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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고래는 사람에게 매우 친근한 존재다. 웃는 모양인 입의 윤곽선이 호감을 불러일으키고, 가장 지적인 동물의 하나로 장난을 좋아하는 습성이나 뱃머리에 다가와 물살을 타고 노는 모습이 가깝게 느껴진다. 수족관의 돌고래는 물방울 고리를 만들어 노는 모습을 보였고, 무리 사이에 사회적 유대가 강해 다치거나 아픈 동료를 돕는 행동도 한다. 서울대공원의 남방큰돌고래 제돌이 방사논란은 우리 사회에 동물복지에 눈뜨는 계기를 마련해주기도 했다. 이처럼 사람과 가까운 동물이지만 돌고래에게는 독특한 ‘초능력’이 있다.

포유류인 고래는 육지를 떠나 바다로 감으로써 중력이라는 거추장스러운 부담을 털어내고 마음껏 몸집을 불릴 수 있었다. 그러나 바다에서의 삶은 대가를 요구했다. 달콤한 숙면을 영원히 잃어버린 것이다. 고래는 주기적으로 물 위에 올라와 호흡을 해야 익사를 피할 수 있다. 그래서 등장한 것이 뇌의 절반씩 교대로 자는 반구 수면 방법으로, 고래는 늘 깨어 있는 상태를 유지한다. 이런 수면 방법은 부차적으로 고래에게 경계 또는 긴장을 장시간 유지하는 능력을 주었다. 미국 국립해양포유류재단(NMMF) 동물학자 등은 돌고래가 얼마나 오랫동안 이런 집중력을 유지하는지 실험했다.

실험은 미국 캘리포니아 샌디에이고 만에서 벌어졌다. 바다 위에 울타리를 두르고 큰돌고래를 넣은 뒤 전파발신기를 이용해 마치 실제 먹이가 있는 것처럼 신호를 준다. 그리고 신호의 위치와 거리, 지속시간을 수시로 바꾸면서 돌고래가 ‘먹이’를 찾는 데 성공하면 보상으로 물고기를 주었다. 돌고래는 박쥐와 마찬가지로 소리를 낸 뒤 반사파를 감지해 먹이의 위치를 찾는다. ‘반향위치 측정’이라 불리는 이 기능은 사냥은 물론 동료 무리와 헤어지지 않고 천적을 피하는 가장 중요한 수단으로, 사람의 음향탐지 기술보다 기능이 월등하다. 실험엔 30살 암컷 큰돌고래 세이와 26살 수컷 큰돌고래 네이가 참가했는데, 두 돌고래는 뛰어난 성적을 거두었다. 네이는 75~86퍼센트, 세이는 99퍼센트의 정답률을 기록했다. 특히 세이는 매일 78.4회씩 닷새 동안 계속된 실험에서 단 두 번만 실수하는 빼어난 능력을 보여줬다.

연구진은 세이가 얼마나 오래 집중력을 유지할 수 있는지 알아보기 위해 30일 기한의 실험에 착수했지만 폭풍이 불어 15일 만에 중단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 기간 동안 세이가 보인 능력은 놀라웠다. 하루 24시간 중 불시에 임의의 장소에서 나타났다 곧 사라지는 먹이 신호를 7일 동안은 100퍼센트 맞혔고, 나머지 기간에도 모두 90퍼센트가 넘는 적중률을 보였다. 연구진은 “세이가 정답을 맞히고는 기쁨에 겨워 소리를 지르는 등 실험을 아주 좋아했다”며 돌고래의 개별 성격이 성적에 영향을 끼쳤음을 인정하면서도, 이런 장기간 계속되는 집중력은 두뇌의 절반씩 교대로 자는 행동의 자연스러운 결과라고 해석했다.

놀라운 집중력을 보여준 큰돌고래 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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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의 반구 수면은 새에게도 나타나는 행동이다. 휴식을 취하는 새 무리의 바깥쪽 새들은 이런 식으로 자는데, 대개 바깥을 향해 한쪽 눈을 뜬다. 돌고래도 한쪽 눈을 뜨고 자는데, 새들과 달리 뜬 눈은 바깥보다는 동료 무리를 향하는 경우가 많다. 무리에서 떨어지지 않는 것은 돌고래에게 생사가 달린 문제이다. 돌고래가 이처럼 지속적인 경계를 유지하게 된 이유의 하나는 상어의 위협이다. 돌고래는 늘 상어로부터 공격당할 위험에 놓여 있다. 오스트레일리아 서부에서의 한 조사에서는 성체 큰돌고래의 74퍼센트에서 상어에게 물린 흔적이 발견되었다. 특히 상어는 어린 돌고래를 노려, 새끼를 낳은 어미 돌고래는 적어도 두 달 동안 초긴장 상태를 유지해야 한다.

돌고래의 이런 능력은 사람 시각에선 극단적으로 보일지 몰라도 돌고래에겐 생존을 위해 일상적인, 대단할 것 없는 행동일 뿐이다. 신기하게도 수족관의 돌고래는 바다에서와 달리 두 눈을 감은 채 외부에서 건드려도 꿈쩍도 하지 않고 푹 잠에 빠진다. 잠을 자는 동안에도 꼬리지느러미는 무의식적으로 움직여 숨구멍을 수면 위로 내놓는다. 야생에서의 돌고래도 아주 짧지만 4~60초 동안 깊은 잠에 빠진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오스트레일리아 탕갈루마 해양교육 및 보전센터는 돌고래에게 매일 먹이를 공급한다. 그래서 자유롭게 돌아다니는 돌고래가 주기적으로 찾아온다. 그런데 세 살을 넘긴 수컷 큰돌고래 에코가 생선을 받아먹으러 돌아왔을 때 보니, 옆구리에 끔찍한 상처가 나 있었다. 상처는 길이 30센티미터, 폭 10센티미터 크기였고, 두께 3센티미터의 지방층을 뚫고 근육이 드러날 정도였다. 상어에게 물어뜯긴 것이 틀림없다. 그러나 에코는 전혀 고통스러워하지 않았고 먹이도 잘 먹었다. 탕갈루마 센터는 큰 부상을 입은 에코의 치유과정을 관찰했다. 2일째가 되자 드러난 지방층이 부상 부위를 덮었다. 에코는 상처를 개의치 않는 것처럼 행동했으며 식욕도 떨어지지 않았다. 5일째에는 상처에서 새살이 돋아났고 15~20일이 지나자 상처는 눈에 띄게 작아졌고 깨끗해졌다. 21일 만에 벌어진 상처가 닫히기 시작해 49일이 되자 흉터는 감쪽같이 봉합됐다.

12살짜리 큰돌고래 나리도 등 쪽에 가로 15센티미터 세로 30센티미터 크기로 상어에게 뭉텅 뜯겼다. 상처가 너무 심해 센터가 이 돌고래를 포획해 치료했는데 7일째부터 새살이 돋아 42일째에는 완쾌해 바다로 돌아갔다. 마치 공상과학 영화에서와 같은 돌고래의 치유능력에 과학자들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돌고래는 연한 조직에 끔찍한 부상을 입고도 과다출혈이나 흉터와 감염 없이 말끔히 치유된다. 고통을 느끼는 행동도 보이지 않는다. 이런 치유능력의 비밀을 밝힌다면 당연히 인류의 상처 치료에도 큰 기여를 할 것이다. 미국 조지타운 대학 이식연구소 마이클 자슬로프(Michael Zasloff) 박사는 돌고래의 치유능력을 전문적으로 연구하고 있다. 그는 개구리 피부에서 분비되는 항생물질이 상처의 감염을 막는다는 사실을 발견해 천연 항생제 연구의 길을 연 바 있다.

다른 포유류와 마찬가지로 돌고래도 고통에 저항하거나 도망치는 반응을 보인다. 그런데 상어에 물려 살이 해질 만큼 큰 부상을 입은 돌고래가 짐짓 아무런 고통도 느끼지 않는 것처럼 행동하는 까닭은 뭘까. 자슬로프는 이것을 ‘잠수 반사행동’으로 설명한다. 돌고래는 깊이 잠수할 때 산소 소비를 줄이기 위해 몸의 구석구석으로 보내는 혈액을 차단하는 잠수행동을 보인다. 큰 부상을 입었을 때도 이와 비슷한 반사행동이 나타나 출혈을 줄이고 고통도 차단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행동과 관련한 신경학적 생리학적 메커니즘은 밝혀져 있지 않다.

육상 포유류와 비슷한 면역체계를 가진 돌고래가 세균이 득실거리는 바다 속에서 큰 상처를 입고도 감염되지 않는 것도 수수께끼다. 자슬로프는 돌고래의 체지방이 이런 신비한 ‘초능력’과 관련이 있을 것으로 보았다. 돌고래의 체지방에는 시큼한 땀 냄새를 일으키는 물질인 이소길초산이 많이 들어 있다. 이 물질은 그동안 돌고래의 물속 생활에 적응하기 위한 물질로 여겨졌지만 자슬로프는 항균기능의 가능성을 제시했다. 부상을 입은 뒤 지방이 녹아 상처를 덮는 과정에서 지방에 들어 있던 이소길초산이 방출돼 항균작용을 한다는 것이다. 자슬로프는 이런 치유과정은 포유동물이 상처를 치료하는 방식과 다르며 포유동물의 태아가 자궁 안에서 자신을 스스로 치유하는 방식과 닮았다고 주장한다.

돌고래의 신통한 능력은 이밖에도 많다. 20년 이상 지난 일을 기억하고, 부상당한 동료를 ‘몸 뗏목’을 만들어 구조한다는 사실이 최근 밝혀졌다. 그런데도 비좁은 풀장에 가둬 쇼를 시키고, 그 고기를 별미로 먹는 건 아무래도 제대로 된 대접이 아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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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 ・ B. K. Branstetter & J. J. Finneran, “Dolphins can maintain vigilant behavior through echolocation for 15 Days without interruption or cognitive impairment”, PLoS ONE, vol. 7, no. 10(2012). DOI: 10.1371/journal.pone.0047478
  • ・ M. R. Heithaus, “Shark attacks on bottlenose dolphins (Tursiops aduncus) in Shark Bay, Western Australia: Attack rate, bite scar frequencies and attack seasonality”, Marine Mammal Science, vol. 17(2001), pp. 526~539.
  • ・ Michael Zasloff, “Observations on the remarkable (and mysterious) wound-healing process of the bottlenose dolphin”, Journal of Investigative Dermatology, vol. 131(2011), pp. 2503~2505. DOI: 10.1038/jid.2011.220

조홍섭 집필자 소개

환경과 과학 분야에서 30년 가까이 통찰력과 이슈가 있는 기사와 칼럼을 써온 우리나라 환경전문기자 1세대이다. 생태보전, 원자력발전, 4대강 개발 등 1980년대 이 후 급부상하는 환경 현안들을..펼쳐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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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에는 이야기가 있다
자연에는 이야기가 있다 | 저자조홍섭 | cp명김영사 도서 소개

동물행동, 생태학부터 진화론, 동물복지, 자연사까지 기초자연과학과 첨단응용과학을 넘나들며 펼치는 흥미롭고 감동적인 생명들의 이야기. 살아 있는 그 모든 것들이 펼쳐내는..펼쳐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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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um백과] 돌고래의 초능력자연에는 이야기가 있다, 조홍섭, 김영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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