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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는 임석재
의 서... 로마네스크 건축
아헨 왕궁 예배당과 중앙집중형 공간의 정리
프레로마네스크 건축에서는 중앙집중형과 선형의 두 교회 양식 모두에서 중요한 발전이 있었는데 아헨 왕궁 예배당(Aachen Palatine Chapel, 790~805)은 전자를 대표했다. 새로 발명한 내용은 많지 않지만 산비탈레의 팔각형 겹 공간과 복층 갤러리 구성을 빌려와서 서북유럽에 맞게 정리해 로마네스크 건축으로 발전해갈 바탕을 닦은 점에서 중요성이 있다(도 4-4). 제일 큰 발전은 수직성이 증가하고 벽체가 두꺼워졌으며 모듈이 등장하는 등의 정리가 있었던 점이다. 중앙 공간의 지름 대 높이의 수직 비율이 산비탈레의 1.78에서 이곳에서는 2.1로 커졌다(도 4-5).
- 1도 4-4 아헨 왕궁 예배당
독일, 790-805년.
- 2도 4-5 아헨 왕궁 예배당
독일, 790-805년.
이는 게르만족의 역동성을 반영하는 것이다. 조형적으로 볼 때 지중해의 고전주의를 수평선에, 게르만 정신을 수직선에 각각 대응하는 것이 통례인데 이것을 반영한 것이다. 구체적으로 보면 갤러리의 층수가 2층에서 3층으로 증가했으며 이를 구조적으로 안전하게 뒷받침하기 위해 벽체, 아치의 아키볼트와 피어, 기둥 등 모든 내력 구조가 두꺼워졌다(도 4-6).
산비탈레의 벽체 두께가 평균 0.8~1미터였던 데 반해 이곳에서는 1.3~2미터로 두 배 가까이 두꺼워졌다. 중세 건축이 고전주의와 대비되어 보이는 가장 두드러진 특징이 강한 수직선이라고 볼 때 이미 이곳부터 수직으로 치고 오를 준비가 된 셈이다.
수직으로 높아진 건물에 구조적 안전성을 담보하기 위해 평면에서도 정리가 있었다. 안쪽 중심 공간은 팔각형, 바깥쪽 복도는 십육각형으로 구성해서 두 도형의 꼭짓점들이 방사선 방향으로 일치했다. 이에 따라 반지형의 복도를 작은 삼각형과 사각형의 명확한 기하단위로 분할, 구성했다.
초기 단계의 모듈도 등장해서 내벽과 외벽에 같은 형태의 구조 부재를 반복했으며 이것을 쌓는 조적 부재도 동일한 요소를 반복했다. 산비탈레가 모듈 개념 없이 벽돌로 지은 데 반해 이 건물은 모듈 개념을 적용한 석재로 지었는데 이는 중세 건축 전체가 화강암 건축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중요한 전환이다.
물론 이런 발전은 당시로서는 큰 변화이나 시간의 끈을 늘려 중세 전체에서 보면 첫걸음에 불과한 것일 수도 있다. 무엇보다도 들어간 부재가 너무 많았다. 구조 효율성의 관점에서 볼 때 산비탈레보다 조금 높은 수직성을 확보하기 위해 들어간 물량이 아직은 비효율적이라는 뜻이다. 그러나 반대의 해석도 가능하다. 산비탈레는 둥근 천장을 만드는 데 속이 빈 항아리를 사용했기 때문에 경량화되어 벽체 두께를 줄일 수 있었지만 이 건물에는 이 기술을 사용하지 않았다.
샤를마뉴가 이 기술을 몰라서 그랬다는 것이 통설이나, 그 대신 완전 석조로 천장을 덮은 점은 또 다른 발전이었다. 중세 건축에서 석조 천장의 역할이 매우 중요해지는데 만약 계속해서 속이 빈 항아리로 천장을 채웠다면 이것이 불가능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아헨 왕궁 예배당에서는 수직성 이외에 석조의 육중함이나 물성 등을 표현하려는 다른 목적이 있었으며 이를 위해 로마 조적 기술을 종합화한 것이었다.
실제로 샤를마뉴는 이 건물을 짓기 위해 콜로세움으로 대표되는 로마의 원형극장 조적 기술을 참고했다. 정치적으로도 스스로를 가리켜 로마제국을 알프스 이북 지역으로 옮겨 새로 세운 대제로 정의하고 싶어 했다. 로마제국의 적통을 이어받은 황제이고 싶어 했던 것이다.
이상을 종합하면 아헨 왕궁 예배당의 의미는 산비탈레의 공간 구도를 콜로세움의 구조 기술로 축조해서 게르만 정신을 표현한 것으로 요약할 수 있다. 이는 '기독교+로마의 전통+게르만 정신'의 합으로 요약되는 유럽 중세문명의 성격을 그대로 반영한 것이다.
이런 의미를 갖는 이 건물의 특징은 프레로마네스크에서 로마네스크에 이르는 시기에 중앙집중형 구성에 중요한 선례 모델이 되었다. 비교적 직접적 영향을 보여주는 예로 독일 오트마르스하임의 수도원 교회, 네덜란드 니메헨의 예베당, 벨기에 리에주의 성 요한 등을 들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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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권으로 읽는 임석재의 서양건축사 “책으로 만나는 임석재의 서양건축사 강의”총 724장의 컬러 도판으로 현장감이 살아 있는, 압축적인 한 권의 서양건축 통사 이 책은..펼쳐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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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um백과] 아헨 왕궁 예배당과 중앙집중형 공간의 정리 – 한 권으로 읽는 임석재의 서양건축사, 임석재, 북하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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