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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세기 건축

그레코-고딕 아이디얼과 새로운 교회 유형

교회 건축에 대한 이신론의 생각은 단순한 주장에 머물지 않고 18세기 구조 합리주의의 핵심을 이루는 새로운 건축 운동을 탄생시켰다. '그레코-고딕 아이디얼'이라는 운동으로 이신론 성직자와 건축가들의 합작품이었다. 성직자 가운데는 장 루이 드코르드무아(Jean Louis de Cordemoy, 연도 미상)와 마크앙투안 로지에(Marc-Antoine Laugier, 1713~69)가 대표적인 인물이었다.

드코르드무아는 바로크 교회 건축에 대한 대안으로 '고딕건축과 그리스건축에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구조적 효율성'을 들었다. 두 건축 방식은 양식적으로는 반대편에 섰지만 불필요한 장식 군더더기 없이 꼭 필요한 구조만으로 구성된 공통점이 있었다(도 8-31, 8-32). 두 방식의 이상적 내용만 따와서 하나로 합한다는 의미로 '그레코-고딕 아이디얼'이라는 개념이 태어난 것이다.

도 8-31 『건축의 모든 것 혹은 축조술에 대한 새로운 소고(Nouveau Traite de Toute l'Architecture ou l'art debastir)』(1706)에 나오는 코린트식 오더 그림.

장 루이 드코르드무아

ⓒ 임석재 | 저작권자의 허가 없이 사용할 수 없습니다.

도 8-32 그리스 가구식 구조와 고딕 볼트 구조 비교 그림.

장 바티스트 롱들레(Jean Baptiste Rondel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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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 건축의 역사에서 그리스 고전주의와 고딕건축의 정수를 구조적 효율성의 관점에서 파악한 것과 둘을 하나로 합해서 새로운 건축 방식으로 만들 생각을 한 것은 획기적인 사건이었다. 이 개념은 이후 19세기 신건축 운동으로 발전하면서 현대건축의 철골-철근 콘크리트 가구식 구조를 탄생시키는 바탕이 된다.

건축가도 아닌 성직자가 이런 생각을 할 수 있었던 것은 평소 건축에 관심이 많아서였는데 실제로 드코르드무아의 주장은 페로의 영향을 받은 것이었다. 바로크 교회에서 벽체 구조가 문제가 된 것은 중세 고딕 양식을 건너뛰어 로마 기독교의 바실리카 유형을 차용했기 때문이었다. 바실리카 유형에서 네이브 천장을 볼트로, 크로싱 천장을 돔으로 각각 덮으면서 이것을 받치기 위해 네이브 월이 두꺼운 벽체 구조가 된 것이다.

17세기 프랑스 고전주의자들은 독립 원형 기둥만으로 볼트 천장을 받치는 것은 무리며 더욱이 돔을 받치는 것은 완전히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다. 렌이 이러한 시도를 했지만 결국 정상적인 돔을 사용하지 못한 것도 좋은 증거였다. 중앙집중화된 가톨릭의 권력체제에서 바티칸의 성 베드로를 모델로 삼아 습관적으로 반복한 것도 중요한 요인이었다. 17세기 후반부에 과학 정신으로 무장한 일단의 건축가들은 이런 관습화된 당연성에 의문을 품으며 바실리카 실내를 독립 원형 기둥만으로 받치는 실험운동을 전개했다.

핵심 내용은 독립 원형 기둥을 기본 구조 방식으로 사용한 바실리카 교회의 원형으로 돌아가는 것이 나아가 그리스 가구식 구조로 고딕 네이브 월의 '아케이드-트리포리엄-천측창'의 3분법을 구현하는 것이었다. 페로는 성 주느비에브(Ste.-Genevieve) 계획안에서 이 방식을 완성도 높게 제시했다. '가구식 구조-두 단의 낮은 갤러리-루넷'으로 이루어진 3분법이었으며 이것이 배럴 볼트 천장을 받쳤다(도 8-33). 그러나 실제 지어지지 못하고 계획안에 머물렀다.

도 8-33 성 주느비에브 계획안.

클로드 페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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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두앙 망사르의 베르사유궁전 왕실 예배당(1699~1710)은 실제로 지은 건물이다. '사각 벽기둥의 아케이드-독립 원형 기둥 열주-천측창'의 3분법으로 구성되었으며 역시 배럴 볼트로 천장을 덮었다. 1층 구조가 페로의 계획안만큼 파격적이지는 않았지만 실제 지어진 건물이 당연한 한계였다. 그 대신 2층을 9미터 높이의 가구식 열주로 처리한 것은 압권이었다. 천장 높이는 약 22미터였으며 네이브 폭과 천장 높이의 비례는 1대 2.5로 성기 고딕의 수직 공간 느낌에 육박했다.

드코르드무아는 건축가들이 시도했던 이런 새로운 실험을 성직자의 관점에서 이어받아 주장해 그레코-고딕 아이디얼 논쟁에 불을 붙였다. 이것을 이어받아 발전시킨 사람이 로지에다. 드코르드무아보다 한발 더 나아가 그레코-고딕 아이디얼의 이상적 예로 '원시 오두막'이라는 구체적 구조물을 제시했다.

네 개의 기둥, 바닥, 보, 지붕만으로 이루어진 가장 단순하고 근원적인 구조체였다(도 8-34). '숭고한 원시주의'와 '단순한 자연'이라는 낭만주의 사상과도 맞닿아 있는 주장이었다. 인간의 욕심이 개입하기 이전의 가장 기본적 원형을 교회 건축의 이상적 모델로 제시한 점에서 매우 과격한 개혁 운동이었으며 이런 점에서 순결주의로 부르기도 한다.

도 8-34 『건축 에세이(Essai sur l'architecture)』(1753)의 속표지에 나오는 원시 오두막 그림.

마크앙투안 로지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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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지에가 허용한 것은 원형 요소까지였다. 구조적 작용과 기능적 목적을 솔직하고 명확하게 스스로 표현하기 때문이었다. 반면 2차 부가 요소는 겉치레, 허영, 거짓 등을 통해 본래의 기능과 목적을 숨기고 왜곡해 애매하게 만들기 때문에 피해야 했다.

원시 오두막 이론은 극단적 극기주의를 추구한 이상주의이자 바로크 교회의 낭비와 허영에 대한 해결책을 원시성에서 찾은 순결주의였다. 인간의 이기적 욕심과 문명의 때가 끼기 이전의 순수한 상태를 그리며 합리주의 시대의 이상적 건축 모델로 제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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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석재 집필자 소개

서울공대 건축학과를 졸업한 뒤 미국 미시간대학교에서 석사학위를 받았으며 펜실베이니아대학교에서 프랑스 계몽주의 건축에 관한 연구로 건축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는 건축을 소재로 동서고금을 넘나드는..펼쳐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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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권으로 읽는 임석재의 서양건축사
한 권으로 읽는 임석재의 서양건축사 | 저자임석재 도서 소개

한 권으로 읽는 임석재의 서양건축사 “책으로 만나는 임석재의 서양건축사 강의”총 724장의 컬러 도판으로 현장감이 살아 있는, 압축적인 한 권의 서양건축 통사 이 책은..펼쳐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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