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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국박람회는 19세기 건축에 내재된 경쟁 구도가 드러난 장이었다. 새로운 공산품을 전시하는 행사였기 때문에 국가 간에는 산업화 경쟁의 장이었다. 전시로만 끝나는 것이 아니고 구매 계약으로까지 이어졌기 때문에 자본주의가 경쟁하는 장이기도 했다.

건축적으로는 역사주의와 신건축 운동이 날카롭게 충돌하던 곳이었다. 두 진영은 만국박람회에 공을 많이 들였다. 일반 대중들을 상대로 열리는 축제 성격의 행사라는 점, 한 번 열릴 때마다 10~20채의 건물들을 새로 지어야 하는 점, 이 건물들이 대부분 일회용이기 때문에 새로운 건축적 실험을 하는 데 부담이 별로 없는 점 등은 건축가들이 자신들의 경향을 적극 드러내서 널리 알리기에 상당히 유리한 조건들이었다.

최초의 근대적 만국박람회는 1756년 런던에서 영국 예술가 협회 주관으로 열렸다. 이후 유럽 여러 도시를 거친 뒤 파리가 18세기의 마지막을 장식했다. 산업혁명이 일정한 궤도에 오르고 제국 경쟁이 치열해진 19세기는 만국박람회의 전성기였다.

18세기부터 정착한 영국과 프랑스의 경쟁 구도는 19세기에는 더욱 치열해졌다. 영국이 한 발 빨랐다. 산업혁명의 발상지답게 오랜 준비 끝에 1851년 런던 만국박람회를 야심차게 열어 대성공으로 이끌었다. '대 박람회'라 불리며 규모와 화려함을 자랑했는데 조지프 팩스턴(Joseph Paxton)의 수정궁(Crystal Palace)이라는 주 전시관 건물이 주인공이었다. 건물 전체를 유리만으로 지어서 19세기 신건축 운동의 역사에서도 큰 획을 그은 중요한 건물이었다.

수정궁은 여러 면에서 산업혁명의 결과를 건축적으로 총 집대성하며 신건축 운동의 무한한 가능성을 확실하게 보여준 건물이었다. 기술적으로 새로운 발전은 없었으나 기존의 기술을 활용해서 건축적으로 새로운 모습을 제시한 점에서 의미가 컸고 이를 바탕으로 대중적 성공을 거둔 건물이었다. 대량생산 체제를 본격적으로 적용한 물량 공세가 두드러졌으며 철물과 유리가 어우러져 전대미문의 환상적 장면을 선보였다.

길이는 564미터, 폭은 124미터, 높이는 32.4미터, 면적은 7만 제곱미터(=21,212평)였다(도 9-58). 개장 날에는 무려 25만 명의 관람객이 들어왔는데도 실내 공간에 여유가 있었다. 효율적 공사를 위해 표준화를 도입했다. 7.2미터 모듈을 반복해서 가로 564미터, 세로 124미터의 전체 평면을 짰다.

유리는 1.2미터 길이의 패널을 기본 단위로 사용했다. 골조는 약 15만 개의 표준 부품을 현장에서 조립만 하는 건식으로 짰다(도 9-59). 천장은 한쪽 트랜셉트만 제외하고 모두 평천장으로 처리했다. 표준화는 대량생산의 산물인 동시에 대량생산의 발전을 도왔다. 표준화된 건식 공법이어서 공사 기간은 세 달 반밖에 안 걸렸는데 당시 상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속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