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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자연에는 이
야기가 있다

홍적세 다음 인류세를 아십니까

지질시대 하면 격변이 떠오른다. 지구에 운석이 충돌해 공룡이 멸종하고, 대륙이 충돌해 산맥이 솟으며, 대륙이 열려 새 바다가 탄생하는 큰 변화만이 새로운 지질시대의 이름을 얻는다. 그런데 인류가 큰일을 해냈다. 스스로의 힘으로 새로운 지질시대를 만들어내고 있다. 노벨화학상을 수상한 네덜란드 대기화학자 파울 크뤼천(Paul Crutzen)은 2000년 ‘인류세’라는 지질시대를 만들자고 제안했다. 마지막 빙하기가 끝나고 약 1만 2,000년 전부터 계속되고 있는 따뜻한 시기를 가리키는 홍적세에 이어, 지구 역사상 처음으로 하나의 종이 생물권을 변화시키고 있는 이 시기를 새로운 지질시대로 구분해야 한다는 것이다. 인류세를 산업혁명이 시작된 18세기 후반부터로 정의할지 등에 관해서는 논의가 필요하지만 지질학계는 이 견해를 대체로 받아들이고 있다.

도대체 인류가 지구를 얼마나 바꿔놓았기에 지질시대까지 달라지는가. 몇 가지 데이터를 보자. 지구 생산력의 원천인 햇빛을 이용한 광합성의 25~40퍼센트는 인류가 먹는 농작물을 생산하기 위한 것이다. 바다에서도 인류는 어획을 통해 해양동물의 기초먹이인 식물플랑크톤이 하는 광합성의 25~35퍼센트를 가져간다. 지구 표면 대지의 30~50퍼센트와 담수의 절반은 오로지 인간을 위해 쓰인다. 그 결과 지구의 온도는 지난 40만 년 이래 가장 높고, 15분마다 생물 한 종이 멸종하는 제6의 대멸종이 진행 중이다. 게다가 이 두 가지만큼 유명하지는 않지만 심상치 않은 조짐이 지구 차원에서 벌어지고 있다. 바로 영양 과잉이다.

얼마 전 북한산 계곡에서 이상한 모습을 보았다. 시냇가 한쪽에 고인 물이 녹색으로 썩어가고 있었다. 옆으로는 수정처럼 맑은 물이 흐르는데도 말이다. 주변엔 음식점 같은 오염원이 전혀 없는데 왜 부영양화(富營養化) 현상이 일어나는지 알 수가 없었다. 최근 미국 연구진이 그 궁금증을 풀어주었다. 알래스카를 비롯해 북반구의 외딴 호수 대다수의 퇴적층에서 인간이 방출한 다량의 질소 성분을 검출했다는 것이다. 인위적 질소는 1895년부터 나타나 1970년대 급증했다. 주거지나 농지, 산업단지로부터 수천 킬로미터나 떨어진 호수에 질소 성분이 쌓인 것은 비료나 화석연료의 질소가 공기를 통해 전달됐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북한산 계곡을 썩게 만든 원흉은 대기에 섞이거나 빗물에 쓸려 들어온 자동차 배기가스의 질소산화물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우리는 지난 100년 넘게 지구 구석구석에 원하든 원치 않든 비료를 뿌려댄 것이다.

질소는 단백질의 주요 성분이고 식물의 필수 영양소이다. 질소는 대기의 78퍼센트를 차지할 만큼 지구에 흔한 물질이지만 생물이 쓸 질소는 드물다. 질소 원자 2개가 단단히 3중 결합을 해 생물이 이를 떼어내 이용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질소를 생물이 이용할 수 있는 형태로 만드는 방법은 번개가 치거나 콩과 식물에 기생하는 뿌리혹박테리아가 질소고정(窒素固定)하는 길밖에 없다. 그래서 농촌 사랑방에 모여 놀던 마을 사람들도 질소가 든 거름을 만들기 위해 ‘일’은 자기 집에 가서 보았던 것이다.

그런데 20세기 초 질소와 수소를 고온고압 상태에서 반응시켜 질소화합물인 암모니아를 제조하는 하버-보슈법이 나오자 상황이 달라졌다. 자연계의 귀중품인 질소영양염이 질소비료란 이름으로 대거 쏟아져나오게 된 것이다. 현재 인류는 자연계에서 만들어내는 양을 웃도는 질소 성분을 지구에 내놓고 있다. 질소 과잉인 바다는 플랑크톤이 번창해 썩어 산소가 고갈된 죽음의 바다가 된다. 한중일 근해는 세계에서도 질소 농도가 높아 멕시코 만의 30배에 이른다.

한양대 박재우 교수팀의 집계를 보면, 우리나라에서 한 해에 추가되는 질소의 양은 129만여 톤인 데 비해 나가거나 사라지는 질소는 63만여 톤으로 절반에 그친다. 막대한 양의 질소가 쌓여가고 있는 것이다. 화학비료 사용량은 31만 톤으로 식물이 고정하는 질소 9만 톤보다 3배 이상 많다. 질소비료로 키운 사료와 곡물을 막대한 양 수입하는 것이 질소 과잉의 주요 원인이다. 바다에 내버려온 축산 분뇨를 앞으론 고스란히 땅에서 처리해야 하므로 상황은 더 나빠질 것이다. 영양 과잉은 사람의 비만처럼 지구의 건강을 해친다. 이미 서유럽에선 영양 과잉인 농촌보다 도시의 생물다양성이 높다. 콩과 식물은 차츰 경쟁력을 잃고 도태될 것이다. 인류는 자원 · 에너지의 고갈과 영양분 · 이산화탄소 과잉이라는 전례 없는 지구 차원의 위기를 스스로 초래한 첫 생물이기도 하다. 새로운 지질시대에 제 이름을 붙인다고 이상할 것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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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 ・ James J. Elser, “A world awash with nitrogen”, Science(16 December 2011), pp. 1504~1505. DOI: 10.1126/science.1215567
  • ・ 남역현 외, “2010년도 대한민국 농업 및 축산업지역의 질소 유입 및 유출 수지”, 〈대한환경공학회지〉, 34권 3호(2012), 204~213쪽.

조홍섭 집필자 소개

환경과 과학 분야에서 30년 가까이 통찰력과 이슈가 있는 기사와 칼럼을 써온 우리나라 환경전문기자 1세대이다. 생태보전, 원자력발전, 4대강 개발 등 1980년대 이 후 급부상하는 환경 현안들을..펼쳐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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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에는 이야기가 있다
자연에는 이야기가 있다 | 저자조홍섭 | cp명김영사 도서 소개

동물행동, 생태학부터 진화론, 동물복지, 자연사까지 기초자연과학과 첨단응용과학을 넘나들며 펼치는 흥미롭고 감동적인 생명들의 이야기. 살아 있는 그 모든 것들이 펼쳐내는..펼쳐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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