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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베의 성 피에르 성당각주1) 은 프랑스 고딕건축의 양면성을 잘 보여주는 특이한 예였다. 나아가 유럽 기독교 건축의 수직 욕망이 지닌 위험성을 보여주는 예이기도 하다. 보베는 로마네스크 건물로 시작되었다. 여러 번의 화재로 거의 형체를 알아볼 수 없게 된 것을 1225년부터 1272년 사이에 성가대석부터 증개축했다.
이때 고딕 최고의 기록 가운데 하나가 세워졌다. 샤르트르에서 아미앵에 이르는 성기 고딕의 구조공법을 십분 활용하여 성가대석이 48미터까지 올라갔다. 아미앵보다 5미터나 더 높은 것으로 고딕건축의 실질적 최고 기록이었다(도 5-37). 그러나 1284년에 천장이 무너지는 비운을 맞았다.
보베의 설계는 여러 선례들에서 좋은 점만 따와서 혼합했다. 이 때문에 붕괴의 원인을 쉽게 찾아내지 못했다. 원인을 밝히지 못한 채 1337년부터 1347년 사이에 기둥만 보강해서 다시 지었고 16세기에는 트랜셉트에 플랑부아양양식을 더했다(도 5-41).
이후 더 이상 공사가 없었기 때문에 네이브를 갖지 못한 채 반 토막 상태로 남았다. 아직도 정확한 붕괴 원인을 밝히지 못하고 있는데, 상식적 수준에서 추측할 수 있다. 연약한 지반에 기초를 충분히 다지지 못한 점, 시공이 정밀하지 못한 점, 여러 선례들에서 모은 구조 체계 자체에 문제가 있었던 점, 천장 하중을 플라잉 버트레스에만 의존하고 실내 벽과 기둥은 철물 연결 막대로만 보강해서 한 몸으로 작용하지 못한 점 등 네 가지로 추측할 수 있다.
네 가지는 모두 일정한 근거가 있다. 이것은 네 가지 모두가 붕괴 원인이 될 수 있다는 뜻이다. 즉 한 가지 특정 원인에 의한 것이기보다는 여러 요인이 복합된 결과일 수 있다는 뜻이다. 그만큼 허술하게 계획하고 지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수직 욕망 한 가지에만 집착하여 쫓기듯 서둘러 지었음을 알 수 있다.
이론적으로만 보면 고딕 기술로 보베의 높이를 올리는 일은 불가능하지만은 않다. 문제는 구조 체계의 타당성과 시공의 정밀성 등 계획에서 완공에 이르는 전 과정에 걸친 치밀하고 종합적인 위기관리 능력이었다. 이것은 곧 고딕 구조의 핵심인 유기성 개념이기도 한데 이것을 잊은 채 단편적 기술만 짜깁기해서 수직 욕망만 추구한 것이 화근이었다.
좀 더 전문적으로 보면, 특히 문제가 되었던 것은 샤르트르와 부르주라는 상반되는 체계를 하나로 합친 것이었다. 샤르트르에서는 천측창의 높은 비율을, 거꾸로 부르주에서는 아케이드의 높은 비율을 각각 따와서 하나로 합하기만 하면 최고 높이가 가능할 것으로 안이하게 판단한 것이다(도 5-42).
두 선례의 네이브 월 비율은 상징적 목적 이외에 구조적으로도 이유가 있는 것이었다. 샤르트르에서는 천측창을 일정 높이까지 올려놓은 다음 트리포리엄을 높이고 그 다음 아케이드를 높이는 식으로 단계적 공사 방식을 사용했다. 천측창을 안전하게 받치기 위해서였다. 반면 부르주는 5랑식이었기 때문에 아일 벽체의 내력 역할 비중이 높아졌고 그에 따라 아케이드가 높아진 것이었다.
이처럼 샤르트르는 천측창이 높은 대신 아케이드가 낮았는데 이것을 무시하고 높은 천측창만 따왔다. 부르주에 대해서도 그 반대로 받아들였다. 두 방식 모두 그럴 만한 사연이 있는 것이고 이것이 유기성의 핵심 개념인데 이를 무시하고 단편적 기록만 모으려 했던 것이다.
구체적 예로, 부르주에서는 인장력에 대비해서 타드샤르주를 크게 보강했기 때문에 아케이드가 높아질 수 있었던 것인데 보베에서는 이것을 고려하지 않았다. 보베의 타드샤르주는 매우 허술했고 붕괴는 여기서부터 시작되었다. 유기성의 교훈을 잊은 성급한 수직 욕망은 재난으로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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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권으로 읽는 임석재의 서양건축사 “책으로 만나는 임석재의 서양건축사 강의”총 724장의 컬러 도판으로 현장감이 살아 있는, 압축적인 한 권의 서양건축 통사 이 책은..펼쳐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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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um백과] 보베 – 한 권으로 읽는 임석재의 서양건축사, 임석재, 북하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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