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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기가 있다

물장군 수컷이 폭군 암컷과 살아가는

어린 시절 둠벙이나 연못에서 물고기를 잡으며 놀다가 그물에 걸린 커다란 물벌레를 보고 화들짝 놀라곤 했던 기억이 난다. 어린애 손바닥만 한 크기에 날카로운 발톱이 달린 커다란 앞발을 치켜든 모습이 위협적인 물장군이 그 주인공이다. 물장군은 몸길이 5~7센티미터로 우리나라 노린재류 가운데 가장 큰 곤충이다. 한국, 일본, 중국, 극동러시아, 동남아시아 등에 분포하는데, 동남아에서는 요깃거리에 쓰이기도 한다. 물장군은 물벌레이지만 물 밖에 알을 낳고 척추동물인 물고기와 개구리를 잡아먹는 포식성이 강한 특이한 곤충이다. 이런 포식성은 알에서 깬 직후인 애벌레 때부터 나타나며 같은 종끼리 서로 잡아먹는 동종포식도 흔히 벌어진다. 알에서 깬 애벌레의 약 10퍼센트가 형제의 입속에서 사라진다.

제 몸보다 큰 버들치를 잡아먹는 어린 물장군

ⓒ 김영사 | 저작권자의 허가 없이 사용할 수 없습니다.

물장군 성충이 다른 성충을 잡아먹는 모습

ⓒ 김영사 | 저작권자의 허가 없이 사용할 수 없습니다.

무엇보다 물장군은 수면 밖으로 자란 나뭇가지나 식물 줄기에 암컷이 알을 낳으면 깰 때까지는 수컷이 돌보는, 부성애가 지극한 곤충으로 유명하다. 일본의 국제적 물장군 연구자는 1995년 물장군 수컷의 이런 부성애는 암컷의 ‘유아 살해’ 행동 때문에 빚어진 방어전략이라는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물장군 수컷은 물 밖에 낳은 알에 주기적으로 물을 적셔준다. 이렇게 수분을 공급해주지 않은 알은 대부분 깨어나지 못한다. 그런데 약 90초면 수컷의 몸에서 흘러나온 물이 알로 스며들기에 충분한데도 수컷은 그보다 오랫동안 알 무더기에서 머문다. 물 밖에 오래 머물수록 먹이 잡는 시간이 줄어 손해일 텐데 이런 행동을 하는 이유는 뭘까.

이치카와는 실험 끝에 암컷이 알을 먹어버리는 행동과 관련이 있다는 주장을 폈다. 애초 물장군의 암수 비율은 비슷하지만 수컷은 약 10일이 걸리는 부화기간 동안 알에 묶여 있기 때문에 짝짓기에 나선 암컷이 수컷보다 사실상 수가 더 많은 효과가 난다는 것이다. 따라서 암컷은 다른 암컷이 낳은 알을 지키는 수컷을 공격해 알을 먹어치우고 자신의 알을 낳도록 하는 쪽이 유리하게 된다. 다른 새끼의 유모 구실을 하는 수컷을 자기 새끼의 유모로 만드는 전략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최근 우리나라에서 처음 물장군의 대량증식과 자연복원에 성공한 홀로세생태보존연구소 이강운 소장은 이와는 약간 다른 관찰결과를 소개했다. “6년 전 처음 물장군을 기르기 시작했을 때는 산란 뒤 암수를 함께 두는 게 좋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암컷의 포식성이 너무 커서 그럴 수 없었다. 암컷은 다른 수컷의 알은 물론이고 자기가 낳은 알이나 자기 짝인 수컷도 종종 잡아먹어버렸다.”

물장군은 암수가 물속에서 구애행동을 벌인 뒤 물 밖으로 나온 나뭇가지나 물풀에 올라 짝짓기를 하고 바로 알을 낳는 행동을 네댓 번 되풀이한다. 한 번에 70~120개씩의 알 무더기를 나무에 남긴다. 그런데 암컷은 자신의 알을 지키려는 다른 수컷을 공격하고, 이에 저항하는 수컷을 잡아먹기도 한다. 암컷은 수컷보다 몸집이 훨씬 크다. 또 자기가 낳은 알이나 짝까지 먹어치우기도 하는데, 이런 행동은 언뜻 이해가 되지 않는다. 이강운 소장은 “자기가 낳은 알이나 짝이라도 마음에 들지 않으면 없애는 행동이라고 본다. 알과 짝을 먹어 에너지를 비축했다가 더 좋은 수컷을 만나 새로 알을 낳는 게 낫다고 판단하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짝짓기를 한 후 알을 낳고 있는 암컷 물장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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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연구소에서 실험한 결과 물장군 1마리는 알에서 깨 어른벌레가 되기까지 올챙이와 물고기를 무려 53마리나 먹는 놀라운 포식성을 나타냈다. 물장군은 날카로운 앞다리로 먹이를 붙잡은 뒤 입에 난 침으로 독물을 주입해 상대를 마비시킨 뒤 다시 효소를 집어넣어 소화된 체액을 빨아먹는다.

물장군은 동족 말고는 적이 없을 것 같은 강력한 포식자이면서도 현재 멸종위기종 2급으로 지정되었다. 둠벙, 연못, 논 등 습지가 사라진 것이 무엇보다 중요한 요인이다. 여기에 로드킬이 치명타를 가했다. 이 소장은 “야행성인 물장군은 불빛을 보고 날아드는데 날개의 크기가 몸에 비해 작아 서식지로 돌아가지 못하고 가로등 밑 등에서 차에 치여 죽는 사례가 많다”고 설명했다. 서식지 주변에 있는 야간 테니스장, 음식점 등 불빛이 밝은 시설은 물장군에게 ‘죽음의 함정’이 되는 것이다. 최근 물장군의 인공증식과 서식지 복원이 활발히 추진되고 있는 데는 이런 사연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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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 Noritaka Ichikawa, “Male counterstrategy against infanticide of the female giant water bug lethocerus deyrollei (Hemiptera: Belostomatidae)”, Journal of Insect Behavior, vol. 8, no. 2(1995).

조홍섭 집필자 소개

환경과 과학 분야에서 30년 가까이 통찰력과 이슈가 있는 기사와 칼럼을 써온 우리나라 환경전문기자 1세대이다. 생태보전, 원자력발전, 4대강 개발 등 1980년대 이 후 급부상하는 환경 현안들을..펼쳐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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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에는 이야기가 있다
자연에는 이야기가 있다 | 저자조홍섭 | cp명김영사 도서 소개

동물행동, 생태학부터 진화론, 동물복지, 자연사까지 기초자연과학과 첨단응용과학을 넘나들며 펼치는 흥미롭고 감동적인 생명들의 이야기. 살아 있는 그 모든 것들이 펼쳐내는..펼쳐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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