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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동물이다. 백과사전에서 ‘인간’을 찾아보면, 인간의 위치는 분류 단계별로 동물계 척색동물문 포유강 영장목 사람과 사람 속에 포함되는 사람종이라고 나온다. 스웨덴의 박물학자 카를 폰 린네(Carl von Linné)가 1758년 이 종에 ‘호모사피엔스’라는 학명을 붙였다. 인간은 매우 특이한 동물이다. 김찬호 성공회대 교수가 정리한 내용을 보면, 두뇌가 크고 말과 불을 사용하는 것 말고도 여러 측면에서 인간은 다른 동물과 큰 차이를 보인다.

우선 고래나 개미의 예에서 드러나듯이 일반적으로 몸이 큰 동물은 개체수가 적고, 몸이 작은 동물은 많다. 그런데 사람은 몸이 큰데도 수가 아주 많다. 어릴 때부터 코끼리, 기린 등 큰 동물을 주로 익혀서 그런지 우리는 스스로가 얼마나 큰 동물인지 실감하지 못한다. 사실 지구에 있는 생물의 95퍼센트는 달걀보다 작다. 흙 1그램 속에는 수천만 마리의 박테리아 등 수많은 미생물이 산다. 눈에 보이지 않는 미생물의 영역으로 들어가면 우리는 아는 것보다 모르는 것이 더 많은 새로운 생물권을 접하게 된다.

미국 매사추세츠 공대 샐리 치점(Sallie Chisholm)과 우즈홀해양연구소 로버트 올슨(Robert Olson)이 발견해 1988년 공개한 극미소플랑크톤이 그런 예이다. 이들은 바닷물 한 방울 속에서 2만~10만 개에 이르는 새로운 종류의 식물플랑크톤이 있음을 발견했다. ‘프로클로로코쿠스(Prochlorococcus)’라고 이름붙인 이 미생물은 주로 따뜻한 바다의 표면부터 200미터 깊이 사이에 주로 분포하는데, 바다의 면적에 비추어 엄청난 숫자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

보전생물학자 에드워드 윌슨(Edward Wilson)은 이처럼 중요한 많은 생물이 20세기 말에야 발견됐음을 가리켜, 우리는 거대한 먹이 피라미드의 꼭대기 부분만 들여다보고 있었다고 개탄했다. 사실 바다를 보는 우리의 일반적인 시각은, 가끔 물고기가 돌아다니는 거의 빈 공간이었다. 그러나 새로운 연구결과가 가리키는 바다는 투명하기는커녕 셀 수 없이 많은 식물플랑크톤으로 바글거리는 생물권이다.

몸도 크고 수도 많은 인간은 당연히 그 둘을 곱한 생물량도 많다. 최근 한 연구를 보면, 지구의 인간 성인 무게를 모두 합치면 2억 8,700만 톤에 이른다. 전체 무게로 쳐 지구에 사는 어떤 단일 종보다 무겁다. 중생대 공룡도 1,000종 이상으로 이뤄져 단일 종으로는 인간에 필적하지 못한다. 아마도 모든 개미 종을 합치면 인간의 무게와 비슷할지 모른다.

인간의 또 다른 특징은 입이 작다는 것이다. 개나 고양이가 하품을 할 때 그 ‘거대한’ 입을 보면, 우리의 입이 얼마나 왜소한지 실감할 수 있다. 인간의 유력한 무기인 입은 소통수단으로 바뀌면서 작아지고 약해졌다. 턱 근육이 약해져 무는 힘이 침팬지의 3분의 1, 고릴라의 10분의 1에 불과하다. 오래 달리기를 위한 적응 과정에서 다른 동물이 보기엔 우스꽝스럽게 털이 없어지고 땀샘이 발달했다. 성장기간이 길어 부모가 오래 돌봐야 하는 것도 약점이다. 김찬호 교수는 인간이 이런 취약점을 극복하게 된 요인으로 큰 두뇌와 언어 · 소통능력, 사냥에 필수적인 오래 달리기, 불의 사용을 꼽았다. 여기에 더해 인간에겐 다른 어떤 동물도 따라오지 못할 생물학적 능력이 있다. 잘 죽지 않고 오래 산다는 것이다.

독일 막스플랑크인구연구소 연구진은 최근 선진국 국민과 아프리카 부시먼 등 수렵채취인 그리고 침팬지의 사망률을 전 연령대에 걸쳐 비교한 결과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다. 수렵채취인의 사망률 곡선은 현대인보다 오히려 침팬지에 가까웠던 것이다. 수렵채취가 인간 역사의 대부분을 차지한 삶의 형태임을 고려할 때, 최근 1~2세기 동안 급격하게 이루어진 인간의 변모는 주목할 만하다. 사망확률 면에서 일본의 72세 노인은 아프리카 칼라하리 사막에 사는 30세 수렵채취인과 같다. 수렵채취인은 이미 다른 영장류보다 수명이 긴 상태임에도 그렇다. 예를 들어 15세 야생 침팬지와 63세 수렵채취인의 연간 사망확률은 4.7퍼센트로 같다. 15세 수렵채취인의 사망확률 1.3퍼센트는 69세 스웨덴인의 수치와 같다. 15세인 선진국 사람은 같은 나이 수렵채취인에 비해 사망률이 100분의 1에 그친다.

기대여명으로 따져본다면, 수렵채취인으로 태어나면 31세까지 살고 스웨덴인은 1800년 32세에서 1900년 52세, 요즘엔 82세까지 산다. 인류 역사 전체인 8,000세대 가운데 마지막 4세대 동안 종 차원의 비약을 한 것이다. 연구진은 이런 변화가 여러 나라에서 비슷하게 나타나고 동물실험 결과보다 크므로, 유전적 변화보다는 공공보건, 위생, 영양, 교육, 주택 등 환경변화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다른 동물은 이런 지속적인 환경 개선을 경험한 적이 없기 때문에 인간만의 현상이라고 단정하기는 곤란하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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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 ・ 인간동물문화연구회, 《인간 동물 문화》, 이담북스(2002)
  • ・ Sarah Catherine Walpole et al., “The weight of nations: An estimation of adult human biomass”, Walpole et al., BMC Public Health, vol. 12, no. 439(2012). http://www.biomedcentral.com/1471-2458/12/439
  • ・ Oskar Burger et al., “Human mortality improvement in evolutionary context”, PNAS, vol. 109, no. 44(2012). DOI: 10.1073/pnas.1215627109

조홍섭 집필자 소개

환경과 과학 분야에서 30년 가까이 통찰력과 이슈가 있는 기사와 칼럼을 써온 우리나라 환경전문기자 1세대이다. 생태보전, 원자력발전, 4대강 개발 등 1980년대 이 후 급부상하는 환경 현안들을..펼쳐보기

출처

자연에는 이야기가 있다
자연에는 이야기가 있다 | 저자조홍섭 | cp명김영사 도서 소개

동물행동, 생태학부터 진화론, 동물복지, 자연사까지 기초자연과학과 첨단응용과학을 넘나들며 펼치는 흥미롭고 감동적인 생명들의 이야기. 살아 있는 그 모든 것들이 펼쳐내는..펼쳐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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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um백과] 호모사피엔스의 비약자연에는 이야기가 있다, 조홍섭, 김영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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