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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자연에는 이
야기가 있다

왜소한 자연 부른 놈부터 잡아라

자연계에서 포식자는 어리거나 늙은 개체를 주로 잡아먹는다. 반면 사람은 어획이든 사냥이든 가장 큰 성체부터 잡는다. 자연계 최강의 포식자인 인간의 이런 독특한 취향은 자연을 어떻게 변화시켰을까. 미국 캘리포니아대 연구진은 인류가 동식물의 진화속도를 증가시켜 장기적으로 그들의 생존을 위협하고 있다고 밝혔다. 연구진은 사람의 포획 압력을 받는 종은 그렇지 않은 종보다 진화속도가 3배나 빠르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몸 크기는 20퍼센트 작아지고, 번식에 이르는 시기는 25퍼센트 앞당겨졌다. 이 연구는 인간에 의해 ‘수확’되는 29종의 동식물이 겪는 형질변화를 정량적으로 측정하는 방법으로 이뤄졌다.

호랑이, 사자 같은 자연계 포식자는 먹이를 사냥할 때 갓 태어난 새끼나 병들고 늙은 대상을 고른다. 부상의 위험과 포획할 때 드는 에너지 소비를 줄이기 위해서다. 덕분에 생식력이 가장 왕성한 다 자란 개체는 살아남아 번식의 주역이 된다. 포식자로서 사람은 정반대이다. 수산업에선 일정한 길이를 정해 그 이하의 어린 물고기는 잡지 못하게 한다. 그물코를 규제하기도 하는데, 그물을 빠져나가는 작은 물고기일수록 생존확률이 높아진다. 개체의 크기가 작아지면 상대적으로 먹이가 풍부해지고, 이는 물고기가 일찍 성숙하도록 이끈다. 즉 다 자란 개체들이 사라진 바다에서 조숙한 미성숙 개체들이 번식에 참여하는 일이 늘어난다.

사냥도 마찬가지다. 캐나다에선 일정한 크기 이상의 큰뿔양만 잡을 수 있도록 한 결과, 지난 30년 사이에 이 양의 길이와 몸무게가 20퍼센트 줄어들었다. 식물도 예외가 아니어서, 북미산 산삼 채취가 늘어나면서 산삼의 크기도 차츰 감소하고 있다. 아마도 가장 유명한 사례는 코끼리의 엄니 이야기일 것이다. 밀렵꾼들은 큰 엄니를 가진 코끼리만을 노린다. 이것은 큰 엄니를 만드는 형질을 솎아내는 결과를 빚었다. 잠비아에서 엄니가 없는 아프리카코끼리 암컷의 비율은 1969년 10퍼센트였지만 1989년엔 40퍼센트에 육박했다. 인도코끼리는 수컷에만 엄니가 있는데, 밀렵이 기승을 부린 스리랑카에서는 수컷 중에서도 단 5퍼센트에서만 엄니를 찾아볼 수 있다.

이런 양상은 우리나라에서도 드러나고 있다. 국립수산과학원의 조사를 보면, 2005년 우리나라 연근해에 사는 갈치의 99.1퍼센트가 성숙체장 25센티미터에 미치지 못했다. 1970년까지만 해도 미성어의 비율은 44.1퍼센트에 지나지 않았다. 이밖에 삼치의 거의 모두, 참조기의 93.5퍼센트, 참돔의 62.3퍼센트가 미성어였다. 잡히기 전 작고 어릴 때 번식하는 것은 포획 압력에 대응하는 한 전략일 수 있다. 그러나 미성숙 번식은 부실한 자손을 낳을 수밖에 없고, 이는 결국 해당 종의 재생산 능력을 위험에 빠뜨릴 가능성이 높다.

역설적으로 사람은 가축을 기를 때는 자연을 대할 때와 다르게 행동한다. 어린 가축을 도축하고, 가장 크고 건장한 씨앗가축만을 골라 번식에 활용한다. 우량 한우 씨수소 1마리는 약 2만 마리 암소를 임신시킬 정도다. 자연으로부터 가장 크고 훌륭한 개체부터 솎아내려 덤비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노인한테서 늘 듣던 “우리 어릴 때는 엄청 컸지” 하는 얘기를 자식들에게 또 해야 할 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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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 Chris T. Darimont et al., “Human predators outpace other agents of trait change in the wild”, PNAS(12 January 2009). DOI: 10.1073/ pnas.0809235106

조홍섭 집필자 소개

환경과 과학 분야에서 30년 가까이 통찰력과 이슈가 있는 기사와 칼럼을 써온 우리나라 환경전문기자 1세대이다. 생태보전, 원자력발전, 4대강 개발 등 1980년대 이 후 급부상하는 환경 현안들을..펼쳐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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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에는 이야기가 있다
자연에는 이야기가 있다 | 저자조홍섭 | cp명김영사 도서 소개

동물행동, 생태학부터 진화론, 동물복지, 자연사까지 기초자연과학과 첨단응용과학을 넘나들며 펼치는 흥미롭고 감동적인 생명들의 이야기. 살아 있는 그 모든 것들이 펼쳐내는..펼쳐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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