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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기가 있다 300년간 모래바람 막아준 해안솔밭
관매도 솔숲
“폭풍을 피해 관매도에 배를 댔는데, 솔숲에 들어갔더니 촛불도 꺼지지 않았다고 한다.” 부친이 어업을 하는 진도군청 직원의 말이다. 전남 진도군 조도면에 위치한 관매도는 한반도의 남서쪽 끝인 진도군 팽목항에서 다시 24킬로미터 떨어진 면적 5.73제곱킬로미터의 작은 섬이다. 다도해해상국립공원에 포함돼 있으며, 관매도 해수욕장을 포함한 관매8경이 빼어난 경관을 자랑한다. 관광객이 여름 성수기를 지나서도 끊이지 않고, 솔밭 트래킹 등 걷는 관광도 관심을 받고 있다. 300여 년 역사를 지닌 이곳의 해송림은 전국에서 가장 크고 아름다운 해안림 가운데 하나로 이름을 알리고 있다. 또한 이 숲은 앞으로 소나무숲을 어떻게 관리해나갈 것인가 하는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는 곳이기도 하다.
관매도 해송림은 거무스름한 수피를 지닌 우람한 곰솔이 백사장을 따라 기다란 띠 모양으로 펼쳐져 있다. 숲 안에 들어서면 파도와 바람 소리가 뚝 끊기며 갑자기 아늑해진다. 소나무숲의 폭은 무려 200미터고 길이는 2킬로미터에 이른다. 진도군은 1600년께 강릉함씨가 이 섬에 들어와 마을을 일궜다고 설명한다. 소나무숲은 주민들이 “살기 위해서” 조성했다. 해송림이 있는 해안은 북서풍이 불어오는 모래언덕이다. “관매도 처녀는 모래 서 말을 먹어야 시집을 간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바람 세고 모래 많은 곳이었다. 모래밭 위에 솔숲을 만드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관매리 주민 이규종 씨는 “조상들이 억새 등을 엮어 만든 발로 바람을 막아 소나무 묘목을 길렀다는 얘기를 들었다”라고 말했다.
2010년 문을 닫은 관매초등학교 근처에는 어른 두 아름은 되는 곰솔 거목이 있어 숲의 역사를 말해준다. 해송림 13헥타르에는 모두 4,600여 그루의 소나무가 있는데, 가슴둘레가 평균 42센티미터에 이르고 수령은 150~300년으로 추정된다. 조선시대부터 길러온 소나무들은 일제강점기에 수난을 당하기도 했다. 이규종 씨는 “전봇대로 쓰려고 곧고 굵은 소나무를 베어내 해변에 쌓아두었는데 전쟁이 끝나 그대로 썩어버렸다”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해방 뒤 혼란과 가난 속에서 어떻게 솔숲을 지킬 수 있었을까. 주민 이현심 씨는 “마을에서 관리인을 두어 소나무를 훼손하지 못하도록 감시했지만 바람이 세 나뭇가지가 많이 떨어지는 날엔 숲을 열어 주민들이 땔감으로 쓰도록 했다”라고 증언했다.
정작 관매도 해송림의 위기는 다른 데서 왔다. 2004년 솔껍질깍지벌레가 번져 소나무의 30퍼센트가 죽었고, 수세가 약해진 숲에 소나무좀이 발생해 고사가 이어졌다. 2010년 태풍 무이파는 염해와 풍해를 불러와 아직도 숲 여기저기에서 누렇게 말라죽어가는 소나무를 쉽게 볼 수 있다. 특히 해송림의 북쪽 절반은 심각하게 손상을 입었다. 하지만 솔숲을 지키려는 주민과 지자체의 노력이 결실을 맺어 2010년에는 생명의 숲이 주관하는 아름다운 숲 전국대회에서 생명상을 받았다. 호남생태정보센터 김세진 소장은 “관매도 해송림은 다른 해안 방풍림에 견줘 규모가 큰데다 공중의 습기에 의존해 사는 착생식물인 풍란과 일엽초가 자생하는 생태적 가치 높은 숲”이라고 평가했다.
관매도는 멸종위기종 1급 식물인 풍란의 유일한 자생지이자 복원지이기도 하다. 풍란은 우리나라 난 가운데 남획의 피해가 가장 심한 종이다. 남해안의 거제도, 거문도, 완도, 흑산도와 제주도 등에서 자생했으나 관매도를 빼고는 모두 사라졌다. 관매도에서도 2002년 50여 개체가 발견됐으나 이듬해 모두 사라져 섬의 다른 곳에서 구한 2~3개체로부터 씨앗을 받아 복원에 나설 수밖에 없었다. 풍란은 따뜻한 해풍이 불고 안개가 많은 남부지방 바닷가 절벽이나 나뭇가지에 붙어살며, 공중에 드러난 뿌리로 질소를 고정한다. 처음 3년간 일본산 풍란 9,000포기로 예비복원을 했을 때는 절반이 사라졌다. 특히 사람 손이 닿는 2미터 이하의 풍란은 거의 모두 떼어졌을 만큼 손을 많이 탔다. 그래서 2006년 복원 때는 높이 3~5미터의 높은 나무에 풍란을 붙였다.
2011년 7월 28일 관매초등학교 옆 곰솔 위에 붙어 자라던 풍란이 흰 앙증맞은 꽃을 피웠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희귀한 난이 인공증식된 이후 자연에서 처음으로 개화에 성공한 것이다. 복원사업을 맡은 순천향대 생명과학과 신원철 교수팀은 환경부의 지원을 받아 2006년 인공증식한 풍란 1만 5,000포기를 해송 100그루에 부착한 터였다. 그로부터 5년 만에 복원을 향한 첫 성과가 나타난 것이다. 자연에 증식한 풍란 개체가 씨앗을 맺어 어린 개체가 태어난다면, 지리산에 풀어놓은 반달가슴곰이 새끼를 낳은 것처럼 자생개체군이 생겨났다는 평가를 받게 된다. 멸종위기종 1급인 풍란은 한 개체라도 귀하다. 관매도 풍란 복원은 주민들의 참여로 이뤄지고 있다. 주민들은 ‘바람난 섬’이라는 브랜드를 만들어 생태관광을 추진하면서, 주민들이 회원으로 가입한 진도풍란보존회를 통해 정기적으로 모니터링을 하고 있다.
관매도 해송림의 가장 큰 고민은 바로 소나무가 주인인 숲을 유지하는 것이다. 과거 숲 바닥을 긁어 연료림으로 쓰던 때는 소나무 이외의 다른 나무가 전혀 없었다. 주민들은 “맨발로 숲 속을 다녀도 될 만큼 숲 바닥엔 아무것도 없었다”라고 기억했다. 하지만 숲 바닥에 손을 대지 않자 팽나무, 사스레피나무, 예덕나무 등 난대수종이 무성한 하층식생을 이루게 됐다. 게다가 병충해로 인해 빽빽하던 숲에 빈틈이 생기고 소나무의 기력을 회복시키기 위해 토양개량제를 뿌리자, 하층식생은 더욱 세력을 늘릴 조짐이다.
김세진 소장은 “그대로 내버려두면 소나무숲은 수십 년 안에 난대림에 자리를 내줄 수밖에 없다. 소나무의 생육상태가 급격히 나빠질 가능성이 있어 인위적인 간섭이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문제는 소나무숲을 유지하는 데 관리 부담이 크다는 점이다. 진도군청 담당자는 “어린 소나무는 병해충에 쉽게 죽어 후계림 유지가 어렵고, 지난 10년 동안 국비를 포함해 10억 원이 든 관리비용도 적지 않은 부담”이라고 말했다. 섬 주민들이 어렵게 만든 해송림은 주민의 삶을 지켜주었지만, 이제는 사람들이 숲의 생존을 돌봐줘야 할 때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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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행동, 생태학부터 진화론, 동물복지, 자연사까지 기초자연과학과 첨단응용과학을 넘나들며 펼치는 흥미롭고 감동적인 생명들의 이야기. 살아 있는 그 모든 것들이 펼쳐내는..펼쳐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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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um백과] 관매도 솔숲 – 자연에는 이야기가 있다, 조홍섭, 김영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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