화석의 DNA를 분석한 결과 개는 지금은 멸종한 유럽의 회색늑대로부터 출발했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고고학자들이 찾아낸 가장 오래된 개의 화석은 서아시아에서 발견된 1만 4,000년 전의 것이다. 그러나 유전자 분석의 결과는 달랐다. 개의 기원은 3만~13만 5,000년까지 거슬러 올라갔다. 지금까지는 인류가 농경생활을 하면서 정착한 이후 개를 길들인 것으로 추정했지만 연구결과는 개와 함께한 인류의 역사는 이보다 훨씬 길다는 것을 보여준다. 아마도 5만 년 전 인류의 조상이 아프리카를 떠나 세계로 퍼져나갔을 때 이미 이 수렵채취인들 곁에는 개가 있었던 것 같다.

그 첫 만남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어떤 늑대 무리가 사람들 주변을 얼쩡거리게 됐을 것이다. 늑대는 작은 무리를 지어 사냥과 채집을 하는 사람들이 남긴 음식찌꺼기를 노렸을지도 모른다. 늑대는 사냥꾼이지만 동시에 청소부이기도 하다. 당연히 사람을 덜 무서워하는 늑대에게 먹이를 얻을 기회가 더 많이 돌아갔을 것이고 새끼를 더 많이 남겼을 것이다. 최근 스웨덴 웁살라대 연구자들은 세계의 개와 늑대 유전자를 비교한 결과 개에게는 늑대와 달리 전분을 분해하는 유전자가 활성화돼 있음을 밝혀냈다. 이 연구결과는 이른바 ‘청소부 가설’을 결정적으로 뒷받침한다. 늑대가 사람을 선택했고 그 결과 개가 탄생했다는 설명이다.

이 가설은 여러 가지 변형이 가능하다. 예컨대 사람 주변을 얼씬거리던 늑대의 새끼들을 사람이 가져다 기르는 일을 상상할 수 있다. 실제로 인류의 조상은 주변의 동물을 가축화하려는 시도를 끊임없이 했다. 늑대는 사회성 동물이다. 어릴 때 사람 손에서 자란 늑대 새끼는 사람을 자기 무리의 우두머리로 간주해 복종한다. 집에서 기른 늑대의 유용성은 곧 밝혀졌을 것이다. 아이들에게 친구처럼 놀이 상대가 되는 것은 물론이고 집이나 다른 가축을 지켰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사람보다 뛰어난 사냥능력이다. 어떤 연구자들은 개의 가축화가 인류를 멸종에서 살린 구세주였다는 주장을 펴기도 한다. 늑대는 무리를 이뤄 사냥하는데, 사냥한 먹이는 잡은 늑대가 먹는 것이 아니라 우두머리에게 바쳐 권력 순서대로 나눠 먹는다. 길들인 늑대는 아마도 먹이를 사냥한 다음 먹지 않고 주인을 기다렸을 가능성이 높다. 사람의 육체능력과 도구로는 도저히 불가능했던 사냥이 늑대를 이용해 가능했을 것이다. 물론 다른 가축과 마찬가지로 늑대는 식량 사정이 나빠졌을 때를 대비한 살아 있는 비상식량이자 잠자리를 덥히는 침낭 구실도 했을 것이다.

일단 사람과 함께 살기 시작했더라도 늑대가 개로 바뀌는 과정은 쉽지 않았을 것이다. 수만 년이나 지난 지금도 우리는 성난 개의 이빨에서 늑대를 어렵지 않게 연상할 수 있다. 인류의 조상은 좀 더 온순하고 사람 말을 잘 듣는 개체들을 선택해 기르는 육종을 의도적으로 오랜 세월 거듭했을 것이다. 그 가능성을 확인한 실험도 있다. 옛 소련의 유전학자 드미트리 벨랴예프(Dmitri Belyaev)는 1959년 매우 독특한 실험에 착수했다. 야생동물의 가축화는 온순함을 기준으로 선택을 계속한 결과라는 가설을 입증하기로 마음먹은 것이다. 그는 1985년 세상을 떴지만 뒤를 이은 과학자가 현재도 진행 중인 이 장기 실험은, 늑대로부터 어떻게 개가 탄생했는지를 알아낼 흥미로운 단서를 제공한다.

벨랴예프는 은여우 암컷 100마리와 수컷 30마리를 1세대로 삼아 사람에 대한 공격성이 낮고 두려움이 적은 새끼만을 골라 번식을 이어갔다. 새끼가 태어난 직후 서너 달 동안 사람이 젖을 먹이고 쓰다듬어주는 등 접촉을 강화했다. 불과 4세대 만에 사람이 다가가면 낑낑대고 꼬리를 흔드는 ‘다정한’ 여우가 출현했다. 그 비율은 30세대 만에 49퍼센트에 이르렀고, 반세기가 지난 현재 약 70퍼센트를 차지한다. 멀리서 사람을 보면 달려와 만져달라고 조르고 꼬리를 치는 이 길들인 여우는 성격뿐 아니라 형태도 달라져, 몸에 반점이 생기고 꼬리가 둥글게 말리는가 하면 귀가 접히고 두개골이 짧고 뭉툭해졌다. 늑대가 개로 바뀐 것처럼, 북극에 사는 야생동물 은여우가 가축이 된 것이다. 실제로 실험을 하고 있는 러시아 세포학 및 유전학연구소는 이 여우를 애완동물로 판매하기도 한다.

러시아 세포학및유전학 연구소에서 길들인 은여우

ⓒ Lyudmila Trut, American Scientist | 저작권자의 허가 없이 사용할 수 없습니다.

이 실험이 보여주는 건 한마디로 나이를 먹어도 어린 모습을 간직한 늑대가 바로 개라는 것이다. 인류는 오랜 선택 끝에 사납지 않고 사람 말을 잘 듣는 ‘어린 늑대’를 만들어냈고, 그 과정에서 늑대는 사람의 행동을 재빨리 이해함으로써 보살핌과 먹이를 제공받는 기회를 얻었다. 이 실험은 온순함을 선택하는 것만으로 동물의 형태와 생리까지도 바꿀 수 있음을 보여준다.

그렇지만 과연 사람이 이런 식으로 늑대를 길들였는지는 논란거리다. 무엇보다 인류는 한 번도 늑대를 부드럽게 대한 적이 없다. 포식자인 사람은 늑대를 늘 경쟁자로 여겨 몰아냈다. 우리나라만 해도 조선총독부의 자료를 보면, 1914년 늑대에 물려 죽은 사람은 113명으로 호랑이에게 죽임을 당한 8명을 크게 웃돈다. 그해 늑대 122마리, 이듬해에 106마리를 ‘해로운 짐승을 없앤다’는 명목으로 잡아 죽였다. 현재 늑대는 남한에서 사실상 멸종된 상태이다. 늑대가 사람의 사냥을 도왔다는 주장이 있지만, 늑대 자체가 고기를 많이 먹는 대식가인데다 늑대의 도움 없이도 인류는 이미 매머드 등 대형 동물을 무더기로 사냥해 멸종의 길에 몰아넣은 빼어난 사냥꾼이었다는 반론에 부닥친다.

어떤 가설이 맞든 간에, 오늘날 전 세계에는 모두 350품종 4억 마리의 개가 산다. 포유류 가운데 인간을 빼고 이처럼 성공한 예는 드물다. 수많은 동료 인간이 식량 부족으로 죽어가는데도 인류는 애완견 사료를 생산하느라 막대한 돈을 쓰고 있다. 이만하면 늑대의 변신은 성공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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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 ・ O. Thalmann et al., “Complete mitochondrial genomes of ancient canids suggest a european origin of domestic dogs”, Science, vol. 342, no. 6160(15 November, 2013) pp. 871~874, DOI: 10.1126/science.342.6160.785
  • ・ Erik Axelsson et al., “The genomic signature of dog domestication reveals adaptation to a starch-rich diet”, Nature(2013). DOI: 10.1038/nature11837
  • ・ L. N. Trut et al., “An experiment on fox domestication and debatable issues of evolution of the dog”, Russian Journal of Genetics, vol. 40, no. 6 (2004), pp. 644~655. Translated from Genetika, vol. 40, no. 6(2004), pp. 794~807.

조홍섭 집필자 소개

환경과 과학 분야에서 30년 가까이 통찰력과 이슈가 있는 기사와 칼럼을 써온 우리나라 환경전문기자 1세대이다. 생태보전, 원자력발전, 4대강 개발 등 1980년대 이 후 급부상하는 환경 현안들을..펼쳐보기

출처

자연에는 이야기가 있다
자연에는 이야기가 있다 | 저자조홍섭 | cp명김영사 도서 소개

동물행동, 생태학부터 진화론, 동물복지, 자연사까지 기초자연과학과 첨단응용과학을 넘나들며 펼치는 흥미롭고 감동적인 생명들의 이야기. 살아 있는 그 모든 것들이 펼쳐내는..펼쳐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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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um백과] 늑대는 왜 개가 되었나자연에는 이야기가 있다, 조홍섭, 김영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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