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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는 임석재
의 서... 로마네스크 건축
독일의 성기 로마네스크와 제2 슈파이어
독일의 성기 로마네스크는 통상적으로 1060년부터 1170년 사이를 일컫는데 정치사에서는 잘리어왕조(1024~1125)와 호엔슈타우펜 왕조(1138~1254)에 해당한다. 이 가운데 잘리어왕조가 주도적 역할을 했다. 오토왕조의 뒤를 이어 신성로마제국의 전성기를 이끈 왕조였으며 건축양식도 함께 전성기를 누렸다.
독일의 성기 로마네스크는 초기의 중심지였던 작센을 떠나 라인란트로 옮겨왔다. 프랑스와 마찬가지로 국제주의와 지역주의로 대별할 수 있다. 국제주의는 슈파이어의 라인란트 상류가 중심지였고 지역주의는 쾰른의 라인란트 하류가 중심지였다.
국제주의는 프랑스 성기 로마네스크를 거치면서 완성된 표준 구성을 받아들여 형성되었는데 초기 로마네스크를 거치며 독일만의 건축 양식을 완성했던 것에 비추어볼 때 쉬운 문제가 아니었다. 중세가 어느 정도 진행되면서 로마 교황청과 프랑스 왕실을 잇는 주류 세력이 형성되고 신성로마제국은 여기에 도전하는 지역 세력으로 자리매김 하면서 더욱 그랬다.
독일은 지역 주교 임명권을 교황청에 내주지 않고 황제가 가지려 했고 이는 중세 전반에 걸쳐 두 세력 간에 잦은 충돌과 전쟁을 유발했다. 카노사의 굴욕 등 위기도 있었지만 1122년 보름스협약에서 타협점을 찾아냈다. 프랑스와는 현실 권력에서 경쟁을 벌였다. 두 왕국은 직접적 충돌은 많지 않았지만 이탈리아에 대한 영향력과 십자군원정의 주도권 등을 놓고 경쟁을 이어나갔다.
이런 상황 아래 프랑스의 발달한 로마네스크 구조 체계를 받아들여 국제적 흐름에 동참하면서 독일 성기 로마네스크 건축이 성립되었다. 중심지는 프랑스와 접경 지역인 라인란트로 제2 슈파이어 성당(SpeyrII, 1062~1106)에서 제일 잘 구현되었다. 독일 로마네스크 전체를 통틀어 리브 볼트 천장과 다발 기둥을 접목하는 문제를 전적으로 다루어 해결한 거의 독보적인 예였다. 독일 로마네스크에서 제2 슈파이어가 차지하는 비중은 비정상적으로 컸는데 이는 슈파이어란 도시의 중요성에서 기인한다.
잘리어왕조의 중심 도시로서 독일 내에서는 쾰른과 기독교 중심지를 다투었으며 유럽 전체로 보면 클뤼니와 경쟁했다(도 4-41). 제2 슈파이어는 제3 클뤼니와 경쟁하기 위해 세운 건물이었다. 제3 클뤼니는 베네딕트회를 매개로 로마의 중앙 가톨릭 정부를 대표하는 순수 가톨릭 성당, 혹은 수도원 성당이었으며 주로 성직자들을 안장했다. 반면 제2 슈파이어는 신성로마제국을 대표하는 황실 성당이었으며 네 명의 황제와 두 명의 황후 등 현실 권력자를 주로 안장했다. 규모와 구성 등 여러 면에서 쌍벽을 이루며 경쟁했다.
제2 슈파이어는 제1 슈파이어를 증축한 건물이다. 제1 슈파이어에서는 네이브 천장을 석조 볼트로 계획했지만 스팬이 15미터나 되자 자신이 없어져서 목조 평천장으로 바꿔 지었다. 1031년에 공사를 시작해서 1060년에 완공했는데 약한 지반 때문에 봉헌 2년 만에 붕괴가 시작되자 하인리히 4세는 바로 그해에 증축 공사에 들어갔다. 하인리히 4세는 '카노사의 굴욕'의 주인공이기도 했고 독일의 민족적 정체성을 세우기 위해 힘쓴 인물이었던 만큼 새로 짓는 성당이 제3 클뤼니를 능가하기를 원했다. 그가 죽은 1년 뒤인 1106년에 완공되었다.
새 건물은 생각만큼 커지지는 않아서 평면의 전체 윤곽, 납골당, 크로싱, 네이브, 서쪽 파사드 등 기본 골격은 그대로 두고 성가대석, 애프스, 트랜셉트, 여섯 개의 첨탑의 상층부 등을 다시 지었으며 무엇보다 네이브 천장을 석조 볼트로 대체하는 일이 제일 핵심이었다. 네이브 월은 제1 슈파이어의 상태인 2단 구성이 그대로 남았다. 천장은 리브 없는 그로인 볼트로 대체했으며 기둥 체계도 여기에 맞춰 증축했다. 리브는 횡 방향 아치 형식으로 한 줄만 들어갔다(도 4-42).
국제주의 표준 양식을 받아들이기는 했지만 완전히 같지는 않았다. 네이브 월에는 성화를 그리기는 했지만 건축 구성으로 보면 독일의 초기 로마네스크가 그래도 남은 것으로 볼 수 있다. 기둥 체계와의 대응에도 불일치가 많았다.
더블 베이인데, 부 기둥은 천장을 향하다가 끝까지 오르지 못하고 천측창 아치의 아키볼트로 갈라져 나갔다. 주 기둥에서는 천장의 리브와는 일체가 일어났지만 아케이드를 담당하는 대응 기둥은 없었다. 기둥은 구조 역할보다는 장식 요소로 벽체 위에 더한 모습이 역력했다. 아직 다발 기둥은 나타나지 않았다.
제2 슈파이어는 독일 성기 로마네스크의 전형으로 자리 잡아 바젤에서 마인츠에 이르는 라인란트 상류 지역의 여러 도시로 퍼져나갔다. 마인츠 성당, 보름스 성당, 밤베르크 성당 등이 대표적 예다. 마인츠 성당(Mainz Cathedral, 1081~1137)은 네이브 월의 구성과 기둥 체계 등에서 제2 슈파이어와 매우 흡사했다.
네이브 월의 갤러리 자리는 블라인드 아치로 처리한 뒤 성화를 그렸다. 천장에는 그로인 볼트 전체에 리브를 사용해서 진일보한 모습을 보인다. 기둥에서는 오히려 후퇴했다. 더블 베이인데 부 기둥에서는 아예 대응 기둥이 모두 사라지고 굵은 사각기둥만 남았다(도 4-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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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um백과] 독일의 성기 로마네스크와 제2 슈파이어 – 한 권으로 읽는 임석재의 서양건축사, 임석재, 북하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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