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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기가 있다
고래사냥 잔혹사
포경선이 가장 즐겨 잡던 참고래라는 고래가 있다. 길이 16미터에 70톤까지 나가는 큰 몸집이지만 연안에 사는데다 배가 접근해도 도망치지 않고, 무엇보다 죽으면 물속에 가라앉는 다른 고래와 달리 작살에 맞아 죽어도 가라앉지 않고 물에 뜨는 ‘착한’ 특징을 지녔다. 영어로 ‘(잡기에) 딱 좋은’이라는 뜻의 라이트웨일(Right Whale)로 불리고 우리말로도 ‘참’이라는 접두어를 얻게 된 데는 이런 슬픈 사연이 있다. 고래는 먼저 잡는 사람이 주인인 수산자원으로 취급받아왔다. 연안의 고래가 고갈되고 마지막 남은 고래 천국인 남극해에서 1925년부터 1985년까지 잡힌 대형 고래는 200만 마리가 넘는다. 그러나 1986년 세계적인 고래잡이 금지조처는 고래를 바라보는 시각의 일대 전환을 가져왔다.
고래의 두뇌는 크고 잘 발달했다. 혹등고래는 몇 달에 걸쳐 복잡한 노래를 만들고 여러 마리가 공기방울 그물을 만들어 생선을 사냥하기도 한다. 학습능력이 뛰어나고 자식과의 유대도 깊다. 일본, 노르웨이, 아이슬란드 등 상업적 고래잡이를 하는 나라들이 종종 야만국 취급을 받는 것은 이런 고래를 잔인하게 죽이기 때문이다. 얼마 전 국제포경위원회(IWC) 총회에서 우리나라가 고래잡이에 나서겠다고 하자 미국, 오스트레일리아 등이 외교적 항의에 나선 것도 고래 보호에 관한 자국의 강한 여론을 잘 알아서였다.
‘현대화’가 됐다지만 고래잡이는 한 세기 전이나 지금이나 크게 달라진 게 없다. 포경선은 몇 시간이고 고래를 쫓는다. 공포에 질린 고래의 호흡이 가빠지고 물에 떠오르는 빈도가 잦아지면 고래와의 거리를 좁히고 작살포를 쏜다. 포수가 고래를 겨냥하는 일은 쉽지 않다. 40~60미터 밖에서 수면을 들락거리는 동물을 파도에 올라탄 배 위에서 정확히 맞혀야 하기 때문이다. 종종 고래에게 두 번째 작살포를 발사하고, 그래도 죽지 않으면 소총을 발사하기도 한다. 요즘 상업적 포경선은 펜트라이트 수류탄 작살을 발사한다. 작살은 고래의 몸을 찢으며 깊이 30센티미터까지 파고든 뒤 폭발해 폭 20센티미터가량의 상처를 낸다. 문제는 고래의 뇌를 정확히 겨냥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해 몸통에 큰 상처를 입은 고래가 끔찍한 고통 속에서 죽음을 맞게 된다는 점이다.
작살포를 맞은 뒤 죽을 때까지의 시간을 줄이는 건 ‘고래 복지’의 중요한 관심사이다. 노르웨이와 일본은 그 시간을 2~3분으로 줄였다고 주장하지만, 어떤 고래는 1시간 반에 이르기도 한다. 게다가 ‘즉사’의 비율도 노르웨이가 80퍼센트, 일본은 60퍼센트에 지나지 않는다. 고래의 죽음을 판정하는 기준도 논란거리다. IWC는 아래턱이 늘어지고 지느러미 움직임이 없으며 가라앉으면 죽었다고 본다.
하지만 과학자와 수의사는 고래의 독특한 생리에 비춰 죽은 것처럼 보여도 실은 훨씬 오랫동안 고통스러운 삶을 연장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고래는 오랜 잠수 때 꼭 필요한 기관을 뺀 몸의 나머지 부위에 혈액 흐름을 줄이고 신진대사를 낮추는 잠수행동을 보인다. 그러니까 고래는 응급상황을 맞아 핵심기관에 생명력을 모으며 전체적으로는 죽은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토착민의 전통적 고래잡이도 윤리적인 면에서 상업적 포경보다 못한 경우가 많다. 러시아의 원주민은 2009년 귀신고래한테 작살을 쏘아 건지기까지 77분이 걸렸으며 추가로 260발의 소총을 쏘았다.
세계동물보호협회(WSPA)는 고래잡이가 국제적인 도축 지침에도 어긋난다고 지적한다. 고속의 선박 소음으로 몰아대고, 작살 줄로 끌어당겨 상처를 확대시키며, 임신 마지막 시기엔 도축하지 않는 기준도 적용하지 않는 현재의 고래잡이는 잔인하고 비인도적이라는 것이다. 영국 BBC 방송의 유명한 자연 다큐멘터리 진행자인 데이비드 애튼버러(David Attenborough) 경은 “고래 부위 가운데 대체품이 없는 것은 없으며, 고래를 인도적으로 죽일 수 있는 방법 또한 없다”고 말한다. 반세기 전 남극해 포경선에 승선했던 한 의사는 고래를 죽이는 방법을 두고 “배 속을 갈가리 찢는 창 두세 개가 꽂힌 말을 줄에 매단 도살차가 런던 시내를 피를 뿌리며 지나가는 것과 뭐가 다르냐”고 개탄했다.
물론 어민들도 고통을 겪고 있다. 어장은 비어가는데 포경 금지라니, 그나마 있는 고기마저 빼앗기는 심정일 것이다. 하지만 그 고통을 우리 근해의 고래가 겪어야 할 고통과 비교할 수 있을까. 이미 한 해에 수백 마리씩 그물에 걸려 질식해 죽는 고통에 더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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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행동, 생태학부터 진화론, 동물복지, 자연사까지 기초자연과학과 첨단응용과학을 넘나들며 펼치는 흥미롭고 감동적인 생명들의 이야기. 살아 있는 그 모든 것들이 펼쳐내는..펼쳐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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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um백과] 고래사냥 잔혹사 – 자연에는 이야기가 있다, 조홍섭, 김영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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