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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기가 있다

고도 1만 미터는 미생물 세상

국제선 여객기를 타고 장시간 비행하면서 창밖을 물끄러미 내다보노라면 엉뚱한 상상이 들기도 한다. 끝없이 펼쳐진 구름 사이로 새가 날아다닌다면······ 하지만 1만 미터 상공까지 올라올 새는 없다. 대류권에선 고도가 1,000미터 상승할 때마다 기온이 6.5도 떨어진다. 그러니 여객기가 다니는 고도라면 영하 40~50도는 될 터이다. 게다가 강한 자외선이 내리쬐고 산소는 희박한 반면 오존과 같은 강력한 산화물이 많아서 생물이 살 곳이 못 된다. 얼마 전까진 누구나 그렇게 믿었다.

미국 조지아 공대와 미항공우주국(NASA) 과학자들은 2010년 특별한 실험을 했다. 대형 여객기를 타고 멕시코 만과 미국 본토 상공을 비행하면서 허리케인이 오기 전과 도중, 그리고 이후의 공기를 채취해 그 속의 미생물을 조사했다. 그랬더니 놀라운 결과가 나왔다. 1만 미터 상공의 고공에도 미생물이 번창하고 있었던 것이다. 여객기 창밖에 새는 없어도 눈에 보이지 않는 박테리아, 즉 세균은 무수히 날아다닌다.

장거리 비행을 하는 동물은 많다. 철새는 대표적인 예인데, 극단적인 여행자인 큰뒷부리도요는 알래스카에서 뉴질랜드까지 태평양을 가로지르는 1만 2,000킬로미터를 8~9일 동안 아무것도 먹지 않고 비행한다. 이동고도는 세균에는 미치지 않지만 3,000미터로 꽤 높다. 곤충 가운데도 장거리 이동의 선수가 적지 않다. 유명한 제왕나비는 멕시코에서 캐나다까지 왕복한다. 곤충은 새보다 이동고도가 낮은 반면 개체수는 많다. 영국 과학자가 아프리카에서 지중해를 건너 영국으로 이동하는 밤나방과의 나방을 조사했더니 그 수가 1,000만에서 2억 4,000만 마리에 이르렀다고 한다. 잠자리도 9,000킬로미터 떨어진 인도와 아프리카 서식지 사이를 계절풍을 타고 이동하는데, 때론 600~800킬로미터 거리의 바다를 하루 만에 건너기도 한다.

미국 연구진이 찾아낸 고공의 미생물은 이런 새와 곤충에 견줘 훨씬 높은 고도까지 열대폭풍의 힘을 빌려 이동하며, 무엇보다 이들이 기후와 기상변화에 영향을 끼칠 가능성이 크다는 점에서 관심을 모은다. 연구진은 필터로 거른 공기 샘플에서 314종의 세균을 확인했는데, 바다 상공에서는 폭풍에 쓸려온 해양 세균이 많았던 반면 도시 인구밀집 지역 상공에선 대장균과 연쇄상구균이 다수 들어 있었다. 다음 연구에서 이들이 병원균인지가 확인된다면, 세계 보건학자들은 철새에 이어 태풍 등 열대폭풍에 의한 질병 확산을 고려해야 할 것이다.

고공 미생물의 농도는 매우 높아 지상에서 가까운 대기 속에서보다 훨씬 높았고, 채집한 입자의 20퍼센트가 세균이었다. 공기 1세제곱미터에 무려 15만 마리의 세균이 들어 있었고, 게다가 검출된 세포의 60~100퍼센트가 살아 있었다. 연구진은 이들이 지상으로 떨어지기까지 적어도 며칠 동안은 대기권 상층부에 머물 것으로 추정했다. 고공 세균 가운데 가장 널리 분포한 세균은 대기 속에서 얼음이나 구름을 형성하는 씨앗 구실을 하는 종류였다. 먼지가 거의 없는 대류권 상층에서 세균이 강우와 기후를 좌우할 가능성이 제시된 것이다.

그러니 1만 미터 상공에서 기내식을 먹으며 비행한다고 우쭐할 것은 없다. 창밖 구름 속에서 세균들은 고층 대류권의 화학반응에서 생긴 유기물질을 먹으며 너끈히 살아가고 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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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 Natash DeLeon-Rodriguez et al., “Microbiome of the upper troposphere: Species composition and prevalence, effects of tropical storms, and atmospheric implications”, PNAS, vol. 110, no. 7(2013), pp. 2575~2580. DOI: 10.1073/pnas.1212089110

조홍섭 집필자 소개

환경과 과학 분야에서 30년 가까이 통찰력과 이슈가 있는 기사와 칼럼을 써온 우리나라 환경전문기자 1세대이다. 생태보전, 원자력발전, 4대강 개발 등 1980년대 이 후 급부상하는 환경 현안들을..펼쳐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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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에는 이야기가 있다
자연에는 이야기가 있다 | 저자조홍섭 | cp명김영사 도서 소개

동물행동, 생태학부터 진화론, 동물복지, 자연사까지 기초자연과학과 첨단응용과학을 넘나들며 펼치는 흥미롭고 감동적인 생명들의 이야기. 살아 있는 그 모든 것들이 펼쳐내는..펼쳐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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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um백과] 고도 1만 미터는 미생물 세상자연에는 이야기가 있다, 조홍섭, 김영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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