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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기가 있다

붕어도 꽃게도 아픔을 느낀다

조금 전 일도 쉽게 까먹는 사람을 ‘붕어 기억력’이라고 놀린다. 미끼를 물었다 빠져나간 붕어가 3초만 지나면 다시 미끼를 문다는, 믿거나 말거나 얘기도 있다. 붕어는 이렇게 머리가 나쁘고 사람과 많이 다르니 함부로 다뤄도 상관없지 않을까. 영국의 한 과학자가 과연 그런지 실험을 했다. 송어의 입에 벌침을 주입했을 때의 반응을 보았다. 송어는 낚싯바늘에 걸린 것처럼 깜짝 놀라더니 입술을 수조 바닥과 벽에 비비는 행동을 했다. 그리고 벌침을 주입하지 않은 송어에 비해 다시 먹이를 먹기까지 2배의 시간이 걸렸다.

네덜란드의 연구자는 낚시에 걸린 잉어의 반응을 관찰했는데, 잉어는 갑자기 돌진하거나 토하고 머리를 흔드는 등 스트레스 행동을 보이더니 오랜 시간이 지나서야 다시 먹이를 먹었다. 이런 실험결과를 보면, 바늘 맛을 보고도 또 미끼에 덤볐다는 붕어 이야기는 실제가 아니거나 먹이가 너무 부족한 환경 때문이었을 가능성이 크다. 실제로 산천어를 낚는 플라이 낚시꾼은 그럴듯한 미끼를 거들떠보지 않는 고기를 만나면 최근에 다른 낚시꾼에게 잡혔다 풀려났다는 것을 안다.

동물도 고통을 느끼느냐는 질문은 논쟁이 많고 어려운 주제이다. 무엇보다 ‘아프다’는 건 주관적인 느낌이어서 동물이 그렇게 느끼는지 알 길이 없기 때문이다. 원래 고통은 신체의 손상을 최소화하기 위한 일종의 경보 체계에서 출발했다. 뜨거운 냄비에 손을 댄 인간이나 손에 잡힌 지렁이 모두 손상을 피하려 반사행동을 한다. 우리가 말하는 고통은 이런 즉각적인 반사행동에 더해 뇌가 관여된 괴로움을 가리킨다.

척추동물은 모두 대뇌피질에 통각을 처리하는 부위가 있다. 아픈 감각을 뇌가 처리해 다음엔 그런 아픔을 겪지 않도록 행동을 바꾸어야 ‘고통을 느낀다’고 보는 것이다. 그중에서도 사람이나 유인원은 사고영역인 신피질에서 심리적 고통까지 느낀다. 배우자를 잃는 등 통각을 자극하지 않는 고통도 느끼는 것이다. 최근엔 개나 고양이, 새도 심리적 고통을 느낀다는 보고가 있다. 어쨌든 대뇌피질이 고통을 인식하는 핵심 부위라고 한다면 그것이 발달한 순서대로 고통을 잘 느낄 것이다. 즉 유인원, 포유류, 조류, 파충류, 양서류, 어류 순서다.

이 순서의 끄트머리에 있는 어류도 포유류처럼 고통을 느낀다는 사실이 밝혀지고 있다. 만일 고통을 느꼈을 때 먹이를 먹지 않고 반복적으로 특이한 행동을 한다면, 호흡과 심장박동이 빨라지고 스트레스 호르몬 방출이 늘어나는 생리적 변화가 나타난다면 그것은 단순한 반사행동을 넘어 두뇌가 개입한 복잡한 반응을 한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물고기는 분명히 사람과 비슷한 고통을 느끼는 셈이다.

물고기는 포유류와 마찬가지로 고통을 받으면 숨이 가빠지고 외부 자극에 무뎌지는 등의 생리반응을 보이고, 모르핀을 투여하면 이런 현상이 사라진다. 낚시에 걸린 물고기가 한동안 먹이를 먹지 않는 행동은 사람이 사고를 겪고 상처가 아문 뒤에도 심리적 트라우마가 남는 것과 유사한 측면이 있다. 그래서 유럽과 미국의 낚시인 사이에는 잡은 고기를 놓아주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니 미늘 없는 바늘을 쓰고 잡은 뒤 최대한 빨리 놓아주자는 캠페인이 벌어지고 있다. 나아가 상업적 어획과 밀식 양식의 비윤리성을 지적하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포획된 물고기는 깊은 바다에서 빨리 끌어올린 그물로 인해 눈이 튀어나오고 위장이 부풀어 입 밖으로 나온 모습을 흔히 볼 수 있다. 뱃전에 올려져서도 서서히 질식하거나 동료에 눌려 압사하게 마련이다.

사실 인간의 고통을 줄이는 문제도 해결하지 못하고 있고 돼지와 닭을 산 채로 매장하는가 하면 사료가 없다며 소를 굶겨 죽이는 마당에 물고기의 고통이란 한가한 얘기처럼 들릴지 모르겠다. 하지만 별다른 이유 없이 다른 동물에게 불필요한 고통을 주고, 애초 그런 사실 자체를 모른다면 정말 곤란하지 않을까.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고통의 하한이 어류에서 그치지 않는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게와 새우 등도 고통을 느낀다는 연구결과가 있다. 영국 과학자들은 암초가 많은 해변에서 흔히 보이는 게로 실험을 했다. 불을 환하게 밝힌 수조 양끝에 숨을 곳을 만들어놓고 게 90마리를 풀어놓았다. 게는 천적을 피해 모두 피난처로 숨어들었다. 비슷한 수의 게가 양쪽으로 나뉘었다. 그 상태에서 한쪽 피난처에는 약한 전기를 흘려 게가 고통을 느끼도록 했다. 이 게들을 모아 다시 풀어놓고 어떤 피난처로 가는지 보았더니 대부분 처음 골랐던 곳으로 향했다. 절반쯤은 어김없이 전기충격 세례를 받았다. 그러나 세 번째로 풀어놓은 게들은 전기가 흐르는 피난처를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영국 벨파스트 퀸스 대학 연구진이 게가 고통을 느낄 수 있는지 실험하고 있다.

ⓒ Robert Elwood, The Journal of Experimental Biology | 저작권자의 허가 없이 사용할 수 없습니다.

연구자들은 게들이 두 번의 경험으로부터 고통을 회피하는 법을 학습했다고 보았다. 현재의 고통을 반사적으로 피하는 것은 모든 동물에 공통된 것이지만, 미래의 고통을 피하기 위해 중요한 자원(피난처)을 포기하고 행동을 바꾸었다면 포유류 등의 고통 인식과 다를 바 없다는 것이다. 이 연구자는 집게를 대상으로 한 이전의 연구에서도 고통을 피하기 위해 더 나은 집(소라껍데기)을 포기하는 ‘회피 학습’ 능력을 확인한 바 있으며, 이런 능력이 게와 새우 등에 널리 퍼져 있을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다.

일련의 연구결과는 사실 받아들이기에 불편하다. 식탁에 자주 오르는 꽃게와 새우까지 동물복지의 대상이 돼야 한단 말인가. 유럽연합은 물고기까지, 캐나다 동물보호협회는 문어까지 동물복지 대상에 넣고 있지만 아직 게와 새우는 포함돼 있지 않다. 하지만 분명한 건 우리처럼 고통을 느끼는 동물의 영역이 점점 확장되고 있다는 것, 따라서 당장 게와 새우를 먹지 말자는 게 아니라, 이런 동물에게 불필요한 고통을 주어선 안 된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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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 ・ Stuart Brown, “Do fish feel pain? The science behind whether fish feel Pain”, all-creatures.org(http://www.all-creatures.org/anticles/an-the science.html)
  • ・ Jennifer Mather, “Do fish feel pain?”, Journal of Applied Animal Welfare Science, vol. 14, no. 2(2011), pp. 170~172. DOI: 10.1080/10888705.2011.551631
  • ・ B. Magee & R. W. Elwood, “Shock avoidance by discrimination learning in the shore crab (Carcinus maenas) is consistent with a key criterion for pain”, The Journal of Experimental Biology, vol. 216(2013), pp. 353~358.

조홍섭 집필자 소개

환경과 과학 분야에서 30년 가까이 통찰력과 이슈가 있는 기사와 칼럼을 써온 우리나라 환경전문기자 1세대이다. 생태보전, 원자력발전, 4대강 개발 등 1980년대 이 후 급부상하는 환경 현안들을..펼쳐보기

출처

자연에는 이야기가 있다
자연에는 이야기가 있다 | 저자조홍섭 | cp명김영사 도서 소개

동물행동, 생태학부터 진화론, 동물복지, 자연사까지 기초자연과학과 첨단응용과학을 넘나들며 펼치는 흥미롭고 감동적인 생명들의 이야기. 살아 있는 그 모든 것들이 펼쳐내는..펼쳐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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