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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자연에는 이
야기가 있다

찾는 초파리, 꽁초 줍는 참새

고양이를 처음 키우는 사람은 전혀 몰랐던 고양이의 면모를 발견하곤 한다. 그 하나가 고양이는 생선과 고기만 밝힐 줄 알았는데 뜻밖에 풀을 좋아한다는 사실이다. 개박하(캣닙)를 먹으며 황홀경에 빠지기도 하고, 갈대처럼 표면이 거친 풀을 먹고 나서 몸단장 때 삼켰던 털 뭉치를 토해내기도 한다. 풀이 없는 겨울엔 난 같은 화초까지 넘볼 지경이다. 고양이의 이런 행동이 정확히 무엇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동물 세계에 널리 퍼진 ‘자기치료’ 또는 ‘자가투약’의 하나가 아닐까 짐작해본다.

동물의 자기치료가 처음 알려진 건 30년 전 일이다. 동물원의 침팬지는 기생충이 증식해 장이 막히는 등 고생을 하지만 야생에서는 그런 일이 벌어지지 않는다. 일본 교토 대학 진화학자 마이클 허프먼(Michael Huffman)은 침팬지가 맛이 쓰고 영양가도 없으며 종종 독성이 있는 특정 식물의 즙을 빨아먹거나 억센 털이 난 잎을 씹지 않고 통째로 먹음으로써 기생충을 제거한다는 사실을 밝혔다. 선충에 감염된 침팬지가 치료차 먹는 이 식물은 원주민도 약용으로 쓰는데, 통째로 먹은 잎은 소화관을 빠른 속도로 지나면서 장 속의 기생충을 긁어내 장 청소 효과를 낸다. 금세 배설되는 이 식물 잎에는 기생충이 묻어 나온다. 현명하게도 침팬지는 영양가가 많은 귀한 음식을 먹기 전에 이런 행동을 한다. 비슷한 행동이 보노보와 고릴라 등 다른 영장류에서도 관찰됐다. 꼬리감는원숭이는 노래기로 몸을 문지르곤 하는데, 이때 노래기에서 모기를 쫓는 성분이 나온다.

이런 행동은 어미나 동료를 보고 배웠을 것이다. 하지만 사고능력이 있는 동물만 자기치료를 하는 건 아니다. 참새와 되새류는 진드기의 감염을 줄이기 위해 담배꽁초를 둥지 재료로 쓴다는 조사결과가 있다. 그러면 꽁초 속 니코틴이 진드기를 쫓아준다. 놀랍게도 이런 행동은 곤충 가운데도 널리 퍼져 있다. 초파리는 기생 말벌을 아주 무서워한다. 자기 새끼가 말벌의 밥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최근 미국 에머리 대학 과학자들은 초파리가 주변에 기생 말벌이 얼씬거리는 경우 고농도의 알코올이 있는 곳에 알을 낳는데, 이것이 자식의 안녕을 위한 행동임을 밝혔다. 기생 말벌은 알코올을 싫어하지만 초파리 애벌레는 발효가 진행되는 썩은 과일에서 자라기 때문에 알코올에 잘 견딘다. 따라서 기생 말벌의 습격에 노출된 초파리 알이라도 알코올 농도가 높은 곳이라면 무사히 자라날 수 있다. 알코올이 없는 먹이와 6퍼센트 알코올이 있는 먹이를 놓은 실험에서, 기생 말벌이 없을 때는 초파리의 40퍼센트가 알코올 먹이를 골랐지만 말벌이 나타나자 그 비율은 90퍼센트로 뛰어올랐다.

아메리카 대륙의 제왕나비도 비슷한 행동을 보인다. 기생충인 원생동물에 감염된 이 나비 암컷은 알을 낳을 곳을 고를 때 매우 까다롭게 구는데, 이 나무 저 나무를 다니며 나무의 맛을 보는 것처럼 보인다. 이 나비는 기생충에 치명적인 고농도의 스테로이드 성분이 들어 있는 나무를 고르는 것으로 밝혀졌다.

꿀벌도 자기치료의 전문가이다. 꿀벌은 곰팡이에 감염되면, 보관해두었던 ‘프로폴리스(Propolis)’라는 송진 같은 식물 수지와 왁스 혼합물을 꺼내 벌통을 칠한다. 프로폴리스에는 항 곰팡이 성분이 있다. 이어 감염된 애벌레를 벌통에서 끄집어내버린다. 이런 식의 처치법은 인류도 19세기가 돼서야 알아냈다. 그런데 꿀벌의 이런 자연 방벽을 사람이 허물고 있다. 양봉가들은 프로폴리스가 끈적거려 작업에 방해가 된다며 수지를 덜 만드는 꿀벌을 선택하고 있는 것이다.

면역체계를 갖추는 건 고등동물에게 비싼 투자이다. 따라서 자기치료는 값싼 대체수단일 수 있다. 예컨대 꿀벌은 항균 수지를 만들 수 있지만 다른 곤충에 흔한 면역 유전자가 없다. 사람도 자기치료의 역사는 길다. 수많은 약초가 그 증거다. 전체 식물의 3분의 2 이상에 약용 성분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게다가 우리가 무의식적으로 하는 행동도 있을 것이다. 이를테면, 사람들은 우울할수록 초콜릿을 많이 먹는다는 연구결과가 있다. 이에 대해 초콜릿의 페닐에타민 성분이 실제로 우울감을 덜어준다거나, 당 섭취로 도파민 수치가 일시적으로 증가한다는 가설이 제기되고 있다. 만약 그렇다면 이것 역시 자기치료의 일종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초콜릿이 당장 기분전환엔 좋을지 몰라도 높은 칼로리 섭취가 새로운 걱정거리가 될지도 모른다는 점을 유념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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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 ・ Michael A. Huffman, “Self-medicative behavior in the African great apes: An evolutionary perspective into the origins of human traditional medicine”, BioScience, vol. 51, no. 8(August 2001).
  • ・ Monserrat Suárez-Rodríguez et al., “Incorporation of cigarette butts into nests reduces nest ectoparasite load in urban birds: New ingredients for an old recipe?”, Biology Letters, vol. 9, no. 123(February 2013). DOI: 10.1098/rsbl.2012.0931
  • ・ Jacobus C. de Roode et al., “Self-medication in animals ecology”, Science, vol. 340(12 April 2013).

조홍섭 집필자 소개

환경과 과학 분야에서 30년 가까이 통찰력과 이슈가 있는 기사와 칼럼을 써온 우리나라 환경전문기자 1세대이다. 생태보전, 원자력발전, 4대강 개발 등 1980년대 이 후 급부상하는 환경 현안들을..펼쳐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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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에는 이야기가 있다
자연에는 이야기가 있다 | 저자조홍섭 | cp명김영사 도서 소개

동물행동, 생태학부터 진화론, 동물복지, 자연사까지 기초자연과학과 첨단응용과학을 넘나들며 펼치는 흥미롭고 감동적인 생명들의 이야기. 살아 있는 그 모든 것들이 펼쳐내는..펼쳐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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