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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자연에는 이
야기가 있다
지뢰밭이 지킨 평화의 숲

철원 소이산

텃밭이 딸린 집터를 60년쯤 방치하면 어떻게 될까. 흙먼지 날리던 학교 운동장은 그 기간 동안 어떻게 바뀔까. 강원도 철원군 철원읍 사요리에 가면 이런 궁금증을 풀 단서를 찾을 수 있다. 한국전쟁으로 황폐해진 뒤 군사 목적으로 매설한 지뢰가 사람의 간섭을 최소화했기 때문이다. 개발 압력이 큰 온대지방이 이렇게 반세기가 넘도록 사람의 손길로부터 차단된 곳은 세계에서도 드물다. 이는 한국의 비무장지대의 생태적 가치가 국제적으로 주목받는 이유이기도 하다.

소이산(해발 362미터)의 주소지는 철원읍 사요리 산1번지이다. 북한이 1946년 지은 3층짜리 건물인 노동당사 건너편에 위치한 야트막한 산이다. 산을 희게 물들인 아까시나무 꽃을 따라 양봉가의 벌통이 널려 있다. 소이산은 민간인출입 통제선 밖에 있지만 주요한 군사시설이 많아 출입이 통제돼왔다. 그 덕분에 전쟁 이후 반세기 동안 읍내 야산이 스스로 변화해온 모습이 간직돼 있다. 일제 때 토사방지림과 연료림으로 많이 심은 아까시나무가 아직도 숲의 주인 행세를 하고 있다. 길가에 무리지어 돋아난 외래종이자 생태교란종인 단풍잎돼지풀은 이곳에 오랫동안 군사기지가 있었음을 말해준다. 한국산림기술인협회 회장 마상규 박사는 “이곳은 외래종인 아까시나무가 향토수종에 앞서 황폐한 땅을 선점한 이후 앞으로 어떻게 바뀌어나갈지를 생태사회학적으로 연구할 최적지”라고 말했다.

산 중턱 이후부터는 아까시나무가 줄고 생강나무, 갈참나무, 때죽나무 등 토종 나무들이 많이 눈에 띈다. 그대로 놔두면 아까시나무가 산을 점령할 것이라는 우려는 근거가 없음이 드러난다. 한때 ‘아까시나무 망국론’이 있었다. 외래종인 이 나무가 왕성한 번식력으로 우리 산을 망가뜨릴 것이라는 주장이었다. 의도하진 않았지만 이곳에선 60년째 그 실험을 하고 있는 셈이다.

북미 원산인 아까시나무는 19세기 말 우리나라에 들어온 이래 1970년대까지 심은 대표적 조림수종이다. 특히 어릴 때 베어내면 이듬해 또 그만큼 자랄 정도로 생장이 왕성하고 척박한 땅에서도 잘 자라 연료림과 사태방지림으로 널리 심었다. 절정기는 1970년대로, 전국의 아까시나무 면적은 지금보다 5배 이상 많은 32만 헥타르에 이르렀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중요한 꿀 공급 식물이자 산림녹화에 기여했지만, 생활력이 너무 강해 퇴치가 곤란한 나무라는 편견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하지만 뿌리가 얕고 목재의 비중이 큰 무거운 나무여서 바람 피해를 잘 받아 대개 50년을 넘기지 못한다. 무엇보다 산림이 건강해지면서 아까시나무의 설 자리가 점차 사라지고 있다. 아까시나무는 토양이 황폐한 곳에 먼저 들어오는 선구수종이지만, 다른 나무와 경쟁을 하는 경우나 그늘진 환경에서는 잘 견디지 못한다. 헐벗은 산에서 묵묵히 제 구실을 하고 난 뒤 산이 다시 푸르러지면 자리를 비켜주는 것이다. 소이산의 아까시나무숲은 그런 모습을 보여준다.

소이산 정상에 오르면 눈앞이 확 트인다. 주변과 표고차가 200여 미터밖에 안 되지만 1,000미터급 고산에 오른 느낌이다. 널찍한 철원평야와 비무장지대, 그리고 그 건너 북한의 평강고원이 한눈에 들어온다. ‘논의 바다’ 철원평야에 떠 있는 작은 섬이다. 철원평야를 한눈에 굽어보는 가치 때문에 이곳엔 고려 때부터 봉수대가 설치돼 함경도 경흥에서 서울로 연결되던 경흥선 봉수로에 속해 있었다. “이 산이 없었다면 전쟁 때 철원평야를 지킬 수 없었을 것”이라는 군부대 공보참모의 설명이 실감났다.

소이산에서 내려다본 철원평야와 건너편 북한 평강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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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산물검사소 등 과거의 주요 건물은 근대 문화유적으로 남았지만 농가와 논밭의 상당수는 습지와 숲으로 바뀌었다. 마상규 박사는 “통일이 돼 철원에 평화도시가 조성된다면 소이산은 그 조망점으로서 서울의 남산과 같은 구실을 할 것이다. 평화의 숲이자 도시의 산림공원으로서 보전하고 개발하는 길을 찾아야 한다”라고 말한다. 시민단체 ‘생명의 숲’이 2006년 소이산을 ‘천년의 숲’ 수상지로 선정한 것도 ‘평화의 숲’으로서의 가치를 인정해서였다.

소이산의 북쪽 산자락은 모두 지뢰지대이다. 노동당사에서 국도 87호선을 따라 대마리로 향하는 길 양쪽은 옛 철원의 시가지였지만 지난 60여 년 동안 지뢰 통제구역으로 묶였다. 그동안 묵논은 습지로, 묵밭과 집터는 숲으로 바뀌었다. 소이산 자락에서 출입영농을 하는 현응기 씨는 “지뢰지대 안에 고사리와 고라니가 많지만 폭발사고가 나 사람들이 들어가길 꺼린다”라고 말했다. 지금까지 이곳에 대한 생태조사도 이뤄진 적이 없다. 전문가들은 소이산의 생태적 가치는 훼손이 심한 산 위보다 산자락의 지뢰지대가 높을 것으로 본다. 도로를 따라 지뢰지대를 밖에서 둘러보면 아까시나무, 버드나무, 신나무와 함께 마을에서 심어 기르던 호두나무, 뽕나무 등도 눈에 띈다. 마 박사는 “지금은 모두 사라진 서울의 평지 숲의 원형이 여기 남아 있다”라고 설명했다.

소이산 건너편의 지뢰지대는 넓은 초지를 키 큰 포플러나무와 아까시나무가 둘러싼 모습이 독특하다. 해방 때 2,600여 명의 졸업생을 냈던 철원공립보통학교 터이다. 운동장은 초원이 됐고 귀퉁이는 고랭이, 부들 등이 자라는 습지가 됐다. 온대지역에서 이렇게 오랫동안 사람의 간섭이 중단된 채 생태계의 천이(遷移)와 복원이 이뤄진 곳은 세계적으로도 드물다. 물론 소규모 지뢰지대여서 인접한 도로와 군부대의 영향을 받았기 때문에 사람의 손길에서 완전히 벗어난 것은 아니란 지적도 나온다. 그러나 김명진 국립환경과학원 자연평가연구팀장은 “최근 민통선 지역인 백암산에서 희귀한 사향노루 서식지가 발견된 것처럼, 사람의 발길이 뜸해진 민통선 인근 지역은 우리가 생각지도 못했던 생태적 가치가 발견될 잠재력을 지닌다”라고 말했다. 분명한 것은 전쟁의 유물인 지뢰밭이 지킨 숲의 가치는 아직도 베일에 가려져 있다는 사실이다.

어느 날 갑자기 인류가 사라진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를 알아보기 위해 《인간 없는 세상(The World Without Us)》을 지은 앨런 와이즈먼(Alan Weisman)은 세계 곳곳을 다녔는데, 그 가운데 하나가 비무장지대이다. 그가 철책선의 전망대 대신 철원의 소이산을 찾았다면 자연과 인간의 역동적 상호관계를 훨씬 실감나게 묘사할 수 있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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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홍섭 집필자 소개

환경과 과학 분야에서 30년 가까이 통찰력과 이슈가 있는 기사와 칼럼을 써온 우리나라 환경전문기자 1세대이다. 생태보전, 원자력발전, 4대강 개발 등 1980년대 이 후 급부상하는 환경 현안들을..펼쳐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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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에는 이야기가 있다
자연에는 이야기가 있다 | 저자조홍섭 | cp명김영사 도서 소개

동물행동, 생태학부터 진화론, 동물복지, 자연사까지 기초자연과학과 첨단응용과학을 넘나들며 펼치는 흥미롭고 감동적인 생명들의 이야기. 살아 있는 그 모든 것들이 펼쳐내는..펼쳐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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