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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기가 있다

오스트레일리아의 거대 동물은 어디로 갔을까

오스트레일리아에는 캥거루처럼 다른 대륙에서는 볼 수 없는 다양한 유대류 동물이 산다. 주머니를 가진 포유동물을 가리키는 유대류는 배아상태로 태어난 새끼가 어미의 주머니 속에 들어가 젖을 먹으며 몇 주에서 몇 달 동안 자란 뒤 밖으로 나온다. 이처럼 오스트레일리아에 유대류 등 색다른 동물이 많은 까닭은 오랜 고립의 역사에 있다. 오스트레일리아와 뉴기니는 약 4,000만 년 동안 주변 대륙으로부터 완벽하게 차단됐다. 유대류는 1억 년 전 다른 포유류에서 갈라져 나왔는데, 남아메리카 등 다른 대륙에서는 포유류에 밀려 대부분 사라졌지만 그런 경쟁자가 없는 오스트레일리아와 뉴기니에서는 번창한 것이다. 뉴기니는 지질학적으론 비교적 최근인 약 8,000년 전 빙하기가 끝나면서 해수면이 높아져 오스트레일리아와 분리됐다.

오스트레일리아의 동물들은 진화를 거듭하면서 지금까지 지구상에 출현한 동물 가운데 가장 전문적인 킬러인 주머니사자와 4미터가 넘는 독 도마뱀 등 놀라운 거대 동물들을 출현시켰다. 이들은 모두 멸종했는데, 그 이유를 두고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약 200만~4만 6,000년 전까지 살았던 주머니사자(틸라콜레오속, 현생 사자와는 관련이 없다)는 몸무게 100~130킬로그램으로 작은 사자 정도의 크기이지만 단위체중당 무는 힘은 지구에 존재했던 어떤 동물보다 강력했을 것으로 믿어지는 포식자이다. 자이언트캥거루 등 다른 거대 초식동물을 잡아먹었던 이 동물은 강력한 앞발과 유대류에서는 볼 수 없던, 고양이처럼 감췄다 드러냈다 할 수 있는 발톱을 지녔다. 또 캥거루처럼 꼬리 근육이 강해 꼬리와 뒷다리로 체중을 버티고 앞발을 자유롭게 사용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주머니사자의 상상도

오스트레일리아 대형 동물 가운데 최상위 포식자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 Peter Schouten, PNAS | 저작권자의 허가 없이 사용할 수 없습니다.

자이언트캥거루(프로콥토돈속)는 여태까지 존재했던 캥거루 가운데 가장 커 키가 2미터 무게 230킬로그램에 이른다. 얼굴이 짧고 눈은 정면을 향했으며, 발에 말의 발굽처럼 커다란 발톱이 하나 달려 있고 앞발에도 2개의 긴 발가락과 발톱이 달려 있어 현재의 캥거루와 구별된다. 주머니나무늘보는 말만큼 커 키 2.5미터 무게 200킬로그램에 이르렀다. 코가 코끼리처럼 유연했고, 4개의 강력한 발톱으로 나뭇가지와 잎을 잡아당겨 기린처럼 긴 혀로 먹었을 것으로 보인다. 자이언트웜뱃(디포로토돈속)은 유대류 동물 가운데 가장 커, 하마 크기였다. 무게 2.8톤의 이 동물은 코뿔소와 비슷하게 생겼지만 실은 현생 웜뱃과 코알라의 친척이다. 자이언트도마뱀(메갈라니아속)은 유대류는 아니지만 큰 것은 길이가 4.5미터, 무게 331킬로그램에 이르러 지금까지 알려진 도마뱀 가운데 최대였다. 현존하는 코모도도마뱀과 가까운데, 날카로운 이빨과 함께 침에는 독성분이 있어 치명적인 포식자였을 것이다.

오스트레일리아와 뉴기니의 광활한 대륙을 거닐었던 이 거대 동물들은 모두 사라졌다. 그 원인을 두고 오스트레일리아 과학자들이 〈네이처〉 〈미국립과학원회보(PNAS)〉 등 권위 있는 학술지에 논문을 잇달아 내며 공방을 거듭하고 있다. 논란의 두 축은 기후변화설과 인간영향설이다. 전자는 건조화로 특징지어지는 기후변화로 거대 동물이 차츰 사라졌다는 주장이고, 후자는 약 4만 5,000~5만 년 전 아시아로부터 건너온 인류가 숲에 불을 지르고 사냥해 이들을 멸종시켰다는 주장이다.

오스트레일리아 뉴사우스웨일스대 고고학자 주디스 필드(Judith Field) 등은 〈미국립과학원회보〉에 실린 논문에서 기후변화설을 종합적으로 정리했다. 그는 거대 동물이 일제히 멸종한 시기는 사람이 오스트레일리아에 도착하기 훨씬 전인 13만 년 전과 8만 년 전의 빙하기로, 이때 88종의 대형 동물 가운데 50종이 사라졌다고 주장했다. 사람이 진출한 이후 멸종한 종은 8~14종에 불과해 훨씬 적다는 것이다. 게다가 대형 동물뿐 아니라 소형 동물도 함께 멸종했고, 초기 인류의 분포와 밀도를 과대평가해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일부 거대 동물의 멸종에 인간이 개입되었을 수는 있지만 입증되지는 않았고, 압도적인 증거가 가리키는 것은 사람이 살기 전 기후변화로 대부분의 종이 사라졌다는 것이다.

특히 이런 주장의 배경에는 최근 남극 빙하의 시추조사로 옛 기후변화의 양상이 상세히 드러난 사실이 있다. 시추조사의 결과를 보면, 오스트레일리아는 70만 년 전부터 급격히 건조해지기 시작했고 전례 없이 추운 빙하기와 그에 이어 갑자기 간빙기가 찾아오는 등 변덕스러운 기후변화가 잦았다. 열대우림이 건조지대로 바뀌는 등의 변화가 거대 동물에게 치명타가 되었던 것이다. 물론 인간영향설을 주장하는 쪽의 반론도 만만치 않다. 어느 종이 일제히 멸종하더라도 화석 기록은 드문드문 나타날 수밖에 없고 가장 나중의 화석이라도 그 종이 실제로 멸종한 훨씬 뒤에 만들어진다며, 화석 기록을 바탕으로 한 이번 연구결과의 신뢰성에 의문을 표시했다. 논란은 계속 이어지겠지만, 누가 결정타를 먹였건 기후변화와 인간에 의한 환경변화가 모두 놀라운 거대 동물의 최후에 책임이 있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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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 Stephen Wroe et al., “Climate change frames debate over the extinction of megafauna in Sahul (Pleistocene Australia-New Guinea)”, PNAS(2013). DOI: 10.1073/pnas.1302698110

조홍섭 집필자 소개

환경과 과학 분야에서 30년 가까이 통찰력과 이슈가 있는 기사와 칼럼을 써온 우리나라 환경전문기자 1세대이다. 생태보전, 원자력발전, 4대강 개발 등 1980년대 이 후 급부상하는 환경 현안들을..펼쳐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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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에는 이야기가 있다
자연에는 이야기가 있다 | 저자조홍섭 | cp명김영사 도서 소개

동물행동, 생태학부터 진화론, 동물복지, 자연사까지 기초자연과학과 첨단응용과학을 넘나들며 펼치는 흥미롭고 감동적인 생명들의 이야기. 살아 있는 그 모든 것들이 펼쳐내는..펼쳐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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